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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27화 (127/228)

제127화

제127화 죽고 싶은 남자 (3)

너른 평야를 네스가 한 가닥 질풍이 되어 질주하고 있었다.

집채만 한 덩치를 가졌음에도 날렵하기 짝이 없다.

말과 속도를 맞추고 있음에도 여유로운 자태였다.

반면, 그 위에 매여 출렁이는 마르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말들도 네스를 안 무서워하는데.

물론, 영물이 된 네스가 말들을 잘 달래서(?)이지만.

사실 마르켈이 네스를 무서워하고 있다기보다는 극한의 멀미를 체험하고 있다는 게 조금 다르긴 하다.

한심해 보이는 것이야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매한가지이기는 하지만.

“끄어어…….”

그는 네스의 등에서 시체인 양 축 늘어져 신음을 흘려 댔다.

그와 함께 한 지도 어느덧 3주.

그간 매일 저리 이동했음에도 그는 한결같이 멀미에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던 속도가 점차 줄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서 속도를 조절하던 알렌이 고삐를 채며 말했다.

“여기서 쉬었다 가겠습니다.”

말에서 내린 알렌은 곧장 마르켈부터 네스의 등에서 내려 주었다.

“괜찮으세요?”

바닥에 내려선 그는 대답도 못 하고 무릎을 꿇은 채 네발짐승처럼 바닥을 기었다.

“우웨에엑!”

그러곤 풀숲에 먹은 것을 다시금 뱉어 냈다.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그새 궁금해진 듯했다.

알렌이 그의 등을 두드려 주며 낮게 웃었다.

“이제 다시 네스의 등에 묶일 일은 없을 겁니다.”

저편으로 바레인성이 보이고 있었다.

기다란 성벽에 묻은 웅장함이 시야에 담긴다.

……저곳이 바레인.

전생의 어머니가 나고 자란 곳.

“우웨에엑!”

마르켈의 구역질 소리가 상념을 흩트려 놓았다.

말을 탈 줄 알았으면 저런 고생은 하지 않았겠지만, 말 타는 법까지 가르치며 데리고 올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가 네스의 등에 묶인 신세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끄응.”

게울 것을 다 게워 냈는지 퍼렇게 질린 마르켈이 평야에 대(大)자로 뻗어 신음을 삼켰다.

이리엘이 아침 인사처럼 자연스레 말했다.

“괜찮아요?”

“하하, 물론이죠. 이 정도쯤이야 이제 익숙해졌-.”

말하다 말고 다시금 구역질을 하는 마르켈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3주쯤 되니 일행들과도 어느새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었다.

알렌이 그런 그의 등을 다시 두드려 주었다.

“이제부터는 저와 함께 말을 타고 이동할 겁니다. 네스도 본체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바레인에 가까이 왔거든요.”

소매로 입가를 슥 닦은 마르켈은, 그제야 허리를 펴고 저 멀리 넘실거리는 바레인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가로 여러 감정들이 겹겹이 쌓인다.

“……저기가 바레인이군요.”

“예.”

그는 기쁜 듯하면서도 슬픈 듯하면서도 개운해 보이기도 했고,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바레인에 도착해서인지, 구역질을 끝내서인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시선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잠시 평야에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바레인을 향해 다시 나아갔다.

아직 이른 아침임에도 성문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흰 사자의 선전 포고 때문에 몰린 것인지, 평소에도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레인가는 성을 폐쇄하지 않고 평소처럼 지내고 있는 듯 보였다.

꼴에 자존심은 있다 이거지.

“신분증을 확인하겠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검문소를 넘었다.

성문 안쪽으로는 수도만큼은 아니지만 현 프렌치아의 정점에 선 가문의 위명에 걸맞은 대도시가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저편에 보이는 바레인가(家).

그들의 표상인 가이어 울프가 파란 창공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르켈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왔다.

어찌나 허리를 깊게 접는지 땅바닥에 머리를 박을 기세였다.

“혼자서 괜찮겠어요?”

이리엘의 물음에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나이가 몇인데. 걱정들 마세요. 여기까지 도움을 받은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덕분에 오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간만에 많이 웃은 거 같아요.”

“토도 많이 했죠.”

