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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54화 (54/228)

제54화

제54화 네더만 (3)

나는 암호문을 건네받으며 들었던 말들을 녀석에게 그대로 전해 주었다.

“……그렇게 된 것이군.”

네더만이 침음을 흘렸다.

우연히도 네더만은 그 독립군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라 했다.

폴체로 상단의 용병으로 있었던 것도 뿔사슴 부대에 자연스레 잠입하기 위한 것이었고.

나 때문에 실패했지만.

어쨌거나 그 이후로 그가 흰사자에게 구해진 것을 알게 된 네더만은, 서부대로 관문 격 도시인 ‘이체른’에서 그를 기다려 볼 작정으로 움직이던 와중이었다고 했다.

“무모하군.”

내가 말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덧붙였다.

“딱히 방법이 없었지. 산속에 꽁꽁 숨은 산적들을 무슨 수로 찾겠나.”

“네가 찾던 자는 이미 죽었을 거다.”

그의 죽음을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몸 상태로 봤을 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였다.

“……안타까운 일이군.”

내 설명을 들은 네더만이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고 짧게 기도했다. 동료의 명운을 빈 그가 눈을 뜨자, 알렌이 눈치를 보며 슬쩍 말을 걸어 왔다.

“그런데 굽이치는 해협의 간부면, 혹시 암호 해독도 가능한가요?”

네더만은 활짝 웃어 보인 후에 답을 이었다.

“물론 불가능하지. 나는 굽이치는 해협에서 주로 먹고 마시며 뒹구는 역할을 맡고 있거든.”

“……참 대단하시네요.”

이리엘의 말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런 편이기는 하지.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네.”

* * *

금빛 비늘이 아롱진 강가.

간간이 부는 선선한 바람이 머리칼을 쓸고 지나간다. 평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네더만은 뭍에 앉아 입을 댓 발 내밀고 있었다.

“내 살아생전 이런 대접은 또 처음이군.”

그는 마음에서 이는 불만을 손끝에 실어 그릇을 벅벅 닦아 댔다. 이리엘이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평소에는 어떻게 지냈어요?”

밖에서 생활하다 보면 노숙은 피하지 못했을 텐데, 지금까지 설거지를 해 본 적 없다는 그의 말은 신빙성이 전혀 없었다.

“노숙할 때는 대충 육포 같은 것으로 때우거나, 산짐승을 잡아먹었지.”

“아―.”

이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네스가 까탈스럽고 유난스러운 거지, 사실 대부분이 그러긴 하니까. 이제 익숙해져서 남들도 다 그런 줄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살다 살다 밖에서 이렇게 챙겨 먹는 놈은 처음 본다고.”

제네스와 함께하며 처음인 게 많은 그였다.

네더만은 계속해서 툴툴거렸다.

“물론 맛은 훌륭했네. 괜찮은 시간이었지. 이런 귀찮은 일을 맡지 않았다면 말이야.”

그는 그릇을 물가에 깨끗이 헹구고는 햇볕에 비춰 보았다.

“사용한 그릇을 알렌 머리통만큼이나 반짝거리게 닦아 오라니. 난 말했듯, 태어나 설거지를 해 본 적도 없단 말일세.”

“처음치고는 매우 훌륭하세요.”

옆에서 함께 설거지하고 있던 알렌이 네더만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제네스 님은 제 머리통만큼 반짝거리게 닦아 오란 말은 하지 않으셨는데요.”

“아, 그랬나?”

“네. 정확히는 새것처럼 반짝거리게 닦아 오라고 했죠.”

알렌이 눈을 세모나게 뜨자, 네더만은 멋쩍은 듯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내가 아무래도 착각했나 보군. 뭐, 어찌 됐건 그거나 저거나 반짝거리게만 닦으면 되지 않겠나.”

“전혀 다른데요.”

알렌이 동조해 주지 않자 그는 자연스레 이리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걸었다.

“뭐 어쨌거나 말이야. 그래도 내가 명색이 용 사냥꾼이라는 칭호를 가진 위엄있는 검사거늘. 이 귀한 손으로 그릇을 닦는 건 크나큰 손실이 아닐까 싶은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용 사냥꾼이 아니라 뭐라도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닦아야지, 그럼 누구보고 닦으라는 건데요.”

이리엘이 사납게 눈을 흘기자 그는 괜히 자신이 닦던 그릇을 이리저리 살피며 딴청을 피웠다.

