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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26화 (126/228)

제126화

제126화 죽고 싶은 남자 (2)

우리는 바레인가를 쳐들어가겠다는 녀석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 자식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이리엘이 나를 보고는 심각하게 미간을 좁혔다.

“도시에 들르면 의사부터 찾아야 할까 봐요.”

이후, 우리는 이곳에서 노숙을 하기로 결정하고는 자리를 폈다. 마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던 탓이다.

눈앞에 머리가 돈 녀석은, 전후 사정이 어쨌든 네스에게 맞아서 생긴 부상이니 도시까지는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네스의 등에 묶어 놓으면 되니 번거로울 일도 없고.

짐짝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지 뭐.

“이렇게 맛있는 스프는 정말이지 오랜만입니다!”

사내는 붕대를 감은 불편한 몸으로 이리엘이 끓인 스프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릇까지 핥는 게 네스와 다를 게 없다. 그러곤 빈 그릇을 내밀었다.

벌써 세 그릇째였다.

“한 그릇 더 주시겠습니까!”

배에 걸신이라도 들어앉았나.

이리엘은 얼마 남지 않은 스프를 국자로 휘적거리며 나를 보았다.

“제네스 님은 더 안 드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리엘은 그제야 사내에게 한 그릇을 더 퍼 주었다. 사내는 민망한 듯 웃으며 그릇에 코를 박았다. 알렌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며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며칠 굶으신 거 아니죠?”

“맞습니다. 아마 3일 굶었을 겁니다.”

어쩐지.

3일 정도 굶으면 뵈는 게 없을 만도 하지.

한때 거지였던 나는 녀석의 상태를 온전히 이해했다. 걸신들린 줄 알았더니 배 속에 거지새끼가 들어앉아 있었군.

혀로 설거지를 한 그가 부른 배를 팡팡 두드리자 알렌이 은근슬쩍 말문을 떼었다.

“그런데 바레인가에는 왜 가려고 하는 겁니까.”

“예? 말하지 않았나요? 흰 사자가 도착하기 전에 제가 먼저 가야 한다고.”

“상태는 여전하네요.”

알렌이 나를 보며 고개를 내저으니 그는 억울한 듯 발작했다.

“저 멀쩡하다니까요!”

“먼저 가서 뭘 할 수 있는데요?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이리엘이 핀잔하듯 말하자, 사내는 뜨끔했는지 호탕한 웃음으로 무마하고는 자신의 뜻을 은근히 내비쳤다.

“하하. 그냥 그들에게 제대로 따지고 싶어서 가는 겁니다. 그러니 흰 사자에게 짓밟히기 전에 가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게라도 안 하면 억울해서 못 참겠거든요.”

미쳐서 이러는 건 아닌가 보군.

황당한 건 여전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려고요. 따진다고 그쪽에서 당신 말을 듣겠어요? 새끼 늑대한테도 한 대 맞고 뻗은 분이.”

“……상관없습니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니까요.”

“네?”

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그렇게라도 해야 할 거 같아 그러는 겁니다. 하하.”

호탕한 척 웃어 보였지만, 사내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누가 봐도 사연 있는 얼굴.

꾀죄죄하게 비쩍 마른 데다 붕대까지 하고 있어 더 그렇다.

알렌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성함도 묻지 않았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통성명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를 그만큼이나 짐짝 취급하고 있었다.

“아, 저는 마르켈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저희는-.”

알렌은 그에게 우리를 차례차례 소개한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사연이 있으신 거 같은데, 혹 그 사연을 물어도 될까요?”

“흠. 별로 듣기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그는 애석하게 웃으며 괜히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침통한 표정에 분위기가 무거워졌고, 사연에 대한 호기심은 깊어졌다.

하지만 딱히 묻지는 않았다.

듣지 않아도 한눈에 훤히 보이니까.

이 시국에 안타까운 사연들이야 거기서 거기지.

“말하기 힘드시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알렌의 배려에 잠시 침묵하던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바레인에 들를 계획은 없습니까?”

