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제135화 작렬하는 태양 (2)
리포드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연실 기침을 해 댔다.
“컥! 콜록! 콜록!”
잠시 후, 간신히 숨을 돌린 그는 눈앞에 연기를 신경질적으로 흩어 놓으며 루시안을 쏘아보았다.
“빌어먹을! 지금 나랑 장난쳐? 말이 되는 소리를 지껄여야 믿는 시늉이라도 하지! 뭐? 이번 겨울? 이 새끼들이 누굴 X신으로 아나!”
뙤약볕처럼 뜨거운 눈동자가 자신을 직시하고 있음에도, 루시안은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입을 열었다.
“반응을 보니, 저보다 빠르게 프렌치아를 독립시킬 방안은 없으신가 보군요.”
“뭐? 이 자식이!”
“그러니 제가 왕이 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안면에 철을 두른 듯한 그의 태도에 리포드는 황당한 눈빛으로 옆에 앉은 레이나와 사르페를 번갈아 보았다.
“지금 내 귀가 어떻게 된 거야? 나 제대로 듣고 있는 거 맞지?”
레이나가 안경을 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적어도 귀는 이상 없으세요.”
“본인의 건강을 챙기기 전에 제게 독립할 방도가 무엇인지 묻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 꽤 자신있나 본데. 그럼 한번 들어나 봅시다. 그 방안이란 게 대체 뭐요.”
그의 눈은 여전히 용광로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다면 이 판을 당장에라도 뒤엎을 심산이었다.
루시안은 평온한 태도로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해 나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태양을 품은 듯 뜨겁던 눈동자는 열기를 식혀 가더니, 이내 파르르 흔들렸다.
대략적인 상황을 전하고 루시안은 말을 마무리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합병이 완료되면 그때 말씀드리지요.”
궐련이 홀로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가만히 침묵을 지키던 리포드는 한결 차분해진 태도로 입을 열었다.
“자칫 계획대로 안 되면?”
“독립이 조금 더 늦어질 뿐이죠.”
“뭐, 터무니없기는 하지만 말이 아예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군.”
확실히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 작전은 작렬하는 태양의 합병과 혁명의 칼의 합병을 가정하고 있지 않소.”
“그렇습니다.”
“내가 합병을 할 거라고 생각하시오?”
“네.”
바로 나오는 대답에 리포드는 뒤틀린 시선을 던졌다. 이 빌어먹을 자식은 대답에 조금의 망설임이 없다.
“자신감이 충만하시구만.”
“안 하실 생각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럴 리는 없죠.”
리포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청개구리 심보가 고개를 번쩍 든다.
왜 이렇게 확신하고 있는 건데.
이런 식이면 하려던 합병도 하기 싫어지지.
리포드는 애써 화를 삭이며 말했다.
“왜 그럴 리가 없지?”
“국민을 위해서 독립하신다면서요.”
“그랬지.”
“합병하는 것으로 독립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합병을 주저하죠?”
“…….”
리포드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제가 당신보다 왕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음은 명확한 독립의 계획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증명되었을 텐데요.”
뭐, 그의 말이 맞기는 하다.
자신에게는 구체적인 독립의 방안이 없지만, 그에게는 있다. 그는 흰 사자라는 보검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굽이치는 해협과의 합병도 이루어 냈다.
자신이 어떻게 엉덩이를 비벼 볼 수준은 아니었다.
“그 부분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까지 일궈 놓은 모든 걸 갖다 바칠 수는 없지 않소. 내 밑으로 줄줄이 달린 입들이 얼만데.”
“당신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잘 아는군. 협상을 하려면 말이오, 뭘 줄 수 있는지도 얘기해야 하지 않겠소?”
이야기가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보다 실질적인 이야기.
리포드는 지금껏 작렬하는 태양을 위해 일한 자들의 실질적인 미래와 이익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의 값을 제대로 받아 내겠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독립이 이뤄진다고 해도 저들끼리만 이 나라를 먹고, 자신과 부하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될 수 있으니까.
합병 전에 부하 놈들의 미래와 그간의 노고에 대한 대가를 확실히 해 놓아야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차별이 없을 거라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독립이 이뤄진다면 프렌치아에는 많은 인재가 필요할 겁니다. 그들이 설 자리는 충분히 많습니다.”
“그런 허울적인 이야기 말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했으면 하는데. 아무 생각도 없이 오지는 않았을 거 아니오.”
“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지금 상황에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군요.”
