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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40화 (140/228)

제140화

제140화 레트로이나 6검 (2)

이리엘이 침대에 누워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으어어어.”

“으어어어.”

옆에 있는 알렌도 마찬가지.

눈썹을 절로 꿈틀거리게 만드는 소리였다.

“조용히들 해라.”

평화롭다 못해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두 녀석 모두 마른 사막을 걷는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다. 계속해서 움직였던 지금까지와 달리 한 곳에 2주나 있으려니 좀이 쑤신 듯한데. 네스 또한 너른 자연을 달리지 못해 바닥에 푹 엎드린 채 제 발만 핥아 댔다.

“굴려 주랴?”

“아니요!”

내 말에 둘은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다. 이리엘이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손을 번쩍 들었다.

“그거 말고 우리 소풍 가요, 소풍!”

알렌도 곧바로 흥미를 보였다.

“소풍?”

“네! 소풍이요. 도시락을 싸서 나들이 가는 거예요. 근처에 풍경 좋고 경치 좋은 곳이 있을 거 아녜요. 우리 매번 지나만 다녔지, 명소 같은 곳을 구경 간 적은 없잖아요.”

“하긴 그러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나가서 바람 좀 쐬는 게 좋겠어.”

알렌이 동조하고, 네스 또한 꼬리를 살랑거리며 깡깡 짖었다.

“마음대로.”

나는 의자에 늘어지며 등을 기댔다.

내 방에 몰려와 시끄럽게 안 굴기만 한다면 저들이 뭘 하든 상관이 없었다.

“제네스 님도 가실 거죠?”

알렌이 물었다.

“당연히 가야죠! 우리는 한 몸인데!”

이리엘이 말했다.

“깡! 깡!”

네스까지 나를 보았다.

“너네끼리 가라.”

나는 이렇게 무료한 일상이 기꺼운 사람이다. 햇볕을 맞으며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같이 가요.”

“맞습니다. 함께 가시죠.”

포기하지 않는 둘을 나는 한마디로 제압했다.

“굴려 주랴?”

그들은 동시에 입을 합, 다물었다. 그제도 심심하다고 땡깡을 부려서 수련을 시켜 주겠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굴렸던 탓이다.

그간 묵은 체증을 한 번에 씻어 내렸었지.

그 뒤로는 내 수련 방식에 저리 학을 떼고 있다.

“그럼 저희끼리 다녀와요?”

“그래.”

“후회 안 하시죠?”

후회는 무슨.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뭐, 그럼 저희끼리 다녀오겠습니다.”

알렌이 입맛을 다시며 몸을 일으켰다. 둘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녀석들이 가고 나서야 고즈넉한 적막이 찾아왔다.

나는 조용한 방에서 홀로 흔들의자에 기대 햇볕을 받았다.

역시 가만히 있는 게 최고다.

아무것도 베지 않고.

누구도 죽이지 않고.

아무런 목적 없이, 치열함 없이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거.

지금껏 검만을 휘둘러 온 내 생애 필요한 시간들.

나는 가만히 그 여유를 즐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깡! 깡!”

창가에서 네스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창을 보았다. 네스가 창에 달라붙어 낑낑거리고 있었다.

뭔데.

창을 열어 주니, 방 안으로 들어온 녀석이 발라당 드러누워 제 목에 매여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전서랑(狼)도 아니고.

나는 녀석의 목에 묶여 있던 쪽지를 펼쳐 보았다.

-맛있는 바비큐와 명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간 때가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먹고는 살아야지.

“앞장서라.”

내 말에 벌떡 일어난 네스는 지붕 위를 질풍처럼 내달렸다. 녀석 또한 고기 생각에 이미 눈이 돌아간 듯했다.

나는 가볍게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도시를 지나 반듯이 닦인 가도를 내달린 나는, 흐르는 계곡이 한눈에 담기는 절경 앞에 와 있었다.

저편에 알렌과 이리엘이 보였다.

작렬하는 태양 소속의 사르페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주위로 낯선 이들도 보였다.

합석한 듯한데.

나는 그들 주위에서 걸음을 멈췄다.

“깡! 깡!”

네스가 자신이 왔음을 알리자, 알렌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제네스 님! 이쪽입니다.”

노을이 진 세상 때문인지, 얼굴이 벌써 불그스름하다.

눈을 보니 벌써 한잔했군.

“이분들이 글쎄 돼지를 잡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도 그래서 합석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만 입이 아니잖습니까. 당연히 제네스 님도 함께하셔야죠!”