이리엘의 말에 그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네스의 신세를 많이 졌죠. 고맙다, 네스.”

네스를 쓰다듬어 보려던 마르켈은 여전히 그르렁거리는 네스 때문에 손길을 뗐다. 이리엘이 그런 네스의 갈기를 헝클며 웃었다.

“아직도 삐진 게 안 풀렸나 보네요.”

“깡!”

“그러게 말입니다.”

마르켈은 그런 네스를 보며 씁쓸히 웃었다.

알렌이 염려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우리는 그가 이곳에서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3주가량 함께하며 정도 들었을 테니 걱정이 되겠지.

나는 그를 잠자코 보고 있었다.

“오는 내내 많이 생각해 봤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숙소부터 잡고 고민해 보려고요. 여기 와 보니 심장이 벌렁거려서 발도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거 있죠. 하하.”

그는 민망한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알렌과 이리엘은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녀석의 상태를 보아 계획을 실행에 옮길 거 같지 않은가 보다.

이리엘이 말했다.

“여비는 있고요?”

“그럼요. 덕분에 아낄 수 있어서 충분합니다.”

그는 가슴팍을 툭툭 쳤다.

집에서 챙겨 왔던 짐은 모조리 잃어버렸지만, 다행히 돈은 그의 안주머니에 있어 돌아갈 여비도 충분하다고 했다.

알렌이 도시들을 지나며 야금야금 늘어난 그의 조촐한 짐을 챙겨 주었다.

“마르켈 씨 마음은 잘 알지만, 바레인가가 무너지는 것만 봐도 많은 위로가 될 겁니다.”

“맞아요. 아내분을 뵌 적은 없지만, 마르켈 씨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 지금까지 지켜본 마르켈 씨를 보면 알 수 있다고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아직 젊으니 앞날이 창창하시잖아요.”

“그럴까요……?”

“그럼요. 살아가다 보면 다시 행복을 찾는 순간이 분명 올 거예요. 그러니까 바레인가가 무너지는 걸 보는 것으로 마음의 고통을 털어 보세요.”

알렌과 이리엘의 진심 어린 위로에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끝까지 신세만 지는군요. 세 분이 없었다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저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죽어도 잊지 못할 만큼의 충분한 호의를 받았으니 말이죠.”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는 작별을 고했다.

“그럼 평안한 여정 되십시오.”

알렌과 이리엘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행복하세요!”

싱긋 웃은 그는 금세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알렌과 이리엘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가겠다는 그를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었다. 우리 또한 바레인 지부로 가야 했고.

이리엘이 나를 올려보며 말했다.

“괜한 짓은 안 하겠죠?”

“그럴 시간도 없을 거다.”

“예?”

“오늘 밤에 끝장 볼 생각이니.”

“아.”

태양이 중천에 올라 있었다.

밤까지는 시간이 넉넉했다. 적들의 심판을 내일로 넘길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 본 마르켈의 성정을 봤을 때, 오자마자 곧장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터.

이래저래 고민하다 각오를 다진다고 해도 이미 상황은 끝난 후일 거였다.

죽을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하겠지.

이리엘은 그제야 마음이 완전히 놓인다는 듯 웃었다.

“다행이네요.”

“참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 때문에.”

알렌이 씁쓸하게 입술을 비집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어떻게 같은 인간이 그런 짓을.”

나는 침통한 그들에게 말했다.

“지부에는 너희들끼리 가 있어라.”

“네?”

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따로 들를 곳이 있다.”

“여기 길도 모르시잖아요. 바레인에 와 본 적 있어요?”

“아니.”

둘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대강 말했다.

“그냥 많이 듣고 자랐다.”

“에? 진짜요? 누구한테요?”

내가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내려다보자, 이리엘은 볼을 긁으며 말을 이었다.

“말하기 싫음 말구요.”

“어머니의 고향이다.”

내 말에, 이리엘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왜. 나는 어머니도 없을까 봐?”

내 말에, 이리엘은 화르르 불타올랐다.

“아니 이 사람이, 사람을 뭐로 보고. 제가 그런 쓰레기 같은 생각을 했겠어요!”

“아니면 말고.”

