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08화 (108/127)

二四장. 재회. (2)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분위기 또한 가라앉았다.

오랜만에 재회해서 이런 것은 별로였다. 하여 상호는 대화 화제를 바꿨다.

“그보다 다시 재회하고 보니 실력이 많이 늘어난 것 같네. 왜장을 벨 때, 포스의 힘을 쓴 거지?”

“네, 맞아요.”

“그토록 가늘고 예리한 포스의 칼날을 뽑아내다니. 그동안 능력의 숙련을 상당히 이루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

상호의 칭찬에 율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뻐하는 표정을 상호에게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호가 다시 말했다.

“오랜만에 실력을 볼 겸 가볍게 대련 한 판할까?”

“나리와 제가 어찌.”

“내가 해보고 싶어서 그래.”

큰 전투를 치르고 몇 시간도 안 된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어이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율이 얼마나 실력을 키웠는지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 무리해서라도 이런 제안을 한 것이다.

결국 율은 윗사람인 상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고 대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에서는 너무 눈에 띄니 잠시 다른 곳으로 가자.”

“네.”

상호와 율은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산 동쪽 가파른 쪽으로 이동했다.

타다닥!

쉽지 않은 산길을 가볍게 내려오는 상호.

율 역시 그런 그를 따라 막힘없이 산을 내려왔다.

그 뒤로 꽤 먼 곳까지 나란히 달리는데 그 속도는 거의 준마가 달리는 것과 비슷했다.

‘이제 신체 능력만 보면 거의 날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능력치 각성의 상태가 비슷하다면 순수하게 실력으로 승패가 결정 날 게 분명했다.

무인의 딸인 율의 실력을 잘 알기에 살짝 지는 것이 염려되긴 했어도 이제와 발을 뺄 마음은 없었다.

“여기가 좋겠네.”

강변의 모래사장.

탁 트인 장소라 겨루기엔 딱 안성맞춤이었다.

“진검을 써도 괜찮고 능력을 써도 좋아. 대신 급소만 공격하기 없기로 하는 거야.”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괜찮아, 괜찮아. 어느 정도 다쳐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깐.”

상호는 사명대사와 허준의 능력을 염두하고 이렇게 말했다.

율은 잠시 망설였지만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자, 그럼.”

“예.”

상호와 율은 서로 거리를 두고 검을 뽑아들었다.

이때,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두 사람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크게 휘날렸다.

“수룡시!”

먼저 선공을 취한 것은 상호였다.

마침 강가였기에 따라 수분을 허공에서 모을 것도 없이 바로 강에서 수룡시를 뽑아내 율을 공격했다.

“······!”

율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수룡시’들을 보고 검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그러자 투명한 장막이 펼쳐지고 거기에 ‘수룡시’가 부딪쳤다.

‘포스를 이용한 방어막인가.’

이에 상호는 ‘수룡시’의 방향을 바꿔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자 이번엔 율이 눈으로 좇기 어려울 만큼 빠른 움직임으로 ‘수령시’를 검으로 일일이 요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상호는 이번엔 ‘수룡시’를 날리면서 동시에 돌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다수의 ‘수룡시’가 허공으로 가르는 가운데, 상호가 거리를 단숨에 좁인다.

“핫!”

이때, 율은 허공에 빠르게 검을 휘저었다.

파바밧!

그러자 놀랍게도 무형의 기운이 뻗어나가 ‘수룡시’와 부딪쳐 상쇄했다.

“간다!”

“······.”

‘수룡시’를 제물 삼아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한 상호의 공세가 빠르게 이뤄진다.

수 합의 공방이 한 번의 숨쉬기를 하는 동안에 이어지고 둘은 모래사장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역시 쉽지 않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검술을 가르쳐준 스승이다.

율의 방어는 결코 쉽게 뚫을 수가 없었다.

“하하, 역시 검술은 나보다 네가 더 뛰어나네.”

“나리의 솜씨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쉼 없이 검을 움직이면서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

상호가 앞으로 찌른 검을 고개 살짝 꺾어 피한 율이 검 손잡이로 턱을 노렸다.

이를 피해 고개를 뒤로 숙인 상호.

이 틈에 보법을 밟아 옆으로 이동하면서 율이 빈 허리를 노렸다.

“우앗!”

상호는 간신히 그것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재차 검을 출수하려는 율을 보고 발로 땅을 강하게 찼다.

쿠구구궁!

그러자 ‘물의 속성력’에 의해 큰 물줄기가 모래 밑에서 솟구쳐 올랐다.

느닷없는 상황이었기에 율은 그대로 그 물줄기에 휩쓸려 공중으로 밀려 올라갔다.

“간다!”

상호는 물줄기에 휘말려 자세가 흐트러진 율을 노리고 그대로 땅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하앗!”

이때, 율은 폭발적인 기세로 ‘포스’ 능력을 끌어내 잠시나마 물줄기를 뿌리쳤다.

그 다음에 허공에서 자세를 바로 잡고 상호의 찔러오는 검을 자신의 검을 받아냈다.

채채챙!

순간, 허공에서 요란한 불꽃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하강하면서 부딪친 검의 횟수만 수십 합이 넘었다.

“흡!”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검을 맞댄 채로 힘겨루기를 하였다.

힘의 균형은 어느 한 쪽에서 유리하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순간, 두 사람은 서로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힘을 뺐다.

상호는 천천히 검을 떼며 말했다.

“대단한데. 이젠 검술만이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날 능가하겠어.”

“아니에요. 나리께서 절 봐주셔서 겨우 맞상대를 할 수 있었던 것뿐이에요.”

“봐주다니 무슨.”

