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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95화 (95/228)

제95화

제95화 커다랗게 울리는 (3)

새벽녘 골목을 서성이는 두 개의 그림자.

알렌과 이리엘이었다.

“왜 이렇게 안 오시지?”

알렌은 이미 닳아 없어진 손톱을 계속해서 물어뜯었다. 제네스의 복귀가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곧 동이 틀 시각인데도 제네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홀로 총독부를 뚫는 일.

시간이 늦어질수록 체력 저하가 극심할 터였다.

복귀가 늦어지는 건, 결코 긍정적인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 옆에서 함께 발을 동동거리던 이리엘이 알렌을 불안한 눈빛으로 보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벌써 같은 질문만 다섯 번째다.

“걱정 마. 제네스 님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잖아. 아무 일 없을 거야.”

알렌도 다섯 번째 같은 답을 했다.

그는 이리엘을 달래면서 본인도 같이 달래고 있었다.

‘그래, 괜찮을 거야…….’

불안한 감정을 가라앉히던 알렌은 별안간 자신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그 또한 벌써 다섯 번째였다.

하지만 제네스의 꿀밤에 익숙해졌는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러게 기도 시간에 왜 졸아 가지고!’

이렇게 불안할 줄 알았으면, 없는 신이라도 찾아서 기도했어야 했다.

“도와드릴까요?”

이리엘의 말에 알렌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둘은 그렇게 집 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인 양 간절한 심정으로 골목만 빤히 바라보았다.

주변에 내린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네스는 깜깜무소식이었다.

“한번 총독부로 가 볼까요?”

도저히 불안함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눈을 마주쳤을 때였다.

댕-!

난데없이 거대한 울림을 품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쫑긋 세운 둘은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분명, 종은 금요일 오후 1시에만 울린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이른 새벽에 울리고 있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네스와 연관된 것이 확실했다.

댕-!

그들은 황급히 지붕 위로 올라갔다.

괜히 불길한 예감이 앞섰다.

제네스가 종을 울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색에 질려 지붕 위로 오른 이들은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첨탑을 바라보았다.

“?!”

일순 몸을 움찔하며 두 눈을 비빈 이들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거 그거 맞죠?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이리엘은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이 본 것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렌은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밝아 오는 새벽.

어둠이 밀려나며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는 첨탑의 첨단에서 프렌치아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지부가 도시 외곽에 위치하다 보니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남색 바탕에 레오니랜서가 그려진 프렌치아의 국기였다.

알렌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동을 느꼈다.

전신을 덮는 것도 모자라 하늘까지 치솟는 고양감.

‘그래. 이거지.’

자신은 이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기 위해 제네스 옆에 남은 것이었다.

알렌은 제네스를 만난 이후부터 자신이 언젠가 전설이 될 이야기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 안에서는 이처럼 보고도 믿기지 않는, 꿈같은 일들만 벌어지니까.

그런 이야기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시작된다.

자신에게는 제네스와의 만남이 그러했다.

그때부터 언젠가 노래로 남을 이 이야기는 시작된 것이다.

비록 자신은 제네스 옆에서 하찮은 잡일을 도맡아 할 뿐이지만, 그 하찮은 일도 제네스의 옆에서는 위대해질 수 있다.

고작 요리와 설거지 좀 하면서, 역대 최강으로 손꼽히게 될 소드 마스터의 최측근이 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그렇게 알렌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사이, 이리엘은 종소리를 듣고 나온 이들에게 다급히 손짓하고 있었다.

“다들 이리로 올라와 봐요! 어서요!”

그녀의 채근을 따라 지붕 위에 오른 이들은 그 자리에 굳으며 연달아 탄성을 터트렸다.

다들 잠을 설쳐 충혈된 눈으로 꿈같은 현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유리아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두 손으로 자신의 앞섶을 움켜잡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마그네트의 하늘에 프렌치아 국기가 펄럭이는 저 장면을, 그녀는 아주 어릴 때 본 적이 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지만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기에, 유리아는 그 순간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국기가 불타오르던 순간부터 그녀의 지옥이 시작되었기에 더욱이 그렇다.

한순간에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어 뒷골목을 전전했었다.

프렌치라며 쏟아지던 가차 없는 멸시와 폭언들.

어렸던 그녀로서는 처음 겪어 보는 것들이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폭력이었다.

그 음울한 골목에서 그녀는 악착같이 살아가다가, 하라브의 눈에 띄어 독립군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아직도 멸시와 폭언은 자신의 곁을 따라다니지만 전만큼은 아니었고, 그녀는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졌다.

지금은 하라브의 아침에서 일하며, 힘들어도 뿌듯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제국의 국기에 경례해야 할 때면 매번 가슴속에서 뜨거운 울분이 치솟아 올랐다.

