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6화 (26/228)

제26화

제26화 비테로 체즈웬 (1)

“저 형, 성격 이상하지?”

이리엘이 날 가리키며 물었다.

“조금은요.”

베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게 웃었다.

베론은 우리가 이틀 전에 구해 준 아이다.

깨끗이 씻겨 놓고 보니 검은색 곱슬머리에 동그란 눈을 가진 귀여운 아이였다.

처음에는 말도 안 하고 잘 웃지도 않던 녀석이 이제는 곧잘 웃는다. 모두 이리엘의 무던한 노력 덕분이다.

아이를 보며 활짝 웃던 이리엘은 내게 시선을 옮기더니 홱 돌변하며 가자미눈을 떴다. 그 표정 변화가 얼마나 극적인지 꼭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 같았다.

“제 말이 맞죠? 베론도 그쪽 성격이 유별나고 못돼 처먹었다잖아요.”

“풉!”

옆에 있던 알렌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마시던 물을 뱉었다. 그는 입가에 묻은 물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애들이 사람은 잘 본다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

나는 알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게요.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알렌이 나와 슬며시 거리를 벌리고 섰다. 요새 베론 때문에 안 때렸더니 맞을 짓만 골라 하는 재주가 생기고 있다.

“정말 괴팍하다니까.”

이리엘이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나는 빈주먹을 쥐며 부르르 떨었다.

저걸 콱 그냥.

전생의 인연만 없었어도 저 작은 머리통 위로 혹을 겹겹이 쌓아 줬을 거다.

내 본래 남녀노소에 구별을 두는 사람이 아니거늘.

하지만 이리엘에게는 도통 꿀밤을 먹일 수가 없다.

평생을 지켜 주겠다, 했던 전생의 언약이 내 손목을 움켜쥐고 있는 까닭.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했다.

전생의 것이라 해도 직접 선언한 언약.

지우고 싶은 기억이지만,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이상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괘씸함을 참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킥킥킥.”

우리의 대화를 들은 베론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베론은 이리엘이 내게 투덜거릴 때마다 저리 웃는다.

이리엘도 그걸 믿고 저러는 거였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얼마 전 부모를 잃은 아이의 웃음을 빼앗을 정도로 못돼 처먹지는 못했다.

“이제 저 구릉만 넘으면 체즈웬입니다.”

알렌이 완만히 솟은 구릉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요새 조금이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길을 설명하며 말을 돌린다.

잠시 후, 구릉을 넘자 과연 알렌의 말대로 체즈웬성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 너머로 드높이 솟은 첨탑이 보였다. 그 끝에는 블랙 드래곤이 그려진 제국의 국기와 체즈웬을 상징하는 깃발이 함께 펄럭이고 있었다.

“무슨 날인가 본데요?”

성문을 본 알렌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성문 앞이 분주해 보였다. 변방의 영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내일 영주성에서 비테로의 취임 5주년을 축하하는 연회가 있단다.

그는 과거 제국군으로서 세웠던 공로를 인정받아 5년 전 이곳의 영주가 됐다고 했다.

우리는 영내로 들어서자마자 숙소를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투숙객들이 많아 방을 잡는 데도 애를 먹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남은 방이 있었다.

고생한 것치고는 허름한 숙소였다.

“저희는 그럼 나갔다 올게요.”

짐을 풀자마자 알렌은 방을 나섰다.

체즈웬에는 ‘북부의 흰사자’ 소속의 독립군들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과 접촉하여 필요한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알렌과 이리엘은 그것을 위해 숙소를 나서는 참이고.

그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 일이 성가셨던 나는 숙소에 남기로 했다.

“그럼 잘 놀아 주고 계세요.”

그렇게 두 녀석은 아이를 내 방에 두고 떠났다.

“…….”

이 상황을 예상치 못했던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베론과 멀뚱히 눈을 맞췄다. 그제야 지금껏 애랑 단둘이 있어 본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자라.”

“안 졸린데요.”

베론의 눈은 말똥했다.

적어도 두 녀석이 돌아올 때까지 잠들지는 않을 듯하다. 나는 잠이 오는 혈인 수혈(睡穴)을 짚을까 하다가 녀석의 야윈 볼을 보았다.

혈색은 처음보다 좋아졌지만, 여전히 부실하다.

“나가자.”

나는 베론을 데리고 시장으로 나갔다.

귀찮았지만, 마른 녀석을 보니 동병상련의 아픔이 떠오른 까닭이다.

과거 거지였던 나는 잘 알고 있다.

배고픔이 얼마나 X 같은 건지.

괜히 뭐라도 먹이고 싶었다.

“자.”

나는 베론에게 작은 과일 사탕 하나를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베론은 사탕을 다람쥐처럼 볼에 넣으며 내 손을 놓칠세라 꼭 잡아 왔다.

그런 녀석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사부님과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당시 날 바라보던 사부님의 마음도 이리 짠했을까?

그때 내 나이 8살이었다.

정신 연령은 23살인 요망한 어린아이였지만.

“맛있냐?”

“엄청 맛있어요.”

베론이 웃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처럼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은 보이지 않았다. 여정 내내 녀석의 얼굴에는 은은한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9살이면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릴 법도 한데, 베론은 여태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생판 모르는 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버려질까 두려울 테지.

이리엘은 그래서 베론이 더 가엾다고 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다 사 줄 테니까.”

“……정말요? 저, 그럼 저거요.”

망설이던 베론이 조심스레 무언가를 가리켰다.

삶은 감자였다.