“참으로 합당한 친구고만.”

“그럼요.”

“그럼 저 녀석은 왜 자기가 먹은 그릇을 본인의 손으로 안 닦는지 좀 설명해 주겠나? 나는 사실 그게 가장 큰 불만이거든.”

네더만은 뒤편의 그늘에서 홀로 편히 앉아 있는 제네스를 향해 턱짓을 했다.

“비가 올 때마다 무릎이 시린 나도 이렇게 쪼그려 앉아서 설거지하는데 말이야. 정작 새파랗게 어린 저 녀석은 저리 유유자적하고 있으니. 뭔가 잘못된 거 같지 않나?”

이리엘은 네더만의 불평에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은 채 툭 말했다.

“그럼 직접 가서 말해 봐요.”

“목을 베겠다는데 어찌?”

“그렇죠? 모두 같은 심정이에요. 설거지하기 싫다고 목을 베이고 싶지는 않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저도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수긍했어요. 사람마다 역할이 다르니까요. 제가 설거지를 하듯, 저 사람은 다른 일을 하니 말이죠.”

제네스가 프렌치아 독립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설거지뿐만 아니라 뭔들 못 해 주겠는가.

그것이 그녀가 아무런 불만 없이 손빨래를 열심히 하는 이유였다.

잔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네더만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군. 그런데 나도 역할이 좀 다르지 않나? 나도 검 좀 다룰 줄 아는 사람인데 말이야.”

이번에는 알렌이 나서서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가서 직접 말해 보시죠.”

“……제길.”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데.

별수가 있나.

저 놈팡이 같은 자식.

분통을 삼킨 네더만은 다시금 화를 담아 그릇을 벅벅 닦아 댔다.

알렌은 그런 그를 보며, 제네스의 위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천하의 용 사냥꾼이 자신의 옆에서 함께 그릇을 닦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프레디와 체스가 알게 되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옆에 있는 자신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니까.

어떻게 보면 제네스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공평한 사람이었다.

본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함부로 대하니 말이다.

“그런데 저 자식은 대체 뭐 하던 녀석인데 저렇게 강하지?”

네더만의 물음에, 알렌은 포크에 묻어 있는 물기를 탁탁 털며 말했다.

“사실 저희도 아는 바가 별로 없어요. 제네스 님을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가? 그럼 저 녀석과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건데?”

“궁금하세요?”

“물론일세.”

네더만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저 무지막지한 자의 출신과 행보가 안 그래도 상당히 궁금한 터였다.

알렌은 목을 가다듬으며 가슴을 내밀었다.

“그쪽으로는 또 제가 전문이죠. 조금은 긴 이야기가 될 겁니다.”

“호, 흥미롭군. 벌써 굉장히 기대되는걸?”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자신 있게 웃어 보인 알렌이 제네스와의 첫 만남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갔다.

알렌의 이야기는 설거지가 끝나고도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네더만은 이어지던 이야기를 다급히 끊으며 말했다.

“자, 잠깐! 그럼 국새가 지금 북부의 흰사자에 있단 말인가?”

화들짝 놀란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였다.

“네, 그렇죠.”

알렌의 말에, 네더만은 허탈한 탄성을 터트렸다.

“……허, 국새와 소드 마스터까지 흰사자 수중에 있단 말이지? 이거 독립군 세력 판도에 큰 지각 변동이 있겠군.”

네더만은 동, 서, 남, 북으로 나뉘어 있던 세력의 균형이 북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프렌치아의 독립 가능성만 보았을 때는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듯했으나, 굽이치는 해협의 일원으로서는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죠.”

가만히 듣고 있던 이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북부의 흰사자를 이끄는 수장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데요. 몰락한 왕가를 대신해서 프렌치아를 이끌 자격과 능력이 충분한 사람이라고요. 그러니 제네스 님도 함께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죠?”

그녀가 제네스를 보며 묻자, 여태 잠자코 있던 제네스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프렌치아의 새로운 왕이 될 거다. 내가 그리 만들 거니까.”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군.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네더만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국으로부터의 독립과 프렌치아의 새로운 왕을 세우는 일.

지금으로서는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무슨 동네 촌장 뽑는 것처럼 말하다니.

“너에게는 그렇겠지.”

“……날카로운 지적이군.”

네더만은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초원의 들개를 전멸시킨 녀석의 압도적인 무력이라면, 적어도 프렌치아에서는 이자를 막을 자가 단연코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자신감을 가질 만한 근거가 녀석에게는 있었다.

