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五장. Ⅲ단계 게이트. (5)
데스 나이트를 사이에 두고 동시에 접근한 상호와 율!
이 둘의 검은 거의 1초의 어긋남도 없이 동시에 출수되었다.
채앵!
"크윽!"
상호는 자신의 검을 막아낸 데스 나이트의 힘에 신음을 뱉으며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 사이, 반대편에서 검을 내리질렀던 율이 데스 나이트의 어깨를 베는데 성공했다.
"조심해, 율!"
어깨를 보호하던 견갑이 찢겨지고 안쪽의 뼈가 드러났어도 언데드인 데스 나이트에겐 큰 타격이 아니다.
율은 상호의 주의에 바로 몸을 뒤로 빼냈다. 하지만 이미 그녀를 표적으로 삼은 데스 나이트는 망설임 없이 거리를 좁히고 일격을 휘둘렀다.
쇄애애액!
칼바람과 함께 데스 나이트의 검이 율의 머리 위로 강하게 내리질러졌다.
"흡!"
율은 여기에 대응해 몸을 최대한 낮추며 앞구르기를 했다.
그러자 검은 땅에 깊게 박혔고 어느새 율이 데스 나이트의 뒤쪽에 자리하게 되었다.
"하아앗!"
율이 다리를 노리고 검을 힘껏 수평으로 그어나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데스 나이트가 망토를 크게 펄럭이며 강철의 부츠를 신은 발로 그녀를 걷어차고자 했다.
정통으로 얻어맞으면 내장이 진탕될 정도의 위력이 실린 발차기가 율의 가슴으로 날아든다.
“수룡시!”
바로 이 때!
딱 절묘한 타이밍에 상호가 ‘수룡시’를 날렸다.
정확히 몸통을 강타한 이 일격에 데스 나이트는 주춤 밀렸고 그 틈에 율은 몸을 빼내 상호의 옆으로 올 수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
"네. 나리 덕분에 살았어요."
"녀석은 불사체야. 사지를 자르고 머리통을 부수지 않는 한, 저 위력적인 공격을 계속 펼칠 수 있다고."
"···명심할게요."
"그래도 놈의 갑옷에 타격을 줬으니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냐. 내가 틈을 만들면 율이 일격으로 놈의 머리통을 부숴버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좋아, 그럼 다시 가자!"
서로 작전을 정하고 나란히 다시 한 번 데스 나이트에게 재도전했다.
이번엔 한 방향에서의 동시 공격!
상호와 율은 서로 호흡을 척척 맞춰며 계속해서 연격을 쏟아냈다.
현란하게 움직이며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검을 휘두르는 두 사람의 거침없는 움직임이 데스 나이트로 하여금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는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
공격에 갑옷이 부서지고 뼈가 금이 가도 전혀 흔들림 없이 불길을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오는 두 사람을 향해 강력한 일격을 휘둘렀다.
콰앙!
검 끝이 지면에 부딪친 것만으로 구덩이가 파일 정도였다.
'이 정도에 위압되어 도망칠 수는 없다고!'
적어도 율보다는 먼저 도망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호가 내지른 일격이 투구에 흠집을 내는 가운데, 데스 나이트가 율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율! 고개 숙여!”
상호의 외침에 율은 묻지 않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로써 데스 나이트가 하려던 참수는 실패로 끝나버렸다.
다시 검을 회수하기까지 걸리는 약간의 시간, 상호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안쪽으로 파고들며 다시 한 번 아래서 위로 검을 추켜올렸다.
파각!
“아뿔싸!"
공격이 통하기는 했는데 문제는 검이 관통한 것이 데스 나이트의 머리통이 아니라 그의 왼쪽 팔뚝이었다.
데스 나이트는 약점을 지키기 위해 스스럼없이 왼팔로 상호의 검을 막은 것이다. 그리고는 그 상태에서 주저 않고 검을 쥔 다른 팔을 위로 쳐들었다.
'빠져나가야 되는데.'
문제는 박힌 검이 좀처럼 안 빠진다는 것이었다.
검을 포기하고 뒤로 빠지기엔 기회가 너무 늦었다.
챙!
상호를 향해 날아든 검을 율이 대신 막아낸 것이다.
힘겹게 데스 나이트와 검을 맞댄 채로 율이 말했다.
"여기는 제게 맡기고 나리께선 어서 뒤로 피하세요!"
"뭐?"
지금 율이 이런 말을 한 게 자신의 안전을 염려해서 그런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어도 뒤로 물러날 마음은 조금도 없다.
“너한테만 맡기고 나만 도망치라고? 그렇게는 못 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다.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그녀에게 위험을 떠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야압!”
다시금 상호는 데스 나이트를 향해 검을 내질러갔다.
하지만 그런다고 당장 상황이 호전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질질 끌면 우리가 진다.'
이쪽은 싸울수록 지치지고 부상을 입지만 데스 나이트는 그렇지가 않다.
여기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여기서는 어쩔 수 없지. 내 한 몸 희생해서 살을 주고 뼈를 깎아 놈을 쓰러트리자!'
데스 나이트의 검을 몸으로 받고 그것을 잠시나마 붙들 수 있다면 율이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으리라.
뭐 중상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사명대사와 허준이 있으니 그럭저럭 완쾌하지 않을까, 라는 게 상호의 생각이었다.
'예전이라면 절대 안 할 생각인데.'
