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제153화 두 개의 협곡 (2)
지휘부로 모인 알롱드와 히도르센의 표정이 심각했다.
병사들이 단체로 질병에 걸린 탓.
마력을 쌓은 기사들은 건재했으나, 태반의 병사들이 구역질과 복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겨워하는 판국에 전장을 치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사령관, 알롱드가 침통하게 말문을 뗐다.
“테이난 쪽에서 보낸 전투 식량에 문제가 있는 듯하오.”
“테이난 후작은 대체 어디서 전투 식량을 조달했길래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말이오. 그쪽에서 별다른 연락은 없었소?”
이런 일을 벌인 게 테이난 후작이 아니었다면 당장에 목을 베었을 터였다.
“전령을 보냈으나 아직 기별은 오지 않았소. 그들 또한 같은 전투 식량을 먹었을 테니, 사정이 다르지 않겠지. 의무병의 말로는 2~3일간 복통이 이어질 거라고 하오.”
“어찌할 생각이시오.”
히도르센이 물었다. 어쨌거나 연합군의 사령관은 알롱드였다. 결정권은 그에게 있었다.
“일단은 몸이 멀쩡한 이들을 모아 전방에 세우려 하오. 전투 식량을 새로이 보급받기 위해서는 시일이 오래 걸릴 터. 이제 협곡이 끝나 가니, 후퇴하는 것보다야 적의 저지선을 뚫고 피노센 근처의 영지나 도시로부터 식량을 조달하는 게 낫지 않겠소.”
연합군은 현재 협곡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후방에서 멀쩡한 식량을 조달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 후퇴하여 정비하는 것보다는 나아가 협곡 너머에서 식량을 조달해 오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제자리에서 대기하는 건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염된 식량을 모두 폐기한 탓에 멀쩡한 이들이 먹을 식량도 부족했다.
걸어야 이틀은 버티려나.
그 정도로 짧은 시간에 후방의 보급은 기대할 수 없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멀쩡한 이들이 많을 때 협곡을 넘어야 했다.
알롱드의 결정에는 이러한 이유가 깔려 있었다.
히도르센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 또한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합시다.”
“그럼 오늘 저녁에 협곡을 뚫도록 합시다.”
해가 저물기 무섭게 협곡에 전장을 여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둥! 둥! 둥!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에 전장의 열기가 고조된다.
알롱드는 저 앞에 보이는 적의 토성을 바라보았다. 토성의 방어벽이 예상보다 두껍기는 했으나, 오늘 밤만 지새우면 충분히 협곡을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우리는 오늘 밤 이 협곡을 뚫는다! 비겁한 적들은 식량에 독을 풀어 신성한 전장을 모욕했다. 우리 연합군은 저열한 적이 쌓아 올린 모래성을 짓밟고 나아가, 우리의 검이 그런 하찮은 계략에 꺾이지 않음을!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 줄 것이다!”
알롱드는 전면에 나서서 소리치며 연합군의 사기를 돋우었다. 그가 손에 쥔 검을 허공에 뻗으며 소리쳤다.
“전군 돌격하라!”
“우와아아-!”
사령관의 명령에 있는 힘껏 내달리는 병사들.
“계속해서 밀어붙여라!”
전장의 상황은 알롱드의 바람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연합군은 적의 토성을 단숨에 넘어 진격했다. 여전히 마나를 품은 병사들은 건재했다. 병력의 수는 줄었으나, 그들의 검은 무뎌지지 않았다. 적의 조악한 토성 따위에 걸음이 잡힐 리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 빠르게 뚫었다.
함정이 도처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연합군은 병력의 우위로 적의 방어진을 손쉽게 갈랐다.
그렇게 토성 두 개를 넘자, 연합군의 앞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하나의 성벽처럼 높고 단단한 토성이 자리해 있었다.
“적의 마지막 토성이다! 진격하라-!”
고성을 지르며 사기를 돋우는 연합군.
연이은 작은 승리가 그들을 달아오르게 했다.
그때, 무언가 바람을 뭉개며 떨어져 내렸다. 고성에 잠긴 태반의 병력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쿠우우웅!
묵직한 굉음과 함께 바위가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장정 세 명은 집어삼킬 정도로 커다란 바위였다.
쿠웅! 쿠우웅!
길게 늘어선 전열의 허리께에 떨어지는 바위들.
떨어지는 바위의 수가 많지는 않았다. 하나,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길목에 뭉쳐 있던 연합군에게는 피해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중간에 낀 위치였던 탓에 그들은 앞으로도 뒤로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적들의 대오가 금세 우왕좌왕 흐물거리기 시작한다. 하나, 그것만으로 연합군의 진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개활지보다야 좁다란 길이지만, 협곡의 폭은 50m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 안을 채운 병사들의 수는 여전히 많았다.
그래도 맹렬히 전진하던 병사들의 속도가 더뎌지는 효과가 있었다.
토성에서의 수성이 보다 용이해질 터였다.
선두에서 달리던 이들의 머리 위로 화살비가 쏟아져 내린다.
지금까지와 달리 화살의 밀집도가 높았다.
후퇴를 반복하던 독립군들 또한 총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돌격하라-!”
