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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44화 (44/228)

제44화

제44화 이츠리엘 (3)

주둔지 내부에 지어진 지하 감옥.

겉으로는 2층짜리 건물이었지만, 땅속 깊숙이는 죄인들을 가두는 감옥이 지어져 있었다.

“……X발, 뭔 일이냐.”

“그러니까…….”

건물 바깥을 경계하던 이들의 불안한 눈길이 저편에서 들려오는 간헐적인 폭발음을 좇았다.

무슨 사달이 난 것이 분명한데, 그들은 아직 별다른 명령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난데없는 고함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어둠 속에서, 제복에 피를 묻힌 이가 등장했다.

가슴팍의 계급을 보니 중위였다. 깜짝 놀란 그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끔벅거렸다.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반응을 보아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엄습했다.

“저 소리 안 들려? 지원 안 가고 뭐 해!”

“그, 그게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

“됐고, 지휘관 누구야. 당장 불러와!”

중위의 짜증에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는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가 상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이를 불러왔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부른 중위를 바라보았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한 명의 병력이 아쉬운 상황에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게야! 전 병력 지원 오라는 말 못 들었어?”

“저희는 오늘 밤 경계를 2배로 강화하라는 말 외에는 별다른 명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건 아까고! 지금 적들의 기습으로 이츠리엘 님의 목숨이 위험하다. 지원이 시급해.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따라라!”

“아, 네. 알겠습니다!”

상사는 인원을 추려 입구를 지키는 위병 넷만 남기고 다급히 중위를 따랐다.

앞장서 달리던 중위는 좁은 골목에 이르자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 참. 이걸 말하지 않았군.”

“네?”

콰직!

상사는 자신의 가슴팍을 꿰뚫은 검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

푸확!

심장을 관통당한 그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제국군들.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병사들 사이로 검광이 번뜩였다.

적아를 구분하지 못한 이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전멸했다.

“후, 감쪽같았지?”

중위, 알렌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리엘은 그의 연기 실력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알렌을 비롯한 이들은 모두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새까만 군복 위에 블랙 드래곤이 그려진 흉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제국군의 전투 복장.

전투복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산채에 죽은 제국군이 산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이들은 애초부터 제국군으로 위장한 채 주둔지에 진입한 상태였다.

다시 지하 감옥으로 돌아온 이들은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 또한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무슨 일 있으면 신호를 보내고.”

가크웬이 부하 둘에게 신신당부하며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에게는 경계병인 척 바깥을 지키는 임무를 맡겼다.

계단은 성인 둘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알렌은 벽면에 듬성듬성 걸린 등불에 의지하며 은은한 어둠 속을 조심스레 걸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기가 축축해지며 케케묵은 곰팡이 냄새와 알 수 없는 썩은 내가 코를 찔러 왔다.

그렇게 계단을 다 내려오니 짧은 복도가 이어졌다. 복도 끝에 있는 문틈에서 주황색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조용히 그 앞으로 다가간 알렌과 가크웬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렌이 문을 다급히 두드리며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밖에 사달이 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들려오는 급박한 음성에 아무런 경계 없이 문이 열리고, 그 순간 준비되어 있던 검이 문을 연 자의 몸에 틀어박혔다.

“커헉…….”

짧은 신음과 함께 확장된 동공이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뭐, 뭐야?!”

안을 지키던 간수들이 다급히 일어났지만, 알렌과 가크웬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별다른 대응도 못 하고 금세 무너져 내렸다.

“후.”

얼굴에 튄 핏물을 닦아 낸 알렌이 심호흡을 했다.

간수실 너머로 굳게 닫힌 철창이 보였다. 그 뒤로 죄수들을 가둔 것으로 보이는 방들이 복도 양측으로 늘어져 있었다.

“여기 있어요.”

간수들의 시체에서 열쇠를 발견한 이리엘이 재빨리 그 철창을 열었다.

이리엘과 일행들은 감옥의 문을 열어 내부에 있는 이들을 확인해 갔다.

철컹.

단단한 철문이 열리자, 그 틈으로 생기를 잃은 퀭한 눈이 들어 올려진다.

