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조선시대에 가다-120화 (120/127)

二八장. 퇴로를 지켜라! (1)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고인후가 볼 수 있었다.

“왔, 왔는가.”

“누워 계십시오.”

상호는 자신을 보고 일어나려는 고인후를 제지했다.

아까 상호를 쫓아 사람들과 같이 성문을 지키러 갔던 고인후지만 사실 그 때부터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다행히 상호가 가토 기요마사와의 일기토를 벌이고 그를 물러나게 한 덕에 왜군과 직접 싸우지 않았지만 직후에 정신력 고갈에 따른 기절을 해버려 바로 이곳에 눕혀놨던 것이다.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잠을 잔 덕인지 고인후의 상태는 꽤 좋아 보였다.

고인후는 먼저 상호에게 아까 못했던 말을 전했다.

"자네가 와준 덕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네."

"때를 맞춰 올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건가."

"실은······."

상호는 그간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고인후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조정이···우리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군 그래. 아무튼 자네가 와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으이."

"장군과 그리고 여기에 있는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이 한 몸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고마워. 이제 자네와 내가 힘을 합쳐 왜군으로 부터 이 성을 지켜보세."

고인후는  진주성을 포기하지 않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상호는 숨을 한 번 깊게 삼킨 다음에 이와 같이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 제안을 거절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전 다시 왜군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성에 남아있는 모두를 데리고 나갈 생각입니다."

"뭣이라!"

상호의 말에 고인후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네는 우리와 함께 싸우기 위해 온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성을 왜적 놈들에게 그냥 내주자고 하는 것인가!"

“성 하나를 지키자고 수만 명의 목숨을 잃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상호는 격앙된 고인후를 똑바로 보며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고인후는 그런 상호의 뜻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데. 이대로 성을 버린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장군.”

“왜군을 막기 위해 숱한 이들이 목숨을 바쳤네. 내 형님과 그리고 날 따르던 이들, 그리고 김시민 장군까지도 말일세.”

“······.”

“그들의 죽음을 어찌 헛되게 할 수 있겠는가.”

고인후의 심정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었다.

진주성을 지켜내기 위해 먼저 전사한 부친 고경명에 이어 형님인 고종후까지 전사했다. 거기에 그를 따라 진주성으로 왔던 휘하 의병들 또한 거의 대부분이 전사했다.

그런 마당에 자신만 살아 성을 버리고 탈출하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답답하군.’

아까는 싸우기를 포기한 자들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죽기로 싸우려고 하는 자를 설득하려니 참으로 고달팠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제가 전에 장군에게 도움을 청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고 있네.”

“장군도 이미 숱하고 경험하셨겠지만 지금 조선 팔도에는 유래 없는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솔직히 제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왜군보다도 이 문제가 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

상호의 말에 고인후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어찌 고인후도 이것을 모르겠는가.

수 개월간 상호의 조언에 따라 여기저기에 나타난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그들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느낀 바였다.

어디 그뿐이랴.

몬스터의 습격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고을 하나가 죽음의 장소가 된 것을 목격한 것도 여러 번이고 몬스터 소굴에서 다량의 인골을 발견한 바도 있었다.

그래서 왜군의 침공이 약해진 때부터는 왜군을 상대하는 것보다 몬스터 토벌에 더 치중했었다.

상호는 덧붙여 말했다.

“더욱이 보옥의 능력은 이미 왜군과 명군에까지 알려졌습니다. 그들이 이것을 놓고 호락호락 조선 땅을 떠나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전에 저는 장군이 앞으로 이 땅에 나타난 요괴들을 토벌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쉽게 장군이 목숨을 버리려 한다면 저는 누굴 믿고 앞으로 있을 큰 혼란을 막아내라는 말씀입니까."

"으음."

고인후는 상호의 말에 쉬이 반박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도 머리로는 앞으로 닥칠 일들을 생각하면 이런 곳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바치는 게 무익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죽어간 자들이 왜 성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가 죽었는가.

고인후는 바로 이 점을 걸고 나섰다.

“하지만 왜군이 이대로 진주성을 함락하고 아직 침탈을 받지 않은 전라도로 들이닥친다면 그 때는 지금보다 더한 참상이 벌어질 것이네!”

“예, 분명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하고 전라도로 계속 진격해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들은 결코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확신하는가.”

“우선 명군과 연합한 관군이 이대로 남하해오면 왜군은 현재 있는 곳을 지키는 것도 버거울 것이기에 전라도 침공에 전력을 할애할 수 없을 겁니다.”

“······.”

“그리고 만에 하나 왜군이 전라도를 노리고 온다고 한다면 그 때는 제가 그들을 박살낼 것입니다.”

상호는 고인후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여기에 고인후의 마음을 완전히 돌릴 수 있는 상호의 말이 이어졌다.

“덧붙여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이곳 성을 버리고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우리가 성을 버리고 전라도 쪽으로 피난 간다면 분명 왜군은 추격해 올 것입니다.”

“그것이야 당연히··· 설마 자네?”

