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64화 (64/228)

제64화

제64화 네스테르 신전 (3)

나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적때기 로브 대신 하얀 가운을 입어 저번보다야 말끔해진 것 같지만, 괴상한 몰골은 여전했다.

역시 살아 있었던 건가?

그런데.

“네가 왜 여기에 있지?”

“클클클. 나를 본 적 있나?”

노인이 가래 끓는 소리로 웃어 댔다. 말하는 본새를 보니 내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했다.

나를 못 알아보는 건가?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없던 일이 될 만큼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치매가 오지 않은 이상 자신의 몸을 반 토막 낸 사람을 잊을 리가.

“깊이 생각할 거 없느니라. 어차피 곧 죽게 될 테니.”

다른 건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성격은 여전한 거 같은데.

나는 녀석의 말을 듣고 여러 의문을 단번에 해결할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 또 죽여 보면 되겠지.

“클클, 안 그래도 실험체들의 상대가 필요한 참이었거늘. 마침 잘 왔느니라.”

그의 말에 복면인들이 다시금 그르렁거렸다.

실험체라는 말에 조금 전 보았던 수술실이 떠올랐다.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다시 태어나게 해 주었지.”

주름진 입매가 기다랗게 찢어졌다.

“자, 나의 아이들아. 당장 저놈을 찢어 죽이거라! 가서 너희들의 강력한 힘을 보여 주란 말이다! 크하하!”

노인의 명령을 따라 사방으로 산개한 녀석들이 내게 득달같이 달려왔다.

몸놀림이 고양이처럼 가볍고 기민하다.

신체 능력만 보았을 때 상급 마나 유저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지만.

검을 늘어뜨린 손끝이 바람에 살랑이듯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폭발하는 검격.

첨예한 예기를 품은 섬광이 번갯불처럼 튀며 사방으로 갈라졌다.

콰과과과과!

맹렬한 검기가 일대를 단숨에 쓸어버렸다.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차라리 죽여 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길일 터.

나는 칼날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길게 뻗어진 검기가 여럿을 단칼에 베어 냈다.

동료들이 조각나 자빠지는데도 두려움을 모르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이들.

그럴 리 없지만, 꼭 내게 죽여 달라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콰과과과광!

다시 한번 터지는 폭발음.

조각난 육편과 함께 붉은 핏물이 소나기처럼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나는 그 사이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

웃음기를 지운 노인이 홀로 멀뚱히 서 있었다.

홀에 남은 건 어느새 나와 녀석뿐이었다.

나는 칼날에 전해지는 반발력을 가늠하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들의 신체 강도는 몬스터에 비견될 정도로 단단했다.

검으로 베며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런 기민한 움직임도 보일 수 있었겠지…….

단련하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 이런 신체를 갖게 되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이 따랐을까. 또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됐을까?

말해 무엇하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다.

나는 녀석을 향해 발을 굴렀다.

쿵!

발끝이 지반을 박차는 순간, 돌개바람이 걸음 뒤에서 휘몰아쳤다.

나는 어느새 녀석의 앞이었다.

“이익!”

이를 악문 녀석이 바람처럼 흩어졌다.

뇌운검은 간만에 허공을 갈랐다.

베지 못한 것이 아니라, 베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랐다.

납치된 베론도, 알렌과 이리엘도 없다.

녀석이 가진 변수는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

나는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는 녀석에 대해 조금은 더 알아볼 작정이었다.

“죽어랏!”

측면에서 불쑥 솟아난 녀석이 스태프를 휘두르자,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는 구체가 내게 쏘아졌다.

콰아앙!

내가 있던 자리에 떨어져 폭발하는 불덩이.

그것을 가뿐히 피해 낸 나는, 흩어지는 불꽃 사이를 헤치며 그를 향해 쇄도했다.

녀석은 다시금 주문을 외며 스태프를 휘둘러 왔다.

파지지지직!

스태프 끝에서 뿜어진 검은색 뇌전이 사방으로 뻗치며 내게 날아들었다.

검은 벼락이 휘몰아치는 듯하다.

하지만 그뿐.

발목을 비틀어 움직이자, 그것들은 내 그림자를 찢으며 허공에 의미 없이 흩어졌다.

“이 미꾸라지 같은 자식이!”

이어 바닥에서 검은 손들이 솟아났다.