“스프나 마저 드세요.”

이리엘이 그의 빈 그릇에 남은 스프를 모두 주었다. 그는 반색하며 그릇을 들었다.

아무래도 민망해서 더 달라고 하지 못했었나 본데.

사내는 수저를 드는 와중에도 질문의 꼬리를 놓지 않았다.

“그러면 어느 쪽으로 가시는지라도…….”

그의 집요한 물음에 이리엘은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을 보냈다.

거짓말은 하기 싫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기도 싫은 듯 보였다.

빌붙을 심산인 게 빤히 보이는 탓.

내가 말했다.

“바레인으로 간다.”

나는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빌붙으면 떼어 놓으면 그만이니.

그래도 안 떨어지면 패면 되고.

내 말에,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은 그는 불편한 몸을 일으키더니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거머리 같은 놈인데?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당황한 알렌이 그를 일으키려 해도 그는 완강히 버텼다. 하지만 버텨 봤자지. 알렌은 그를 나무 뽑듯 뽑아 바로 앉혔다.

“…….”

녀석은 자신을 번쩍 들어서 앉힌 알렌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뭐 하는 짓이냐.”

내 말에 그는 다시금 세상에 더 없을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부탁인데 저를 바레인까지만 데려다주시겠습니까? 지금처럼 늑대 등에 매어 주셔도 됩니다. 가는 길도 모르고 챙겨 온 짐도 잃어버려서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염치없지만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머리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 뒤통수에서는 간절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벼랑 끝에 선 자가 내미는 손 같달까.

“왜 그렇게까지 바레인에 가려고 하지?”

일단 이유나 들어 보자는 심경이었다.

그는 그제야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의 굳은 얼굴 위로 모닥불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힘겹게 말문을 떼었다.

“……저는 3년 전에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흉이 알고 보니 할렌트 바레인이더군요.”

아녀자의 죽음의 원흉이 할렌트라고?

프렌치아 국민들이 받고 있을 모든 고통에 발을 걸치고 있을 녀석이지만, 녀석이 직접적인 원흉일 확률은 적었다.

아무리 변절자라고 해도 지나가던 아녀자를 제 손으로 죽이지는 않았을 테니.

나는 일단 잠자코 뒷말을 기다렸다.

“저도 그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자가 죽어 버렸지 뭡니까. 그러니 그의 가문인 바레인가에 가서라도 그의 죄를 낱낱이 밝히고 추궁해야 하지 않겠습니다.”

의도는 알겠으나 유의미한 행동은 아니었다.

“왜 할렌트 바레인이 네 아내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

“바레인가에 가고 싶다며.”

내 말에 사내의 눈빛이 번뜩였다.

“저, 정말입니까?”

“들어 보고.”

아직까지 녀석을 데려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괘념치 않았다.

네스 등에 묶어 데려가면 되니.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할렌트가 왜 녀석의 원수인지.

그는 이제야 말할 용기가 생겼는지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어 갔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3년 전에 집을 나섰던 아내가 실종되었습니다. 결혼한 지 2주년이 되던 날이었죠. 그런 그녀를 찾기 위해 저는 한동안 폐인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도망쳤다고, 어디선가 죽었을 거라고 말했지만, 저는 제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삼키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맛있는 저녁을 약속했던 아내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날 아침에만 해도 저를 상냥하게 깨워 줬던 아내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도망쳤을 리가 없잖습니까.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는데. 분명 어떤 사고를 당했거나, 어디선가 곤경에 빠진 채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근방을 미친놈처럼 헤매도 아내를 찾을 수 없더군요. 그렇다고 집을 떠날 수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서요…….”

사내는 입술을 꾹 물고는 증오가 담긴 목소리를 서늘하게 뱉었다.

“그런 아내의 소식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었습니다. 테이난가로부터 저는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가 인체 실험을 당하다 죽었다더군요. 실험을 기록한 장부에 제 아내의 죽음이 적혀 있었답니다……. 그 배후가 바로 총독, 할렌트입니다.”

