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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39화 (39/228)

제39화

제39화 함정 (1)

짜악!

찰진 소리가 방을 울렸다.

“크악!”

비명과 함께 널브러진 알렌은 구운 오징어처럼 몸을 배배 꼬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잠에서 홀딱 깬 그는 양손으로 화끈한 등짝을 어루만지며 이리엘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뭔데?”

“구급약품 어딨어요?”

“저 가방에. 왜? 어디 아파?”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알렌은 심각한 이리엘의 표정을 보고는 순순히 가방을 알려 주었다.

이리엘은 가방의 내용물을 쏟더니 다급히 구급약품을 챙겼다. 알렌은 그런 그녀를 미X년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소기의 목적을 이룬 이리엘이 다시 알렌을 바라보았다. 알렌은 몸을 움츠리며 흠칫 놀랐다.

“바르텐 씨가 칼에 찔렸어요! 빨리 따라와 봐요.”

이리엘의 손아귀에 반강제로 끌려간 알렌은, 피습된 바르텐을 볼 수 있었다. 상황의 심각함을 체감한 그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대체 누가?”

“이것 좀 잡아 줘요.”

알렌은 응급 처치하는 이리엘을 도왔다. 둘은 바르텐의 허리에 붕대를 감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다행히 급소는 비껴갔어요. 출혈이 있기는 하지만 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저도 모르겠어요. 우연히 신음을 듣고 와 보니 이 상태였어요.”

“내부에 적이 있는 건가?”

“그런 거 같은데, 이제 어떡하죠?”

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누군가에게 알리고 대처를 해야겠는데…… 산채 내에는 따로 경계 서는 이들이 없어 어디로 가서 이 상황을 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선 포르틴 씨를 찾아보자. 그의 거처가 어디인지 대충 알아.”

알렌이 말했다. 그가 알기로 삼 형제 중 바르텐과 포르틴은 산채에 남는다고 했다.

바르텐의 경우엔 검을 익히지 않았고, 포르틴의 경우는 부상으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그렇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 바르텐이 당했다면 의지할 수 있는 건 포르틴뿐.

이리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일단 그를 찾으면 해결이 될 듯했다.

“일단, 그 전에 바르텐 씨부터 눕히자.”

알렌과 이리엘은 응급 처치를 끝낸 바르텐을 집무실 내 간이침대에 조심히 눕혔다. 그리고 포르틴의 거처를 향해 힘껏 뛰어갔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알렌은 휑한 방을 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밖에서 불러도 인기척이 없어 들어와 봤더니, 방은 온기조차 없이 싸늘했다. 들어온 적도 없는지 깔끔히 정리된 상태 그대로였다.

“……설마 포르틴 씨도 당한 걸까요?”

이리엘이 불안한 눈빛으로 알렌을 보았다. 알렌 또한 아랫입술을 깨물며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그러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말을 하다 만 알렌이 별안간 이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알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 설마!”

둘은 동시에 서로에게 소리쳤다.

“네 생각도 그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좋지 않은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산채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면 그 배신자가 할 짓은 빤했다.

재물을 탐하거나, 동료들을 팔아먹거나.

그런데 이 배신자가 한 일은 수뇌부인 바르텐을 칼로 찌르는 것.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단순히 재물만 탐냈을 확률은 낮았다.

같은 결론에 도달한 둘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산채의 입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타다다닥!

모두 잠이 든 적막한 산채에 다급한 발걸음이 울렸다.

둘은 이를 악물고 달리고 있었다.

만약 바르텐과 포르틴 모두 배신자에게 암습을 당한 거라면, 이 정도로 끝날 리 없었다.

“……헉, 헉.”

힘껏 달려 산채 입구에 도착한 이들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숨만 골랐다.

성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경계를 서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산적들은 살해당해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둘은 재빨리 목책 위로 올라 바깥의 상황을 내려다보았다.

새까만 어둠 사이로 일렁이는 횃불들.

그것이 강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 * *

별채 곳곳에 놓인 등불이 빛을 내었다. 캄캄한 어둠에 잠긴 별채가 흐릿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높은 지대에서 그 별채를 내려다보았다.

크래커가 수집한 정보대로 호위병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작전은 모두 숙지했지?”

크래커의 물음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달빛에 긴장된 낯빛이 드러났다.

작전은 침투조와 지원조로 나뉘어 진행될 터였다.

나와 크래커가 속한 침투조는 이츠리엘을 암살하는 임무를 맡았고, 지원조는 호위병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임무와, 침투조가 실패했을 경우 도주하는 이츠리엘을 추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그 가면은 뭔가? 멋있어 보이는군.”

나는 복면을 쓴 이들과 달리 흰 사자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일을 벌일 때는 티를 내줘야 하는 법이다.

“알 거 없다.”

“……그럼 움직이자고.”

나를 포함한 침투조는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은밀히 움직였다.

나는 크래커의 뒤를 얌전히 따랐다.

혼자 갔다 온다고 해도 도통 말을 들어 처먹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답답하기는 해도 어쩌겠는가.

