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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94화 (94/228)

제94화

제94화 커다랗게 울리는 (2)

총독부 제1경비단 2중대 중대장, 호로스는 흰 사자가 들쑤시고 간 전장을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부서진 구조물의 잔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그 사이로 죽은 이들의 시체가 떨어진 나뭇잎처럼 우수수 깔려 있다.

그야말로 처참한 현장.

미처 죽지 못한 이들의 신음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호로스는 저편의 성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우레처럼 울리던 폭발음은 어느새인가부터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적의 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드디어 끝난 건가?’

그가 보여 준 신위를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총독마저 당한 듯했다.

만약 그를 생포하거나 죽였다면 총독부가 이리 조용할 리 없으니.

폐허를 정리하는 건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었다.

호로스는 중대원을 독려하며 부상자들을 옮겼다.

일단 그것이 가장 시급했다.

“중대장님!”

한창 병력을 통제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급히 달려왔다. 병사의 얼굴이 사색에 질려 있었다.

뭐지?

불안감에 청각을 키우니, 저 멀리서 다시금 소란이 일고 있는 듯했다.

전처럼 커다란 폭발음은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무슨 사달이 난 게 틀림없었다.

“뭔데? 상황 종료된 거 아니었어?”

“희, 흰 사자가 다시 돌아왔답니다.”

“뭐?”

호로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기함을 토했다.

그가 다시 돌아왔다니.

“대체 왜?”

여기서 얻어먹을 게 무엇이 더 있다고!

그는 당장에라도 흰 사자에게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개X같은 자식!

이쯤 하면 되지 않았는가!

“3구역 쪽에서 지원 요청이 있었습니다. 현재 흰 사자가 아르센 첨탑을 점거 중이라고 합니다.”

아르센 첨탑?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은 1경비단이었다.

“그쪽은 3경비단 담당 지역이잖아.”

“중대장급 인물들은 모두 그쪽으로 모이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아무래도 녀석을 잡기 위해 병력을 끌어모으는 듯했다. 일반 병사들로 되지 않으니 지휘관급 인사만 모으려는 거겠지.

이런 미X 새끼들이.

자기들도 두 눈이 있다면 흰 사자의 전력을 봤을 텐데.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일단, 알았다. 이쪽 상황 좀 정리하고 가마.”

“10분 안에 집결하시라고…….”

젠장.

아예 뺑이 칠 틈도 안 주는군.

호로스는 주변의 중대장급 인원을 모아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무슨 일이라던가?”

“그 미X놈을 어찌 막으라고. 가만 보니 특임대도 당한 거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야.”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놈을 사냥할 수는 없지만 고작 프렌치 놈 따위에게 총독부를 통째로 내줄 수 없었다.

이 일은 훗날 제국의 수치가 될 터.

“그런데 아르센 첨탑에는 왜 갔대?”

“모르지.”

다급히 달리던 이들은 아르센 첨탑이 가까워지자 걸음의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아직, 1분 남았다.”

정확히 10분을 꽉 채워 아르센 첨탑에 도착한 호로스는, 두껍게 쌓인 기사들의 벽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지원군인 자신들의 도착에도 별다른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는 상황이 종료됐나 싶어 뒤편에 서 있던 이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이는 그를 보더니 순순히 길을 비켜 주었고, 호로스는 본의 아니게 무리의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X발! 호기심이 명을 재촉하는 법이라더니만!’

어쩌다 보니 맨 앞줄에 서게 된 호로스였다.

그리고 그는 가만히 앉아 첨탑 입구를 지키고 있는 흰 사자를 볼 수 있었다.

팔짱을 낀 채, 편하게 앉아 있는 개자식.

눈앞에 벽을 이루고 있는 기사들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편히 좌정한 채였다.

가면을 쓰고 있어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음에도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다.

그의 주변에 깔려 있는 시체들.

그에게 다가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가 너무 명백했다.

그것을 떠나, 이미 대부분의 이들이 흰사자의 신위를 똑똑히 보았을 터.

어떤 미X놈이 쉽사리 달려들겠는가.

지금 이렇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데.

‘저 끔찍한 새끼.’

호로스는 눈앞에 있는 흰 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외형은 분명 사람의 것이거늘, 직접 본 그의 무력은 인간의 탈을 벗어나 있었다.

그가 전장을 헤집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오른다.

소드 마스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수없이 들어왔지만, 직접 마주한 그 힘은 정말이지 재해와 같았다.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는 무언가.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호로스는 그를 보며 초대형 태풍을 떠올렸다.

대체 검에 어느 정도로 통달해야 가능한 일일까?

앞에 놓인 병사들의 숫자가 무의미해지려면.

거대한 성문을 한 방에 날려 보내려면.

모르긴 몰라도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일이었다.

툭.

누군가에 부딪쳐 앞으로 휘청이던 호로스를 누군가가 붙잡아 당겼다.

“정신 차리게.”

“?”

“아래를 봐.”

사내의 말에 호로스는 시선을 내렸다.

발치 앞으로 긴 고랑처럼 파인 선이 있었다.

호로스은 그것을 따라 시선을 좌로 돌렸다가 다시 우로 돌렸다.

선이 기다랗게 그어져 있었고, 산 자와 죽은 자는 그 선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넘으면 죽이겠다더군.”

옆의 녀석이 속삭여 왔다.

호로스은 그제야 이 기묘한 대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앞에 장렬히 죽은 이들은 자신들을 집합시킨 놈들이겠고, 이 선 뒤에 남은 이들은 자신과 같은 자들일 터였다.

