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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61화 (61/228)

제61화

제61화 정략혼인? (3)

정오에 걸린 볕이 상점가를 내리쬐고 있었다.

성에서 나온 나는 그 거리를 거닐었다.

번화가답게 많은 사람이, 또 그만큼 다양한 상품들이 즐비해 있었다.

나는 그중 ‘여행의 모든 것’이라는 상점에 들어갔다. 단순하게 이름이 마음에 든 까닭. 나를 발견한 종업원이 금세 쪼르르 달려왔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우면서 성능이 우수한, 합리적인 가격의 여행 장비들을 찾고 있다.”

“……아, 예. 이쪽으로 오시죠.”

그는 능숙하게 나를 상점의 2층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여행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의 성능과 가격을 유심히 살피며 둘러보았다.

이미 모두 있는 장비들이었지만, 어제 카드놀이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김에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할 요량이었다.

루시안에게 받은 장비는 모두 기본 장비들로 값비싼 것들이 아닌 까닭.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기왕 처음부터 최고급으로 맞춰 주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상점을 대충 훑어봤음에도 내 것에 비해 좋은 장비들이 산더미였다.

역시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바탕 상점가를 돈 나는 묵직한 짐을 짊어지고 ‘한스네 책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찾으시는 책이 있으신가요?”

“가치 있는 여행을 위한 것들이 상세히 적힌 가이드 북을 찾고 있다. 가령 이런 거.”

“……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챙겨 온 「긴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101가지 방법」 책을 보여 주자, 사내는 기둥 뒤쪽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월등한 시각 탓에 멀리서부터 진열된 책들을 훑어보던 나는, 마음에 쏙 드는 제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긴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101가지 방법. 심화편.」

내가 벌써 두 번째 읽고 있는 「긴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101가지 방법」을 쓴 작가의 후속편이었다.

운이 좋았군.

나는 씩 웃으며 그 책을 향해 곧장 걸었다. 그때, 그 책 쪽으로 다가가는 자가 있었다.

정확히 「긴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101가지 방법. 심화편.」을 향해 뻗어지는 가느다란 손가락.

나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

미끄러지듯 쏘아진 신형은 어느새 책장 앞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책에 거의 다다라 있었다.

하지만 책을 잡은 건 내가 먼저였다.

“어?”

눈앞에서 책을 놓친 이가 당혹스러운 소리를 내며 나를 돌아보았다.

“제가 먼저…….”

“그랬다면 이게 네 손에 있었겠지.”

나는 손에 들린 책을 흔들어 보여 주었다.

“그, 그렇네요.”

나는 뒤도 보지 않고 계산대로 향했다.

오늘의 사치는 이 책으로 완벽히 마무리될 듯했다.

그렇게 책을 구매하고 서점을 나오니, 간발의 차이로 이 책을 집지 못했던 여자가 입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키가 큰 여자도 한 명 서 있었는데, 검을 차고 있지는 않지만 검을 익힌 자가 분명했다.

호위 기사인가?

내 앞을 막아 온 여자가 공손히 말했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그 책 양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오래전부터 기다렸던 책인데, 아쉽게도 이번 인쇄본은 그 책이 마지막이라고 하네요.”

“그럼 더 오래 기다려야겠군.”

나는 들고 있던 책을 가방 깊숙이 넣었다.

“책 값, 2배로 드릴게요.”

여자가 지나치려는 내 앞을 막으며 말했다. 그녀에게서 옅은 소독약 냄새가 났다.

“아니면 3배 어때요?”

살살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여자.

자기가 예쁜 줄도 알고, 그걸 무기로 사용할 줄도 아는 여자다.

하지만 그 정도로 내가 넘어갈 리 없지.

“됐다. 치워라.”

나는 그녀를 밀어낸 뒤, 그대로 걸었다. 황당한 눈길이 뒤통수를 따갑게 두드렸지만, 괘념치 않았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방으로 돌아온 나는, 새로운 짐을 정리하고 곧장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몸이 힘들지 않으면 그건 여행이 아니다.」

첫 문장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했다.