이들이 계획한 작전이니 순순히 따라 줘야지.

하여간 제 무덤을 파요.

그래도 다행히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허술한 경계를 피해 은밀히 담을 넘었고, 어렵지 않게 별채로 진입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는 그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주변에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호위병이 적다고 하더라도 별채가 무덤가처럼 고요했다.

나는 청각을 최대한 넓게 퍼뜨려 주변을 훑었다.

지금 내 귀는 별채 바깥에서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곧 상황이 일그러졌음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수없이 많은 소리가 귓가에 담겼지만, 적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무장한 이들의 걸음이 별채 너머에 가득했다.

우리는 어느새 포위되어 있었다.

“그만.”

나는 즉시 녀석들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복도 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자세를 낮추고 나아가던 이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다.

크래커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벙긋거렸다.

그는 왜라고 묻고 있었다.

“작전은 실패다. 아무래도 적의 함정인 듯하군.”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가 소리 없이 소리쳤다.

나는 붕어처럼 뻐끔거리는 녀석을 두고 창가로 다가가 담 너머의 숲속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꽃들이 일렁였다.

적들은 이제 자신들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횃불을 들고 움직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꽤 많은 병력.

이곳은 적이 파 놓은 함정이 분명했다. 별채 안에 이츠리엘은 없을 것이다.

“이, 이게 무슨…….”

나를 따라 창밖을 내다본 크래커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동안 꽤 열심히 살았나 본데?”

별채 안으로 들이닥치는 병력이 산적 몇을 잡기에는 과했다.

그것에서 크래커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전해졌다.

그만큼 이 산적 녀석들이 제국군의 골칫거리였단 의미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크래커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옆에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어쩌지도 못하고 창밖만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는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이 없었다. 도망칠 구멍이 없다.

때마침 우리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숨지 말고 나와라, 이 쥐새끼들아!”

밤을 깨우는 우렁찬 목소리.

별채를 뒤흔드는 고함에 크래커는 나를 바라보았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는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아무래도 X된 거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그는, 솥뚜껑만큼 큰 손으로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너라도 어떻게든 포위망 밖으로 보내 주마. 우리야 그렇다 쳐도 너는 우리를 도와주러 온 건데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게 둘 순 없지.”

그는 뒤편에 있던 부하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명색이 산 남자들인데, 양심적으로 그래야지 않겠냐?”

녀석들 또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우리 때문에 창창한 젊은이를 죽게 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맞아요. 알렌 녀석이 돌아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들은 호탕한 척 웃어 댔다.

멍청한 녀석들.

감히 누구를 걱정하는 거냐.

나는 그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크래커가 검을 쥐며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온 길로 가는 게 낫겠지? 우리가 길을 뚫을 테니, 뒤도 보지 말고 달려라.”

나는 녀석의 말을 들은 체도 않고 말했다.

“잡담은 나중에 하고, 일단 밖으로 나가자.”

“뭐?”

“저러는 걸 보니 생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일단 이 상황이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해야 할 거 아냐.”

저들이 우리를 단순히 죽일 작정이었다면 별채에서 암습하면 될 일.

이렇게 많은 병력을 데리고 와 요란하게 굴 필요가 없었다.

아무래도 크래커를 생포하여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공개 처형하고 싶은 것이겠지.

내 말에, 크래커는 땀을 닦았다.

“이 친구야,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늦어.”

“멍청아, 이미 늦었어.”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한 채 손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켰다. 손끝에서 소용돌이친 바람이 창문을 박살 내며 흩어졌다.

와장창!

산산이 흩어진 유리창에 달빛이 닿으며 반짝거렸다.

“빌어먹을…….”

나는 크래커가 허망하게 내뱉는 소리를 뒤로하고 뻥 뚫린 창 아래로 뛰어내렸다. 크래커와 산적들도 그런 내 뒤를 따라 차례차례 마당에 내려섰다.

“저기다!”

우리를 본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포위 벽을 만들며 검을 겨눴다.

“개X끼들 많이도 왔네.”

그들을 보며 크래커가 으르렁거렸다.

서로에게 검을 겨누며 대치하자, 좌우로 갈라지는 병사들 사이로 한 녀석이 걸어 나왔다.

금발을 시원하게 깐 남자.

그의 손짓을 따라 발치로 네 개의 수급이 데구루루 굴러왔다.

“…….”

지원조에 속해 있던 산적들의 목이었다.

크래커의 입에서 빠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났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며 주먹을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쥐었다.

그는 어찌나 화가 끓어올랐는지, 눈에 핏발까지 세운 채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금발 녀석이 그 모습을 보며 활짝 웃었다.

“친구들 맞지? 야밤에 산책하고 있길래. 늦은 시간에 숲속을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것을 친절히 가르쳐주었지.”

녀석의 하얀 이가 창백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내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 하긴 선물치고 너무 조촐했지? 마음 풀라고. 곧 네놈을 따르는 이들의 멱을 줄줄이 엮어 줄 테니까. 그때는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군. 크크큭.”

