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80화 (80/228)

제80화

제80화 지켜 줄게 (3)

불빛 안으로 걸음을 디뎠다.

내 양옆으로는 알렌과 이리엘이 있었다.

수뇌부로 보이는 이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상황.

운이 좋았다.

스릉.

슬며시 검을 빼 들며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녀석들.

복면을 쓴 우리를 보며 낯빛을 더욱 굳힌다.

“……웬 놈들이냐.”

“알 거 없고. 일단 맞고 시작하자.”

내 고갯짓에 알렌과 이리엘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그간의 훈련이 효과가 있었는지 움직임이 확실히 유려해졌다.

익스퍼트 경지에 올라서도 그렇지만, 네더만이 잘 굴린 덕이다.

그 자식,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는데?

나는 알렌과 이리엘을 유심히 보았다.

전장은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알렌의 거구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주먹을 뻗자,

뻑! 뻑!

시원한 타격음이 연달아 터졌다.

묵직한 주먹에 닿은 놈들의 아구창에서 수박 쪼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녀석이 동시에 억, 하고 쓰러졌다.

한편 이리엘은 깃털처럼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 주고 있었다.

검을 피해 허공으로 뛰어오른 그녀는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뒤꿈치로 녀석의 정수리를 찍어 버렸다.

콰직!

“크륵!”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녀석은 찌부러진 얼굴로 풀썩 쓰러졌다.

정말이지 별 볼 일 없는 놈들이었다.

잠시 후.

강제로 의식을 되찾은 녀석들은, 소파에 늘어지게 앉은 내 앞으로 나란히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장부 어딨냐?”

“어떤 장부를 말씀하시는지……?”

가운데 앉은 털북숭이 녀석이 공손히 물었다.

나는 녀석의 정수리를 후려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빠각!

“끄아악!”

머리를 감싸 쥔 녀석이 비명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안 일어나?”

“아, 예. 끄으읍.”

신음을 억지로 삼키며 다시 무릎 꿇는 녀석.

고통을 참아 내느라 눈에 핏발까지 섰다.

“장부 어딨어.”

“뒤편에 있는 책상 서랍에 있습니다. 두 번째 서랍입니다.”

옆에 있던 쥐새끼같이 생긴 녀석이 순순히 말했다. 다음이 자신의 차례인 걸 본능적으로 안 듯하다.

하여간 꼭 폭력적으로 나와야 머리를 굴리지. 쯧.

눈에 힘을 잔뜩 준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알렌이, 뒤편의 책장에서 서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

그것을 건네받은 나는 가만히 책장을 넘기며 내용을 훑었다.

“총독부 징병에 자원한 이들의 명단을 기록한 장부입니다.”

“징병?”

“병사로 차출한 건 아니고요. 제국을 위해서 일할 사람들을 뽑고 있었-.”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보충 설명을 하는 쥐새끼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빠각!

“끄아악!”

이번에는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새끼가 나랑 장난하나.”

나는 놈의 앞으로 서책을 던졌다.

펼쳐진 페이지만 봐도 자원한 이들의 명단이 적힌 장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본 가자미같이 생긴 자식이 말했다.

“아마 서랍 안에 다른 장부가 있었을 겁니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굽신거렸다.

“아무래도 저분이 잘못 가져온 것 같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알렌이 흠칫거렸다.

손에 집히는 걸 생각 없이 그대로 가지고 왔나 보다.

하여간.

나는 앞에서 실실거리는 가자미 녀석의 머리통을 세차게 후려쳤다.

빠각!

“끄아악!”

“그래서 어쩌라고.”

알렌은 잽싸게 다시 책상으로 가 서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내가 원하던 장부가 맞았다.

나는 그것을 훑어보았다.

1차에서 3차까지.

꽤 많은 인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개중에는 데이지의 이름도 있었고, 그녀의 오빠라는 알스의 이름도 있었다.

“목적지가 어디야?”

“네?”

“어디로 데려갈 생각이었냐고.”

내 싸늘한 눈빛에 털북숭이 녀석이 순순히 아는 바를 실토했다. 보안을 지키겠다는 결연함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위르안 상단의 본부로 데려갈 생각이었습니다.”