성인의 팔 만한 것들이 들판의 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 내 발목을 움켜쥐기 위해 용을 써 댔다.

나는 그것들을 요리조리 피했다.

당황한 기색을 보니 흑마법 외에 별다른 수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시시한 전투를 끝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쿵!

발을 구르자 신형이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쭉 뻗어 갔다. 검은 손들이 그런 내 뒤에서 허공을 움켜쥐었다.

다급히 주문을 외운 녀석이 스태프를 땅에 박자, 그 앞으로 검은 장벽이 창졸간에 솟아나 앞을 막아 왔다.

나는 그것을 그저 몸을 웅크려 뚫었다.

호신강기가 둘러진 내 몸은 강철보다도 단단했고, 나아가는 속도가 있어 내 몸은 현재 화약 없는 포탄과 다름이 없었다.

콰아앙!

나와의 충돌로 산산이 부서지는 검은 벽.

무너진 파편들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파편과 함께 낙하하며 검을 내리긋고 있었다.

촤―악!

수직으로 떨어진 백색 섬광이 넋을 놓고 있던 녀석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 그 뒤를 따른 선명한 붉은 선이 놈의 몸 위로 새겨진다.

폭발음으로 소란스럽던 장내가 창졸간에 고요해졌다.

풀썩.

반으로 갈라진 녀석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런 녀석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만약 살아난다면, 어떻게 살아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녀석이 부활했을 당시 우리가 연구실로 들어갔다가 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되살아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터.

예상대로 잠시 후, 녀석의 시체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놈의 핏물과 시체에서 빛 가루가 올라오고 있었다.

모닥불의 불씨처럼 날아올라 흩어지는 빛의 조각들.

녀석의 시체는 무수히 날리는 그 빛 가루를 따라 풍화되듯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이제 끝난 거예요?”

세실리아가 쇠창살에 바짝 달라붙어 물어 왔다.

영락없는 죄인의 모습. 어젯밤에 만났던 그녀와는 차이가 컸다.

“끝났다. 그러니 뒤로 물러나라.”

“아, 네.”

세실리아가 물러나자 나는 철창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를 포함해 감격에 젖은 이들이 몸을 빼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내게 고개를 꾸벅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안도할 때는 아니었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신전이 연루된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이곳과 신전이 직접 연관되어 있다면, 이곳은 여전히 적진의 중심.

내 말에 이들의 표정 위로 급격히 그늘이 드리웠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죽을상 지을 필요 없다. 곧 자유롭게 해 줄 테니.”

“아, 네! 감사합니다!”

그들의 표정이 다시 한번 일변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던 걸까요?”

복도를 따라 늘어선 수술실을 보며 세실리아가 말했다. 그녀는 실험의 결과물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왜 이런 곳을 만들었는지 의문일 테지.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들어 보니 저와 릴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납치되어 오게 됐대요.”

“제 발로 찾아온 바보는 너희 둘뿐이었나 보군.”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너희들은 잠시 이곳에 있어라.”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말했다.

일단 신전과 연관된 일인지 확인이 우선이다.

다 함께 나갈 수는 없는 상황.

나는 이들을 이곳에 잠시 두고 밖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뒤로 물러서 있어라.”

나는 사람들을 물리고 내가 뚫고 들어왔던 입구를 막아섰다. 어둠을 삼킨 기다란 복도가 길게 뻗어 있다. 그 위로 발걸음이 쌓이고 있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이 다들 불안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편에서 은빛 비늘이 반짝인 건 그때였다.

“네 이놈! 감히 신전 내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던 것이냐!”

성난 표정을 지으며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녀석.

입고 있는 갑옷과 그 가슴팍에 그려진 태양의 문양을 보니, 네스테르 신전 소속의 성기사인 듯했다.

나는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그에게 말했다.

“일단 진정하는 게 좋겠군.”

“닥쳐라!”

하지만 놈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피아를 식별하려면 일단 좀 진정시킬 필요가 있겠다. 바람처럼 흩어진 신형이 녀석의 앞에서 솟아나 주먹을 뻗는다.

퍽!

곧게 뻗은 권면이 녀석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커헉!”

헛숨을 뱉어 내며 등이 둥그렇게 말린 녀석은 달려오던 속도만큼 빠르게 튕겨 나갔다.

