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04화 (104/228)

제104화

제104화 가짜 왕세자 (2)

곧장 산길을 달려온 우리는, 어느새 광산을 두른 목책을 지근에 두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대로 뚫는다.”

달리는 그대로 나아갈 작정이었다.

“이리엘은 목책에서 지원하고.”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목책은 깎아지른 절벽을 아치형으로 두르고 있었다. 규모를 봤을 때 그리 많은 병사가 있지는 않을 터.

“바깥으로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까지야 막을 수 없겠지만, 일단 사람을 살려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우리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외부와 단절된 섬이었기에 적의 침입에 관한 대비가 철저히 되어 있을 거 같지는 않지만, 뭐든 확실히 하는 게 낫다.

“하암, 지루하다. 오늘은 뭐 하면서 시간 때우냐?”

“하, X나 나가고 싶다.”

풀숲 너머로 경계를 서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책의 입구는 활짝 열려 있었다.

그만큼 경계가 허술했다.

파밧.

수풀을 나서자 지겨운 표정을 짓던 병사들의 얼굴이 일순 딱딱하게 굳는다.

동시에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을 크게 뜨는 녀석들.

그들의 망막 위로 새하얀 섬광이 들이닥쳤다.

촤악-!

나는 그들을 지나쳐 뒤편에 내려섰다.

철퍼덕.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무너지는 이들.

흐른 핏물이 조용히 바닥을 적신다.

나는 내부를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급히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적들이 내게 몰릴 시간이 필요하기에.

걸음의 목표는 지휘부로 보이는 건물.

내 뒤를 알렌과 네더만이 날개를 펴듯 양측으로 거리를 벌리며 따랐다.

“뭐, 뭐야?”

그런 우리를 발견한 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답을 검으로 대신했다.

하얀빛이 번쩍하자 의문을 담은 머리통이 허공을 날았다.

“적이다! 적이야!”

그 광경을 본 이들이 혼비백산되어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나아갔다.

제대로 된 것들이 하나 없었다.

다들 내게 맞서기보다 지휘부 쪽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오합지졸이 따로 없군.

우리는 그런 녀석들을 손쉽게 한쪽으로 몰아갔다.

* * *

한편, 미처 소란이 전해지지 않은 지휘부.

광산의 총책임자인, 존라케는 부글거리는 속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왕세자에게 불온한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꼼꼼히도 쳐 보네. 빌어먹을 새끼.’

숨이 턱 막혀 오는 이 답답함은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걸까?

존라케는 눈앞의 왕세자를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의 최고 담당자는 자신이었고, 전체적인 상황은 총독부에서 총괄한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이 개같은 자식이 끼어들 틈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새끼는 왜 여기까지 처와서 X랄 염병을 떠냐고!

“채석량이 점점 늘어나는 거 같은데. 징병 온 이들을 너무 혹사하는 게 아닌가.”

장부를 향하던 왕세자의 시선이 들어올려진다.

존라케는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망국의 왕세자 주제에.

하는 일이라곤 섬에 틀어박혀 세월을 보내는 것밖에 없는 새끼가.

당장에라도 책상을 뒤엎고 싶지만, 위에서 받아 주라는 지시가 있어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존라케는 불만을 가득 담은 어조로 말을 툭 내뱉었다.

“신입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 그렇습니다.”

“전체적인 인원은 큰 변화가 없네만.”

“신입들이 열심히 일하나 보죠.”

“그들을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말게. 배식되는 음식도 보니까 너무 터무니없어.”

“예~ 시정하겠습니다.”

존라케는 그저 대꾸했다.

어차피 그가 뭐라고 하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매번 이렇게 찾아와 별의별 잔소리를 늘어놓으니 더 열이 뻗칠 수밖에.

왕세자의 시선이 다시 장부로 내려간다.

어찌나 꼼꼼히 읽는지 한 장을 읽는 데 세월아 네월아다.

총생산량만 맞추면 되는데 저걸 왜 저렇게 세세히 보고 있냐고!

울화통이 터져 뒷목이 당겨 온다.

“광부들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

“양호합니다.”

존라케는 화를 꾹꾹 누르며 답했다.

왕세자가 장부에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었다.

“나라를 위해 온 이들이야. 나는 그들이 너무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 같아 항상 마음이 아프다네.”

X랄하고 자빠졌네.

“노역을 온 이들이 아님을 확실히 구분해 주게.”

“알겠습니다.”

“슬슬 신입이 들어올 때가 됐지?”

“예.”

“언제쯤 오나.”

“아마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린 왕세자가 말을 이었다.

“조만간 다시 한번 와야겠군.”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교육할 테니까요. 오가기 편한 길도 아닌데 굳이 왜 오십니까.”

“아니, 직접 올 것이니 걱정 말게.”

“예.”

존라케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장부를 꼼꼼히 훑고 있는 왕세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저 머리통을 한 대 후리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는 인생이다.

왕세자로 태어났으면 뭐 하나.

이 좁아터진 섬에 틀어박혀 허송세월하고 있는데.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굳이 여기까지 행차하여 이런 시시콜콜한 일에 매달리겠는가.

이 짓을 안 하면 왕세자 노릇을 할 데도 없겠지.

자신 또한 그 심정을 알기는 안다.

별다를 게 없는 처지이므로.

‘난 대체 언제 나가냐고! X발!’

이곳에서의 일이 조만간 마무리될 거란 이야기가 솔솔 들려오고 있지만, 자신 또한 벌써 몇 년째 이 섬에 틀어박혀 있었다.

이제는 한계다.

