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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03화 (103/228)

제103화

제103화 가짜 왕세자 (1)

우리는 섬에 발을 디디자마자 네더만과 알렌을 찾아 움직였다.

와중에 본 섬의 생태가 기묘하다.

이모텔섬은 마치 색이 없는 세계처럼 온통 무채색을 띤 식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다색부터 모래사장까지 잿빛이니 말 다 했지.

“알렌 형님! 네더만 씨!”

이리엘이 해안가에 버려져 있는 배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그럼에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파도치는 소리만 고요히 들려왔다.

그때 뒤편의 풀숲에서 무언가 들썩이는 소리가 났다.

이어 등장한 것은 두 명의 야인.

이리엘은 그들을 보자마자 일단 검부터 뽑아 들고 경계했다.

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체를 아는 까닭.

“우리라고, 우리!”

두 야인이 펄쩍 뛰며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제네스 님! 접니다! 저라구요!”

내가 검이라도 휘두를까 싶어 요란법석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녀석들이 네더만과 알렌임을 알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알고 있다.”

“알고 있는 사람이 검을 뽑으려고 해?”

“너무하십니다!”

그들의 말대로 나는 칼자루에 손을 가져간 상태였다.

정체는 알았지만, 몰골을 보니 손이 절로 검에 가고 말았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이리엘이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네더만으로 보이는 야인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긴, 나도 이 녀석 몰골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고.”

“네더만 씨도 만만치 않거든요!”

내가 말했다.

“마무리는 다 한 건가?”

내 물음에 네더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다 죽였네. 대강의 정보도 얻기는 했는데 그다지 쓸모 있는 건 아니야.”

“차차 이야기하지. 일단 씻고 옷부터 갈아입어라.”

나는 일단 그들에게 몰골을 정비할 시간을 주었다.

배려라기보다 보는 내가 더 불편했다.

잠시 후 우리는 멀끔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새 옷을 입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같이 상쾌하구만.”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인데요?”

“보기에도 그래 보여요.”

이리엘이 인간의 모습을 되찾은 그들을 보며 손뼉을 쳤다.

내가 말했다.

“그래서 얻은 정보는.”

“자네도 대강 예상했겠지만, 이곳이 우리가 찾던 이모텔섬이 맞는 것 같아. 우리를 인솔했던 놈들도 아는 바가 별로 없기는 했는데,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 있었다더군. 제국군이 이곳에 자리 잡은 건 더 오래됐고. 섬의 중심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야. 그거에 대해서는 이놈들도 잘 모른다고 하고. 징병된 이들은 저편 광산에서 마석을 캐는 광부로 지낸다더라고. 이 자식들도 거기서 나왔던 거고. 몇 대 쥐어박았더니 술술 불더군. 그동안 괜한 고생을 한 거지. 처음부터 줘 팰걸. 빌어먹을.”

이어 네더만은 일주일 동안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대우들을 술술 풀어냈다. 알렌 녀석도 옆에서 거들기는 마찬가지. 자신들의 노고를 알아 달라는 어리광이었다.

네더만이 나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 내 말을 듣고 있는 겐가?”

나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한 뒤 말했다.

“일단 고지에서 섬의 전체적인 지형을 본 후에 어떻게 움직일지 정해야겠다.”

“빌어먹을 자식. 하나도 안 들었군.”

“바로 움직인다.”

나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걸음을 박찼다.

저편에 높게 솟은 산이 있었다.

그 정상에 오르면 전체적인 전경을 볼 수 있을 터였다.

* * *

“빨리빨리 움직여!”

몽둥이를 쥔 감독관의 고성에, 커다란 동혈에서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광부들이 줄지어 나왔다.

잿빛의 먼지에 덮인 이들은 눈동자만 희게 빛나, 누가 누구인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개 같은 새끼들.’

1광굴의 반장, 체리스는 재촉하는 감독관의 말을 따르며 짓씹듯 욕설을 뱉어 냈다.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8년.

그는 어느새 광산에서 가장 오래된 경력자가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가장 오래된 생존자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지만.

그저 끔찍이도 힘든 이 일에 익숙해졌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훈장이었다.

참, 신입을 관리하는 임무가 있지.

젠장맞을.

일만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기억해 낸 체리스는 조용히 뒤를 따르던 신입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좀 어땠어?”

“……그냥 적응하고 있어요.”

흰자만 덩그러니 있으니 누군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뭐였더라.”

“알스입니다.”

“그래. 슬슬 익숙해질 거야.”