“거기가 어딘데.”

“수도에 있습니다.”

수도라.

잘된 일이었다.

우리의 목적지이기도 하니까.

“가서는 어떻게 되는데.”

“저희도 그것까지는 잘……. 거기까지 호송하는 것까지가 저희 임무라서요.”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대가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아무래도 사실을 말하면 내게 뒈질까 봐 그러나 본데.

“너 팔이 몇 개냐.”

“……두, 두 개입니다.”

“그럼 앞으로 진실을 말할 기회가 두 번 있겠군. 아, 발까지 하면 네 번인가.”

“…….”

거짓을 말할 때마다 팔을 자르겠다는 협박에, 녀석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아는 대로 다 말해.”

“……저도 정말 자세히는 정말 모릅니다. 아마 저들은 총독부 소속의 노예가 되어 프렌치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될 겁니다. 그들을 뿌리는 건 상단에서 하는 일이고요. 남자들은 주로 마석을 캐내는 광산이나 전쟁터로 끌려가고 여자들도 노역을 하거나 전쟁터로-.”

역시나 예상하던 그대로였다.

제국은 현재 프렌치아 남동부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리아나 왕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리저리 노동력이 많이 필요할 터였다.

강제로 징병하면 반발이 있을 테니,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거겠지.

하여간 여러모로 추잡한 새끼들이다.

내가 말했다.

“그럼 이 일에 정녕 총독부가 개입되어 있단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이런.”

나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나 보구나.”

“네?”

세 녀석의 눈동자가 일제히 동그랗게 떠졌다.

내 분위기가 일변하자, 자신들의 살길이 트이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너희가 총독부를 사칭하여 일을 벌이는 줄 알았거든.”

“……?”

“우리도 같은 제국민이라는 이야기다.”

“아-.”

그들은 짧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프렌치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몰랐구나. 미안하다.”

나는 그들을 친절히 일으켜 세워준 뒤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해 주었다.

내 뒤에 서 있던 알렌과 이리엘이 당황스러움에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겠지.

“마침 우리도 수도로 가는 길이었는데, 잘됐구나. 너희들에게 신세 좀 져야겠다.”

“예?!”

내 말에 세 녀석은 동시에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나는 그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싫어?”

“아, 아닙니다!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 * *

“대체 어쩌시려고요?!”

옆에 선 알렌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우리는 저택에서 나와 어둠에 잠긴 도심을 걷고 있었다.

“뭘 어째.”

“명부가 아직 그들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데이지는 어떡해요!”

“별수 있나. 함께 가야지.”

“네에?!”

두 녀석이 약속한 것처럼 기함을 토하며 펄쩍 뛰었다.

“데이지를 데리고 가자니요!”

“대체 무슨 꿍꿍인데요?”

나는 흥분해서 날뛰는 녀석들을 손짓으로 차분히 달랬다.

“우선 침착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 보거라.”

“이 상황에 어떻게 침착-.”

빡!

“끄악!”

알렌이 머리통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이리엘은 그 모습을 보고는 거짓말처럼 이성을 되찾았다.

하여튼, 좋은 말로 하면 안 듣지.

나는 혀를 차며 내 의도를 전했다.

“수도에 본부를 둘 정도의 상단이면 얼마나 규모가 크겠느냐. 거기에 총독부와 관련하여 일을 진행하고 있으니, 그 은밀함은 얼마나 깊겠어.”

그 정도 규모와 은밀함을 가진 녀석들의 뒤를 캐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 녀석들과 함께 하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 심처에 닿을 수 있을 테지. 얼마나 간편하고 좋아.”

“오오.”

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토했다.

이리엘은 내 계책에 놀랐는지 짧게 박수하며 말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하셨어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돌아가는 편이다.

번거롭고 귀찮은 걸 싫어하거든.

이리엘이 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잔머리가 대단하신데요.”

뭐? 잔머리?

“이 고도의 계략을 잔머리라 폄하하다니. 그러니 네가 머리를 달고 있어도 제대로 쓰질 못하는 게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 똑똑한 편이거든요! 그것도 상당히요!”