‘그래도 이 새끼보다는 나으니까.’

존라케는 왕세자를 보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듣기로는 10년을 이곳에서 보냈다던데.

얼마 전 제국에 다녀온 게 이 섬을 벗어난 유일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하여간 불쌍한 새끼.

그래도 화가 뻗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탁.

왕세자가 드디어 장부를 닫았다.

존라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내부를 둘러보니 시정해야 할 게 많더군.”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 가는 왕세자.

다시 고역의 시간이었다.

존라케는 부글거리는 속을 다스리며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그의 말을 꾸역꾸역 들었다.

“아, 그리고 말이야.”

아직도 안 끝났냐, 새끼야!

끝낼 것처럼 해 놓고 안 끝내니 더 열받는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보낸 존라케가 답했다.

“네. 전부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은 일단 모두 ‘예’다.

그래야 말이 짧아지니까.

하지만 왕세자가 다음에 와도 광산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을 거였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다.

이 자식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올 때마다 이 염병을 떠니 환장하지 않을 수 있나.

“그럼 수고하게.”

몸을 일으킨 왕세자가 자신의 어깨를 격려하듯 두드렸다.

드디어 끝이었다.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똑똑똑!

“존라케 소령님!”

“들어와.”

존라케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문을 벌컥 열며 등장한 이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이 터졌나 본데.

하필이면 이 새끼가 있을 때.

“크, 큰일 났습니다!”

부하 놈의 주둥이에서 나온 말은 예상대로였다.

존라케의 눈썹이 사납게 비틀렸다.

왕세자 앞에서 일이 벌어졌다가는 잔소리가 추가 될 것이 빤했으니까.

역시나 왕세자는 병사의 다급함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눈빛이다.

화병이 도진 존라케가 신경질적으로 병사를 꾸짖었다.

“뭔데 그리 호들갑이야!”

그런데 상황이 예상외였다.

“그게 적이 쳐들어왔습니다!”

“적? 또 그 원주민 새끼들이야?”

“아닙니다.”

“아니라고?”

존라케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순간 자신의 귀가 의심될 정도였다.

이곳에 쳐들어올 적이 그들 말고 누가 있단 말인가.

부하 놈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적의 전력이 막강합니다! 도저히 막아 낼 수가 없습니다!”

“몇이나 왔는데?”

“일단 보이는 이들은 셋뿐입니다. 아무래도 독립군 같습니다.”

“독립군?!”

그 개X끼들이 이곳에는 어떻게?

왕세자가 이때다 싶었는지 끼어들었다.

“함께 가지. 일단 어떤 이유로 왔는지 들어 봐야 할 게 아닌가.”

상기된 저 표정을 보니 신이라도 난 것 같은 얼굴이다.

존라케는 다시 한번 인내를 발휘하며 말했다.

“위험하십니다. 그놈들이 어떤 해코지를 할 줄 알고요.”

허수아비와 다름없는 놈이지만, 그의 신변은 중요했다.

독립군에게 왕세자를 넘길 수는 없었다.

“독립군이라면 프렌치아의 국민 아닌가. 감히 이 몸을 해하지는 못할 것이야. 그리고 나를 따르는 호위 기사들의 무력이 모두 익스퍼트를 넘어섰음은 경도 잘 알지 않나.”

존라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마따나 그를 따라온 기사들의 실력은 출중했다.

적들은 고작 셋.

자신까지 합세한다면 무난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일이 틀어지더라도, 독립군인데 제 나라의 왕세자를 해하지는 않을 터.

확실히 왕세자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존라케는 왕세자가 처음으로 쓸모 있어 보였다.

“같이 가 보세. 그들의 얼굴이 궁금하군.”

왕세자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서니, 저편에서부터 고함과 비명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단 제가 정확한 상황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존라케는 시야를 가리고 있는 병사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때마침 마당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본 존라케가 크게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당장 정체를 밝혀라!”

마력을 품은 묵직한 목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그 또한 익스퍼트 중급에 이른 기사.

문책성 인사로 유배를 오지 않았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존라케는 나란히 선 적들을 훑어보았다.

부하 놈의 말대로 적은 고작 셋뿐이었다.

개중 가장 젊은 놈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네가 총책임자인가.”

“그래. 독립군이냐?”

“의미 없는 문답은 뒤로 미루지. 대화를 나눌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다.”

어린놈의 새끼가 건방지고 오만하기 짝이 없다.

싸가지 없는 새끼.

하지만 존라케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정확히는, 발이 땅에서 떼어지지 않는다.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 위험을 감지한 본능이 시끄럽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때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인가.”

병사들을 좌우로 물리며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를 네 명의 호위 기사들이 따랐다.

위엄을 간직한 걸음걸이.

존라케는 그런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처음으로 그가 왕세자처럼 보였다.

딱 봐도 만만치 않은 자들인데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을 듯했다.

“이 무엄한 녀석들아! 어서 고개를 조아리지 않고 무얼 하는 게냐!”

존라케는 적들에게 호통하며 왕세자를 가리켰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장내를 울렸다.

“이분이 바로 프렌치아 왕가의 장자이시자 유일한 적통이신 왕세자, 제네스 쿤 프렌치아 님이시다!”

윤이 나는 은발과 신비한 은색의 눈동자.

프렌치아 왕가의 상징을 품은 그가 천천히 존재를 드러내었다.

동요하는 적들의 시선을 느낀 존라케는 그때다 싶어 더욱 크게 외쳤다.

“네놈들이 프렌치아 국민이라면! 세자 저하께 당장 예를 올리도록 하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