알렌은 내가 먹을 고기를 챙겨 주며 주저리주저리 말했다.

“아. 이 친구가 자네들이 말한 자인가 보군.”

“네네.”

“편히 즐기시게. 음식과 술은 충분하니.”

중년에 이른 사내가 말했다. 나는 그를 보았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녀석의 기도가 범상치 않았다. 기세를 드러내지 않았기에 뿌연 구름 속에 가려져 있는 듯하지만, 나는 그 안에 가려진 실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온 이들 또한 모두 그랬다.

그들 또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총 여섯 명의 남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자들.

그들 또한 내게서 무언가를 느낀 듯했다.

그들의 경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하는 나와 달리, 그들에게 나는 짙은 운무에 가려져 있는 존재처럼 확인되지 않을 거다.

하나, 이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놀라운 일일 테지.

“나는 따로 먹지.”

알렌이 챙겨 준 고기와 옆에 놓인 새 술병을 챙긴 나는, 고목의 나무 둥치로 가 풀썩 앉았다.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제네스 님이 낯을 많이 가려서.”

알렌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을 오해한 탓이다.

“자자. 일단 이 시간을 즐기고 보자고!”

개중 단발머리를 한 여인이 내게 쏠린 관심을 흩어 놓았다.

지금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다시금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중 내게 처음 말을 건넸던 중년의 사내가 다가왔다.

나는 모르는 척 술을 마셨다.

알코올이 묵직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고기도 제법 잘 구웠다.

딱 보니 알렌의 솜씨였다.

안 그래도 녀석은 자신이 고기 굽기의 장인이라며 콧대를 세우고 있었다.

“다들 신이 났군. 나이가 들면 함께 어울리기보다 젊은이들을 구경하는 게 더 재밌는 법이지.”

그는 내 옆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정신 빠진 놈들 사이에서 홀로 제정신인 자였다.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참으로 재밌지 않나?”

“재미있군.”

이 상황이 재밌기는 했다. 어이가 없기도 했고. 저 녀석들은 이들이 누군지 알고 함께 합석을 하고 잡담을 나누고 있는가.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들에게는 주르아든 왕국에서 왔다고 말했네. 그저 하루 보고 말 사이인데, 불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너희야 그렇겠지.”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군.”

“너희가 레트로이나 6검이냐.”

“그렇네.”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자네가 흰 사자인가?”

“그래.”

나 또한 순순히 인정했다.

“생각보다 너무 젊군.”

“살 만큼 살았다.”

내 말에 그는 픽 웃었다.

“그런가. 이렇게 만날 줄은 또 몰랐구만. 케이언이라고 하네.”

“제네스.”

그는 시끌벅적하게 구는 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부하 놈들이 많이 못났지만, 방심하지는 말게.”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독립군이라지.”

“지나친 관심이군.”

우리는 얼마 뒤 생사결을 나눌 상대였다.

우연히 자리가 마련되었다지만, 대화를 나누는 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녀석도 그걸 모르지 않을 터.

“그렇기는 하지만, 괜히 마음이 쓰이더군.”

그가 씁쓸히 말을 이었다.

“오면서 총독부의 작태를 보았네. 깊게 보지 않았음에도 불합리하더군.”

“그래서?”

“그냥, 제국의 이름을 빌려 사과하고 싶었네.”

“네가 할 것도, 나한테 할 것도 아니지.”

“그렇기는 하네만, 그래도.”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칼날에는 사사로운 감정을 담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래도 괜찮지 않겠나.”

“전장에서 져 본 적이 없나 보군.”

본인의 패배와 동료의 죽음을 상정했다면 이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 테지.

그는 나의 죽음을.

그로 인해 더욱 고통받게 될 프렌치아 국민에게 괜한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제국에서 이곳까지 왔다면 프렌치아를 횡으로 가로질렀을 터. 제국군이 벌이는 작태를 보았겠지.

말하는 본새를 보아 명예를 중시하는 자인 듯했다. 제국의 검이지만, 제국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기 어려운 듯 보였다.

하나, 그 또한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는 것에서 오는 강자의 여유.

그가 말했다.

“현재의 인원 구성이 8년째 이어지고 있네.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전장에서 결원 없이 무사 복귀했지.”

패배해 본 적 없다는 말.

“이번에도 그리할 작정이고. 그렇다고 방심하고 있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강하다는 건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니.”

방심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의 자신감은 방심과는 결이 달랐다. 그것은 자부심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제국의 검은 꺾이지 않는다는.