녀석의 조롱에, 산적들의 표정이 싸늘히 굳었다.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이런. 아직도 기세가 등등하네. 슬슬 눈치채야 되는 거 아냐? 우리가 너희들이 암습할 것을 어떻게 알고 함정을 팠을까?”

금발 녀석이 입꼬리를 느리게 들어 올렸다. 승리의 희열로 가득 찬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나는 간만에 싸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표정들을 보니 바보들은 아닌가 보군.”

“X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그딴 말에 속을 것 같아?”

크래커가 의연한 척 답했지만, 나는 목소리에 섞인 미세한 떨림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결정되었을 때보다 더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거짓이었으면 좋겠나 본데. 이걸 어쩌나. 이왕 말해 준 거 하나 더 말해 주지. 네가 만에 하나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돌아갈 집은 없을 거야.”

“…….”

크래커가 잠시 할 말을 잃자, 금발 녀석이 고개까지 젖히며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

녀석의 말은 본채가 날아갔다는 의미.

그곳에는 이리엘과 알렌이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끅끅거린 녀석은 눈물까지 닦아 내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감이 좀 오시나?”

크래커를 비롯한 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상황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겠지.

“도저히 못 믿겠나 본데. 그럼 내가 직접 말해 주지. 포르틴이 너네 팔아먹었어. 이 병X 새끼들아.”

……빌어먹을.

배신자가 포르틴이었을 줄이야.

누군가가 배신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배신자의 정체는 나도 좀 충격적이었다.

크래커가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아는 까닭이고, 지금도 그가 산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짜 그가 배신했다면 본채는 전혀 대비하지 못한 채 적의 기습을 맞이했을 터.

게다가 지휘관급의 녀석들은 모두 이곳에 와 있는 상황.

전력의 손실이 매우 컸다.

지휘관이 없다면 아무리 산채가 천혜의 요새라고 하더라도 쉽게 뚫려 버리고 말 것이다.

아마 이들은 그것을 노리고 이 함정을 계획한 것이겠지.

“닥쳐라! 그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우리가 아니다!”

크래커가 검을 들며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금발 녀석의 말이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도 그놈을 믿는 건가? 그 자식, 처음에는 배짱 있는 척하더니만. 결국에는 살려 달라고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더군. 막내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봐. 울부짖는 게 애새끼가 따로 없던데.”

“네놈의 입을 찢어 주겠―.”

퍽!

앞으로 뛰쳐나가려던 크래커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다들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의 뒷덜미를 손날로 쳐서 기절시킨 까닭이다.

“뭐, 뭐 하는 거야!”

“너도 배신자냐!”

퍽!

내게 배신자라 한 녀석이 주먹에 맞고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난 나머지들을 보며 말했다.

“저들과 싸우면 너희들은 모두 죽는다.”

“아니, 대―.”

퍽!

나는 말대꾸하는 녀석을 다시 잠재웠다.

설득할 시간은 없었다.

“얌전히 투항해서 목숨 부지하고 있어라. 너희 동료들을 구하고 돌아오마.”

마지막으로 남은 녀석의 불안한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런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당장에 이것밖에 없었다.

“믿어라.”

퍽!

그렇게 마지막 녀석마저 쓰러졌다. 그런 나를 본 금발 녀석이 시원하게 웃었다.

“푸하하! 포기하는 거냐? 아주 현명한 선택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크래커 한 명뿐일지 모르지만, 반항하지 않는 한 굳이 죽이지 않고 함께 처형할 테지.

그러니 일단 급한 건 이들이 아니다.

이들을 데리고 포위를 뚫으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에, 나는 선택해야 했다.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이리엘과 알렌이 더 중요했다.

나는 바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기다란 섬광이 찰나에 노면을 수평으로 갈랐다.

콰과과과광!

땅이 거칠게 파이며 튀어 나간 흙더미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병사들을 덮친다.

“왁! 뭐야!”

당황하며 얼굴을 가리는 녀석들.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나는 쇄도했고. 그들의 어깨와 머리통을 박차며 징검다리 건너듯 포위 벽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뭐 하는 거야! 쫓아!”

금발 녀석의 사나운 호통이 뒤편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나를 잡을 수 없다.

천령신공 경신편.

제1장 봉황익(鳳凰翼).

쾅!

지반을 강하게 내딛는 순간, 주변의 공간이 뒤로 쑤욱 밀려났다.

봉황의 날갯짓으로 일어난 돌풍이 걸음 뒤로 휘몰아쳤다.

내 신형은 하늘을 나는 비조처럼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나는 한걸음에 담벼락 앞에 다다랐고, 단숨에 그것을 넘어 숲으로 진입했다.

뒤편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외침은 금세 아스라이 흩어졌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전력을 다해 달렸다.

적들 또한 이 작전에 공을 들인 만큼 철저히 준비했을 터.

시간은 여유롭지 않았다.

알렌과 이리엘이 생존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어 봐야 3시간.

그것을 넘어가면 가망이 없다.

나는 반나절 동안 달려온 거리를 3시간 안에 주파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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