“뭐, 흰사자에 국새와 큰 인재들이 모여 있으니 그들의 수장이 새로운 왕이 되는 건 지금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도 있겠군.”

게다가 북부의 흰사자에는 저 무지막지한 녀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북부를 대표하던 인물은 북부의 별, 늙은 여우.

자신이 서부의 검으로 서부를 대표하는 것처럼, 그 또한 북부 독립군 세력을 대표하는 인재였다.

그런데 그 늙은 여유를 품고 있던 북부의 흰사자가 최강의 검까지 얻었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 독립군이 통합되는 건 당연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이 통합이냐, 아니면 또 다른 분열이냐는 그들의 역량에 달려 있을 테고.

정말이지 프렌치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거 나도 북부의 흰사자로 자리를 옮기든가 해야겠는데? 하하. ……뭐야? 농담이기는 했지만, 왜 다들 반기는 기색이 아니지?”

네더만은 별다른 반응이 없는 일행들을 향해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알렌과 이리엘은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네더만의 말의 대부분이 실없는 농담이란 걸 이미 잘 아는 탓이다.

“쳇, 아주 섭섭하군. 뭐, 일단 자네들의 마음은 알겠으니 저 녀석에 관한 이야기나 계속해서 해 주게나. 듣다 보니 꽤 흥미진진하군.”

알렌의 이야기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졌고, 네더만은 끝끝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그는 알렌을 보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자네, 긴 이야기를 이렇게 재밌게 말할 수 있다니. 음유시인이 된다면 대성하겠어.”

“안 그래도 그쪽으로 지원했었는데, 당시에는 잘 안됐었어요.”

알렌이 계면쩍게 웃었다.

음유시인은 대륙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듣고 경험한 일화로 이야기를 짓는 자들.

그들의 시와 노래에 담긴 이야기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 있었고,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정보 조직이나 다름이 없었다.

독립군들도 음유시인으로 위장하여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퍼뜨리기도 하니.

네더만은 제네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마 저 녀석에 관한 이야기도 지금쯤 불길처럼 번지고 있겠지.’

비테로 체즈웬과 이츠리엘을 암살한 흰사자의 이야기를 초원의 들개들이 수많은 도시에 벽보로 붙였다.

이야기를 쫓는 자들이 아르텐으로 몰리는 건 당연한 바.

거기에 이번에는 초원의 들개까지 홀로 전멸시켰으니, 그에 대한 소문은 날개를 달았을 게 빤했다.

‘북부가 한차례 크게 들썩이겠군.’

과연, 북부의 상황은 네더만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초원의 들개까지 당했다고?”

“그렇지.”

“그게 말이 돼?”

“믿기 어렵기는 하지만, 아르텐을 다녀온 음유시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네. 아직도 여관에 있으니 들을 수 있을걸.”

근래 사람들은 둘 이상만 모였다 하면, 흰사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 북부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코 흰사자였다.

다들 그를 레오니랜서의 부활이라며 수군거렸다.

레오니랜서는 프렌치아의 신수이자 과거 왕궁기사단의 이름.

그것이 국민들에게 가지는 상징성은 명확했다.

흰사자에 관한 이야기는 바람을 탄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가고 있었다.

음유시인을 떠나 상인, 용병, 여행객까지.

누구 할 것 없이 입이 있는 자들은 그 소문을 자발적으로 실어 날랐다.

절망과 비탄에 잠겨 있던 프렌치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꿀처럼 달콤한 것이었으니까.

구름처럼 부푼 소문은 그가 인간이 아니라, 프렌치아를 지키기 위해 신이 보낸 신수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렇다고 모두가 들뜬 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잠깐 일고 마는, 헛된 희망의 바람이라 생각하는 자들 또한 많았다.

하지만 흰사자에 관한 소문이 북부 전역을 덮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그것이 소문이든 진실이든 순식간에 퍼져, 결국 이국의 땅, 주르아든 왕국에까지 닿았다.

“역시 화끈하네.”

전서조를 타고 날아온 쪽지를 읽은 사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청명한 하늘을 보았다.

바람에 날리는 푸른색 머리칼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런 그의 옆으로는 백금발의 사내가 서 있었다.

“이로써, 본격적인 바람이 불게 될 겁니다.”

북부의 별, 늙은 여우.

그것이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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