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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3화 (3/228)

제3화

제3화 끊겼던 전생이 이어지다 (1)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환생의 경험도 놀라운 일이거늘.

전생의 대륙으로 돌아온 데다, 시간의 흐름까지 뒤틀려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는 황망함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뒤편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도망친 게 고작 여기냐?”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로 들어서는 이들이 있었다.

개성 있는 일곱 개의 그림자.

그들의 존재는 이미 알았다.

바람에 실려 온 살기가 아까부터 심기를 톡톡 건드렸던 까닭.

복면인들은 재빨리 내 앞을 막아서며 검을 쥐었다.

“도망가십시오. 팔체라토 휘하에 있는 칠인대라는 녀석들입니다. 혼자서는 감당하실 수 없을 겁니다.”

“목숨을 한 번 구해 주셨으니 저희가 뒤를 보겠습니다.”

꽤나 비장한 말투와 눈빛이었다.

그나저나 나보고 도망가라니.

간만에 신선했다.

내게 도망이란 단어는 깊은 세월에 묻혀 잊힌 지 오래였으니까.

아직 나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나 본데.

“됐고, 방해되니까 한쪽으로 물러나 있어.”

나는 손짓으로 녀석들을 치웠다.

그들은 멍청한 눈빛으로 제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들의 당혹스러움은 무시한 채 앞으로 나섰다. 덩치 큰 복면인이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북부에서 이름 좀 날리는 녀석들입니다. 조금 전 병사들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고요. 저희도 저들이 있는 줄 알았다면, 이번 암살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겁니다.”

심각하게 말하는 복면인.

나는 그런 녀석에게 못마땅한 눈빛을 던졌다.

“자랑이다.”

“그, 그게 아니라.”

나는 복면인의 변명은 무시한 채 칠인대라는 하룻강아지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운데서 팔짱을 낀 녀석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건방을 떨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다니, 배짱은 두둑한 녀석들이구나.”

날카로운 눈매와 어깨까지 오는 장발을 가진 남자.

아마도 이자가 우두머리인 듯하다. 그는 별안간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배짱 때문에 너희들은 죽게 될 것이다.”

고요한 숲속을 울리는 목소리는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관의 것처럼 단호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발렌시아 대륙이나 무림이나 별다를 바가 없음을 알았다.

어딜 가나 별것도 아닌 놈들이 꼭 저렇게 무게를 잡지.

“성가시게 굴지 말고, 한꺼번에 덤벼.”

나는 그들에게 전력을 쏟을 기회를 주며 검을 뽑았다.

스르렁.

고아한 자태를 드러내는 백색의 검신.

서슬 퍼런 칼날의 등장에 숲도 잠시 숨을 죽였다.

“누가 저 미친놈의 목을 벨 테냐?”

녀석들은 내 배려를 무시하고 굳이 한 명을 선출하려 했다.

호의가 거절당했으나 괘념치 않았다.

어떻게 죽을지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저한테 맡겨 주십쇼. 저놈의 주둥아리를 감자처럼 으깨 놓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녀석은 개중 가장 거구의 사내였다. 그는 등 뒤에 메고 있던 큼직한 대검을 꺼내 쥐고는 허공에 ‘X’ 자로 그으며 몸을 풀었다.

검이 어찌나 큰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살벌한 파공음이 독수리의 날갯짓처럼 묵직하게 흘렀다.

쿵!

그는 싸움을 시작하자는 말도 없이 땅을 세차게 박차며 달려왔다.

투우 같은 저돌적인 움직임.

창졸간에 간격이 삼켜지며 녀석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시야를 채웠다.

나는 그에 산책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맞섰다.

유려한 손끝을 따라 번쩍이는 새하얀 섬광.

그 끝에서 핏물이 치솟아 올랐다.

통제를 잃은 신체가 다가오던 속도 그대로 허물어지며 바닥을 나뒹군다. 그 뒤를 녀석의 커다란 머리통이 따라 굴렀다.

목을 베인 녀석은 자신의 몸뚱이를 보며 생을 잃었다.

안 그래도 고요했던 숲속에 묵직한 침묵이 내렸다.

다들 하얗게 얼어붙었다.

굉장히 간단명료한 상황이었지만, 이들에게는 그게 아닌가 보다.

그들은 내가 가벼이 휘두른 궤적도 좇지 못한 듯했다.

“이 개X끼가!”

그럼에도 이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무기를 빼 들고 달려들었다.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아니면 서로를 끔찍이 여겨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만.

그러게 진즉에 한꺼번에 덤비라니까.

나는 그들의 공세 속으로 무심한 걸음을 옮겼다.

* * *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던 복면인들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보,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었음에도 검의 궤적을 보지 못했다. 무언가 희끗하는가 싶더니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던 이의 목이 떨어졌다.

눈앞에서 목격했음에도 믿기지 않는다.

그의 압도적인 무력엔 현실성이 없었다.

분노한 칠인대가 그를 향해 일제히 쏘아졌다.

순간 다시 희끗한 검광이 어둠을 갈랐다.

