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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47화 (147/228)

제147화

제147화 전쟁의 서막 (2)

산속 깊숙이까지 굽이치는 골짜기.

그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집들이 자연의 일부처럼 지어져 있다.

“그럼 이쪽으로 와요.”

우리는 산기슭까지 마중 나왔던 까무잡잡한 사내의 뒤를 따랐다.

이름이 푸조라고 했던가.

뱀처럼 구부러지게 놓여 있는 조악한 계단을 오르자, 사람들이 우리를 흘깃흘깃 훔쳐보며 속삭이기 시작했다.

“누가 흰 사자일까?”

“저 사람인 거 같지? 사자처럼 생겼잖아.”

“덩치가 엄청 큰데?”

다들 리포드를 흰 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쪽이요.”

수장의 거처는 비탈길의 가장 위쪽에 있었다.

다른 집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허름한 외양.

측면의 벽면은 수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새로이 덧댄 흔적이 보였다.

“대장!”

거처 가까이 이르자, 푸조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내버려 두고 후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호들갑 떠는 목소리만큼이나 경망스러운 걸음이었다.

“흰 사자가 왔어!”

그가 거처 안으로 사라지고 잠시 후.

“알았으니, 넌 나가!”

안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수가 그르렁거리는 듯한 굵고 거친 목소리.

목소리만 들어도 우락부락한 사내의 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반갑소. 드라칸이라고 하오.”

실물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야수와 같은 생김새를 가진 남자였다.

큰 키에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팔뚝을 훤히 드러낸 산적 같은 옷차림과 상처 가득한, 바위같이 단단한 근육들까지.

살아 있는 생고기를 뜯어 먹는다고 해도 믿을 만큼의 야수성을 가진 자였다.

“제네스다.”

“당신이 검은 유성이군. 반갑소. 리포드라고 하요. 인간 성벽이라 불리지.”

녀석의 거처를 찾은 건 나와 리포드뿐이었다.

“오느라 고생했어.”

루시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방 안에는 루시안과 레이크가 함께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흰 사자인 것이오?”

드라칸은 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부리부리한 눈이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이제는 익숙한 반응이었다.

루시안이 말했다.

“레트로이나 6검마저 벨 줄이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놀라운걸.”

“괜찮은 놈들이더군.”

내 말에, 루시안이 눈을 반짝였다.

여태껏 내가 인정했던 상대는 없었던 까닭.

“어떤 이들이었을지 궁금하네. 뭐, 그 부분에 관한 이야기는 알렌 씨에게 듣기로 하고. 우선 앞으로 벌어질 전장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볼까.”

이야기는 자연스레 본론으로 들어갔다.

긴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테이난에서 계획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의 무력과 상징성을 기반으로 마련된 작전들이었다. 변수라고는 나의 패배뿐이었기에 수월히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레이크가 말했다.

“테이난 쪽에서도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쪽 또한 마찬가지.

테이난가의 배신을 기반으로 마련된 작전이니, 그것이 발각되지 않는 한 계획에 큰 차질은 없을 터였다. 적들의 움직임은 우리가 예상한 큰 흐름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럼 이제 피노센만 장악하면 되겠군.”

검은 오소리 부대가 임시정부의 경고를 따라 저항 없이 물러설지, 아니면 수성을 준비할지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 어떤 방식을 택하든 문제는 없다.

현재 우리의 전력은, 일개 도시에 주둔하는 병력으로는 막아 낼 수 없으니까.

나 혼자서도 충분히 뚫을 수 있거늘.

지금 혁명의 칼 본부에는 네더만과 리포드, 드라칸까지 있었다.

독립군의 최정예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

피노센을 점령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회의는 자연스레 그 이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레이크가 말했다.

“아직 테이난가에서 정확한 정보가 오지는 않았으나, 앞으로의 전장은 높은 확률로 두 곳에서 벌어지게 될 겁니다. 테이난가를 중심으로 모인 세 개의 가문의 병력과 남동부에서 아리아나 왕국과 대치 중이던 4군단의 회군. 아마 이 두 개의 군대가 피노센으로 진격할 테죠. 정확한 정보는 일단 기다려야 하지만요.”

현재 프렌치아 임시정부를 막으려는 총독부의 병력은 테이난가의 주도하에 움직이고 있는 터라 우리가 유도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확률이 높았다.

레이크는 그렇게 벌어진 전장을 가정하고 작전을 말했고, 그 외 다른 경우의 수에 관해서도 몇 가지 해법을 제시한 뒤 말을 끝냈다.

“그럼 두 개의 협곡에 대한 작전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작전을 상기하는 정도의 간단한 회의가 마무리되자, 드라칸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흰 사자, 당신에게 부탁 좀 하고 싶소만.”

쓸데없이 비장한 얼굴이다.

“나와 한번 겨뤄 줄 수 있겠소.”

그는 어딘가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와 검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기꺼운 듯한데.

