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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78화 (78/228)

제78화

제78화 지켜 줄게 (1)

이 선전물의 진위는 지금까지 총독부가 해 온 짓만 봐도 쉬이 알 수 있다.

그들은 프렌치아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놈들이 이렇게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준다고?

이 안에는 더러운 수작이 깔려 있을 게 분명했다.

“어떡해요? 꽤 많은 이들이 속아 넘어갈 거 같은데…….”

이리엘이 염려 섞인 시선을 던졌다.

다들 이런 총독부의 행보를 수상하게 여기기는 하겠지만, 미끼가 너무 달콤했다.

생계가 어려운 자들이나 급하게 목돈이 필요한 이들은 이 유혹을 떨쳐 내기가 어려울 거다.

내가 말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확인해 봐야지.”

선전물을 나눠 주고 인원을 모집하는 자들을 털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나.

모집일의 기한이 아직 3일이나 남아 있기에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숙소를 구한 우리는 짐을 정리하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가, 다음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다시 내 방으로 모였다.

그리고 지금 막 일정에 대한 논의도 끝낸 차였다.

이리엘이 입을 열었다.

“몇 시쯤 가면 될까요?”

“이제 슬슬 출발하면 될 거 같기는 한데.”

알렌은 답을 하며 내게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다.

녀석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제네스 님? 혹시 제네스 님도 저녁 식사에 함께 가실 건가요?”

나는 답하는 대신 녀석을 싸늘히 바라보았다.

감히 나를 두고 갈 생각을 했다고?

어쩐지 사신 앞에 선 망자처럼 덜덜거리더라니.

내 눈빛에 녀석이 다급히 변명했다.

“아니, 오해하지는 마시고요. 아무래도 제일 친했던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 뵈는 자리니까요. 저랑 엄청 가까웠던 분들이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괜찮은데, 그분들이 혹 제네스 님을 불편해하실 것 같아서요. 아저씨나 아주머니나 저를 아들처럼 대하시던 분들이거든요. 제네스 님을 보면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또 제 동료이니 편하게 대하려고 하실 텐데…… 제네스 님은 그분들께 반말하실 테고, 무뚝뚝하게 구실 테고. ……그런 모습은 굉장히 귀족적이지 않습니까.”

나는 그제야 알렌이 하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

그들은 귀족과 겸상을 해 본 적 없는 평민들.

하지만 내 태도는 위압적인 면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자연스레 내 눈치를 볼 것이고 주눅도 들 테지.

평화롭고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닐 거다.

알렌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한 이들에게 미안해질 테고.

13년 만에 해후하는 자리에서 느끼고 싶은 기분은 아닐 거였다.

이번에는 알렌의 말이 맞았다.

내 존재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리엘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하긴 그러네요. 제네스 님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그 자리가 불편해지면 어떡해요.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인데. 그러면 안 되죠. 그냥 알렌 형님 혼자 다녀오세요.”

“나 혼자?”

“네. 제가 제네스 님이랑 밥 먹을게요.”

“됐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저도 가요? 혼자 먹을 수 있겠어요?”

“물론 혼자 먹을 수야 있지.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니다.”

“그럼요?”

“나도 간다.”

“네?”

알렌과 이리엘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묵묵히 입을 열었다.

“아까 그자가 분명, 동료들도 함께 오라고 했으니 내게도 갈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알렌이 말끝을 흐렸다.

“세상에 공짜 밥만큼 맛있는 게 어딨다고. 마다할 이유가 없지.”

나는 일부러 억지를 부렸다.

녀석의 염려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날 두고 가려고 한 녀석이 괘씸해서라도 굳이 가야겠다.

내가 성격이 둥글지는 않지만, 안하무인은 아니다.

내게 호의를 베푸는 평범한 자들에게 위압감을 줄 정도로 막돼먹은 놈은 아니란 거다.

내게도 사람을 대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이 말이지.

그런데 녀석은 나를 분위기도 못 맞추는 반푼이 취급을 했다.

“그럼 제가 사비로 밥값 계산해 드릴까요. 그럼 공짜 밥이잖아요.”

알렌이 말했다.

지금 그걸 해결책이랍시고 내놓은 건가.

나는 주먹으로 답했다.

빡!

“끄악!”

