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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45화 (45/228)

제45화

제45화 이츠리엘 (4)

발길질에 차인 이츠리엘이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콰과광!

“끄아! 이 빌어먹을 새끼가!”

몸 위로 쏟아진 잔해를 치워 내며 벌떡 일어나는 녀석.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가면 안에서 씩 웃었다.

“이제야 좀 인격에 맞는 몰골이군.”

“뭣들 하느냐! 저 개자식을 잡으란 말이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서라도 막으라고! 이 쓸모없는 새끼들아!”

이츠리엘이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병사들을 보며 미친놈처럼 소리쳤다.

명령을 따라 내게 달려오는 병사들.

그들이 쥔 칼과 창은 위협적이지 않았으나, 귀찮고 번거로웠다.

“그럼 한번 잡아 봐.”

그래서 나는 녀석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며 술래잡기 한판을 벌이기로 했다.

어차피 내 목적은 이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니까.

콰광!

달리다가 앞을 막아 오는 벽은 그대로 뚫고 전진했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덕분에 따라오기도 쉬울 터.

나는 두더지처럼 주둔지 곳곳에 길을 내며 다니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런 내 앞길을 사전에 막기 위해 무던히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막으면 어쩔 건데?

날 포위하는 게, 날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그들은 기를 쓰고 있었다.

내가 도망치고 있으니 일단 걸음부터 세우고 보자는 단순한 심리로 보였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도 하겠지.

나로서는 기꺼운 반응이다.

나는 그 와중에 조용히 내빼고 있는 이츠리엘을 보았다.

녀석쯤이야 마음만 먹는다면 단칼에 죽일 수 있었지만, 일부러 질질 끌었다.

녀석의 존재는 병사들을 응집할 수 있는 좋은 미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개인적인 은원이 있었다.

쉽게 죽여줄 수는 없지.

나는 내가 당시 느꼈던 감정을 녀석이 그대로 느끼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한 번거로움은 기꺼이 감내할 마음이 있다.

까만 밤하늘에 붉은색 불꽃이 터진 건 그때였다.

퍼벙!

크래커를 구했다는 신호.

나는 비척대며 도망치는 이츠리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크래커와 산적들을 구했으니 녀석보다 도시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술래잡기는 이제 끝났다.

쿵!

땅을 박차는 순간, 주변의 병사들이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며 창졸간에 멀어졌다.

나는 일행을 향해 달렸다.

강한 돌풍이 발자국처럼 내가 지난 자리에서 휘몰아쳤다.

한순간에 목표물을 잃은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시장통보다 소란스러웠던 장내에 고요한 적막이 내렸다.

* * *

두두두두!

삼두마차가 잠든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뿔사슴 부대의 주둔지에서 굉음이 울렸음에도 도시는 고요했다.

마차는 도시의 남쪽 성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 굳게 닫힌 거대한 성문이 눈에 담겼다.

“저길 어떻게 뚫을 건가?”

크래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는 마차 지붕에 앉아 전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준비된 마차가 비좁았기에 이리엘과 크래커, 가크웬은 마차 지붕에 올라 있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엘이 전방을 주시한 채 말했다.

크래커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둔지에서 이런 소란이 일었으니, 성문의 경계가 몇 배는 강화됐을 게 빤했다.

이 볼품없는 마차를 타고 정면 돌파가 가능할 리 만무했다.

“제네스 님이 곧 오실 겁니다.”

마부석에서 마차를 몰고 있던 알렌이 고개를 틀어 지붕 쪽을 바라보았다.

크래커는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녀석이라도 저걸 뚫을 수 있을 리가…….”

제네스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저 웅장한 성문을 대체 무슨 수로 뚫는단 말인가.

그때, 갑작스레 생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로 달려라.”

“네!”

옆을 본 알렌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목소리를 좇아 고개를 돌린 크래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마차 옆을 제네스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뭐, 뭔데?”

사람이 마차만큼 빠르게 달리면서도 평온한 표정이라니.

헛것이라도 본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란히 달리던 제네스가 마차 위로 사뿐히 올랐다. 크래커는 그런 그를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제네스는 멍청한 표정의 크래커를 무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감옥에서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지?”

