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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73화 (73/228)

제73화

제73화 지나가야겠다 (3)

로드르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 표정이 심상찮음을 느낀 것이다.

대체 이건 뭐지?

“……왜 그러는가?”

“잠시만요.”

나는 그의 가슴팍에서 은은히 올라오는 빛 무리를 보았다. 헝겊과 같은 낡아 빠진 죄수복을 젖히자, 그의 가슴에 새겨진 마법진이 보였다.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나를 따라 시선을 내린 그 또한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게 무슨?”

불온하게 빛나는 검붉은색의 마법진.

이것이 지금까지 로드르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던 것이다.

아마도 적들은 이것 때문에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듯하고.

“한번 해체해 보겠습니다.”

나는 내공을 실처럼 섬세하게 뽑아내어 마법진의 구조를 들여다보았다.

복잡하게 얽힌 기의 흐름이 심상의 영역에서 읽힌다.

나는 그것을 살짝 건드렸다.

“쿨럭!”

그러자 로드르가 발작하듯 몸을 꿈틀거리더니 힘겹게 기침을 했다. 기침이 끝나자 입을 막았던 손바닥이 붉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자신이 토해 낸 피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 자식들. 내 몸에 뭔 짓을 한 거야?”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의연한 시선이 내게 닿는다.

“부술 수 있겠나?”

나는 내가 내린 판단을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부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버티실 수 없을 겁니다.”

“그렇군.”

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남았나?”

나는 의사가 아니기에 그의 몸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마법진이 그의 생명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갉아먹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이것은 지금에서야 발현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를 구해 내기 전부터 그의 체내 깊숙이 새겨져 있었을 거다.

그 안에서 그의 생기를 갉아먹으며 점차 크기를 키운 것이고.

그러니까 그런 녀석이 피부 바깥으로 표출될 정도라면, 이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여태 이것을 발견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고 싶지만, 그럴 여지도 없다.

나는 의사도 마법사도 아니다.

그것이 내가 불어넣은 내공에 반응할 정도로 크기가 커져서 알 수 있었던 것이지, 내가 그의 몸을 소홀히 살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미리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이 마법진을 해체할 방법이 내게는 없었다.

그가 별들의 무덤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죽음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거다.

모두 할렌트의 계획이었겠지.

나는 답을 기다리고 있는 로드르를 보았다.

이 빌어먹을 마법진이 그의 생명을 갉아먹는 속도와 그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생각했을 때, 나는 대략 그에게 남은 시간을 계산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조금의 거짓도 섞지 않고 말했다.

“앞으로 3시간 남았습니다.”

* * *

가만히 눈을 감은 로드르는 할렌트가 자신을 찾아왔던 순간을 떠올렸다.

처형대에 오르기 한 달 전이었다.

그는 그날 이미 자신의 사형이 집행되었음을 깨달았다.

저벅저벅.

캄캄한 지하를 울리는 구둣발.

철컹.

두꺼운 쇠문이 열리며 은은한 불빛 아래로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클클. 이거 오랜만이군.”

로드르는 할렌트를 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오랜만에 말을 해서 목소리가 메마른 것처럼 갈라졌다. 로드르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게 기쁜 소식 같은데.”

할렌트가 여기까지 자신을 보러 올 이유는 한 가지뿐.

곧 자신의 사형이 집행된다는 이야기겠지.

이미 오래전에 놓은 생.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여기고 있었다.

“드디어 나를 죽여 줄 작정인가?”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크하하하!”

할렌트의 안부 인사에 로드르는 호탕하게 웃었다. 잠겨 있던 목청이 트일 정도로 시원한 웃음이었다.

웃음을 간신히 그친 그는, 할렌트를 의연히 바라보았다.

“덕분에 아주 평안했지.”

할렌트는 푸르게 타오르는 그 눈빛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여전하시군요. 공개 처형을 공표했습니다. 앞으로 한 달 뒤입니다.”

“기왕이면 하루 전에 오지 그랬나. 나이를 먹었더니 성격이 급해져서 말이야.”

“왜 지금인지 궁금하지는 않습니까?”

“곧 죽을 마당에 궁금하기는 무슨.”