“거기는 정성이 안 들어가 있잖아. 왜. 내가 함께 가는 것이 불만이냐?”

내 도끼눈에 녀석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최대한 분위기를 맞춰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내가 애냐? 그 정도 분위기도 못 맞출까.”

“네? 분위기를 맞추겠다고요?”

이리엘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것들, 언제 날 잡고 정신교육을 한 번 해야겠다.

이리엘은 내 마음도 모르고 황당하다는 식으로 말을 이었다.

“차라리 그냥 아무 말 않기로 약속해요. 그게 낫겠어요.”

“오! 그러네!”

두 녀석은 뭐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좋아라했다.

나는 그들을 가만히 보았다.

분위기를 눈치 챈 녀석들이 그제야 입을 꾹 닫았다.

내가 말했다.

“괜한 소리 말고 앞장이나 서.”

“……네. 진짜 분위기 잘 맞춰 주셔야-.”

“쓰읍.”

내가 눈을 부라리자 알렌은 꼬리를 내리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말했듯, 나도 녀석의 마음을 이해는 한다.

꼴 보기가 싫어 그렇지.

* * *

도시 외곽, 작은 마당이 딸린 조그만 집.

우리는 그 앞에 서 있었다.

“여기인가 봐요. 그럼 제네스 님, 제가 평소보다 편하게 대해도 이해해 주시는 거예요.”

“알았다니까.”

아까부터 별의별 당부를 하는 알렌이었다.

문 앞에 선 녀석이 조심스레 노크를 했다.

똑똑똑!

“안녕하세요! 팔레인 아저씨 댁 맞나요?”

알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리며 데이지가 뛰쳐나왔다.

“일찍 오셨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환한 웃음으로 반긴 데이지는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입구에서부터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알렌! 네가 정녕 알렌이니!”

“팔레인 아저씨! 헤리안 아줌마!”

알렌은 잃어버렸던 부모라도 만난 것처럼 후다닥 달려가 두 사람과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자와 통통한 중년의 여인이었다. 데이지의 미모는 둘을 정말 적절하게 섞어 만들어진 듯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럼! 못 본 사이에 참으로 훤칠해졌구나. 그런데 머리는 왜 그 모양이냐.”

팔레인의 말에 알렌은 제 까까머리를 쓸었다.

“아, 긴 여정 중에 있다 보니 불편해서 짧게 밀었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이에요. 어쩜 아저씨와 아줌마는 예전 모습 그대로세요?”

“예끼, 이 녀석. 우리는 한참 늙었지.”

알렌과 이야기를 나눈 헤리안은 멀뚱히 있는 나와 이리엘에게 알은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알렌의 동료분들이시라고요. 어서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내 집처럼 편하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헤리안의 안내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식탁에는 꽤 푸짐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곳곳에서 그들이 이 자리를 얼마나 신경 썼는지가 보였다.

집과 놓인 가구들. 그리고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았을 때, 상당한 지출이었을 터.

그만큼 알렌을 반갑게 여긴다는 의미였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알렌 또한 식탁이 부러질 정도로 풍성한 음식들을 보며 입을 벌렸다.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식 같은 너를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부담 없이 먹거라.”

팔레인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이지까지 자리에 앉자, 알렌은 가족들에게 우리를, 우리에게 가족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날 아들같이 대해 주셨던 팔레인 아저씨, 헤리안 아줌마, 그리고 데이지고. 이쪽은 저와 함께하는 동료 이리엘과 제네스라고 해요. 저보다 어린 동생들이니까, 편하게 대해 주세요.”

뭐? 제네스?

어린 동생?

“하하, 반갑네. 나름 준비한다고 했는데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군. 우리 집사람이 요리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팔레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자, 이리엘이 마주 웃으며 입을 열었다.

“딱 봐도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들어올 때부터 맛있는 냄새가 나서 먹고 싶어 혼났어요.”

이리엘의 말에, 헤리안이 활짝 웃으며 음식을 덜어주었다.

“데이지가 알렌이 왔다고 고기도 잔뜩 사 왔으니 양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들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팔레인의 말대로 헤리안의 요리 솜씨는 훌륭했다.

아츠리스 지방 특유의 센 간이 적당히 자극적이어서 입맛에 딱 맞았다.