“뭐요?”
“당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으나, 그간 따로 떨어져 있던 독립군이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그것에 있어 계산적인 이야기가 앞서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은 아니죠.”
“하. 무슨 개똥같은 소리요. 뭐 그럼 그딴 이야기들은 합병을 결정한 후에나 나누자는 얘기인가!”
“그게 맞지 않을까요.”
“이거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구만!”
리포드의 눈에 금세 다시 불이 붙었다.
일단 도장부터 찍고 합의하자니.
“그럼 우리는 주는 대로 받아먹어라 이 말이오?”
“아니요. 독립군의 합병은 프렌치아의 독립이라는 대의 아래, 국민의 평안을 앞세운 대의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부가적인 것들은 그다음이죠.”
“아주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있군. 꼭 사기꾼 새끼들이 계약 전에 그런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지.”
“번지르르한 소리라.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국민은 작렬하는 태양 소속의 독립군들밖에 없습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국민에 저도 포함이 되느냐는 말입니다.”
일순, 말문이 목구멍에서 턱하고 막힌다.
그사이 루시안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거느리고 있는 이들을 제외한, 북부와 서부와 남부에 있는 모든 국민들. 거기서 각자의 세력에 소속되어 프렌치아를 위해 싸우고 있는 독립군들. 그 모든 사람이 당신의 국민에 포함되냐는 말입니다.”
루시안은 리포드를 직시한 채 말을 계속했다.
“그저 당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면 나라의 독립은 커다란 의미를 갖지 못하겠지요. 이미 자리를 잡고 잘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신들만의 안위라.
동부만이 프렌치아 국민인가?
아니다.
북부, 남부, 서부.
그곳에 사는 모든 이들이 프렌치아의 국민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에게 그들도 돌봐야 할 국민이라고 묻는다면 말문이 막힌다.
그 말에 리포드는 불현듯 처음 독립을 위해 움직였던 걸음을 기억해냈다.
처음부터 독립군 파벌을 이끌겠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핍박당하는 국민들이 안타까워서.
가진 것이 힘밖에 없기에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라를 빼앗은 제국군을 몰아내고 예전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
그는 독립군이 되었고.
작렬하는 태양의 수장이 되었고.
동부를 대표하는 독립군 파벌을 이루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자신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았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부터 자신은 작렬하는 태양을 위해 싸워 왔다.
동부만을 위해 싸워 왔다.
‘그들만이 나의 국민이었다.’
북부와 서부 그리고 남부의 국민들.
언젠가 하나의 프렌치아에 속했던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독립을 위해 싸우는 세력들.
그들까지 국민으로 품을 여력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품 안에 있는 이들만 챙기기에 급급했다.
리포드의 눈빛이 멍하게 풀어졌다.
그는 조금 전 루시안의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어느새 자신의 프렌치아가 좁아져 있었음을.
머리 위로 바윗덩어리가 쿵하고 떨어진 거 같았다.
뭐랄까.
단단한 세계가 부서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자신의 한계를 선연히 깨달았다.
“…….”
가만히 침묵하던 그는 새 궐련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은 후에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가만히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 푸른 눈을 마주하며 리포드는 말문을 뗐다.
“그럼 당신은 그들 모두를 품고 있소? 나까지, 당신의 국민이냐는 말이오.”
“물론이지요. 우리는 같은 프렌치아 사람이 아닙니까.”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어떤 나라를 원합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물었다.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었습니까.”
그의 질문이 무겁게 떨어져 내린다.
점차로 궁지에 몰리는 듯했다.
있었다. 자신도 꿈꾸던 나라가.
하나, 깊지 않았다. 구체적이지 않았다.
눈앞에 전장만을 바라보느라 생각지 못했다.
그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던 리포드는 옆에 앉아 있는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레이나.”
“예?”
“네가 말해 봐.”
“……·저 용병단 꾸리느라 바빴거든요!”
레이나가 얼굴을 붉히며 빽 소리를 질렀다.
리포드는 궐련을 깊게 빨고는 루시안을 보았다.
“우리 사정은 보다시피요. 그럼 댁들은 어떤 나라를 준비했는데.”
씩 웃은 루시안이 입을 떼었다.