“되게 착각하고 계신 거 같은데 저 그렇게 못된 애 아니에요. 생각보다 엄청 착하다구요. 참하기도 하고요. 가끔은 조신하기도 할걸요. 알겠어요?”

안 어울리는 것들만 잔뜩 갖다 붙이는군.

나는 알렌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참한 애 데리고 먼저 가 있어.”

알렌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심히 다녀오세요.”

* * *

바레인 외곽에 솟은 야트막한 언덕.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작은 동산이었다.

나는 그 사이로 난 작은 소로를 따라 걸었다.

하늘거리는 바람이 노란 꽃잎을 사락 쓸고 지나간다.

날도 좋고 경관도 좋았다.

그 정상에 오르자 저 멀리 바레인가의 성이 보였다.

그곳에서도 이곳이 보일 터였다.

어머니는 성에서 이 야트막한 언덕을 자주 보셨다고 했다.

성에서 보면 꼭 달걀노른자 같다나.

나는 어머니가 언젠가 보았을 풍경 안에 서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어머니가 바라보던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터였다.

내 눈에 담기는 저 내성도 마찬가지겠고.

왠지 어렸을 적 어머니와 시선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어머니에게 들었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의식의 수면 위로 기포처럼 하나둘 떠오른다.

예절을 익히며 실수했던 이야기들.

내원을 뛰놀다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던 이야기.

자신과 놀아 주지 않는 오라비들을 몰래 골탕 먹였던 이야기.

외조부께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던 이야기.

여러 이야기가 실타래 풀리듯 흘러나와 눈앞에서 선명히 흐른다.

전생의 기억임에도 그랬다.

사실 내가 추억하고 있는 어머니는 지금의 나를 낳아 주신 분은 아니었다.

전생의 어머니지.

하지만 이번 생애는 어머니의 존재를 갖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지금 발렌시아 대륙에 있기 때문일까?

왜인지 전생의 어머니가 지금의 내 어머니처럼 느껴진다.

나는 커다란 고목나무에 기대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선선한 바람이 머리칼을 쓸고 지나갔다.

그 안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듯하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들었다.

어머니의 고향에 와서인지, 전생의 삶에서부터 실려 온 것임에도 선명히 들렸다.

-내가 자란 바레인은 말이야.

어머니의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어머니 덕분에 나는 와 보지도 않은 바레인을 좋아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이 도시를 그리워하셨던 것 같다.

-내 방에서 노란 언덕을 보고 있자면 꼭 노른자 같지 뭐니.

-봄이 오면 항상 유채꽃이 덮인 언덕을 갔어. 가만히 누워서 바람을 맞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단다.

-바레인에 가 보고 싶다고?

-그럼 같이 아버지께 허락을 맡아 보자.

-다음 생일 때 같이 갈까?

-그래. 다음 생일이 오면 그 기념으로 함께 가 보자.

나와 어머니는 그리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나는 그 이후로 생일을 맞이하지 못했으니까.

우리의 시간은 거기서 멈춰 있었다.

나는 어리고, 어머니는 여전히 아름다운 채로.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러고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어렸을 적처럼 이야기를 듣는 꿈.

어머니의 미소를 보았고 내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길을 느꼈다.

꿈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모든 행복이 끝에서는 산산이 부서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했다.

그렇게 얼마나 잠들어 있었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하늘은 어느새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나는 꿈의 내용을 되짚으며 쓰게 웃었다.

“이 나이 먹고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나이 마흔여섯에 어머니 무릎을 베는 꿈을 꾸고 자빠졌으니.

나 참.

애도 아니고.

아무래도 전생의 감정에 너무 깊게 빠져 있었던 듯하다.

전생의 기억은 여전히 열다섯 살에 머무르고 있으니.

그래도 간만에 마음이 평안하다.

그렇게라도 다시 뵐 수 있어서 좋았고.

툭툭.

나는 몸을 일으켜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시선에는 노을빛에 물든 유채꽃 무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머니께 말로만 들었던 장소.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함께 올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걸.

나는 그 풍경을 빤히 바라보다가 저 멀리 보이는 내성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머니가 그리워하셨던 고향이자,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가득 품고 있는.

어머니 형제들의 가문.

나는 지금,

그 바레인가(家)를 멸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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