식사 자리는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대화의 초점은 이들의 과거 이야기에 맞춰져 있었고, 이리엘은 적절히 추임새를 섞으며 자리의 활기를 돋우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우리 모두 전쟁 통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다행이지. 자네는 이름이 제네스라고 했지?”

이렇게 간혹 내게도 질문이 오기는 했지만, 두 녀석이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답변을 가로채서 말할 기회가 없었다.

요컨대 이런 식이다.

“제네스 군은 음식이 입에 맞는가?”

“아, 제네스는 워낙 아무거나 잘 먹는 녀석이라서요.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입맛에 맞는 듯하네요.”

팔레인이 내게 한 질문임에도 답은 알렌이 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 혹시 더 필요한 거 있으면 편하게 말해요.”

이번에는 헤리안이 내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답은 이리엘의 몫이었다.

“네네, 어머니도 많이 드세요.”

빌어먹을.

이것들은 아까부터 나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하고 있었다. 그 행동이 괘씸하기는 했지만, 나도 오늘만큼은 잠자코 있었다.

“그래, 수도로 가고 있다고.”

과거의 사연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대화의 초점은 자연스레 현재로 옮겨졌다.

우리는 우리가 독립군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기밀이기도 하고, 이들이 알아서 득 될 것도 없으니까. 우리는 팔레이트 상단에서 일하는 자들이 되어 있었다.

“수도까지 간다면 규모가 커다란 사업일 거 같은데. 알렌 이 녀석 아주 출세했구나.”

“하하, 출세는요.”

알렌이 멋쩍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깜짝 놀랐습니다. 데이지가 너무 예뻐져서 못 알아봤지 뭡니까. 데이지가 절 알아보지 못했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알렌의 말에, 데이지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별말도 아닌데 데이지의 귀가 벌겋게 물들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알렌의 눈빛이 꼴 보기 싫을 정도로 그윽하다.

“하하, 얘가 어렸을 때부터 너를-.”

“아빠!”

데이지는 날렵한 손놀림으로 팔레인의 입에 빵을 쑤셔 넣었다. 그녀의 수줍은 반응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누가 봐도 데이지가 알렌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

알렌 녀석.

아주 입이 귀에 걸렸다.

입을 막고 있던 빵을 끄집어낸 팔레인이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입을 열었다.

“알스가 있을 때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래도 지금 만나서 대접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지. 얼마 전까지는 사실 자리도 못 잡고 힘들었거든.”

그의 얼굴은 불그스름해져 있었다. 우리가 가져온 와인에 취기가 오른 듯했다.

“우리 가족 모두 고생이 많았지. 특히 알스 녀석이 고생했고.”

“당신은 이 좋은 날.”

“좋아서 하는 말이야. 프렌치아 국민은 살기 힘든 세상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지방에서 온 외지인들은 더욱이 그렇지.”

자조적인 말에 분위가 한차례 축 가라앉았다.

누구나 아는 명백한 사실이니까.

이들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모두 힘들었다.

세금은 과하고 제국의 횡포는 무자비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목구멍에 풀칠하기 어려운 씁쓸한 세상이었다.

“하하, 미안하네. 내가 갑자기 분위기에 취해서. 그래도 이번에 숨통이 좀 트였으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들게.”

팔레인의 말에, 알렌은 무언가 불현듯 생각났는지 말문을 뗐다.

“참, 총독부에서 모집하는 일자리에는 지원하시면 안 됩니다.”

“응? 왜 그런가?”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가 봤을 때 너무 위험해서요. 조건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좋더라고요.”

“총독부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일인데, 위험할 게 뭐가 있겠어?”

헤리안이 말했다.

나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럼! 자기들 이름을 떡하니 걸고 사기 치는 놈들이 어딨다고.”

팔레인도 말을 보태며 손을 내저었다.

확고하게 부정하는 이들을 알렌은 물끄러미 보았다.

잠시 정적이 일었다.

알렌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서, 설마 알스가 갔다는 데가?”

데이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번에는 저도 지원했어요.”

알렌이 쥐고 있던 포크를 접시 위로 떨어뜨렸다.

어쩐지 보이는 생활 수준보다 식자재의 질이나 준비한 음식의 양이 풍족하더라니.

아무래도 총독부에서 미리 받은 월급으로 준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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