“난 멀쩡하네!”

크래커가 억울한 눈빛으로 성을 냈다.

머리를 몇 대 맞기는 했지만, 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여전하군.”

제네스는 그의 항변을 깔끔히 무시하며 정면을 보았다. 크래커는 자신의 멀쩡함을 당장에 증명하고 싶었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둠이 드리운 저편에 도열한 경비병들이 대로를 막고 있었다.

앞의 두 줄은 모두 궁병.

그들은 시위에 화살을 건 채, 전투태세를 마친 상태였다.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못 해 보고 고슴도치가 될 판이다.

“멈춰라!”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하지만 알렌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몰았다.

“발사 준비!”

경비대장의 호령을 따라 궁병들이 활시위를 당겼다.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체 어쩌려고?”

크래커는 제네스를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 의지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기다려라.”

제네스의 말에, 크래커는 아랫입술을 잘근 물었다. 불안함에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뭐라도 화살을 막을 만한 게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없었다. 지붕 위에 우뚝 솟은 자신은 맞히기 쉬운 과녁일 뿐이었다.

“발사!”

파바바바방!

궁병들의 손을 떠난 화살이 일시에 허공을 날았다. 새까만 어둠에 모습을 감춘 화살 비가 마차를 향해 쏘아졌다.

마차와 화살은 서로를 향해 치달으며 간격을 더욱 빠르게 좁혔다.

“제, 젠장!”

크래커는 미친 듯이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급소를 보호했다.

그때 강한 돌풍이 일었다.

제네스의 손끝에서 피어난 바람이었다.

제네스가 수평으로 손을 긋자, 바람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화살들을 집어삼켰다.

후두두두둑.

파리를 쫓는 듯한 가벼운 손짓에 화살은 쏘아지던 힘을 잃고 나무 막대기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크래커는 몸을 웅크린 채, 눈만 빼꼼히 들어 그 장면을 보았다.

간신히 다물었던 입이 다시 쩍 하고 벌어졌다.

놀란 것으로 치자면 경비병들이 더했다.

쏘아진 화살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마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피, 피해!”

경비병들은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마차를 피해 좌우로 몸을 던졌다.

그들 사이를 마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저, 저 미친것들이.”

바닥에 엎어져 마차의 꽁무니를 본 이들은 황당한 시선을 던졌다.

어차피 녀석들이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의 앞에는 굳게 닫힌 성문이 버티고 있었으니까.

저리 가 봐야 막다른 길인 것이다.

저 속도 그대로 달린다면 성문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날 터.

저들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그건 같은 편인 크래커 또한 마찬가지.

대체 이놈들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성문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데, 마차는 멈춰 설 생각을 않는다.

“뭐, 뭐 해! 멈춰!”

크래커는 마차를 모는 알렌에게 소리쳤다.

알렌은 들은 체도 안 하고 말을 몰았다. 그는 이리엘과 가크웬을 바라보았다.

둘 또한 입술을 꽉 다문 채 정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뭐지? 내 머리가 진짜 어떻게 된 건가?’

다들 가만히 있으니 유난을 떨고 있는 자신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지경.

크래커는 옆에 있던 제네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역시 믿을 건 이 녀석뿐…… 응?

크래커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옆에 있어야 할 제네스가 보이지 않았다.

한편, 제네스는 성문을 향해 마차보다 빠르게 쏘아지고 있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라고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제네스의 손이 성문을 향해 뻗어졌다.

천령신공 기예편.

제2장 나선회류파(螺線回流波).

내밀어지는 손바닥 위로 푸른빛의 기가 소용돌이처럼 휘감겨 들었다.

찰나에 압축되는 기의 여파로 옷자락이 사납게 펄럭인다.

마치 온 세상이 손바닥 위로 빨려 들어오는 듯한 감각.

나선으로 회전하며 응축된 내력이 담벼락에 닿았다.

콰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굉음.

바로 옆에서 벼락이 내리친 듯했다.