로드르는 귀를 파며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근래 새로운 불길이 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끄고자 나를 죽이겠다?”

“가장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맘대로 해라. 내가 무슨 힘이 있어 네놈을 막겠느냐.”

“이대로 가실 겁니까?”

“뭐?”

로드르의 눈썹이 사납게 비틀렸다.

“아깝지 않습니까. 능력을 빌려주세요.”

“감옥에 갇혀 있던 건 난데 왜 네놈이 미친 것이냐.”

“프렌치아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네놈이 프렌치아에 한 짓을 생각하고 말하는 게냐?”

“알고 계셨습니까?”

“두 쪽으로 갈라진 나라다. 반은 변절했고 반은 죽었지. 제국이 그 위에 섰다. 국민들이 어떤 처우를 받을지 모를까.”

기나긴 역사 속에서 패망한 나라는 프렌치아 하나뿐이 아니었다.

패망한 나라의 국민들이 받게 되는 고통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오랜 시간을 감옥에 있었지만, 국민의 아픔을 모르지 않았다.

“어차피 패망할 나라였습니다. 제가 실권을 잡고 있기에 그나마 그들의 삶이 나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보셨나 보군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그저 네놈의 욕심으로 잡은 자리다! 그 더러운 입으로 어찌 국민을 논한단 말이냐!”

로드르의 호통이 감옥을 쩌렁쩌렁 울렸다.

할렌트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말했다.

“여전히 이상적이십니다. 국민을 끔찍이 여기시고요. 그렇기에 지금 그 자리에 계신 겁니다.”

“뭐라?”

로드르의 눈동자에서 번갯불이 튀는 듯했다. 살기 어린 눈빛이 그를 향했다.

“아쉽습니다. 이견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좁혀지지 않는군요.”

“네놈과 이견을 좁히느니 차라리 죽지.”

“뭐,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이제 당신의 죽음으로, 프렌치아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겁니다.”

할렌트는 단호히 말을 이었다.

“제가 그 마지막 숨통마저 끊을 것입니다.”

* * *

나는 생각에 잠긴 로드르를 바라보았다.

“한 달 전, 할렌트가 찾아왔었네.”

그가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방법은 모르겠다만, 아무래도 그때 심어 놓은 것이겠지. 빌어먹을 놈. 역시 치밀하다니까. 흘흘.”

“웃음이 나오십니까.”

“울 수는 없지 않나.”

나도 이가 갈리는데, 그는 본인의 죽음을 마주하고도 웃어 보였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면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나. 아쉬움도 다 삶의 한 부분인 게지. 어떻게 보면 잘됐어. 다 늙은 내가 새로운 세상은 무슨. 나는 마지막이 어울리는 황혼기라고.”

억지로 짓는 것이 아닌, 어딘가 홀가분해 보이는 미소.

그는 죽음 앞에서 생각보다 더 의연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각오했던 사람처럼.

그에게서 아까와 같은 생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열반에 든 사람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는 그만큼 단단한 사람이었다.

죽음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강한 사람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랬기에 나는 그를 함부로 안타까워하지도,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그런 감정을 품는 것은, 오히려 그를 깎아내리는 일이란 걸 잘 알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은 시간 동안 이야기나 하세. 어떤가? 나만 없으면 자네도 쉽게 나설 수 있을 거 같은데.”

“잘 아시네요.”

나는 풀썩 주저앉았다.

그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방도는 없었다.

로드르가 말했다.

“이번에는 자네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 자네들이 만들고 싶은 나라 말이야.”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그래? 흠. 그건 조금 아쉽군. 하긴 그 정도로 강해지려면 검밖에 안 들었겠지.”

그는 아쉽다는 듯 툴툴거렸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그의 눈빛이 금세 반짝이며 생기를 찾았다.

“그 전에 혈(穴) 좀 짚어 드리겠습니다.”

몸이 약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은 시간 동안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다.

“호. 확실히 한결 낫군. 진즉 해 주지 그랬나.”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그는 가뿐해진 듯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루시안이 꿈꾸고 있는 나라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날 밤, 녀석과 나누었던 이야기와 그와 전생에 함께 나눴던 이야기들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말해줄 수 있었다.

로드르는 간혹 질문을 던지며 내 말을 신중히 들어 주었다.

