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제62화 네스테르 신전 (1)
세실리아가 실종됐다니,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후작가(家) 내에서 납치됐을 리는 없을 테고, 가출이라도 했단 말인가?
“어떻게 된 일인데.”
내가 묻자, 그 소식을 전한 네더만이 답했다.
“어젯밤에 방에 돌아오지 않았다더군.”
그렇다면 나와의 산책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데…….
하지만 지금 시각은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다.
한밤중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을 지금에서야 찾는다니.
내가 물었다.
“근데 왜 이제야 찾는 거지?”
“자네와 같이 있는 줄 알았다던데.”
황당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간만에 머리를 울리는 신선한 답변이기는 했다. 방에 돌아오지 않은 여자가 나랑 있었다니.
대체 누구의 상상력인지.
“세실리아 언니가 왜 제네스 님이랑 같이 있어요?”
“어제 저녁 식사를 함께 하셨다더니, 사랑에 빠진 겁―.”
빡!
“끄악!”
나는 알렌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으로 녀석의 쓸데없는 말을 잘랐다. 네더만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그래서 이제야 세실리아를 다급히 찾는 중이라더군. 뭐 그들 쪽에서는 성내에 있던 세실리아가 사라졌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겠지.”
어쩐지 영내가 소란스러운 것 같더라니.
“개인 호위 기사가 있는 거 같던데.”
“맞아. 그 또한 세실리아와 함께 없어졌어. 그래서 상황이 심각하지는 않아.”
별다른 저항의 흔적도 없이 호위 기사와 함께 사라졌다면, 세실리아의 개인적 의지가 들어갔다는 의미.
납치보다는 가출에 무게를 두는 듯했다.
그런데 대체 왜 갑자기 가출을 한 거지?
“평소에도 자주 그러는 편인가?”
“아니, 그런 아이가 아니야. 어제 별다른 대화는 없었나?”
이 자식.
반쯤은 날 취조하기 위해 왔군.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일 확률이 높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들이닥쳐 물을 수 없으니, 네더만을 앞장세워 대신 묻는 것이다.
나는 손님인 동시에 성질 더러운 소드 마스터였으니까.
“기분 나빠하지는 말라고.”
“그 정도는 아니야.”
내가 성격이 유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밴댕이는 아니었다.
“별다른 낌새는 없었어. 원만하게 대화를 나눴고. 저택을 빠져나간 건 확실한 건가?”
“아마도. 아직 확신은 없는데,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움직이고 있지.”
이곳은 후작이 기거하고 있는 내성이다. 침입도 어렵지만,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것 또한 어려운 일. 어쩌면 아직 성내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자코 있던 이리엘이 입을 열었다.
“아마 평소에 이용하던 개구멍 같은 게 있었을 거예요.”
반쯤 확신하는 말투에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다들 그런 개구멍 하나쯤은 있지 않아요?”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의 반응에 이리엘은 민망한지 볼을 긁적거렸다.
“아니면 말고요. 어쨌든 우리도 함께 찾아봐요. 밥도 얻어먹었겠다, 밥값은 해야죠. 계산은 언제나 확실히 해야 한다고요. 가출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세실리아 언니의 안전이 우선이죠.”
이리엘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알렌도 동조하고 나섰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융숭한 대접도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죠. 요즘 세상이 보통 위험합니까.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아가씨가 가출하기에는 너무 혹독한 세상이라구요.”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언니 좋게 봤는데 다 커서 가출이나 하고. 한번 크게 혼쭐나 봐야 정신 차릴 거예요. 제가 몇 번 해 본 사람으로서 잘 알거든요.”
“그런데 혹시 호위 기사와 사랑의 도피면 어떡하지?”
알렌이 이야기꾼답게 어디서 들어 본 듯한 소재를 꺼내 들었다. 네더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호위 기사는 여자일세. 그런 건 아닐 거야.”
“여자라면, 더욱이 그럴 수도 있죠.”