복면인들은 온 신경을 그 옅은 빛무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검이 휘둘러지고 있음을.

온 신경을 집중해야 그 흔적이나마 좇을 수 있는 검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경지였다.

게다가 눈앞의 청년의 나이는 많이 봐도 20대 후반.

‘그런데 저런 검을 산책하듯 휘두른다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꿈을 꾸고 있는 자들이 존재했다.

같은 꿈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당장이라도 깨고 싶은 지독한 악몽이었다.

허공에 붉은 물결이 아로새겨졌다.

우습게도 핏물이 튀고 나서야 검이 지나간 것을 알았다.

그의 팔이 흐릿하게 흔들릴 때마다 하나의 생이 사라지고 있었다.

생존자는 이제 세 명.

“하압!”

기합과 함께 전력을 쏟아붓는 녀석들.

오러가 넘실거리는 강맹한 일격에 숲에 내린 어둠이 잠시 밀려났다.

콰과과광!

넘실거리는 오러가 나무를 찢고, 대지를 뒤엎는다.

자욱이 피어오른 흙먼지에 가려지는 시야.

폭발음으로 시끄러웠던 숲에 잠시 고요가 내렸다.

복면인들은 그 광경을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자욱한 먼지구름 사이로 창백한 검광이 솟아났다.

곧게 쏘아지는 선명한 광선.

그 끝에서 다시금 핏물이 치솟는다.

“마, 말도 안 돼!”

어느덧 홀로 남은 이가 형제들의 죽음을 보며 절규했다.

칠인대의 대장이자 첫째인 바르손이었다.

그의 시야에는 깔끔히 절단된 형제들이 담겨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녀석들이었다.

저벅저벅.

절망에 빠진 그에게 명백한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죽음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새하얀 빛이 시야를 메우나 싶더니 세상이 빙글 돌았다.

그는 그렇게 죽었다.

다시 이곳에 남은 이들은 청년과 복면인들뿐이었다.

칠인대는 정말이지 순식간에 전멸했다.

청년의 압도적인 무력에 복면인들은 넋을 잃었다.

“앞장서라.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게 아니냐.”

그에게서 일말의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칠인대를 베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호흡이었다.

* * *

횃불이 어둠을 밀어내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숲은 생각에 잠기기 충분할 만큼 깊었다.

이제 어떡한다?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무림으로 돌아갈 방법도 없고, 발렌시아 대륙에 왔지만, 황제에게 복수할 생각도 없었다.

전생의 비감을 잊었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랬다.

40년이 훌쩍 지난 전생의 일이다.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프렌치아의 왕세자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복수를 위해서는 제국의 황제를 죽여야 하는데.

그것은 수많은 죽음이 산처럼 쌓여야 가능한 일.

케케묵은 복수심으로 저지를 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내게는 그럴 의지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나는 본래 고향에 돌아가 평안한 삶을 살 계획이었다.

무림에서 장장 20여 년간 날뛰었으니, 이제 좀 쉬고 싶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빌어먹을 마교 놈들에 의해 무너져 버린 거다.

물론 여기서도 그런 삶을 살 수야 있겠지만, 중원과 이곳에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돈의 유무다.

내가 원하던 삶은 산속에 커다란 장원을 짓고, 그 안에서 산해진미와 명주를 즐기는 한량 같은 삶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중원에서 나는 돈이 많았다.

말 한마디면 각종 산해진미가 식탁 위로 오를 터였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을 테지.

거지였을 적부터 그려 왔던 오랜 꿈이다.

그런데 그런 삶이 여기서는 불가능하다.

땡전 한 푼 없으니 당연하다.

거지였던 나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고민은 자연스레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돈을 어떻게 벌지?

무림에서 나는 돈을 벌었다고 하기보다, 주로 뜯었다.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명문가 놈들한테서 뜯고, 지나가는 사파 놈들에게서 뜯고, 걷다가 마주친 산적들에게서 뜯고.

무림에는 돈을 뜯어낼 도적들이 차고 넘쳤다.

무언가 머리를 스친 것은 그때였다.

나는 별안간 걸음을 우뚝 세우고는 앞장서 걷던 이들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너희들, 암살은 성공했냐?”

뒤를 돌아본 녀석들은 죄라도 지은 것처럼 어물쩍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암살을 시도하기도 전에 발각되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역시.

칠인대란 녀석들의 무위를 봤을 때 이들이 암살에 성공했을 것 같지 않았다.

“너희들이 암살하려던 자가 아이아스 남작이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그 자식이 나라를 팔아먹은 변절자라고?”

“예. 고블린보다 못한 새끼죠.”

“영지민은 잘 챙기냐?”

“잘 챙기기는요. 영지민들을 파리 목숨보다 가벼이 여기는 자식입니다. 이 근방에서 그 새끼만큼 악독한 놈도 없을 겁니다.”

예상한 그대로였다.

중원에도 백성의 고혈을 착취하는, 도적과 다름없는 관리들이 차고 넘쳤으니까.

“그 자식 지금 어딨어.”

“그 말씀은…….”

내 의중을 파악한 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말했다.

“그래, 그놈에게 안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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