프렌치아 사람이란 이유로 감내하고 받아내야 하는 모욕들이.

부모를 죽인 이들의 기고만장함이.

그녀의 마음속 상처를 계속해서 헤집었다.

그런데 그 곪고 곪았던 자리에 프렌치아의 국기가 다시금 올랐다.

뭐랄까.

가슴속 깊숙이 잠겨 있던 울분이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곪았던 상처가 깨끗이 도려내지는 것 같은 시원함.

댕-!

맑은 종소리가 전신을 울린다.

이게 이렇게나 아름다운 소리였나?

종이 울릴 때마다 짙어지는 고동이 기껍다.

동시에 마음속에 따뜻하고 밝은 기운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감정의 이름은.

그래. 희망인 거 같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의 희망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독립의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거라는.

미래에 대한 명백한 확신과 믿음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그것은 그녀가 살아오면서 느낀 어떤 감정보다, 마음을 강렬하게 뒤흔드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 감격이 물방울로 맺혀 눈가에서 주르르 흘러내린다.

많이 울어 봤지만, 벅차오르는 감정을 담은 눈물은 처음이었다.

가슴속에 얹혀 있던 묵직한 무언가가 물기를 따라 개운하게 쓸려 나오는 기분이었다.

두툼한 손이 그런 그녀의 정수리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하라브였다.

유리아는 저편을 바라보고 있는 하라브의 물기 어린 눈동자를 보며,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신기하게도 모두 하나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뿐만이 아니었다.

시선을 넓게 두자, 지붕 위로 오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지붕 위로 올라가 보세요!”

먼저 올랐던 사람들이 소리치며 다른 이들을 지붕 위로 오르게 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올라오시면 보게 될 겁니다!”

상기된 얼굴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그 소식을 퍼트렸다.

댕-!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리는 종소리 사이로 번져 갔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소식을 전하고, 자발적으로 그것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지붕 위에서 첨탑이 보이지 않는 이들은 길가로 나왔고, 더 높은 건물로 이동하기도 했다.

너른 대로와 건물의 지붕 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

그러고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탄성을 터트린다.

저 네모난 천 쪼가리에 담긴 의미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삶, 그 자체였다.

일생의 희로애락.

그것이 모두 저 안에 있었다.

우습게도 나라를 잃고 나서야 그 울타리가 얼마나 드높았던 것인지를 알았다.

일생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요동치는 고동을 느끼며 국기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시선이 한 점에 모인다.

그들은 모두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의 삶과 각자의 아픔이 그 시선 안에 담겨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의 수만큼, 무수히 많은 각각의 사연들.

그들이 가진 이야기는 모두 달랐지만, 모두 같은 아픔 속에 있었다.

그들은 나라를 잃었다.

프렌치아의 국기는 그 모든 시선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의 머릿수만큼 제각각이었던 사연들이 하나의 국기 안에서 하나의 마음으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애국(愛國).

바람에 펄럭이는 국기를 가만히 바라보던 사람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그리고 모두.

수도, 마그네트에서 살아가는 모든 프렌치아 국민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서광이 비춰 든다.

창공에서 펄럭이는 프렌치아의 국기는 더욱 선명한 색을 뿜어냈다.

댕-!

종소리가 그런 그들의 마음을 세차게 두드렸다.

종이 울린 시간은 고작 5분.

삶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시간.

하지만 그 촌각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지난 10년의 아픔을 다독이며 평생에 아로새겨질 기억을 뇌리에 선명히 새겨 넣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고된 삶에 쓸려가 버렸던.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거대한 불길이 되어 타오른다.

그것은 분명.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일 것이다.

그들은 오늘,

잠시나마 독립을 보았다.

* * *

어머니는 항시 말씀하셨다.

국민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국민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리해야 저들도 우리를, 나라를 사랑하는 거란다.

어머니는 항상 그리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그때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을 반대로 경험하고 있었다.

대로와 지붕 위를 가득 메운 저들을 보며.

여전히 나라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보며.

나는 오래전 그들에게 품었던 애틋함을 떠올렸다.

언젠가 나의 꿈이었던 자들.

나는 종루에 올라, 점처럼 작게 보이는 국민들을 바라보며, 지금껏 완전히 잊고 있었던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지난 시간 품었을 아픔이 마치 나의 것처럼 선연히 전해 온다.

그것이 안타깝게 사무친다.

그 아픔이 어떤 종류의 것들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발렌시아 대륙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 어둠을 보았고, 느꼈다.

이들은 그 시간을 자그마치 10년을 보냈다.

이제 남아 있는 희망도 재가 되어 사그라들었을 터.

그렇기에 나는, 다시금 이 자리에 프렌치아의 국기를 거는 것으로.

나의 꿈이었던 자들에게.

나의 프렌치아였던 이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잃었던 나라를 되찾아 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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