그 말간 웃음에 리포드는 그가 애초부터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만들 나라를 독립군 합병 이전에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리포드는 마음에 세워져 있던 드높은 장벽이 헐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성벽처럼 단단히 쌓아 올려져 있던. 아귀가 딱딱 맞아 빈틈없이 굳건했던 그 돌들이 중간중간 이가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루시안의 이야기가 끝나자, 리포드는 제 손에 들고 있던 궐련을 재떨이에 비벼 껐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더 나은 나라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것에 얼마나 진심인지도.
이런 자가 왕이라면.
이렇게 국민을 위하는 자가 왕이 된다면.
“살기는 좋은 나라겠군.”
“예.”
“하나, 그렇게 안 되면.”
“될 때까지 해야지요.”
“그래도 안 되면.”
“그래도 계속해야지요.”
“계속해도 안 되면.”
“죽을 때까지 해야지요.”
“……그 말, 진심이오?”
리포드가 물었다.
루시안은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예.”
“거짓이면 어쩔 거요. 혹 왕이 되어 마음이 변한다던가.”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질문이었음에도 루시안은 친절히 답했다.
“제 목을 베세요.”
“그럼 되겠군.”
리포드는 픽 웃었다.
독립군도 하는 마당에, 반란군은 못 하겠는가.
리포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의심도 불만도 참 많은 사람이오. 듣기 좋은 번지르르한 이야기에 절대 안 넘어간다고. 나는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믿는 사람이거든. 드래곤이 오크를 잡아먹는다고 해도 안 믿는 사람이라고, 내가.”
그의 눈동자는 지금까지 중 가장 뜨거운 불길을 피워 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당신 말을 어떻게 믿겠소.”
하나, 그 안에 담긴 불꽃의 색깔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그래도.”
보다 뜨겁고, 보다 생동감 있는.
“지금보다는 나을 거 같네.”
리포드는 씩 웃으며 레이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줘 봐.”
그의 말에 레이나는 챙겨 온 두꺼운 서류 뭉치를 그에게 건넸다.
“이게 뭔 줄 아시오?”
서류를 건네받은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가 일주일간 만든 협상안이오. 그간 이거 만드느라 바빴소. 합병을 거절할 명문은 마땅히 없을 거 같고. 흰 사자의 위세도 이리 대단하니, 힘을 합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뼈 빠지도록 만들었소.”
손에 쥔 서류 더미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합병해 주는 대가로 얻어 낼 작위와 보상금들, 이것저것 계산하느라 머리가 빠개지는 줄 알았지. 내 부하 놈들, 그동안 못난 대장 만나서 고생만 X 빠지게 했는데. 뒈진 새끼들도 X나게 많은데. 그놈들이 싸질러놓은 입만 몇 갠데. 빌어먹을. 내가 좀 챙겨 줘야 할 거 아니오.”
그는 조소하듯 입매를 비틀었다.
“그래서 합병하는 조건으로 그들의 배 좀 채워 주려고 했지. 당신들 밑으로 들어가 열심히 싸웠는데 나중에 팽 당하면 어쩌나 싶더군. 그러니 미리 챙길 건 챙겨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X발, 이건 아닌 거 같소.”
그는 서류 뭉치를 세게 움켜쥐며 말했다.
“당신이랑 이야기하고 나니까 아무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 죽은 놈들도 그렇고, 아직도 살아서 뺑이 치는 놈들도 그렇고, 고작 이거 얻자고 한 일이 아닌데. 그들이 목숨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이런 게 아닌데.”
그는 힘주어 말했다.
“그 자식들이 목숨을 바치면서 지켜 낸 건, 그 자식들이 제 자식들한테 물려주고 싶었던 건.”
“몇 푼의 돈이 아니라 멀쩡한 나라였을 텐데.”
“그런데 내가 그런 나라를 만들어 주겠다는 사람한테 그들의 목숨값을 흥정하고 있으니.”
“그건 그들을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모욕하는 느낌이 드는군.”
“그래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어.”
그는 별안간 두툼한 손으로 서류 더미를 북북 찢어 자신의 머리 위로 던졌다.
파밧!
마력에 의해 산산이 찢긴 종이 쪼가리들이 허공에 꽃잎처럼 흩날렸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이 짓 때려치울까 수없이 고민했는데, 왜 고민했는지 이제야 알겠어.”
그는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나는 우두머리를 할 그릇이 아니야.’
그의 주변으로 파쇄된 종이 쪼가리들이 함박눈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나! 작렬하는 태양의 수장, 리포드 레더만 아레우스는! 지금부터 당신을!”
그는 두 손으로 책상을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짚으며 말했다.
“왕으로 모시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