이리엘이 눈빛을 빛내며 말하자, 네더만은 흠칫 놀라며 당혹스러워했다.
“흠. 그런 쪽은 아닐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도와준다니 고맙군. 나도 어렸을 때부터 본 아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가출일 확률이 높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게 아닌 건 아니니까. 그럼 자네들은 나와 함께 움직이자고.”
의기투합하는 녀석들을 제쳐 두고 나는 내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무언가 의심되는 지점들이 있는 까닭.
“근처에 태양신을 기리는 신전이 있나? 병동이 있을 정도로 커다란 곳으로.”
“신전이라…….”
네더만은 내 물음에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상점가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분명 소독약 냄새가 났었다.
옷도 귀족의 것이 아닌 수수한 옷을 입고 있었고.
근처에 병동이 있다면 거기서 왔을 확률이 높았다. 안색을 봤을 때, 아파서인 것 같지는 않았다.
또 어젯밤 헤어지기 직전 그녀가 했던 신을 믿냐느니, 했던 말들.
가출해서 수녀라도 될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수상한 낌새가 느껴지기는 했다.
“흠, 네스테르 신전이 있기는 한데. 거기가 태양신의 신전인지는 모르겠군. 말 타고 30분가량 달리면 나오는 곳이야. 거기 말고는 마땅히 없는 거 같은데?”
네더만의 말에, 알렌이 설명을 보탰다.
“네스테르 신전이면 태양신이 맞을 거예요. 그건 왜요? 기도라도 드리시려고요?”
“호, 자네가 그렇게 신실한 사람인 줄 몰랐는데?”
“어디에 있는지나 말해.”
“흠, 가만 보자.”
네더만은 종이와 펜을 가져오더니 지도까지 그려 주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아마 이쯤일 거야.”
나는 녀석이 그려 준 지도를 가만히 보았다.
“그리는 걸 직접 보지 않았다면, 발로 그린 줄 알았을 거다.”
정말이지 그림 실력이 엉망이었다. 세 살배기 애가 낙서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 그가 민망한 듯 웃었다.
“그래도 찾아갈 수는 있을 걸세. 그런데 신전은 왜 가려는 건가?”
다들 궁금한 눈치였다.
나는 대략적인 부분을 이야기해 주었다. 네더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심에 동조했다.
“상당히 그럴듯한데? 하지만 왜 가출을 하면서까지 신전에? 수녀라도 될 생각이었나.”
“가 보면 알겠지. 확실한 건 아니니, 나 혼자 다녀오지. 너희들은 알아서 움직이고 있어.”
“이쪽은 우리한테 맡겨요. 제가 이 분야로는 전문가니까.”
이리엘이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게 말했다. 왕년에 가출 소동을 자주 일으켰던 만큼, 가출하는 자의 심리를 꿰고 있다고 했다.
“자랑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한차례 쏘아 주고는 발코니를 열어 밖으로 몸을 던졌다. 건물의 지붕이 나를 사뿐히 받아 냈다.
가벼운 걸음에도 바람이 세차게 귀밑을 스친다.
성을 벗어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외성을 넘자, 너른 숲 지대가 나를 반겼다.
네더만의 그림은 개떡 같았지만, 나는 찰떡같이 알아보고 신전을 향해 질주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구릉 위에 세워진 신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흉벽을 두른 신전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안으로 들어가자 왕래하는 이가 꽤 있었다.
나는 물어물어 병동 앞에 설 수 있었다.
4층짜리 건물이었다.
규모를 보니 입원 치료를 하는 곳인 듯했다.
나는 지나가는 사제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이봐.”
“예? 어떻게 오셨나요?”
“별건 아니고,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나는 그녀의 이름을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처음 마주쳤던 그녀의 옷은 평범했고, 호위 기사는 검을 차고 있지 않았다.
신분을 속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여기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도 많나?”
“네, 신도분들도 많이 도와주시기는 하세요. 지원하시려고요?”
