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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16화 (116/228)

제116화

제116화 가짜와 진짜 (2)

솨아아-

포털에 몸을 집어넣는 순간, 시야가 새까맣게 덮였다.

몸에선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짜 왕세자는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마치 먼지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기분.

어쩌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삶의 끝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첫 기억은 아마 그때였나.’

이모텔을 처음 왔을 적이 기억난다.

그전에는 기억이 없기에 그때가 세상과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 섬은 모든 것이 푸릇푸릇했다.

하늘은 청명했고, 푸른 바다는 햇볕에 반짝거렸다. 그때는 심지어 도시와 제단도 커다란 넝쿨들에 휘감겨 초록으로 빛났다.

참으로 아름다웠지.

처음 본 세상이었기에 자신에게는 그 모든 게 생경했고 황홀했다.

-네 이름은 제네스 쿤 프렌치아다.

‘이것이 내 이름…….’

-너는 프렌치아 왕국의 왕세자이니라.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왕세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그때에도 그것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왕세자.’

무언가 가슴속에서부터 벅차올랐다.

그렇게 왕세자가 된 자신은 가장 먼저 대륙의 역사를 배웠다.

인류가 힘을 모아 몬스터를 검은 숲으로 몰아낸 전설에 관해 배웠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공용어에 대해 배웠고, 그 이후로 세워지고 무너진 수많은 왕국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배웠다.

개중에는 프렌치아의 건국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왕세자가 무엇인지 알게 된 자신은 더욱이 성실히 공부했다.

그런 와중에도 매일매일 오랜 시간 의식을 치러야 했고, 그 과정은 팔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따랐다.

하나, 참았다.

‘내 나라 프렌치아를 위해서.’

모두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국민들을 위해서였다.

역경을 딛고 끝끝내 프렌치아를 세우신 테나스타 대왕님처럼 이 고통을 이겨 내고 싶었다.

‘나도 그분의 핏줄이니까. 나는 왕세자니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더 이상 역사를 배우지 않게 된 자신은 앞으로 꾸려 갈 프렌치아를 생각했다.

왕 없이 살아가고 있을 국민들을 생각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들을 생각했다.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겹고 고통스러운 이 의식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어진 왕이란 그래야 하는 것이니까.

훗날 이 나라를 잘 이끌기 위해서는 그리해야 했다.

“음하하! 이 정도쯤이야 가뿐히 해낼 수 있다고!”

“나지만, 너무 멋있어.”

“이 몸이 바로 프렌치아의 왕세자이니라! 크하하!”

간혹, 흔들릴 때면 방에서 크게 소리치며 마음을 다잡았다.

좁은 새장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에게는 프렌치아가 전부였고, 그들을 이끌겠다는 꿈만이 이 좁은 세계를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날개였다.

그렇게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니,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프렌치아가 어떤 것보다 소중한 자신의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 살아가는 국민들이, 자신의 소중한 백성이 되어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이곳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버틸 자신이 있었다.

아니.

그들이 있기에 지독한 고독을 버텨 냈다.

그렇게 9년.

첫 외출을 했다.

마차를 타고 아버지의 나라인 제국을 구경했다.

작은 창으로 본 세상이 전부였지만, 수많은 사람을 구경했다.

행복했다.

제국의 국민들을 보니 프렌치아에 더욱 가 보고 싶어졌다.

이제 의식은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세상에 나갈 시간이 코앞이었다.

‘음하하! 국민들이여!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 몸이 곧 찾아갈 것이니라!’

자신이 등장하면 국민들이 얼마나 반겨 줄까.

널따란 대로에 꽃가루를 뿌리고 폭죽을 터트리며 환영해 주겠지?

사람들은 모두 길가에 나와 축제를 벌일 것이다.

아마 감격에 차 우는 자들도 있을 테지.

그리고 자신은 그 거리를 위풍당당하게 걷는 것이다.

그렇게 드높은 왕좌에 올라 그들을 굽어살필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될 터였다.

10년의 외로움이 종착에 다다르고 있었다.

광산에서 녀석들을 만난 것은 그때였다.