마차에 있던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뜬 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동공이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욱한 먼지가 흩어지며 드러난 전방이 휑했다.

성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탁 트인 들판이 보였다.

저 멀리 커다란 잔해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작은 분진들은 진눈깨비처럼 바람을 타고 휘날렸다.

두두두두!

마차는 뻥 뚫린 성문을 그대로 통과하여 지나쳤다. 이를 기다리던 제네스는 손쉽게 마차 위로 올랐다.

경비대장은 그들을 쫓을 생각도 않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히 소리쳤다.

“쫓아라!”

한편 알렌은 들판을 질주하며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야호~!”

제국군 주둔지에 잡혀 있던 이들을 아무런 피해 없이 빼내다니.

자신이 해냈음에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다시 마차 위로 내려서는 제네스를 보며 크래커는 뻣뻣하게 굳어 있던 몸을 축 늘어뜨렸다.

분명 엊그제만 해도 함께 술을 나누던 사이였거늘. 지금 눈앞에 있는 그는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제네스는 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활.”

이리엘은 재빨리 활과 화살을 건넸다.

뒤편에서 말을 탄 경비병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제네스는 덜컹거리는 마차 위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빛살처럼 어둠을 갈랐다.

거리가 있음에도 활시위를 튕기는 동시에 뒤쫓아 오던 병사가 몸을 뒤집으며 낙마했다.

‘……이 인간은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믿기지 않는 무력에 크래커는 다시 한번 자신의 머리를 의심했다.

이제는 그가 전쟁의 신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꾸, 꿈인 건가?”

그는 두꺼운 손바닥으로 자신의 두 뺨을 철썩철썩 두드렸다. 옆에 있던 이리엘이 친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도와드려요?”

잠시 흠칫한 크래커는 고개를 저었다.

아픈 걸 보니 꿈이 아닌 게 확실했다.

제네스는 여유롭게 화살을 한 발, 한 발 쏘았다.

잠시 후 그는 일련의 행위를 멈추었다. 어느새 뒤를 쫓아오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상황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그는 이리엘에게 활을 건네며 말했다.

“먼저 가 있거라.”

“같이 안 가요?”

“마무리는 해야지.”

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네스가 말을 이었다.

“이츠리엘을 죽이고 오마.”

“아―.”

제네스는 달리는 마차에서 구름처럼 내려섰다.

그러고는 다시 카트르시로 향했다.

그가 신호탄을 꺼내 하늘 위로 당기자, 초록색 선이 곧게 뻗어 나가 불꽃으로 터졌다.

화답이 온 것은 동문 쪽이었다.

까만 하늘 저편에서 다시 한번 초록색 빛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이츠리엘이 도망칠 걸 예상했기에, 남문을 제외한 세 개의 문에 산적들을 배치해 두었었다.

녀석은 말을 타고 도망가고 있을 터.

따라잡으려면 전력으로 달려야 했다.

제네스는 발끝에 힘을 실었다.

천령신공 경신편.

제1장 봉황익(鳳凰翼).

콰앙!

발끝이 땅을 밀어내며 흙 폭풍이 일었다.

지반이 터져 나가며 그의 신형을 앞으로 쭈욱 밀어냈다. 그는 어둠에 잠긴 평원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를 마주한 바람은 쐐기꼴로 갈라졌다가 그의 뒤편에서 합쳐지며 사납게 휘날렸다.

제네스의 걸음 뒤로 먼지구름이 한줄기 선처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순식간에 사라지는 제네스를 보며 크래커는 이리엘에게 물었다. 이리엘 또한 멍한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 작전이 될까 싶었는데, 이것도 되네요.”

터무니없이 들리는 말을 제네스는 언제나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미드크레이에서도 그랬고, 체즈웬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이리엘은 이제 그의 말이라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믿게 될 것만 같았다.

이러다 알렌처럼 제네스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도가 될 판.

하지만 이리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괜한 심술일지도 모르지만, 그를 의심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상단을 꾸려 가며 확실하게 느낀 건 돈도, 사람도 끝까지 의심해야 한다는 거다.

가장 큰 위기는 맹신에서 오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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