“그건 아니고, 사람을 찾고 있는데. 키는 내 어깨쯤 오고, 금발에 녹안을 가진 예쁜 여자를 알고 있나? 키 큰 여자애랑 같이 다니는.”
나는 그녀를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세실리아가 이곳을 드나들었다면, 사제가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어딜 가든 눈에 띠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
“아아― 엘리아 자매님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상대로 가명을 사용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 여자 오늘 왔나?”
“아니요.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오늘은 안 오신 것 같아요. 워낙 미모가 출중하셔서 오면 병동이 환해지는 것 같거든요.”
“그렇군.”
세실리아는 예상과 달리 이곳에 오지는 않은 듯했다.
괜히 헛고생한 건가.
그런데 나는 왜 그 여자를 찾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 거지?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기는 했지만, 사실 굳이 찾아 나설 이유는 없었다.
정보만 전해도 됐을 일이니.
하지만 그럼에도 직접 움직인 건, 아까부터 무언가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탓이다.
왠지 단순한 가출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도 무언가 마음에 걸려, 돌아가려는 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예견에 가까운 육감이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나는 제 갈 길을 가는 사제를 다시 불러 세웠다.
“이봐.”
“네?”
“내가 병동은 처음이라 그런데, 혹시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라도 있나?”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요?”
“그래.”
그녀는 헤어지기 직전, 내게 부탁할 사람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 부탁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녀가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자신의 안위 말고 무어가 있겠는가.
나는 이 병동이 의심스러웠다.
사실, 육감에 의존한 근거 없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확실한 근거만큼이나 내 육감을 믿는다.
그녀에게서 풍겼던 소독약 냄새와 정원에서 나눴던 짧은 대화.
그때의 분위기와 표정, 말투, 억양 등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녀는 내게 확실한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녀는 분명 이 신전에 자신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 곳이 있기는 한데…….”
사제는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대해 친절히 알려 주었다.
나는 그곳을 한번 가 볼 요량이었다.
병동으로 들어간 나는 기척을 숨긴 채 1층을 거닐었다.
내가 마음먹고 기척을 숨긴 이상 이들에게 나는 공기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옆을 지나가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그러던 중, 나는 사제가 설명해 준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병동 관계자 외 출입금지. 절대 들어오지 마시오.’
내 청개구리 심보를 자극하는 문구였다.
각종 약품과 기구들을 보관하는 곳이라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었다.
슬쩍 문고리를 돌려 보니 잠겨 있었다.
나는 주변을 살핀 뒤, 지나가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강제로 문을 열었다.
콰직.
작은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간격을 두고 걸려 있는 등에서 뿜어진 주황빛이 어둠을 은은히 밀어내고 있었다.
왠지 음산한 분위기가, 이곳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듯했다.
그럴수록 나는 수상한 냄새가 짙어짐을 느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기다랗고 좁은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 벽면에는 사제의 말대로 의료기구와 약품을 비롯한 비품들이 밀봉된 채 정리되어 있었다.
창고처럼 사용되는 곳인 듯했다.
근데 왜 이따위로 만들었지?
이곳을 만들 때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생각은 아예 없었나 보다.
나는 복도처럼 쓸데없이 길기만 한 창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그 끝에 다다랐다.
막다른 길이었다.
톡톡.
나는 그 앞에서 막힌 벽을 두드려 보았다. 마력을 넣어 너머의 공간이 있는지 확인도 해 보았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흠.”
나는 이내 침음했다.
분위기로 보나 비효율적인 구조로 보나 이곳에 수상한 공간이 있을 거라 여겼는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내 육감이 빗나간 듯했다.
원숭이도 나무 위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막다른 벽에서 멀어지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별다를 것 없는 저 벽이 그냥 좀 수상해 보인다.
“역시, 이대로 가기는 좀 아쉽지?”
기왕 떨어진 나무, 한번 제대로 떨어져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