보람찬 여행을 위해서라면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법이지.

확실히, 이 작가는 생각이 제대로 박힌 녀석이다.

나는 만족스럽게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은 어느새 저녁 식사 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제처럼 일행들과 다른 식당으로 안내를 받았다.

뭐 하는 놈이지?

하인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어제야 그렇다 쳐도, 오늘까지 따로 만나 할 이야기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내게 따로 바라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식당의 문이 쪼개지며 열리자, 카드론이 나를 반갑게 웃으며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그런데 오늘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카드론 외에도 한 인물이 더 있다.

금발에 녹빛 눈동자를 가진 여자.

구면이었다.

“어?”

나를 본 여자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게 그녀를 인사시켜 주려던 카드론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왜 그러느냐?”

“아, 아니에요.”

당황했는지 모르는 척하는 걸 내가 사실대로 말했다.

“아까 낮에 봤다.”

내 말에, 카드론은 반색하며 그녀를 소개했다.

“그런가? 그런 운명도 다 있군. 내 첫째 딸일세. 오늘 함께 식사하려고 자리를 마련했네. 어제 자네의 이야기를 듣더니 궁금하다고 해서.”

“안녕하세요. 세실리아 테이난이라고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세실리아는 치맛자락을 잡으며 가볍게 묵례했다. 나도 짧게 답했다.

“제네스다.”

카드론은 우리 둘을 바라보더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둘이 함께 있으니 선남선녀가 따로 없군. 낮에는 어쩌다 만나게 된 건가?”

“별거 아니니 나중에 직접 물어봐라.”

설명하기 귀찮았던 나는 대충 무마했다.

세실리아는 날 알아봤을 때만큼 눈을 크게 뜨며 카드론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카드론이 괜찮다는 듯 눈짓을 했다.

아무래도 내 하대에 놀란 듯했다.

카드론이 그녀에게 나를 다시 한번 소개해 주었다.

“너도 이야기 많이 들어 봤지? 근래 북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흰사자가 바로 제네스다. 장차 대륙 제일검이 될 인물이지.”

“……아, 네. 어제 동료분들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래? 칭찬이 자자하든?”

카드론이 흥미를 보이며 묻자, 세실리아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욕만 하던대요.”

“…….”

당황한 카드론이 헛기침하며 물을 들이켰다. 나는 못 들은 척 음식에 집중했다.

어제도 느꼈지만, 매우 흡족한 맛이었다.

“세실리아가 이렇게 농담에 능하다네.”

“……농담 아닌데.”

세실리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최상급 안심 스테이크를 오물거리며 카드론을 보았다.

이제야 녀석이 내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깨달은 탓이다.

아무래도 나와 딸의 혼인을 밀 작정인가 본데.

실리적으로 괜찮은 전략이었다.

북부의 흰사자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될 테니까.

내가 그럴 마음이 없어서 문제지.

나는 카드론과 대화를 나누며 교양 있게 식사하는 세실리아를 슬쩍 바라보았다.

딱 봐도 귀족가에서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여식 같아 보였다. 외모도 여지없이 아름답지만, 말투와 행동에서도 기품이 전해진다.

저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는데 마다할 남자가 있을 리 없었다.

있다면 고자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거나, 다른 방향의 삶을 추구하고 있겠지.

나는 그중 세 번째에 속했다.

만약 세실리아와 결혼해서 테이난에 눌러앉는다면. 나는 내가 꿈꾸는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카드론을 본 나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저 녀석의 사위가 된다면 나는 사골 국물처럼 뼈까지 우려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혼인할 생각이 아직 없다.

카드론은 식사 내내 자연스럽게 세실리아의 품행을 칭찬했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카드론은 딸 바보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후에 세실리아와 잠깐 산책하며 이야기라도 나누는 것은 어떻겠나? 이 녀석이 자네에게 궁금한 게 많다 해 놓고 내가 함께 있으니 부끄러운 모양이야.”