햇살을 받은 푸른 바다처럼 아름다운 약혼녀와 시커먼 먹구름처럼 시건방진 무엄한 녀석.

‘가짜라고? 이 몸이?’

황당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프렌치아가 아버지의 나라인 제국에게 패망하여 강제로 합병되었단다.

그 총독부의 총독이 외숙부이고.

프렌치아 국민들이 그들의 압정 아래 고통받고 있다는데.

자신이 모든 걸 잘못 알고 있었다는데.

게다가 자신은 진짜 왕세자가 아니고 가짜 왕세자라는데.

어이가 없었다.

명백한 음모였고, 모략이었다.

외숙부가 그것이 진실이라 말하기 전까지는…….

한순간에 세계가 부서졌다.

‘내가 가짜라고?’

‘내가 왕세자가 아니라 노예였다고?’

‘이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니라고?’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믿기지도, 믿을 수도 없는 이야기.

정신이 그저 멍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꿈꾸던 세상은?’

외숙부는 그런 자신에게 말했다.

진짜가 되든 가짜가 되든 모두 자신의 선택이라고.

‘난 언제나 진짜였는데…….’

이 모두가 짜인 거짓이었다니.

그 거짓 덕분에 한심하고 천박한 자신이 10년을 버텼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맞았다.

자신은 그 거짓된 이야기에 속았기에 지난날들을 버텼다.

프렌치아만을 생각하며.

언젠가 돌아가 품게 될 국민들만을 생각하며.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의식의 시간을,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아무런 반항도 불만도 없이 버텨 냈다.

이 모든 게 나라를 위한 일이니까.

외숙부의 말이 맞았다.

그것이 없었다면 자신은 버텨 낼 수 없었을 거다.

사는 것 같지도 않은 삶.

진즉에 스스로 끝을 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체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없었다.

이제 와서 노예로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외숙부의 뜻을 따르고자 했다.

진짜고 가짜고.

외숙부가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그런데.

목이 한 번 떨어져 보니까 알겠다.

‘죽는 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가만히 누워 생각해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른다.

자신의 삶은 무시된 채, 자신에 관해 가짜다 진짜다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자식들.

대체 자기들이 뭔데?

자신의 삶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저들에게 뜨거운 분노가 끓어오른다.

감히.

제깟 것들이 무엇이길래.

‘이 몸을 가짜라 말한단 말인가!’

하얗게 타오르는 분노 속에서 문득 이리엘이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이 한 줄기 빛처럼 떨어졌다.

-남들이 가짜라고 한다고 살아온 삶이 가짜가 되나요.

-남들이 진짜라고 한다고 해서 살아온 삶이 진짜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저하가 지난 시간 동안 진심으로 살아왔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다면.

-저하의 삶은 언제나 진짜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

‘나는 가짜가 아니야.’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진짜로 살기 위해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에게 소리쳤다.

제국의 개로 사느니.

프렌치아를 위해서.

국민들을 위해서.

‘죽어야겠다고.’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삶에 미련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일 거다.

하지만 왜일까.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지금에도, 가슴은 한없이 충만해지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린 왕세자로서의 결단.

-사과하지.

-네가 진짜 이 나라의 왕세자다.

자신을 가짜라 치부하던 무엄한 녀석도 인정할 정도로, 조금 전의 자신은 진짜 프렌치아의 왕세자였다.

그거면 됐지.

‘봤지? 내가 진짜 왕세자라고.’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동시에 선명했던 의심마저 점차 빛을 잃어 간다.

깊고 짙은 어둠 속으로 잠겨 가는 듯했다.

그때였다.

새까만 어둠 위로 황금빛의 네모난 사각 창이 떠오른 것은.

그 사각 창 안에는 짧은 글귀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온통 어둠뿐인데도 그것이 보였다.

흐릿해지는 의식 탓에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맨 끝의 글은 간신히 읽어 냈다.

【……합니다.】

* * *

왕세자가 포털 너머로 사라지자, 불멸의 부대 또한 그 뒤를 따라 포털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태양처럼 붉었던 원형의 포털은 한 점으로 응축되며 폭발하듯 투명한 충격파를 터트렸다.

