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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25화 (125/228)

제125화

제125화 죽고 싶은 남자 (1)

테이난가를 떠난 지 어느새 이틀.

지금 정도의 속도라면 프렌치아 북동부에 위치한 바레인가까지는 3주 정도면 도착할 듯했다.

루시안 쪽이 동부로 이동하는 시간을 염두에 두었기에 생각보다 여유로운 여정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리엘이 케이크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역시, 알렌 형님이 팬케이크 장인이라니까요.”

“뭘 이 정도 가지고. 촤하하!”

알렌은 꽤 자란 머리칼을 넘기며 멋진 척을 했다.

하여간 조금만 칭찬해 줘도 붕붕 날아오르지.

그래도 이리엘이 괜한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부드럽게 입에 녹는 것이 꽤 훌륭하다.

모두 내 세심한 조언들 덕분이지.

유난히도 평화로운 한때였다.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볕에 선선한 바람까지.

사건 터지기 딱 좋은 날이다.

사건 사고는 항상 평화로운 순간에 불쑥,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법이니까.

“꺄악!”

이리엘이 팬케이크를 먹다 말고 별안간 비명을 질렀다. 포크를 허공에 던진 그녀는 양손으로 하얗게 질린 제 볼을 감쌌다.

분명 뒤편에서 느껴졌던 기척은 네스의 것이었다.

그런데 웬 비명?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네스가 커다란 주둥이에 물고 있던 것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이리엘은 아무래도 그것을 보고 소리를 지른 듯한데.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 알렌도 조금 전까지 조리하던 팬을 쥐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네스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쓸데없는 걸 물고 왔군.”

네스가 바닥에 내려놓은 건 다름 아닌, 얼굴이 피범벅이 된 사내였다.

한눈에 봐도 네스 때문에 다친 건 아닌 듯했다.

물린 상처도 없고, 물렸다면 저리 살아 있지 못할 테니.

그것을 알아차린 알렌과 이리엘도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끄응…….”

사내의 입가에서 옅은 신음이 흘렀다.

정신을 차린 이리엘이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상세를 살폈다.

“이마가 찢어지기는 했는데, 큰 부상은 아닌 거 같아요.”

이리엘은 사내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네스에게 주의를 주었다.

“네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은 해치면 절대 안 돼. 알겠지?”

“깡! 깡!”

그새 몸집을 줄인 네스가 앙칼지게 짖었다.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이리엘이 녀석의 심경을 유추하자, 네스는 펄쩍펄쩍 뛰며 짖어 댔다. 알렌과 이리엘을 보며 번갈아 짖는 걸 보니 자신을 의심한 것을 탓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리엘은 네스를 쓰다듬으며 녀석을 달랬다.

“그래그래. 미안.”

이리엘이 사과를 하자 네스는 그제야 배를 홀라당 까뒤집고 재롱을 부렸다. 사람 말귀를 저렇게 잘 알아먹는다니. 볼수록 신통방통하다.

“휴. 이제 됐다.”

사내의 머리에 붕대를 감아 준 이리엘이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얼굴이 피범벅이라 심각해 보였지, 큰 부상은 아니었다.

“네스, 어디서 데리고 온 거야?”

이리엘의 물음에 네스는 펄쩍펄쩍 뛰며 짖어 댔다.

“아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알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아듣겠어?”

“아니요.”

이리엘이 민망한 듯 웃었다.

“알아듣겠냐.”

나는 알렌의 멍청한 물음에 핀잔을 주었다. 이리엘은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네스의 털을 쓰다듬으며 육포 쪼가리를 먹였다.

“잘했어, 네스. 이대로 숲속에 방치돼 있었으면 위험했을 거야.”

“깡!”

그렇게 잠깐의 소동이 끝나고, 마침 식사를 끝냈던 우리는 곧장 떠날 채비를 했다.

하지만 사내는 우리가 모든 준비를 마칠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별다른 외상이 없음에도 그랬다.

볼이 움푹 야위고 피부가 푸석푸석한 것으로 보아 근래 제대로 먹지 못한 듯하다.