방 안에는 빼빼 마른 사내가 있었다. 야윈 몸을 덮은 옷은 핏물에 절어 있었고, 생기는 이미 꺼져 가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심한 고문에 시달린 흔적이 다분했다.

그런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죽어 가고 있었다.

이들은 일단 크래커와 동료들을 찾는 것에 주력했다.

무작정 확인하던 방 중에는 고문을 진행하던 방도 있었다. 벽에는 고문 기구들이 걸려 있었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 왔다.

기구와 바닥에 남은 혈흔만으로도 끔찍했던 고문의 현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리엘은 그것을 보며 눈살을 사납게 찌푸렸다.

그때, 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크웬?”

“두목!”

고문 방의 문고리를 잡고 있던 이리엘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무래도 크래커를 찾은 듯했다.

“어, 어떻게 여기에…….”

“설명은 나중에. 일단 나갑시다.”

방에 들어간 알렌이 그들을 재촉했다.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다행히 그들의 상태는 다른 이들에 비해 굉장히 양호해 홀로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크래커와 산적들만 데리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감옥에 있던 다른 수감자들도 모두 챙겼다. 크래커와 산적들 외에도 5명이나 있었다.

이곳은 범죄자가 아닌 제국에 반한 자들을 가둔 곳.

모두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었다.

“……참말이오?”

알렌의 어깨를 꽉 부여잡은 수감자가 격양된 감정을 누르며 물어 왔다. 쇳소리처럼 쉰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네, 함께 갑시다.”

알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앙상한 팔을 자신의 어깨 위에 걸쳤다.

거동을 할 수 없는 이들은 업고, 그나마 괜찮은 이들은 서로를 부축하여 걸었다.

다행히 인원이 적어 모두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는 있었다.

그렇게 지상으로 올라오자 상쾌한 공기가 이들을 반겼다.

여전히 저편에서는 간헐적으로 굉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다행히 영내는 고요했다.

저 멀리 건물 사이로 휑하니 뚫린 담벼락이 보였다.

이제 곧이었다.

낯선 그림자가 앞을 가로막은 건 그때였다.

“크크큭. 이 쥐새끼 같은 놈들.”

앞길을 막은 사내가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렸다. 그와 동시에 군홧발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골목에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행은 걸음을 멈춘 채 경계 어린 태세를 갖췄다. 순식간에 앞길이 꽉 막히고 말았다.

“이곳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사내가 이를 드러냈다.

크래커를 죽이라는 명을 전달하기 위해 왔던 그는, 우연히 감옥을 점거하던 이들을 발견하였고 급히 병사들을 모아 앞길을 막을 수 있었다.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

그것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 것이다.

“…….”

일행들은 아무 답도 하지 못한 채 적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어차피 뒤로 도망갈 수는 없다.

활로는 녀석들을 뚫는 것이 유일했다.

하지만 전황은 불리한 상황.

상급 마나 유저인 알렌과 이리엘, 그리고 크래커를 비롯해 산채의 정예들도 함께였지만, 그들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수적으로도 불리했다.

‘……방법이 없는 건가.’

알렌은 이리엘과 눈을 마주쳤다.

둘 모두 뾰족한 수가 있지 않았다.

제네스를 부를 수야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남은 병사들 또한 모두 이쪽으로 집결될 터.

아무리 제네스라고 해도 모두를 지키면서 싸울 수는 없다.

결국 이 난관을 직접 돌파하는 게 최선이기는 한데…….

문제는 구해 온 수감자들이다.

그들은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해 있었다.

산적들과 함께 가는 것은 가능해도, 수감자들까지 데려가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

알렌은 자신이 부축하고 있던 자를 바라보았다. 그 또한 체념한 듯 알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날 베고 가 주게.”

그는 감옥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자신의 삶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찰나, 머릿속이 여러 가지 생각으로 뒤엉켰다. 이들을 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방도가 없는 상황.

알렌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의 제국군을 바라보았다.

그때 저편에서 울린 굉음이 아스라이 흩어졌다.

쿠르릉.

알렌은 그들이 그 소리에 움찔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갑옷에 묻은 핏자국과 상기된 표정들.

그래, 분명 이들은 조금 전까지 전장에 있었던 이들이다.