세실리아는 그 말에 동의한다는 것처럼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그 제안에 응했다.

“그러지.”

이 상황을 확실히 하려면 당사자끼리 이야기하는 게 가장 빠를 테니까.

카드론은 내 속도 모르고 웃었다.

이후, 식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우리를 작은 정원으로 내몰았다.

튤립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사위는 어두웠지만, 중간중간 놓인 등불이 주변을 은은히 밝히고 있어 운치가 있었다.

우리는 그 사이로 난 길을 천천히 걸었다.

“어머니가 직접 가꾸는 곳이에요. 예쁘죠?”

“그러네.”

내 답에 세실리아는 나를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제네스 님인지 몰랐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호위 기사를 옆에 두고 있어 돈 좀 있는가 싶었지만, 카드론의 딸일 줄이야.

그런데 낮에는 왜 소독약 냄새가 났던 거지?

낮과 달리 지금 그녀에게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풍겨 오고 있었다.

“어제 얘기 많이 들었어요.”

녀석들이 무슨 말을 했을지는 안 들어 봐도 빤했다. 모이기만 했다 하면 내 흉을 보는 녀석들이니까.

“듣던 대로 훌륭하시네요.”

“거짓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나는 재미있냐는 듯 눈을 흘겼다.

세실리아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다 알고 계신가 보네요. 그래도 이상하게 미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아니, 오히려 다들 제네스 님을 좋아하는 거 같던데요. 그래서 좀 신기했어요. 불만이 저렇게나 많은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뭐 이런 호기심도 생기고.”

“쓸데없는 호기심이다.”

나는 그것을 단칼에 일축했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없다.”

“그래요? 저는 이리엘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저보다 예쁜 사람은 처음 봤거든요. 성격도 싹싹하니 좋고.”

“하, 퍽이나.”

나는 코웃음으로 응대했다.

그 이리엘이 성격이 좋다니.

“혹시 여자를 안 좋아하는 건 아니죠?”

내 서늘한 눈빛을 읽은 그녀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옆에 매력적인 사람을 두고도 안 좋아하길래, 그냥 물어봤어요.”

쓸데없는 이야기에 답할 가치를 못 느낀 나는, 곧장 본론을 던졌다.

“네 아비가 우리를 혼인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너도 알고 있겠지? 알아서 거절해라. 내가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모양이 좋을 테니.”

어쨌거나 굽이치는 해협은 협력해야 할 세력.

내가 까는 것보다는 까이는 게 서로의 관계에 좋을 터.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산책에 응한 것이었다.

“아니요. 저는 그렇게 못 하겠는데요.”

세실리아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쪽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에요.”

“내가 생각하는 게 뭔데.”

진짜 아무 생각이 없어서 되물었다.

“제가 제네스 님과의 혼인을 원한다는 착각이요.”

“그런 착각한 적 없으니 본론이나 말해.”

“흠, 재미없는 분이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본론을 말하자면 아버지가 이렇게 강력하게 혼인을 권한 건 처음이라서 저는 거절하기 좀 그래요. 제가 거절한다고 멈추실 거 같지도 않고. 그러니 이 혼인, 할 생각 없으시면 제네스 님이 거절해 주시겠어요?”

“그렇게 하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가 거절하는 그림이 나을 듯해서 그런 것이지, 거절 못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세실리아는 손을 배꼽에 모으며 인사했다.

아마 그녀도 이 말을 하기 위해 산책에 응한 듯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함께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럼 이만 들어가지.”

“저 죄송한데, 부탁 하나만 드려도 돼요?”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게 부담이었던 걸까?

“……아, 아니에요.”

그녀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싱겁기는.”

“저 혹시 태양신을 믿으세요?”

“내가 사제로 보이나 보지?”

“그건 아닌데…… 저는 믿거든요. 그냥 그 정도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러든가.”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별다른 관심이 없어 더는 묻지 않았고, 서로의 목적을 달성한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그녀가 밤중에 실종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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