적을 두고 물러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나서서 목을 베어 달라 할 수도 없는 기사들.

그들은 그저 검을 겨눈 채 다가가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흰 사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이오!”

하지만 어디를 가나 꼭 있지.

주제를 모르고 호기롭기만 한 존재들이.

“저자는 이미 지쳤습니다! 일제히 돌격합시다!”

뒤늦게 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몇몇이 그 말에 동조하며 말했다.

“이참에 몰아붙입시다!”

서로의 기개에 감탄하며 결국 그 선을 넘고야 마는 이들.

덕분에 호로스는 다시 한번 흰 사자의 검을 견식할 수 있을 듯했다.

적이지만, 검사로서 그의 검을 본다는 건 유의미한 일이다.

그것이 자신을 향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파바밧!

사위에서 기사들이 역동적으로 달려드는데도, 흰 사자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그런 그들이 지근거리에 이르렀을 때, 그가 움직였다.

옆에 높여 있던 검집을 들었고, 검을 뽑는 동시에 휘둘렀다.

휘황한 광채와 함께 뻗어가는 섬뜩한 빛줄기.

그리고.

피슈슈슛!

일시에 갈라지며 피를 뿜어내는 기사들.

다섯 명의 기사가 단번에 절단이나 나자빠졌다.

그 압도적인 무력에 다시금 고요가 내렸다.

‘……저 자식은 지치지도 않는 건가?’

움직임이 여전히 경쾌하다.

그의 검을 보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역시 눈앞의 선은 삶과 죽음을 구분 짓는 경계가 맞았다.

그런데 저 새끼는.

‘대체 뭘 원해서 저러고 있는 거지?’

총독부에 와서 가져갈 게 총독의 목 말고 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총독부를 점령한다고 수도를 수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백날을 저리 앉아 있어 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그라도 체력이 무한정 있지는 않을 테니.

총독부는 털렸지만, 여전히 마그네트에는 수없이 많은 제국군이 남아 있었다.

수도가 얼마나 넓은데, 병력이 결집된 곳이 총독부 한 곳이겠는가.

이곳은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그러니 그의 행보가 이해가지 않는 것이다.

흰 사자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그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은 총독의 목을 베는 것뿐이니까.

대체 이곳에 뭐가 있다고.

여기는 국……?!

무언가 머리를 스친 호로스는 고개를 하늘을 향해 꺾었다.

첨탑의 꼭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X발…….’

그는 그제야 흰 사자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알았다.

첨탑의 첨단에서 펄럭이는 거대한 국기.

제국의 국기가 있던 자리를 낯선 것이 대신하고 있었다.

남색 바탕 위에 그려진 포효하는 흰 사자, 레오니랜서.

패망한 프렌치아의 국기가 그곳에 걸려 있었다.

때마침, 그 위로 새벽의 여명이 닿기 시작한다.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슥.

그때, 그가 몸을 일으켰다.

기사들은 자세를 낮추며 방어 태세를 취할 뿐, 모두 선 뒤에서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선, 넘지 마라.”

나지막이 울리는 목소리.

그 서늘한 음성에 발이 땅바닥에 착하고 달라붙었다.

그는 그렇게 한마디를 남기고 첨탑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쿵!

땅을 박차는 동시에, 그의 신형이 푹 꺼지듯 사라진다. 실력이 있는 자들은 그의 흐릿한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아르센 첨탑의 외벽을 탄 흰 사자가 첨탑 상층부에 위치한 아치형 구멍으로 사라졌다.

그 안에는 종루가 있었다.

“어쩌지……?”

다들 눈을 마주친 채 눈만 말똥거렸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아는 까닭.

하지만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종루로 달려가면 어쩔 건데.

어차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지금처럼 멀찍이서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목숨이 아까운 이상 말이다.

기사의 명예고 뭐고.

상대가 돼야 존심을 부리든가 하지.

그에게 덤비는 건 말 그대로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 * *

종루에 오른 나는 눈앞에 널따랗게 펼쳐진 수도의 전경을 보았다.

어둠에 잠겨 있던 도시가 저편에서 밝아 오는 태양 빛에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가끔 아버지와 이곳에 올라 지금의 풍경을 보았었다.

-보아라. 네가 다스려야 할 나라이니라.

-아름답지 않으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렇게 멀리서 보니, 전생의 마그네트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나의 삶이자, 꿈이자, 내 생애 전부였던 것들.

그 모든 게 저 안에 담겨 있었다.

이 풍경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프렌치아였다.

태양이 완전히 떠오르며 어둠이 완전히 걷히자, 저 멀리 솟은 외성까지 잘 보였다.

날은 매우 좋았다.

청명한 바람이 상쾌하게 불고 있었다.

이제 모두가 이 첨탑의 꼭대기에 걸려 있는 국기를 볼 수 있을 거였다.

나는 난간에서 내려와 종을 치는 거대한 당목에 가까이 갔다.

테나스타 광장에서 본 것과 같았지만, 이것의 겉면에는 손바닥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 위로 손을 올려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필요한 마력을 모두 충전한 그것이 홀로 뒤로 당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종의 겉면을 치며.

댕-!

웅대한 울음을 토해 냈다.

그 소리는 이곳에서만 울려 퍼지지 않았다.

수도의 서쪽에서도 동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동시에 들려왔다.

댕-!

도시 전체를 커다랗게 울리는 종소리.

수도, 마그네트가 그 소리를 따라 깨어나고 있었다.

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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