딱 보니 태생이 전장에서 살 팔자다.

“당신의 전력이 소문만큼인지 궁금해서 말이지.”

나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구태여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언제?”

“지금 나와라.”

녀석의 신상 정보는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과거 노예 검투사로서 자랐다지.

검투장에서부터 익힌 무예로 지금의 경지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지독한 노력이 수반되었을 터.

확실히 네더만과 리포드와는 다른 결의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살아 있는 맹수와 같달까.

녀석에게서는 야성의 냄새가 났다.

나는 야생에서 자란 그의 창이 궁금했다.

“뭐? 대장이 대련을 한다고?”

“저자가 누군데 감히 우리 대장이랑?”

“몰라.”

“저 사람이 설마 흰 사자인가?”

“장난해? 저렇게 어린놈이 무슨 흰 사자야.”

널따란 연무장 주위로는 어느새 군중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딱히 모은 것도 아닌데, 여기까지 오는 중에 하나둘 붙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시장바닥이 따로 없어졌다.

“제네스 님! 파이팅입니다!”

알렌과 이리엘도 어떻게 알았는지 자리에 와 있었고, 그들의 옆에서는 네더만 녀석도 손을 흔들며 본인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환히 웃으며 돈을 거두고 있는 걸 보니, 승패를 걸고 내기라도 했나 보다.

“전력으로 해도 되겠소?”

드라칸이 묵창을 움켜쥐며 결연히 말했다.

“물론.”

나와 녀석의 경지 차이를 생각했을 때, 당연한 이야기였다. 드라칸이 온 힘을 다해도 나는 그를 안전하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조심하시오. 내 창에는 적당함이라고는 없어서.”

그는 창을 움켜쥐면서 내게 겨눴다. 두꺼운 팔뚝 위로 뱀처럼 기다란 핏줄이 울룩불룩 돋아났다.

동시에 사납게 일어나는 기세.

마치 태풍을 만난 바다처럼 거칠게 너울거린다.

“그럼 시작하겠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녀석의 신형이 쏘아진 화살처럼 튀어나왔다.

쐐애애액!

동시에 그 뒤를 따르는 직선의 궤적.

검은 묵창이 소용돌이치듯 휘감기며 공간을 관통해 왔다. 나는 가볍게 몸을 틀어 그것을 피했다.

부와아아앙!

내 움직임을 따라 살아 있는 것처럼 몸을 트는 창대.

검은 뱀이 나를 노리고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를 낮춰 피해 내자 세찬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하압!”

일순, 창이 탄성 있게 휘어지며 무수한 그림자를 피워 냈다. 공간을 사납게 헤집는 창격이 회피할 방위마저 뒤덮으며 떨어지고 있었다.

푸슈슈슈슈슛!

허공을 찢는 창대에서 공기가 터지는 소음이 연달아 울렸다.

나는 창격의 사이를 유영하듯 누볐다.

갈대처럼 흔들리며 분화하는 신형에 녀석의 묵창은 애먼 허공만을 갈랐다.

어금니를 꽈득 문 녀석이 창의 속도를 더욱 높인다. 나는 그제야 녀석이 왜 검은 유성으로 불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두꺼운 팔뚝이 탄성 있는 고무줄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연속적인 창격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선명한 검은 선을 남길 정도로 쾌속한 일격들.

마치 수평으로 유성우가 들이치는 듯했다.

‘제법이군.’

녀석의 창은 생각보다 정갈했다.

기본기를 충실히 쌓아 올린 창이었다.

아니, 어쩌면 기본기만으로 정점에 이르렀다고 해야 하나.

검사의 검이 수련의 고행을 담고 있듯, 창기사의 창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드라칸의 창격을 마주하며 그의 손바닥에 새겨진 굳은살을 느낄 수 있었다.

처절한 분노와 집념이, 피와 땀으로 얼룩져 손아귀에 굳어져 있었다.

그의 창술은 별반 특별함이 없었다.

그저 극한의 찌르기의 반복.

나는 그것을 보며 그 창이 지금껏 꿰뚫었을 무수한 벽들을 보았다.

창은 무언가를 꿰뚫기 위해 존재한다.

그의 창은 그 본질에 가까웠다.

드라칸은 평생 무언가를 향해 창을 겨눴고, 그것만을 찌르며 살아온 듯했다.

그것이 그의 창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트레왈로가의 가주보다 낫군.’

창격의 수준으로만 보았을 때는 트레왈로가의 가주, 츠르센의 창격이 더욱 매서웠다.

살아 있는 뱀처럼 화려하고 변화무쌍했던 창격.

하나, 드라칸과 츠르센이 정면 대결을 펼쳤다면 드라칸이 이겼을 거다.

그는 츠르센과 달리 가슴속에 선명한 창을 세워 두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거칠고 투박한 상처투성이의 창이지만, 그 무엇보다 단단하게 굳어진.

그것은 그의 인생이었고, 그것이 그의 창이었다.