속으로 쓰게 웃으면서 상호는 잠깐 율을 보았다.
그런 다음에 결심을 하고 일부러 허리 쪽을 비우면서 데스 나이트를 향해 달렸다.
휘이익!
그런 상호를 향해 딱 데스 나이트가 검을 허리 쪽으로 휘둘렀다.
‘온다.’
상호는 엄습해오는 공포를 이겨내며 옆구리에 최대한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상호의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안 돼요!”
율이 상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그를 뒤에서 붙잡은 것이다.
상호는 자신을 뒤로 끌어낸 율을 보고 한 마디 했다.
“무슨 짓이야?”
“어찌 그런 무모한 짓을 하십니까.”
“놈을 무찌르려면 어쩔 수 없어.”
“차라리 제가 미끼가 되겠사옵니다.”
“그건 안 돼!”
상호는 율의 말에 화내며 말했다.
자신이 다치는 것은 상관없지만 율이 다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 데스 나이트는 두 사람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큭!”
재빨리 율을 검의 궤도에서 피신시키고 상호도 뒤로 몸을 피했다.
첫 일격을 피했지만 뒤이어 제2, 제3의 공격이 상호를 엄습했다.
‘제길!’
다시 한 번 시도를 할까?
하지만 방금 전에 율이 자신을 걱정하였던 모습이 떠올라 선뜻 행동을 옮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피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달리 방법이···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절박하게 기사회생의 방법을 찾던 상호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번뜩였다.
이 순간, 상호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위험이 크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
상호는 크게 휘둘러오는 검을 피하면서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곧 안에서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 하나가 꺼내졌다.
“율, 잠깐 시간을 벌어줘.”
상호의 외침에 율은 이유를 묻지 않고 그대로 데스 나이트를 막아섰다.
채채챙!
남은 체력을 모두 써가며 율이 무수한 검격으로 데스 나이트를 몰아붙여 상호에게서 떨어트렸다.
“좋았어.”
상호는 주머니 안에서 미처 가공되지 않은 차원석을 꺼냈다.
그리고는 남은 힘을 짜내 차원석을 활성화시켰다.
“하앗!”
빛을 내뿜기 시작하는 차원석.
이것의 기척에 데스 나이트가 상호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투캉!
날아드는 율의 일격을 거칠게 받아쳐내고 데스 나이트가 상호를 노리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다.
“와라!”
상호는 자리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데스 나이트를 향해 마주 달렸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상호는 데스 나이트의 검이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순간에도 검 대신 다른 손을 뻗었다.
스팟!
교차해 지나간 후, 상호의 머리카락 일부가 잘려나갔다.
반면 데스 나이트는 멀쩡하게 몸을 돌리며 검을 들어보였다. 그런데 그런 데스 나이트의 가슴 안쪽에서 빛이 발광하고 있었다.
‘성공했다.’
검을 피하는 순간에 손을 뻗어 갑옷과 투구 사이의 빈틈으로 차원석을 집어넣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좀 있으면 일대에 큰 폭발이 있을 것이었다.
상호는 최대한 낼 수 있는 성량으로 주위에 경고했다.
“폭발이 있을 거다! 모두 엎드려!”
이런 외침에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다른 언데드들을 막고 있던 토벌대원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피할 곳을 찾았다.
다만 위쪽에서 싸우는 명군들은 그 외침의 의미를 몰랐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리!”
이 상황에서 율은 바로 상호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진 정신력을 모두 써서 견고한 포스의 방패를 만들었다.
번쩍!
데스 나이트의 몸 안쪽에서부터 눈부신 섬광이 커지고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쿠콰콰캉!
폭발은 삽시간에 커졌고 상호와 율이 있는 곳까지 집어삼켰다.
“윽!”
“······!”
보이지 않는 장막이 두 사람은 지켜주는 가운데, 상호는 율의 허리를 잡고 그녀가 쓰러지지 않게 지켰다.
한 편, 폭발로 인해 발생한 충격파와 폭풍은 반경 수십 미터 내를 휩쓸었고 무방비로 있던 수많은 언데드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콜록! 콜록! 율, 괜찮아?”
“네··· 나리.”
힘을 거의 다 써서 기진맥진한 율이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모습으로 대답했다.
워낙 큰 폭발이었던지라 상호와 율이 있던 자리만 빼면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제일 작은 것으로 하길 천만다행이네."
하마터면 아군까지 몰살시킬 뻔 했다는 사실에 식은 땀을 흘리는 상호였다.
아무튼 지금 폭발에 공격에 나섰던 언데드 중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반면 사전의 경고를 이해하고 곧장 안전하게 몸을 피했던 토벌대원들은 고막이 약간 상하고 잔 부상을 입은 정도에 그쳤다.
오히려 피해는 무방비로 있었던 명군 측에서 많이 나온 상황이었다.
"놈은··· 완전히 끝장난 것 같네."
폭발의 중심에 생겨난 구덩이 안엔 데스 나이트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갑옷 쪼가리가 몇 개 남겨져 있었다.
코어를 가진 개체도 아닌지라 얻은 것은 거의 없는 싸움이었다.
"게다가 이 싸움을 끝내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
추가적으로 데스 나이트가 있을 가능성이 크고 언데드들도 아직 엄청나게 남아있다.
상호는 Ⅲ단계 게이트를 봉쇄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 암울하게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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