“아마 추격을 해오는 것은 가토 기요마사, 그 자의 부대일 것입니다. 전 이 기회를 빌려 그 자를 처단할 생각입니다.”

직접 싸우면서 가토 기요마사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라면 분명 독단으로라도 성을 탈출해 후퇴하는 조선 군민을 공격해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만약 일이 생각대로 진행된다면 상호는 가토 기요마사를 잡은 비책을 펼쳐 그 자를 없앨 작정이었다.

"그게 가능한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충분히 위험한 존재지만 능력이 강하다고 전부가 아니다.

상호는 고인후 앞에서 자신감을 드러내보였다.

"후우!"

고인후는 이러한 설득에 결국 뜻을 꺾고 말았다.

이렇게 성을 버리고 왜군의 포위망을 뚫고 전라도 지방으로 탈출하는 계획은 곧 실행에 옮겨지게 된다.

“왜군의 동향은 어떤가?”

“여전히 각각 동쪽과 북쪽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군진을 차리고 이쪽을 감시 중입니다.”

“적이 우리의 동태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네.”

“예, 토포사 나리!”

왜군의 동향을 감시하는 군관 유길준을 격려하고 서쪽 성벽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저마다 보따리를 든 백성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 준비는 끝난 건가?”

“예. 하오나 성문 밖에 진을 친 왜군의 숫자가 꽤 많습니다.”

“그것은 걱정 안 해도 되네.”

상호는 우려하는 진주성 소속의 군관을 안심시켰다.

서쪽으로 나있는 길목에는 어림잡아 2천은 되는 왜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백성들이 바깥으로 나가도 저 진을 뚫지 못하고 전멸할 게 뻔했다.

그래서 상호는 성에 남은 1천 남짓의 병력 중 일백 명의 정예를 이끌고 저들을 무찌르고자 하였다.

“속전속결로 적을 격파한다.”

“넷!”

“자네만 믿겠네.”

“걱정 마십시오, 고 장군님.”

피난민의 이동을 책임지는 고인후의 격려를 받으며 상호는 성에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말 중 한 마리에 타고 열린 성문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성문이 열리고 특공대가 나오자 서쪽 방면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들은 그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

“야습이다!”

경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잠들었던 왜병들이 황급히 무장을 챙겨 움직였다.

이런 가운데, 막사에 휴식하던 왜장은 소란스러움에 바깥으로 나왔다.

“쥐새끼들이 궁지에 몰리니 바깥으로 뛰쳐나오는구나."

왜장은 이리 말하며 병사들로 하여금 대응을 서두르게 했다.

곧 목책 뒤로 조총병들이 줄지어 서서 사격을 준비했다. 이대로 돌격한다면 큰 피해를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가랏!”

상호의 손이 위로 들려졌다가 앞으로 향한다.

그러자 바로 옆에 흐르는 강에서 방대한 물이 솟구쳐 올라 그대로 왜군들이 있는 곳으로 큰 파도처럼 전진했다.

“우아아악!”

“어푸푸!”

옆쪽에서 덮쳐온 물살에 휩쓸린 왜병들은 그대로 길목에서 꽤 떨어진 갈대숲까지 서로 뒤엉켜 떠내려갔다.

순식간에 와해된 왜군들 사이로 상호를 비롯한 십여 기의 기병이 난입했다.

“왜장은 어디냐!”

상호는 어차피 잘 몰지 못하는 말 위에서 바로 뛰어내리며 왜장부터 찾았다.

물세례에서 횃불이 죄다 꺼진 탓에 갑자기 주변이 칠흑처럼 변한 터라 목표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반으로 뚝 부러진 깃대를 등에 맨 왜장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헉!"

왜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상호를 보고 칼집의 왜도를 뽑으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상호가 내뻗은 검이 그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크헉!"

"적장을 잡았다!"

상호의 외침에 뒤따라 온 조선군의 사기가 올랐다.

결국 왜군은 20배의 병력 차에도 불구하고 패배를 했고 수백 명의 사상자와 그 두 배가 넘는 포로를 만들며 항복하였다.

"길이 열렸습니다."

"차례대로 백성들을 출발시키도록."

고인후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나눈 집단 순서대로 백성들이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노약자나 부상 입은 자들은 소가 끄는 달구지를 통해 이동하고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머리에 올리거나 손에 들고 걸어 움직였다.

거대한 대열이 형성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했지만 시끄러운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사전에 엄격하게 대피 요령을 가르킨 결과 덕분이었다.

"남 군관, 선두 대열을 잘 이끌어주게."

"명에 따르겠습니다."

상호는 남준에게 병력의 지휘관을 넘겨 주고 피난 대열의 선두를 맡겼다.

그리고 자신은 율과 그리고 세 명의 군관을 비롯한 나머지 토벌대원들과 함께 다시금 진주성으로 내달렸다.

'피난민들이 성에 멀어질 때까지 왜군의 주의를 끌고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상호는 성 북쪽 길목을 막고 있는 왜군을 상대로 겨우 서른의 인원만 갖고 싸움을 걸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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