그는 두 주먹을 움켜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게 같은 사람이 할 짓입니까?”

아무래도 이자는 테이난성 인근에 살던 자인 듯한데.

인체 실험의 배후에 대해서는 카드론이 은근히 흘린 듯했다.

본인의 권역 내에서 벌어진 일이니, 본인의 치부를 감추는 동시에 총독부에 반감을 높이려 했겠지.

사실이기도 했고.

“저는 그것을 알게 된 후부터 길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총독부로 가기도 전에 할렌트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저는 반드시 바레인가로 가야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고 잠깐의 적막이 일었다.

사연을 듣기 전과 후에 내 마음은 달라진 게 없었다.

소리쳐서 뭘 어쩌겠다고.

“그다음에는.”

“그다음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나는 단단하지만 공허한 그 답변 속에서 녀석의 의도를 간파했다.

죽겠다는 이야기군.

그는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흰 사자가 바레인가를 심판하겠다고 지목했습니다. 그들은 분명 멸문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그 전에 가서 따져야지요.”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이리엘의 물음이었다.

마르켈이 그들에게 어떻게 따지려는지는 모르겠다만, 여관에서 떠들든 길거리에서 떠들든 할렌트의 죄를 고하는 이를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죽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는 게지.

“상관없습니다.”

녀석의 반응은 역시나였다.

“남은 삶에 미련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죽겠다고요?”

이리엘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듣지도 않는 사람들한테 소리치고, 그냥 그렇게 죽겠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의미예요.”

“하하. 일단 계획이 그렇다는 거지요. 사실 저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늑대를 보고도 기절하는 사람 아닙니까. 겁이 원체 많습니다. 정 안되면 무너지는 바레인가라도 보고 와야지요.”

마르켈은 이리엘이 추궁해 오자 한 발 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안도의 숨을 짧게 내쉰 이리엘이 다시 물었다.

“참, 그러고 보니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네스가 위협 안 했죠?”

“예, 사실 그렇습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 같은 촌 나부랭이가 지도를 얼마나 잘 보겠습니까. 바레인에 가기 위해 부푼 포부를 안고 집을 나섰는데, 얼마 되지 않아 길을 잃어버렸지 뭡니까. 그렇게 이 숲을 3일 동안 헤맨 거 같습니다. 걸을 힘도 없어서 이제는 죽겠다 싶은 와중에 네스를 만난 것이지요.”

“아아.”

“네스는 아무런 위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한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마음이 급해 그랬습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인 그는, 옆에서 뼈를 씹으며 놀고 있는 네스에게도 사과를 건넸다.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으니 용서해다오.”

“깡! 깡!”

네스는 그런 그에게 사납게 짖더니 고개를 팩하고 돌렸다.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던 마르켈은 겁먹지 않은 척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허, 녀석도 참. 정말 용하군요. 사람 말을 이렇게나 잘 알아듣다니.”

“주인 닮아 그렇죠, 뭐.”

“제가 잘못했다고 잘 좀 말해 주세요.”

그는 내게 시선을 건네며 말했다.

“그럼 저를 바레인에 데려가 주시는 겁니까?”

그의 간절한 눈빛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자를 데려갈지 말지.

굳이 함께 데리고 갈 이유는 없었다.

번거롭고 짐 덩어리일 뿐이니까.

그런데 저 공허한 눈빛이 마음에 걸린다.

흠.

이 자식을 죽여, 살려.

나답지 않게 생각이 길어졌지만, 이내 나는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자는 의미였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일단 살리기로 했다.

어차피 가는 길이기도 하니.

* * *

바레인가의 깊은 내원.

“크르르르.”

그곳에서 짐승의 울음이 들려왔다.

얼굴을 덮는 거뭇한 투구 사이로 흐르는 그 서늘한 음성에 바람마저도 숨을 죽이는 듯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내리누르는 박력.

그런 흑기사의 수가 무려 50에 달했다.

그 자태를 바라보며 그 앞에 선 자는 허리를 꺾으며 박장대소했다.

“크헬헬헬헬!”