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꾸할 힘도 없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고된 노동에 몸이 벌써부터 남아나질 않는다.

마석을 채석하는 일은 점차 손에 익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몸이 편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 지독한 고됨이 당연해지고 있을 뿐.

“돈은 보내 주는 거겠죠?”

알스가 조심스레 묻자, 체리스는 흰자위를 번뜩였다.

“하, X발. 이렇게 일 시키는데 안 보내겠냐.”

그는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성을 냈다.

그러나 그 또한 확신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여기서 나간 적이 없을 테니.

감독관의 말로는 가족들에게 돈을 꼬박꼬박 보내고 있다는데, 알스는 그 말이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자신은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중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준다길래 힘들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럼에도 반항할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들의 폭력은 무자비했다.

그들의 처사에 항의한 이들은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렸다.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매월 월급 장부를 보여 주기는 하니, 믿을 수밖에.

알스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자, 체리스가 입을 열었다.

“10년만 버티면 돼, 10년만.”

10년.

그 아득한 시간에 알스는 다리의 힘이 풀릴 것 같았다.

앞으로 자신이 겪어 내야 할 시간.

그날이 과연 올까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알스는 체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에게 다른 선택은 존재하지 않았다.

체리스는 그런 알스의 어깨를 툭 치며 격려했다.

그 또한 알스가 느끼는 막막함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 또한 그랬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고.

이제 10년이란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지만, 제국 놈들이 그 약속을 지킬지는 미지수다.

아직 이곳에서 10년을 꽉 채운 자는 없다.

그래서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다.

모든 것이 거짓일까 봐.

체리스는 불안한 감정에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자.’

어차피 답은 없다.

불안하지만 믿는 수밖에.

10년 동안을 가축처럼 굴렸는데 설마 죽이기야 하겠는가.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상황에 믿을 건 이들의 말밖에 없었다.

여기서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 새끼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꾸물거려!”

감독관의 고함에 채리스는 알스와의 대화를 멈췄다. 자칫 꿈지럭거리다가는 가차 없이 몽둥이가 떨어진다.

이곳에서는 생각할 시간조차 사치에 불과했다.

장내에 소란이 인 것은 그때였다.

광부들을 사납게 몰아치던 감독관들이 서로 무언가 말을 주고받으며 불평을 터트렸다.

“하, X발. 또 왔어?”

“그 빌어먹을 새끼는 여기에 뭐 처먹을 게 있다고 자꾸 오는 거야.”

체리스는 그들의 반응에 무슨 상황인지 손쉽게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그 정신 빠진 놈이 또 왔군.’

잠시 후.

일련의 무리가 광부들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뒤편에 네 명의 기사들과 광산의 책임자를 이끌고 등장하는 자.

감독관들은 가장 앞에 선 그에게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세자 저하를 뵙습니다.”

광부들 또한 바짝 자세를 낮추며 복창했다.

“세자 저하를 뵙습니다.”

“그래. 오늘도 수고들 했다.”

인사를 받으며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

그는 마치 무채색의 세계에서 홀로 색을 가진 듯, 색색의 화려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거기에 반짝이는 은빛 머리칼과 청명한 은색 눈동자가 그의 생기를 더했다.

새하얀 피부에 오뚝한 콧날을 가진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자였다.

그가 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릇 모든 일에는 작은 일과 큰일의 구분이 없는 법이다. 너희들이 지금 흘리는 땀은 프렌치아를 위한 것이고. 나아가 어버이의 나라, 크레본 제국을 위한 것이다. 그대들의 노고는 내 잘 알고 있는 바이니, 앞으로도 성심을 다해 주길 바란다.”

난데없이 나타나 설교를 늘어놓는 왕세자.

어서 쉬고 싶은 광부들과 감독관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일그러졌다.

저 쓸데없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들에게는 고역이 따로 없는 탓.

체리스 또한 왕세자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터져 나오는 욕설을 간신히 삼켰다.

‘저 개X끼는 여기가 제 놀이터인 줄 아나. X발.’

할 일이 더럽게도 없는지 간혹 저렇게 광산에 와서 왕세자 노릇을 하려고 든다.

자신들의 편의를 봐주거나 하면 말을 않지.

와서 마석을 채석하는 게 무슨 커다란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럴싸한 말만 지껄여 대니.

오히려 가슴속에 열불만 차오른다.

‘우리가 누구 때문에 개고생인데!’