이야기를 따라 밤은 점차 흩어졌고 휘영청 뜬 달이 저물어 갈 때쯤, 내가 아는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났다.

로드르는 그 끝에서 잠시 침묵에 잠기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잠든 숲이 깰 정도로 시원한 웃음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미X놈 보듯 보았다.

그는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저 신나서 그러네. 신나서. 할렌트 녀석은 나의 죽음으로 프렌치아의 숨통을 끊겠다고 했지만, 프렌치아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야. 끌끌. 사실 녀석도 잘 알고 있을 테지. 새로운 숨이 트이고 있다는 걸. 그러니 나를 공개 처형하려 했던 것일 테고. 음하하! 한 방 맞은 할렌트 녀석의 표정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쉽구만.”

그는 어린아이처럼 환히 웃었다.

“그래서 그 녀석이 누구라고?”

나는 지금까지 루시안을 그 녀석이라 칭하고 있었다.

“세리어스 공작가를 아십니까?”

“물론, 알지. 트레터 세리어스 또한 나와 막역한 사이였거늘! 나를 벌써 노망난 자로 보는 건가?”

“그의 첫째 아들 루시안이 제가 말한 녀석입니다. 여동생과 단둘이 살아남아 북부에서 독립군을 일궜죠.”

“그 녀석의 아들이라고?”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기억이 날 듯하군. 그 똘망똘망하던 녀석. 세자와 함께 미래가 총망되던 아이였어. 그 아이가 살아남았단 말인가. 참으로 다행이군. 그런데 말이야, 여태 나는 정작 자네의 이름도 알지 못했군. 미안하네.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는 늙은이일 줄이야.”

그는 본인이 말하고도 스스로 어이가 없는 듯했다. 지금까지는 내 이름을 물을 정신도 없었을 거다. 쇠약해져 가는 몸으로는 업혀 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적인 부담이 컸을 테지.

그는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마음의 여유를 찾은 듯했다.

나는 눈을 반짝거리는 그에게 내 이름을 말했다.

“제네스입니다.”

그의 눈동자가 더욱 휘둥그레졌다.

그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멀뚱히 있다가 숨을 고르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세자 저하와 이름이 같군.”

“예.”

“참으로 기묘한 일이야. 프렌치아의 검이었던 공작가의 장남은 프렌치아의 왕위를 잇겠다 하고, 세자 저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는 프렌치아의 검을 자청하고 있으니.”

“재밌는 일이기는 하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면 더 재밌을 테지만, 굳이 전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남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가 점차 힘겨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를 보는 눈빛도 목소리에 담긴 힘도 점점 기운을 잃어 가고 있었다.

“같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걸.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본래 마지막이란 게 항상 이런 법 아니겠나.”

그가 힘겹게 웃으며 점차 밝아 오는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깊은 밤이 지나고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이야.”

그는 그 여명의 빛을 보며 말했다.

“구시대의 것들은 이제 완전히 저물어야겠지.”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처형대 위에서도 형형히 빛나던 푸른 눈동자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표정은 더 편안해 보였다.

“나는 이제 슬슬 잠을 자야 될 것 같군.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그가 힘없이 웃었다.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생이 빠르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내 말에,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외양은 허름한 옷을 걸친 볼품없는 노인에 불과했지만, 그런 그가 내게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보였다.

프렌치아의 재상이자 이드렐 학파의 수장이면서,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프렌치아의 마지막 별.

현자, 로드르 헤이어서.

누구보다 뜨겁게 타올랐던 그는 그렇게 점차 빛을 잃어 가다가, 이내 완전히 저물었다.

* * *

로드르는 나무둥치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졸음이 솔솔 몰려왔다. 눈꺼풀이 태산처럼 무겁다.

그는 자신의 생이 끝나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드높은 이상이 있었으나,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 이리 편안한 것인가.’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에 서 있음에도 원통하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프렌치아가 패망했을 때, 이미 한 번 죽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신은 감옥 생활 내내 죽어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하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죽기도 전에 이미 죽어 있었으나, 지금의 자신은 죽어 감에도 오히려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프렌치아가 아직 살아 있음을, 자신과 같은 이상을 가진 이들이 남아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본인의 일생을 프렌치아를 위해 바쳤다.