“저거 엄마가 좋아했어요. 여기 엄마랑 아빠랑 왔었던 기억이 나요.”

“그러냐? 언제 왔는데.”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베론은 아랫입술을 문 채 바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녀석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하지만 베론은 눈을 깜박이지 않음으로써 눈물을 삼켰다.

“울어도 돼.”

베론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울고 싶지 않은 듯했다. 무언가가 녀석의 눈물을 틀어막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베론을 안아 허리춤에 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체즈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계탑 위에 올라 있었다.

“……와아.”

베론은 장난감처럼 작아진 건물들을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시계탑을 중심으로 쭉 뻗은 거리와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한눈에 담겼다.

“꽉 잡아.”

나는 베론을 지붕에 내려 주며 철심처럼 삐쭉 솟은 장식을 붙잡게 해 주었다.

휘이잉.

이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우리는 온몸으로 그 바람을 맞았다.

베론은 발밑의 풍경을 바라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저 이렇게 높은 곳은 처음이에요! 진짜진짜 너무 멋져요! 꼭 꿈을 꾸는 거 같아요!”

아이가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목소리 톤이 두 계단은 올라간 것 같다.

나는 금세 천진난만함을 찾은 베론을 보며 내 어린 날을 떠올렸다.

답보하는 무공 성취에 답답해할 때마다, 사부님은 나를 이처럼 높은 곳으로 데려와 주셨다.

세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면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도 왠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니까.

나는 베론 또한 그러기를 바랐다.

사부님도 아마 이런 마음이셨겠지.

나는 아이를 보며, 당시 나를 보던 사부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저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베론이 시계탑의 높이에 적응할 때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체즈웬성을 가리켰다.

성의 첨탑에는 제국의 깃발과 체즈웬성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깃발이요. 체즈웬성이니까, 체즈웬의 깃발이요.”

“너의 부모를 죽인 자들이 바로, 저들이다.”

베론은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들떠 있던 표정이 빠르게 식었다.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아이가 알기에는 잔혹한 진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목적은 분위기를 망치려는 게 아니었다.

“내가 베어 주마.”

“진짜요?”

베론이 눈썹을 올려 나를 보았다.

놀란 눈치였고, 믿기지 않는 듯했다. 내 말은 아이가 듣기에도 터무니없나 보다.

나는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왜 거짓을 말하겠느냐.”

“……감사합니다.”

“감사히 여길 필요 없다. 널 위한 것만은 아니니.”

베론은 멀뚱히 눈을 깜박였다. 내 말에 갈피를 못 잡는 듯했다.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말을 바꿨다.

“그냥 감사히 여겨라.”

“네!”

녀석이 힘차게 답했다.

“이제 내려가자.”

“다음에 또 데려와 주실 수 있으세요?”

“시간이 되면.”

“네!”

베론이 활짝 웃었다.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환한 미소였다.

시계탑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숙소로 돌아오니 이리엘과 알렌이 와 있었다.

“잠깐 시장에 다녀왔다.”

“시장은 왜요?”

알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네스 님이 맛있는 거 사 주셨어요! 그리고 시계탑에 가서 멋진 풍경도 보여 주셨어요!”

베론이 한껏 들떠서 자랑하자, 두 녀석은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나를 보는 그들은, 내게 그런 인정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 자식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그 얼빠진 표정들을 보고 있자니 손이 다 근질거린다.

“맞을래?”

나의 물음에 둘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표정을 정돈했다.

내가 물었다.

“갔던 일은.”

“아, 접촉됐습니다. 언제 갈까요?”

“바로 가자.”

우리는 곧장 움직였다.

수도까지 갈 길이 멀었다. 느긋하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이리엘과 알렌을 뒤따라 도착한 곳은 영지 외곽에 있는 2층짜리 가정집이었다.

“어머, 일찍 오셨네.”

문을 두드리자, 평범한 가정주부로 보이는 여자가 나와 우리를 반겼다.

“들어오세요.”

여자는 약속된 손님을 맞이하듯 자연스레 우리를 집 안으로 들였다.

“자세한 대화는 안으로 가서 나눌게요.”

평범한 가정집과 다르지 않은 내부에는 은밀한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책장 뒤에 숨겨진 문을 넘어 은은한 등이 켜진 석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실에는 업무를 보는 책상과 손님용 소파까지 있었다.

“허허! 반갑네. 코레른이라고 하네.”

책상에서 서류 작업을 하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호탕하게 웃었다.

푸짐한 몸집에 복슬복슬한 수염을 가진 자였다.

우리는 가볍게 통성명을 나누고 소파에 앉았다.

“그래, 본부에서 체즈웬에는 어쩐 일인가?”

코레른이 자리에 앉으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였다.

본부에서 사람이 왔다는 건, 체즈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의미. 호기심이 동할 테지.

“저희는 비테로 체즈웬을 암살할 작정입니다.”

알렌이 간단하게 본론부터 전했다.

그러자 녀석은 허리까지 젖히며 배를 잡고 웃어 댔다.

“퐈하하하하!”

목젖이 훤히 보일 정도로 호탕한 웃음이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그는 결국에 눈물까지 좍좍 뽑아냈다.

우리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대체 왜 저러는지 알 도리가 없다.

“미안하네. 이거 너무 웃어 버렸군. 오랜만에 정말 속 시원한 농담이었어. 크큭.”

그는 다행히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눈물을 닦아 내며 자세를 바로 했다.

“…….”

그러고는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코레른과 우리는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기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코레른이 별안간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서, 설마 진심인 겐가!?”

알렌과 이리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