콰아아아아!

그 뒤를 따른 돌풍이, 상층부를 휘감으며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낸다.

구오오오오.

거센 마력의 파동이 모두 흩어지자, 두껍게 쌓여 있던 먹구름 중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툭.

포털이 있던 자리에는 둥글게 압축된 붉은색 마석이 떨어져 있었다.

고요한 장내.

그 위로 새하얀 눈송이가 나풀거리며 꽃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함박눈이었다.

이 계절에?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먹구름에서 새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제단의 상층부에만 내리는 게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니 섬 전역에 새하얀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눈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눈이 아닌, 눈과 비슷한 무언가임을 깨달았다.

하얀 눈송이가 풀에, 나무에, 숲에 닿자 온통 잿빛 일색이던 섬에 색이 피어나고 있었다.

“으하하하!”

움파움파족은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부족민들 모두가 움막 바깥으로 나와 색을 찾아가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모텔섬은 원래 이랬었다고!”

“맞아, 맞아!”

“완전히 까먹고 있었어!”

섬은 그들이 잊었던 색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조금씩 색을 잃어 갔던 섬.

그것과 함께 잃었던 삶의 터전.

움파움파족은 잿빛 세계로 쫓겨났던 자신들이, 과거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잊었던 일상으로의 회복.

축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오늘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야!”

“나도, 나도!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었지?”

“그건 왜?”

“몰라!”

“다들 환호하라!”

그리고 잃었던 일상을 되찾고 있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웬 눈?”

체리스는 손바닥에 내려앉는 작은 눈송이를 보았다.

이상하게도 차갑지 않았다.

“빨리 이리 와 봐요! 어서요!”

다급한 성화에 체리스의 고개가 들렸다.

목책 위에서 경계를 서던 이들이, 얼굴까지 붉히며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워낙 다급한 표정에 체리스는 단숨에 목책 위로 올랐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잿빛의 수림을 보았다.

점차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수림을 보았다.

펑펑 내리는 눈이 닿을 때마다 잿빛의 세계는 조금씩 자신의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녹색, 갈색, 붉은색, 푸른색.

울긋불긋 생기 있게 물들어 가는 세상.

눈을 쏟아 내며 점차 흩어지는 먹구름 사이로, 기다란 햇볕들이 사방에서 떨어져 내린다.

그 장관을 바라보던 체리스는, 텅 비어 있던 가슴속으로 무언가가 새로이 차오르는 듯한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광산에서 보낸 지난 8년.

삶에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던 시간들.

무채색의 세계와 다를 것 없던 자신의 삶이, 다시 색을 되찾아 가는 듯했다.

체리스는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옥 같던 삶이 마침내 끝나고야 만 것이다.

눈송이가 눈가에 툭 떨어졌다.

그의 볼을 타고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 * *

파바밧.

색을 되찾아 가던 섬의 전경을 바라보던 나는, 갑작스러운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회색빛 갈기를 흩날리는 늑대가 영롱한 빛을 띠는 붉은색 마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리엘 옆에 있던 그 늑대가 분명했다.

녀석은 바닥에 떨어진 그 붉은 마석을 그대로 입에 넣고 씹었으나.

“콰득!”

단단함에 씹히지 않았다.

그러자 녀석은 그것을 통째로 꿀꺽 삼켜 버렸다.

“…….”

그러고는 다시 유유히 사라지는 녀석.

뭐 하는 놈이지?

저거 먹고 괜찮으려나.

나는 고개를 내젓고는 색을 되찾고 있는 섬을 다시금 감상했다.

아무래도 이것이 이모텔의 본 모습이었던 듯하다.

왕세자의 희생으로 세상이 색을 되찾고 있었다.

‘수고했다.’

나는 그의 죽음을 짧게 기렸다.

‘제네스 쿤 프렌치아.’

이제는 나보다 그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찬가지로 섬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던 할렌트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또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마주치는 시선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인다.

내가 말했다.

“이제 끝을 보자, 할렌트 바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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