나는 그에 맞서 검을 그었다.

솨아아아-!

새하얀 검광이 처음으로 빛을 발한다.

수평으로 그어지는 검격.

희끗한 궤적이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던 거뭇한 유성들을 단숨에 찢어 내며 하나의 창과 충돌했다.

콰아아앙!

검과 창이 부딪쳤음에도 튕겨 나간 건 드라칸의 창이었다.

이어 녀석의 사각을 밟으며 몰아붙였다.

이곳저곳에서 피어나는 걸음에 드라칸은 연신 궁지에 몰리며 창을 휘둘러야 했다.

녀석의 낯빛이 당혹으로 물든다.

본인의 힘이 정면에서 꺾인 것은 처음이겠지.

타고난 완력과 창끝에 세운 집중력으로 그는 이 자리까지 왔을 거다.

그의 창격을 정면으로 받아 낼 수 있는 상대가 몇 없었을 테지.

그 때문에 드라칸은 한 점에 힘을 쏟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시야를 가지지 못했을 거였다.

나는 녀석을 몰아붙이며 강제로 시야를 넓히고 있었다.

그는 이 대련으로 자신의 창의 부족함을 가늠할 것이고, 그로 인해 나아갈 방향을 정하게 될 거였다.

콰앙!

검면이 옆구리를 때렸다.

녀석은 신음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널찍한 연무장 끝까지 굴러갈 정도로 막강한 일격.

“이 정도로 끝은 아니겠지.”

“물론.”

그는 콧김을 뿜으며 다시금 쏘아졌다.

나는 검면으로 녀석을 사정없이 두드려 팼다.

막다른 벽을 만났을 때 녀석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그것이 녀석의 가능성을 보여 줄 터였다.

“끄윽.”

드라칸은 사정없이 두들겨 맞으면서도 제 갈 길을 고집했다. 창촉에 담은 집중을 흩트리지 않고, 그것을 막다른 벽을 향해 계속해서 찔러 넣었다.

“끄아압!”

그는 기합과 함께 창격을 내질렀다.

지금까지와 같은 단순한 찌르기.

하나, 더 묵직하다.

온몸의 세포를 제어하듯 집중하여 뻗어 낸 일격이었다.

녀석은 벽을 만났음에도 옆을 보지도, 뒤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자신의 한계를 향해 창을 찔렀다.

나는 그런 녀석의 전력을 단숨에 잘랐다.

내 검은 어느새 녀석의 목에 닿아 있었다.

“……헉 ……헉.”

그는 숨을 헐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세상을 삼켰던 섬광의 정체가 궁금한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말했다.

“그대로 나아가면 된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는 깊게 묵례했다.

“고맙소.”

나는 대꾸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지금까지 변변한 스승이 없었기에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의문이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길을 우직하게 고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내 한마디는 그에게 작은 의심마저 지워 줄 터.

확신에 찬 걸음은 더욱 힘차고 빠르게 벽을 꿰뚫을 수 있다.

“하, 정말이지 대단한 놈이라니까.”

네더만은 고개를 내저으며 제네스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드라칸을 제압하던 일격은 정말이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검격이었다.

네더만은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는지, 옆에 있던 알렌과 이리엘을 보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참, 자네들 그거 아는가?”

“네? 뭐요?”

“저 자식의 경지가 무엇인지. 나도 이번에 저하께 들어 알게 됐지.”

네 개의 독립군 파벌이 하나가 되는 순간부터, 네더만은 루시안을 저하라 부르고 있었다.

네더만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 말이야, 소드 마스터를 초월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죠.”

알렌이 씩 웃으며 답하자, 승리의 미소를 짓던 네더만이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뭔 마스터?”

“제가 붙인 명칭입니다. 어때요. 그럴듯하죠?”

“……아. 자네들도 알고 있었나?”

“이번에 레트로이나 6검 때문에 알게 됐어요.”

“아, 그래. 쩝, 아쉽군.”

네더만은 유세를 떨 기회를 놓친 것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 녀석들을 놀래 주려고 입이 근질근질했었는데, 벌써 알고 있었다니. 김이 샐 수밖에.

알렌이 감탄에 젖은 눈으로 말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러니까 말이야.”

“제가 오죽했으면 제네스 님께 드래곤이냐고 물었겠어요.”

“차, 참말인가?”

네더만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 또한 제네스의 정체를 잠깐이지만 드래곤이라고 의심했었다.

“뭐라든?”

네더만이 흥미를 보이자, 이리엘이 쿡쿡거리며 말했다.

“뭐라고 했겠어요. 대차게 한 대 맞았죠. 제네스 님이 드래곤이라니, 알렌 형님도 참. 그건 코흘리개도 안 할 말이라구요.”

“하하.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생각해도 맞을 만했어.”

알렌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웃었지만, 네더만은 평소와 달리 식은땀을 삐질 흘렀다.

이 사실을 지금 안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자칫 나도 한 대 맞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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