솔직히 중간부터는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진짜 제대로 싸웠다.

그럼에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상호에겐 충격이었다.

‘그동안 너무 다른 사람한테 양보했어.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능력 빨도 이제 통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러다 율에게 뒤처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몬스터를 잡아 코어를 얻으면 당분간은 자신이 그것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상호였다.

그리고 한 편으론 자신을 따라잡은 율의 존재에 든든함을 느꼈다.

“좀 쉬었다가 갈까.”

“네.”

한바탕 하고 힘도 빠졌기에 잠시 강변에 앉아 쉬기로 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쉬는 와중에 상호가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 많은 노력을 한 것 같구나.”

“······.”

“고맙다, 무사히 있어줘서.”

진심어린 상호의 말에 율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만에야 말을 꺼냈다.

“전···나리를 곁에서 모시지 못해 가슴이 아팠어요.”

“날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고맙구나.”

“나리, 한 가지···소녀의 청을 들어주실 수 없으신지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드는 율.

다소 햇빛에 타긴 했어도 가슴을 설렐 만큼 아름다운 외모였다.

가까이서 얼굴을 본 상호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청이라는 게 뭔데?”

“하룻밤이라도 좋으니 소녀가 나리의 수청을 들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순간, 상호의 머릿속은 새하애졌다.

수청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설마 율이 이런 말을 해올 줄이야.

상호로선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잠, 잠깐만.”

“······.”

“진심으로 나한테 안기겠다는 거야?”

“···지금껏 나리의 곁을 지키면서 내내 사모했나이다. 감히 나리의 부인이 되겠노라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저 이런 소녀의 마음을 받아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 몸을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율의 말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사실에 상호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나도 남자다. 이런 청을 받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고.’

혈기왕성한 사내이기에 상호로선 이 제안을 덜컥 받아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미성년자를 건드려도 될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율······.”

“나리.”

상호는 자신을 보는 율의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갔다.

그리고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배경 삼아 두 사람은 아직 해가 떴음에도 불타는 사랑을 나눴다.

1593년 2월 15일.

조명 연합군은 드디어 한양을 탈환했다.

왜군은 빠르게 대전 이남으로 후퇴했고 곧 선조와 조정도 의주에서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렇게 전하께서 당당히 도성에 입성하시니 신하된 몸으로 참으로 기쁘옵니다.”

“감축 드립니다, 전하!”

“으흠!”

신하들의 말에도 선조의 표정은 매우 찌뿌둥했다.

그도 그럴 게 본래 국왕인 선조가 기거하던 궁인 창덕궁이 모두 불타버려 어쩔 수 없이 작은 정릉행궁에 거처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일까.

한양에 들어오는 와중에 길거리에서 본 백성들 중 어느 누구도 국왕인 선조가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 맞이하지 않았다.

백성들 입장에선 선조는 자신들을 버리고 자기만 달아난 왕이니 이런 대접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전하, 바다에선 이순신이 왜적들을 연달아 대패시키고 육지에선 권율이 큰 대승을 거두었으니 이제 한강 이남의 땅도 되찾을 날이 멀지 않았사옵니다.”

류승룡이 이리 아뢰자 다른 쪽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지에서 승전을 거두는 장수들의 공을 치하하고 관직을 하사하시여 국왕으로서 그들의 사기를 높이시는 게 옳은 줄 아뢰오.”

이러한 말을 한 것은 이항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신들의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선조가 말했다.

“어찌 왜적을 몰아내는 게 그들의 공이라 하겠는가. 전부 명 제국에서 보낸 천병들의 활약 덕분이 아닌가.”

“전하, 하오나······.”

“공에 대한 포상은 내 차후에 얘기할 테니 더 거론치 말라.”

선조는 포상 문제는 그대로 넘겨 버렸다.

이로 인해 공을 세운 장수들은 물론이고 지금껏 분조를 이끌었던 광해군에 대한 일도 묻혀버렸다.

“전하, 여진의 누르하치가 재차 서신을 보냈사옵니다.”

예조판서인 윤근수가 선조에게 간했다.

그 내용은 최근 북방 만주에서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모으고 있는 여진족의 족장 누르하치가 조선을 도와 원군을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선조는 눈살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찌 오랑캐를 막고자 또 다른 오랑캐를 불러들인다는 것이냐. 가당치도 않다.”

“소인 또한 같은 생각이오나 최근 여진족들의 세가 심상치 않사옵니다. 그러니 적당히 거절하고 그들을 다독이시는 게 어쩔까 싶사옵니다.”

“그리하라.”

여진족의 문제는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지 윤근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조였다.

이 때, 병조판서인 이항복이 선조에게 말했다.

“전하, 여진족의 동향을 예의주시하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최근 함경도의 6진 인근으로 여진족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야 늘 있는 일 아니더냐.”

“물론 그렇습니다만 함경도의 군진 대부분이 비어있는 지금, 만에 하나 그들이 침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항복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왜군과의 싸움으로 북방의 경비가 약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원군을 파병하겠다는 누르하치의 뜻도 다른 꿍꿍이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갖고 벌써부터 걱정하시는 게요.”

“지금은 왜와의 싸움에 집중해야 할 때요.”

윤두수를 비롯한 몇몇 대신들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이에 선조는 다음과 같이 뜻을 밝혔다.

“지금 이 조선엔 명나라의 정예들이 와 있으니 북방의 여진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허나 북방의 경비가 소홀해진 것도 사실, 내 종사관을 보내 북방의 방비를 한 번 점검하도록 지시하겠다.”

이러한 선조의 결정에 이항복을 비롯한 조정 대신은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멀지 않은 훗날, 큰 후회를 낳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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