아무래도 체력 손실이 커서 못 깨어나는 거 같은데.

알렌이 나를 보며 물었다.

“어떡하죠?”

이대로 버려두고 가도 되지만, 사람의 도리가 그게 아니다. 내가 말했다.

“일단 깨워 봐.”

“이봐요. 일어나 봐요.”

알렌이 사내의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기절한 놈이 그렇게 해서 일어나겠냐.”

“네? 그럼 어떻게 해요?”

“하여간.”

나는 말보다 행동으로, 친절하게 시범을 보였다.

쫙!

찰진 소리가 숲속을 울리는 동시에, 시체처럼 뻗어 있던 녀석이 관 뚜껑을 박차듯 펄쩍 뛰어올라 자리에 앉더니 눈을 끔벅끔벅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제 뺨을 부여잡은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우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와.”

알렌과 이리엘이 사내를 단번에 깨운 나를 보며 탄성을 토해 냈다.

마치 파렴치한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멀뚱히 앉아 있던 사내도 그들의 시선을 따라 나를 보더니 물었다.

“혹, 여기가 저승이오?”

“지금이라도 보내 줄 수는 있다만.”

내 무심한 답변에 그는 제 몸을 살피며 딴청을 피웠다.

“……아무래도 저승은 아닌가 보군.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요? 혹 구해 주셨소.”

“그래.”

“근데 왜 반말?”

“생명의 은인이 반말도 못 하나.”

“……나이가 한참 어린 듯하여.”

“나이가 어리면 생명의 은인이 반말도 못 하나.”

“그럼 나도 반말하지.”

스릉.

“하하, 농담입니다. 말씀 편히 하시죠. 참고로 저는 이게 편합니다.”

간사한 미소를 지은 사내는 다른 이들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혹시 제가 어쩌다 여기 있는지 상황을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사내의 물음에 답을 해 준 건 알렌이었다.

“저희도 가는 길에 쓰러져 계신 걸 응급조치를 해 드린 겁니다. 왜 다치셨는지 기억 안 나세요?”

“그렇군요. 일단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기절하기 직전의 기억이 흐릿하네요. 음……?”

미간을 좁히고 기억을 더듬던 사내는 네스를 발견하더니 눈을 크게 뜨며 제 무릎을 쳤다.

“아! 기억났습니다! 기절하기 직전에 집채만 한 늑대를 보았어요! 정말이지 무시무시했지요. 저는 그 녀석을 피해 도망치다가 그만……. 저것을 보니 번뜩 생각이 나는군요!”

“아.”

이리엘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는 늑대요?”

“……네.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어요?”

“역시, 이 녀석은 그 늑대와 새끼였군.”

그는 별안간 역정을 내며 네스를 가리켰다.

“내가 당신네들 늑대 때문에, 죽을 뻔했단 말입니다. 집채만 한 늑대가 위협을 하는데 어찌 도망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날 치료해 준 건 고맙지만, 갈 길이 급했는데 덕분에 지체돼 버린 데다 말도 없고 보다시피 짐도 없지 않습니까. 짐은 아마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찾을 수도 없을 겁니다. 맞아요. 분명 그리 기억합니다. 그러게, 그리 큰 늑대를 데리고 다니려면 목줄을 하고 다녀야지. 입마개도 꼭 착용하고. 지금도 여기 없는 걸 보니, 숲을 어슬렁거리나 본데. 그러다 큰일을 치를 것입니다!”

“죄송해요. 네스 때문에 많이 놀라셨나 봐요.”

이리엘의 사과에 그는 더욱 소리를 높였다.

“그렇대도!”

그의 강경한 태도에 이리엘이 나를 보았다.

“아무래도 도와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나는 그를 싸늘히 훑어보았다. 녀석은 헛기침을 하며 괜히 딴청을 피웠다.

흠.

분근착골을 해야 사실대로 말하려나.

내가 나답지 않게 고민하는 사이, 네스가 적의를 드러내며 짖어 댔다.

“깡! 깡! 깡!”

이리저리 팔딱거리며 사납게 짖어 대는 걸 보니 지금의 상황에 상당히 불만인 듯했다.