“괘념치 않는다.”

내 말에,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혀가 길어지는군. 더 정들기 전에 일어나야겠네.”

그는 몸을 일으켜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잠깐의 이야기였지만, 검을 겨눌 상대와는 조금의 교류도 하지 않는 게 낫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을 테니까.

“약속하지. 자네를 베는 칼끝에 망설임은 없을 걸세. 나는 제국을 위해 자네를 벨 것이야.”

지금까지 보인 감정적인 모습을 잘라 내는 단호한 음성이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이제 가자.”

“아, 왜요! 한창 즐거운데!”

부하들이 투덜거리자, 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잊었나. 우리의 위치를 자각해라.”

그의 말에 투덜거리면서도 그들은 몸을 일으켰다.

그들 또한 자신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독립군이란 것을 알아차렸을 거였다.

그들은 아쉬운 걸음을 뒤로하고 떠나갔다.

알렌과 이리엘, 사르페 또한 아쉬운 손짓으로 그들을 배웅했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알렌은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무슨 일은.”

“케이언 씨의 표정이 싹 굳어 있던데요.”

알렌이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별다른 말은 안 했다.”

“에이, 별다른 말 안 하기는요.”

“어쩌다 어울리게 된 거냐. 저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이리엘이 알아차렸다는 듯 말했다.

“설마 제국 사람이었어요? 우리한테는 주르아든 왕국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괜찮은 사람들이었는데, 제국 놈들이었다니. 어쩐지 발음이 좀 그렇기는 했는데, 주르아든 쪽이랑 비슷해서.”

사르페가 자책하며 시무룩하게 굴었다.

그들에게 느낀 호감이 괜히 죄스러운 듯했다.

“됐다. 제국 놈들이라고 다 나쁜 놈들만 있겠냐.”

“뭐, 그렇기는 하지만요.”

알렌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저 녀석들, 레트로이나 6검이다.”

내 말에 세 녀석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함을 토했다.

“예에?!”

* * *

“어떻게 그 녀석이 흰 사자일 수 있습니까!”

레이키가 얼굴까지 붉히며 성을 냈다. 무언가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고는 생각했다. 독립군일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나, 흰 사자의 동료일 거라 여겼지 그 본인일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이가 너무 어린 탓이다.

“그렇게 젊은 게 말이 됩니까?”

레트로이나 6검 중에 가장 어린 네리엔도 나이가 서른둘이었다. 깊은 마력으로 다들 어려 보이기는 하지만 모두 서른을 훌쩍 넘어 있었다.

제국에서 손꼽히는 천재들이 모였음에도 그랬다.

한데, 녀석의 나이는 많아야 20대 후반.

아무리 어려 보이게 생겼다고 해도 자신보다 아래의 연배인 건 확실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소드 마스터라니.

“거짓말 아닐까요?”

네리엔 또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케이언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믿기지 않는다만, 거짓은 아닐 게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

제네스는 어리다는 자신의 말에 살 만큼 살았다고 답했다. 20대가 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무게는 고작 서른이 되지 않은 이가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흰 사자인 것도 유추 못 했다니. 다들 잔뜩 풀어졌군.”

로얀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무 젊어서 방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됐다. 다들 마음을 단단히 먹거라. 상대는 한 명이지만, 지금껏 넘어온 무수한 산 중에 가장 높다.”

“예, 알겠습니다.”

단원들은 벌건 얼굴로 합창하듯 답했다.

다들 그의 무력을 어림해 보기는 했을 것이다. 하나 그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볼 수 없었겠지. 그저 전력을 철저히 감출 수 있는 이로 생각했을 거였다. 하지만 같은 경지라도 이들보다 한 보 앞에 서 있던 케이언은 느낄 수 있었다.

흐릿한 구름 사이로 보이는 시퍼런 안광을.

그것만으로는 그의 무력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케이언은 이와 비슷한 기운을 느낀 적이 있다.

황제, 아스라낙 윈 크레본.

그랬기에 케이언은 그가 흰 사자라는 것을 손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대체 그는 얼마나 강한 것일까?

명백히 강한 자를 두고도 그가 얼마나 강한지 가늠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그만큼의 격의 차이를 의미하는 바였다.

어쩌면…….

케이언은 고개를 내저었다.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좋은 녀석들 같았는데.”

“그러게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웬수가 되겠군.”

이제 공표한 날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일.

그날 자신들은 그들의 희망인 흰 사자의 목을 베게 될 터였다.

그리고 3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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