순간 알렌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번뜩 스쳐 지나갔다.

“모두 비키거라.”

한 지역의 패자처럼 위엄 가득한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알렌은 부축하고 있던 이를 옆 사람에게 맡기고, 일행 사이를 가로질러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리엘을 비롯한 이들이 그런 알렌의 뒷모습을 당황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우매한 놈들. 고작 이 정도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알렌의 서릿발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일대에 내려앉았다.

그는 일국의 왕이라도 되는 듯 오만한 눈빛으로 제국군을 쓸어 보았다.

“뭐?”

그런 알렌의 당당함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감히 이 몸이 누군지 알고 앞길을 막으려 하느냐.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썩 꺼져라. 보살펴야 할 자들이 있기에 살려 주는 것이다.”

알렌이 그들을 질책했다.

“지, X랄하고 자빠졌네. 어디서 허세야!”

앞에 선 자가 그에 맞서 소리쳤지만, 함부로 달려들지는 못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리엘은 알렌 쪽으로 기우는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어, 어쩌면 통할 수도?’

이리엘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상황을 관전했다.

“다섯을 세겠다.”

알렌은 무슨 자신감인지, 손을 제국군이 볼 수 있게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양측의 진영이 각기 다른 이유로 긴장감에 물들었다.

‘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이리엘이 불안한 눈길을 보냈다.

저런 무리수에 제국군이 속아 넘어갈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 달리 제국군의 진형에서는 동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알렌의 허장성세가 그저 허장성세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들은 이미 홀로 군세를 헤집는 제네스를 보고 온 상황이었으니까.

알렌의 입에서 나른하면서 단호한 목소리가 뱉어졌다.

“다섯을 셀 때까지 남아 있는 녀석들은 모두 죽는다.”

칼처럼 단호하게 떨어지는 알렌의 목소리에, 이리엘은 자연스레 제네스를 떠올렸다.

이제 보니 말투나 행동이 상당히 비슷하다.

알렌은 지금까지 곁에서 지켜봐 온 제네스의 오만함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

알렌이 무심히 숫자를 세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제국군의 눈동자에는 점차 균열이 번져 갔다.

‘저, 정말 될지도 몰라!’

이리엘은 그것을 보며 감탄했다. 알렌의 연기가 제대로 통하고 있었다. 그만큼 적들은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둘.”

알렌은 일정한 박자로 숫자를 세어 갔다. 수가 늘어날수록 제국군은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아군의 심리적 압박감도 쌓여만 갔다.

“셋.”

“이익.”

누군가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졌다.

제국군들은 이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에게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일행들은 몰랐지만, 제국군 쪽에서는 상대편에 두 명의 강자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별채에서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 자와 산채에서 홀로 1중대를 쓸어버린 자.

제네스가 저편에서 날뛰고 있으니, 알렌이 둘 중 한 명일 거라 오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것이다.

“넷.”

수는 계속해서 늘어 갔다.

“다섯.”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숫자가 세어졌다. 하지만 제국군은 여전히 각자의 무기를 겨눈 채 알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패인가?’

이리엘이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을 때, 알렌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며 입을 열었다.

그의 연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죽기를 바란다면야.”

검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백색의 칼날 위로 달빛이 부서져 내린다.

일말의 흔들림 없는 그 모습을 본 제국군은.

“으아아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 선 이들이 등을 돌리자 공포는 그들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병사들은 마치 뒤에서 죽음이라도 쫓아오는 양, 뒤도 보지 않고 내달렸다.

어느새 장내에는 고요가 맴돌았다.

“후아.”

깊은숨을 뱉은 알렌은 풀려 버린 다리를 억지로 지탱하며 뒤를 보았다. 일행은 그를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가죠.”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재빠르게 주둔지의 담벼락을 넘어 미리 준비해 둔 마차로 이동했다.

이제 굳게 닫힌 성문을 넘어 카트르시 밖으로 나가야 했다.

“이랴!”

알렌은 채찍질을 하며 마차를 몰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동료들을 구했다는 신호탄을 허공에 쏘았다.

피융―!

캄캄한 하늘을 가르며 치솟은 붉은 선이 불꽃으로 터졌다.

퍼벙!

제네스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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