사내는 그것에 흠칫거리며 네스를 가리켰다.

“이보세요. 어리지만 벌써 사납지 않습니까. 대체 늑대는 왜 기르는 겁니까. 그리고 밖에 데리고 나올 때는 항상 목줄을 해야 한다고요.”

“깡! 깡!”

평소와 달리 사납게 짖어 대는 네스를 보던 이리엘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사내를 보았다.

“네스는 당신 말이 거짓이라는데요.”

“깡!”

“봤죠? 지금 당신 거짓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지금 늑대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저런다는 거요?”

“네. 잘 봐 봐요. 누가 봐도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짓고 있잖아요.”

이리엘의 말에 사내는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늑대가 사람 말을 알아들어 봐야 얼마나 알아듣겠습니까. 지금 내게 사례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요, 지금 이렇게 억울해하는 걸 보면 당신 말에 거짓이 있는 게 분명하다구요.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요.”

“나보다 늑대 말을 믿는다는 거요? 모두 사실이오!”

사내가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니, 네스는 콧잔등을 들썩이며 더욱 사납게 짖었다.

“이봐요! 아니라잖아요!”

이리엘인 눈을 치켜뜨자, 사내는 안 되겠는지 네스 가까이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이 녀석이 진짜 우리 말을 알아듣는지 확인해 보는 겁니다.”

그는 그르렁거리는 네스 앞에 쪼그려 앉더니 두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늑대한테 한번 말해 보세요. 내가 여태까지 한 말이 진실이라면 내 오른손에 발을 올려놓고, 거짓이라면 왼손에 발을 올려놓으라고. 늑대가 당신 말을 알아듣고 그대로 따른다면 내 인정하리다.”

“진짜죠?”

이리엘의 말에 사내는 픽 웃으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스, 말 들었지?”

“깡!”

네스는 자신 있다는 듯 힘차게 답했다.

“저 사람 말이 거짓이면 이 손에 발을 올려놓는 거야.”

“깡!”

“저 사람의 말이 거짓이니?”

“깡!”

몸을 들썩이며 크게 짖은 네스는 흥분했는지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다가 이내 오른발을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사내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쳤다.

퍼억!

단말마와 함께 날아가 풀숲으로 사라져 버리는 사내. 녀석이 데굴거리며 꾸에엑 지르는 비명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

우리는 잠시 그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스는 분이 덜 풀렸는지 사내를 향해 계속해서 짖어 댔다.

“깡! 깡!”

* * *

다시 여정에 오른 우리는 여전히 숲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우리의 옆으로 네스가 따라붙었다.

네스의 등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30대 중반 정도의 사내가 단단히 매여 있었다.

“끄응…….”

그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이제 깨어나려는 듯했다.

“잠시 쉬었다 가자.”

우리는 말을 멈추고 바닥에 내려섰다. 사내 또한 네스의 등에서 내려놓았다. 한쪽 뺨이 퉁퉁 부은 녀석의 몰골이 볼만했다.

내가 말했다.

“일어나라.”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지만, 그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깨워야겠군.”

“……끄응.”

그는 짧은 신음을 흘리며 그제야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알렌이 못마땅하다는 투로 그의 몸 상태를 전했다.

“현재 타박상이 심한 상태입니다. 당신, 우거진 풀숲이 몸을 받아 줘서 살았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조금 아쉽군.”

“네?”

시선을 돌린 알렌이 녀석을 가리키고는 제 머리통 옆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머리가 다친 것 같다는 수신호였다.

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죠?”

사내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입을 열었다.

“일단 거짓말을 해서 미안합니다. 갈 길이 급해서 그랬습니다.”

그가 처량한 시선을 들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혹, 프렌치아 사람입니까?”

“그런데요?”

“그럼 대화가 좀 통하겠군요. 사실 저는 바레인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는 왜요? 구경 가려고요?”

“아니요. 그래서는 아니고, 흰 사자가 바레인가를 멸문하기 전에.”

그가 쓰게 웃었다.

“제가 먼저 쳐들어갈 생각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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