언제나처럼 경박하게 웃는 Dr. 주르하.

그는 완성된 자신의 강화기사들을 보며 언제나처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상태였다.

그간, 인체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

아무리 흰 사자라도 이들을 결코 이겨 낼 수 없을 터.

“이 녀석들이면 가능한 것이오?”

묵직한 음성에 주르하는 옆을 보았다.

할렌트와 닮은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헤일런스 바레인.

할렌트의 형제이자 현 바레인가의 가주를 맡고 있는 자.

주르하는 호탕하게 소리쳤다.

“물론이지! 염려는 붙들어 매거라! 흰 사자는 이제 이 몸 앞에서 하얀 고양이와 다름이 없으니. 이 정도 전력이면 녀석이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갈아먹을 수 있을 것이니라!”

주르하의 호언장담에 헤일런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이군. 이자가 마음에 든 것은.’

할렌트의 명을 따라 그를 극진히 대접하고 있었지만, 괴상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생김새를 보나 행실을 보나, 황제의 직속 친위대라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그랬던 그의 존재가 이렇게 든든하게 다가올 줄이야.

총독부를 꿰뚫고 할렌트의 목을 벤 흰사자가 바레인가를 심판하겠다고 지목했다.

대비할 수 있으면 대비해 보라는 선전 포고.

녀석의 오만한 태도가 구름을 꿰뚫고 있었다.

하나, 그가 여태까지 벌인 행보를 봤을 때 그것은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흰 사자 한 명에게 총독부의 세 개의 특임대 모두가 전멸했으니 말이다.

어찌저찌 그를 막아 낸다고 해도, 바레인가는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될 터.

결국, 흰 사자와의 격돌은 가문의 명운을 건 전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Dr. 주르하가 나서 주니 그로서는 상당히 든든한 일.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후 헤일런스가 떠나갔음에도, 주르하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 강화기사들의 갑옷을 마른 헝겊으로 닦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48번째 기사의 갑옷을 닦을 때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다시금 열렸다.

끼이익.

벌어지는 문틈 사이로 새롭게 등장한 이를 본 주르하는 썩어 문드러진 이를 활짝 내보였다.

내원 안으로 또 하나의 주르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새로 등장한 주르하는 나란히 도열한 강화기사들을 보며 감탄을 토해 냈다.

“낄낄낄. 엄청난 것들을 준비했군.”

“클클클. 당연하지. 이 몸이 한 일인데.”

“참으로 훌륭해.”

“이리 와라.”

“네가 와라.”

“빌어먹을.”

새로 온 주르하와 한차례 실랑이를 벌인 주르하는 투덜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새로 온 주르하가 경박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헬헬헬. 내가 몇 번째지?”

“네가 마지막이다.”

둘은 씩 웃으며 악수를 했다.

자신의 얼굴이지만 섬뜩하기 그지없다.

손을 맞잡는 동시에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온다.

시야를 멀게 할 정도로 강한 빛이 있은 뒤, 주르하는 더 이상 제 흉측한 몰골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다.

둘이었던 그가 하나가 된 것이다.

빈주먹을 움켜쥔 주르하는 이내 커다랗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심장에 담겨 있는 마력이 끝을 모르고 용솟음치고 있었다. 동시에 분신이 가지고 떠났던, 그리고 그가 새로 쌓아 올린 기억들이 머릿속에 새겨진다.

“크헤헤헤헬!”

웃음이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근 10년 만에 모든 분신을 하나로 모았다.

흰 사자를 상대함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게 하기 위해서.

녀석에게 불멸의 부대를 잃은 데다 그 할렌트마저 당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녀석의 숨통을 끊어 내야 한다.

“어서 오너라.”

그는 지금 막 관 뚜껑을 박차고 나온 시체 같은 얼굴을 사납게 일그러뜨렸다.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니.”

한차례 각오를 다진 그는 별안간 허리를 꺾으며 다시금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갈가리 찢긴 흰 사자가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푸흐흐흐흐!”

그러니 웃음을 참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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