이리엘이 볼을 부풀리며 눈을 부라렸다. 나는 그런 녀석의 이마를 밀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아, 진짜!”

성질을 부리는 이리엘 옆에서는 알렌이 죽을상을 짓고 있었다.

얘는 왜 이래?

그는 홀로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럼 데이지도 어쩔 수 없이 수도로 갈 수밖에 없겠군요.”

그녀의 이름이 적힌 명부를 태우지도, 그들을 죽이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라비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하면 납득할 거다.”

데이지를 배려하겠다고 그녀만 명부에서 쏙 지울 수는 없었다.

공짜 밥을 줬다고 해도 무리다.

마음을 먹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자칫 그 때문에 일이 끝나고도 우리와 엮일 수 있었다.

또한 나는 그녀만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프렌치아 국민들을 위해 검을 든 것이지.

내가 해야 할 일은 위르안 상단 수뇌부들의 목을 베는 것.

자칫 이들 중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어도 그렇다.

그들을 벤다고 총독부에 이런 행위가 완전히 멈추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다수의 국민들을 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니까.

“네가 잘 설명해 주거라.”

“예.”

“섣부른 짓은 하지 말고. 우리는 잠시 그들의 편에 서야 하니.”

“저 바보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건 알고 있다구요.”

알렌이 입을 빼쭉 내밀자, 내가 말했다.

“바보가 자기 자신이 바보인 걸 알면 바보가 아닌 법이지.”

“……지금 제가 바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되묻는 걸 보니, 바보 맞네.”

내 말에, 알렌은 버럭 성을 냈다.

“저 바보 아니거든요!”

* * *

달빛마저 가려진 캄캄한 밤.

함께 기다리겠다는 부모님을 억지로 침실에 눕힌 데이지는, 마당에 나와 초조하게 알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은은한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알렌 오빠?”

천천히 불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림자.

그녀가 사무치게 기다리고 있던 알렌이었다.

“오래 기다렸지?”

“아니에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데이지는 염려 섞인 표정으로 알렌을 이리저리 살폈다. 옷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했지만, 다친 곳이 있었다.

그녀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알렌을 바라보았다.

“이마 쪽에 혹이…….”

“아, 아니야. 이건 괜찮아. 늘상 있는 일인걸.”

“크게 다친 거 아니죠?”

“그럼. 걱정 안 해도 돼.”

제네스에게 맞아서 생긴 혹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알렌이었다.

“……네. 뜨거운 수건으로 찜질하면 조금 나을 거예요.”

“응.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일단 그 녀석들을 만나기는 했는데 말이야.”

알렌은 저택에서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데이지에게 말해 주었다. 데이지는 침착하게 그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명부를 태울 수는 있었지만, 위르안 상단에 손쉽게 잠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

“네, 잘하셨어요. 그런데 세 분만으로도 그 일이 가능한 거예요?”

데이지는 생각보다 불안해하지도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알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가능해. 그런데 무섭지 않아?”

“……어쩔 수 없죠. 저와 같은 사람들을 더 만들면 안 되잖아요. 저는 오히려 감사하죠. 자칫 잘못했으면 부모님도 다시는 못 뵐 뻔했는데……. 오빠만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걱정하지 마. 위르안 상단에 가면 분명 어디로 갔는지 알아낼 수 있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데이지는 알렌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눈동자가 그를 신뢰하게 했다.

이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가 말했다.

“너는 나만 믿고 있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데이지를 보며 알렌은, 그녀를 기필코 지켜 내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알렌은 자신의 진심을 보다 확실히 전하면서 데이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허세신공을 조심스레 운용했다.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으며 알렌의 존재감이 더욱 비대해진다.

그 효과는 확실했다.

미약하게 일어난 허세신공은 알렌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듬직한 존재로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데이지는 알렌이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느껴졌다.

이 사람이 곁에 있다면 완벽하게 안전하리라는 믿음에, 불안한 감정이 눈처럼 녹아내린다.

그녀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그녀를 보며 알렌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제네스에게 배운 허세신공을 제대로 써먹고 있는 그였다.

알려 준 의도와는 전혀 다른 사용 방식이었지만.

‘……제네스 님에게는 비밀로 하자.’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