그를 따르던 이들은 녀석을 받아 내느라 다급히 오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놀란 눈빛이 나를 향했다.

내게 맞은 자가 그리 쉽게 당할 줄 몰랐나 보다.

어쨌거나, 이제야 대화가 좀 될 듯했다.

잠시 후, 상황은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이들은 다행히 적들과 한패가 아니었고, 세실리아가 신분을 밝히자 이야기는 수월하게 흘러갔다.

상황이 정리되는 동안, 우리는 함께 온 사제에게 병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누군가의 후원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사제도 모르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건물을 올리며 수작을 부린 듯한데, 신전 내부에 이런 일을 벌이다니 대범한 놈이었다.

자금력을 봤을 때, 범상치 않은 자일 것이 분명했고.

가장 먼저 의심이 간 용의자는 카드론이었지만, 세실리아가 신분을 밝혀도 통하지 않았다는 말에 일단 의심은 거두었다.

딸 바보인 그가 굳이 딸자식까지 실험체로 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쨌거나 이런 짓을 벌인 배후가 따로 있음은 분명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신전과 테이난 후작가에서 공조하여 철저히 조사하게 될 터.

관련자들도 잡아 뒀으니, 대략적인 진상을 밝혀 낼 수 있겠지.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고, 나와 세실리아는 말을 타고 신전을 나섰다.

호위 기사 릴리는 병동에 입원시킨 채였다.

한참 말을 타고 가던 중, 그녀가 말을 걸어 왔다.

“그런데 제가 여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요?”

“감으로.”

“아…….”

나는 설명하기 귀찮아 말을 아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저 진짜 죽는 줄 알았거든요.”

“감사 인사는 충분히 받은 거 같은데.”

고맙다는 말을 벌써 몇 번째 하는 건지.

귀에 딱지가 다 앉을 지경이다.

“그래도요. 저 지금 세상 모든 게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갈수록 감사한 마음이 자라나는 걸 어떡해요.”

“무료하던 참이라 한 일이니 마음에 둘 거 없다.”

그런 우리가 성에 도착한 것은, 이리엘을 비롯한 이들이 세실리아가 성을 빠져나갈 때 이용한 개구멍을 찾아냈다며 기뻐하고 있을 때였다.

“거봐요! 제가 전문가라고 했죠!”

그들의 중심에서 이리엘이 한껏 으스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집중된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뭐, 뭐야! 세실리아 아가씨!”

병사들이 세실리아를 발견한 까닭이다.

테이난성은 돌아온 세실리아 때문에 발칵 뒤집히며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카드론도 허겁지겁 달려 나와 그녀를 살폈다.

나는 모든 설명은 세실리아에게 맡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 뒤를 이리엘, 알렌, 네더만이 졸졸졸 쫓았다.

“뭐예요? 왜 가출한 거였대요?”

“가서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자네 생각대로 신전에 있던 것인가?”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우수수 쏟아 내는 녀석들.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네더만을 황당한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넌 세실리아한테 들어도 되잖아.”

“카드론 그 자식이 호들갑 떠는 꼴을 보기 싫어서 그러지.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좀 말해 보게.”

“맞아요, 궁금해 죽겠으니 어서 말해 봐요. 대체 왜 가출한 거래요?”

이리엘이 옆에서 호들갑을 떨어 댔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의 호기심을 해결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건 됐고. 그 녀석을 봤다.”

“그 녀석이요?”

세 녀석의 눈가에 ‘?’가 떠올랐다.

“베론을 납치했던 마법사 말이다.”

“네에?!”

알렌과 이리엘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알렌, 내가 그때 건네주었던 책 가지고 있겠지?”

“네, 물론이죠. 잘 챙겨 두었습니다.”

“카드론을 만날 때 그것을 챙겨 가야겠다.”

“아, 네 알겠습니다.”

“이제 다들 나가라. 나는 따로 생각할 것이 있으니.”

나는 호기심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이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곧 카드론이 그 상황에 관해 대화를 요청해 올 터.

그때 한 번에 이야기하는 것이 나았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카드론은 네더만을 통해 나를 불렀다.

그런 녀석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반가운 소식도 하나 끼어 있었다.

이틀 전에 건넸던 암호문이 완전히 해독됐다는 이야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