나라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이 삶의 이유였고, 그것만이 그의 전부였다.

그런데 제네스를 통해 완전히 스러졌다고 생각했던 프렌치아가 다시 살아나리란 것을 선명히 느꼈다.

혼란 속에서 피어난 그의 검은 전에 없이 날카로웠고, 격동 속에서 세워진 이상은 흔들림 없이 굳건해 보였다.

제네스와 루시안.

그 두 녀석이 함께한다면 프렌치아는 전에 없이 위대해질 것이다.

‘페드릭 쿤 프렌치아.’

그는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지금 본인이 서 있는 자리가 이승인지 저승인지도 모르는 뿌연 경계 속에서.

자신의 왕이자 친우였던 이를 불렀다.

‘보고 있나?’

몽롱한 머릿속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온다.

-보고 있다.

‘크크큭. 이제 우리가 싸울 일은 없겠구나.’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싸우려 든단 말이냐. 참. 어이가 없어서.

‘한심한 놈. 여전하구나!’

-네놈도 마찬가지다. 건방진 자식아!

‘오랜만이라 좋은 소리 좀 하려고 했더니만.’

-크크큭.

‘크하하.’

하하하하하!

둘의 웃음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10년 만에 듣는 그 목소리에 절로 웃음이 터진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먼저 웃음을 그친 로드르가 입을 열었다. 푸른 눈동자에서 타오르는 선연한 불꽃은 확신을 말하고 있었다.

‘프렌치아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야.’

-그래. 프렌치아는 앞으로 더 찬란해질 것이다.

둘은 모처럼 의견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끊어졌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이상이 10년이란 공백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보다 더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로드르는 웃으며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다.

새로이 피어나고 있는 희망을 눈앞에서 보았기에, 그는 기꺼이 이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구시대는 저물 시간이다.

새로운 흐름을 위해 자리를 내줄 때였다.

그는 그 거대한 운명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 * *

사라락.

붉은 꽃잎이 은은한 바람에 나부끼며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나무둥치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로드르는 불꽃이 되어 흩어졌다.

나는 그가 바랐던 대로 유골을 매화나무 앞에 뿌려 주었다.

“거기서 지켜보고 계세요.”

하얀 뼛가루가 바람에 흩어졌다.

“새롭게 태어날 프렌치아를.”

나는 내 손으로 과거에서 이어져오던 프렌치아의 마지막 별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제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뿐이었다.

새롭게 쌓일 역사의 시원(始原)이 열리고 있었다.

.

.

.

아까부터 숲속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적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뒤로 점차 두껍게 깔리는 포위벽.

그럼에도 나는 거대한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로드르의 죽음을 기리고만 있었다.

잠시 후, 수풀 사이로 묵직한 발걸음이 쌓이기 시작한다.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를 서늘히 일으켜 세우는, 칼날같은 기세를 품고 있는 자들.

특임대, 로열나이트.

등 뒤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혼자인가 보군.”

스르렁.

검이 뽑히는 마찰음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안 그래도 날 선 공기가 더욱이 첨예하게 날을 벼렸다.

녀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제 알겠나. 너의 발버둥이 얼마나 의미 없었던 것인지?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애초부터 없었다.”

날카로운 검광이 내 등 뒤로 겨눠진다.

“잠시 미뤘던 사형을 집행하겠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 그들을 마주했다.

나무 사이로 빼곡하게 들어찬 병사들과 내 앞에서 검을 겨누고 있는 자들.

“네놈은 결코 이곳을 살아서 지나치지 못할 것이야.”

녀석이 나를 보며 이죽거렸다.

승리를 자신하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참으로 우습다.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백색의 칼날이 손끝을 따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만만히 보였나 보군.”

그럴 만도 하지.

지난 3일간 이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만 다녔으니.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고, 돌봐야 할 사람이 있기에 그랬다.

그러다 보니 숲을, 녀석들의 포위망을 뚫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버렸다.

그러니 저리 자신만만하지.

하나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의 걸음을 잡던 것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내게는 더 이상 지켜야 할 자도 돌봐야 할 자도 없다.

그러니, 이제.

“너희를 지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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