제깟 것들이 말아먹은 왕국 때문에 자신은 이곳까지 흘러들어 와 밭을 가는 대신 마석을 채석하고 있었다.

그저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자신은 제국 놈들 밑에서 가축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왕세자란 놈은 뒈지지도 않고 저리 잘 지내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게다가.

‘제국이 어버이의 나라라니. 이 뭔 개X같은 소리란 말인가! 정신 빠진 새끼 같으니라고.’

왕세자는 이들의 일그러지는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수차례 말했듯, 너희들이 하는 일은 대업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면서 이 몸이 세상 밖으로 나갈 힘을 얻을 수 있게 보조하는 일이니라. 사명감을 가지고 부단히 힘써야 할 것이야.”

“예, 저하.”

다들 세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말만 왕세자지 아무런 힘도 없는 자였다.

저따위 말을 늘어놓는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허수아비란 뜻이다.

“이 대업이 끝나면 너희들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니라. 모두 프렌치아의 왕세자인 내 이름을 걸고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다.”

‘X랄하고 자빠졌네.’

망국의 왕세자가 무슨 힘을 쓸 수 있겠나.

최근 들어온 신입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현재 프렌치아의 상황이 전과 다르지 않음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아니, 전보다 더 악화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상황에 제깟 게 뭐라고.

일례로 그 또한 이 섬에 틀어박혀 저리 헛된 말만 지껄이고 있지 않나.

자신들은 그저 녀석의 왕세자 놀이를 어쩔 수 없이 맞춰 줄 뿐이었다.

“그럼 편히 쉬거라. 나는 광산을 한번 둘러봐야겠구나.”

“예, 저하.”

왕세자가 떠나자, 감독관들도 인상을 잔뜩 구기며 한마디씩을 뱉어 댔다.

그 모습이 그렇게 고소할 수 없다.

왕세자가 올 때면 열불이 뻗치기는 하지만, 감독관들의 저런 표정을 볼 수 있다는 조그만 낙은 있었다.

“빨리 움직여라! 이 빌어먹을 프렌치 새끼들아! 너네 왕세자 때문에 우리가 무슨 개고생이냐!”

그 화풀이를 자신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게 훨씬 더 X같지만.

체리스를 비롯한 광부들은 감독관들의 채근에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건물이 그들 앞에 있었다.

* * *

산의 정상에 오르자 한눈에 담기는 섬의 전경.

오는 내내 무채색의 생태를 지나쳤기에 예상은 했지만, 섬은 온통 잿빛으로 칠해져 있었다.

거기에 하늘에 짙은 먹구름까지 깔려 있으니, 이 섬에서는 색감 있는 것을 도통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섬은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우울해지는 거 같아요.”

이리엘의 감상평이었다.

확실히 무언가 불온한 세계를 마주한 느낌이라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네더만이 섬의 중앙 부분을 가리켰다.

“저기 있군. 불멸의 도시.”

잿빛의 수림 중앙에 세워진 건물들이 보였다.

건축 양식을 보니 왠지 고대의 도시 느낌이 났다.

그 중심에는 거대한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사각뿔 형태로 쌓아 올려진 구조물이었는데, 가장 최상층부는 수평으로 잘려 나간 것처럼 평평했다.

거리를 감안하면 꽤나 커다란 구조물일 듯하다.

나는 그것에서 가까운 산기슭으로 시선을 옮겼다.

깎아지른 절벽 주위를 두른 목책이 보였다.

내부에는 건물이 몇 개 보이지 않았고, 허름했다.

불멸의 도시와는 거리가 상당했다.

“어디를 먼저 가겠나.”

네더만이 물어 왔다.

가까운 건 광산이었지만, 굳이 그곳부터 갈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그들을 구해 내도 불멸의 도시에 주둔하고 있는 제국군을 베어야 모든 상황이 끝날 테니.

아마 할렌트 또한 거기 있을 테고.

“광산부터 간다.”

그럼에도 나는 진로를 광산으로 잡았다.

광산을 관리하는 이들에게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중앙부터 무너뜨리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광부들을 죽이는 선택을 할지 몰랐다.

광산부터 간다면 우리의 존재가 들킬 위험 부담이 있지만, 괘념치 않았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정황상 이곳에 할렌트의 목적이 있다.

흰 사자가 이곳에 왔다고는 생각지 못할 테니, 무작정 그것을 내팽개치고 도망치지는 않을 터.

그가 이곳에 있다면 우리는 곧 조우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왕세자가 살아 있다는 소문의 진위도 확인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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