이곳에 오기까지 여러 개의 토성을 넘어온 연합군은 눈앞에 토성 또한 쉽사리 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승리에 도취된 그들은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토성을 향해 오로지 전진, 또 전진했다.
리포드와 드라칸을 위시한 독립군은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이들을 필사적으로 막아 갔다.
이곳은 마지막 저지선.
지금까지와 달리 절대 뚫려서는 안 되는 마지막 토성이었다.
“버티면 이긴다! 무조건 버텨-!”
리포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토성을 기어오르는 이들의 목을 베었다. 지금까지의 토성과 비교하여 단단함이 배가 될 정도의 토성이었다.
적의 검기에도 허물어지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그때, 저편의 거뭇한 창공에서 붉은 신호탄이 터졌다.
리포드는 그것을 보며 씩 웃었다.
지금껏 기다리던 신호탄이었다.
피슝-!
카드론이 쏘아 올린 신호탄이 밤하늘을 가르고 터져 나갔다. 막사에서 골골거리는 이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던 그들의 앞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연합군 후미가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
두두두두!
“뭐, 뭐야?”
후미에 있던 병사들은 맹렬히 달려오는 군대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둠에 잠겨 있었으나 깃발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테이난가인데?”
그들이 검을 빼 들고 매섭게 거리를 좁혀 오고 있음에도 병사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테이난가라면 아군이 아닌가.
지원군인가 싶었다.
하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졌음에도 속도를 좁히지 않자, 그들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서서히 깨달아 갔다.
얼굴이 점차 하얗게 질려 간다.
“X, X발?”
그들의 저돌적인 기세는 아군에게 쏘아 보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병사들이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쐐기꼴 형태로 내달려온 테이난가의 선두 기마대가 연합군의 무방비한 후미와 부딪쳤다.
쿠콰과과과과과!
적들의 뒤통수를 무자비하게 가르며 들어가는 기병들.
그 상황을 모르고 있던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물결에 강제로 짓밟혔다.
“뭐, 뭐야!”
뒤편에서 들려오는 폭발적인 소음에 뒤를 돌아본 이들이 상황을 어렵지 않게 파악했으나, 무방비한 병력을 헤집고 전진하는 적군의 속도가 상당했다.
“적이다! 후방에 적의 기습이다!”
“테이난가의 깃발을 가졌다!”
“막아랏!”
다급히 뒤로 돌아서 방어 태세를 갖춘다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병력 통제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기습에 별다른 대응도 하지 못하고 속속들이 무너져 내렸다.
테이난가가 후미를 돌파하고 있다는 소식이 병사들의 죽음을 타고, 중앙의 지휘부에 닿았다.
“뭐라! 테이난가의 깃발이?”
알롱드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함께 그 소식을 들은 이들도 말도 안 되는 일에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그 테이난가가 연합군의 후미를 치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하나, 퍼뜩 정신을 차리고 돌아본 상황에서는 두 개의 경우의 수가 있었다.
테이난가가 진짜 배신을 했거나, 적이 테이난가의 깃발을 든 것이거나.
하지만 후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방에 테이난가가 있거늘, 적이 어찌 테이난가의 깃발을 들고 연합군의 후방을 노릴 수 있단 말인가. 적들에게는 단숨에 테이난가의 병력을 제압할 병력이 없었다.
그렇다면 테이난가가 배신을 했다는 건데.
그들이 대체 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정황상 답은 정해졌다.
테이난가의 배신이 확실했다.
상대가 다름 아닌 카드론이었기에 그 확신은 더욱 빨랐다.
알롱드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테이난 후작! 이 빌어먹을 박쥐 새끼가!”
히도르센 또한 상황을 파악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내가 후미로 가서 그들을 막겠소. 사령관은 토성을 넘어 주시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머지는 나와 토성으로 간다. 최대한 빠르게 뚫을 것이야!”
알롱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휘부에 있던 이들 또한 각기 나뉘어 각자의 무기를 꺼내 쥐었다.
다급한 상황이었다. 병사들에게만 전장을 맡길 수 없었다. 직접 나서서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앞뒤로 적을 두고 있는 상황.
어떻게든 활로를 뚫어야 했다.
* * *
선봉에서 길을 뚫던 네더만은 막강한 기세를 뿜으며 다가오는 이들을 보았다.
“카드론 후자악-!”
마력을 품은 고함이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거, 카드론한테 맺힌 게 더럽게 많나 보네.’
네더만은 직접 나서서 선두에 선 자의 앞을 막아 갔다. 연합군이 점차 대응하면서 전열을 뚫는 속도가 줄어 있었다. 여기서 적장의 목을 베고 가야 했다.
“저자가 크로단가의 가주다.”
카드론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네더만은 씩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시나. 얼굴을 보니 용무가 급한가 본데 뒷간은 여기에 없다고.”
히도르센은 앞을 막아 오는 네더만과 간격을 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에게서 흘러오는 기세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 탓이다.
네더만과 히도르센은 전장 속에서 서로를 가만히 마주 보았다.
솟아오르는 투기에 일대의 공간이 흐려지며 서로의 존재감만이 뚜렷하게 세워진다.
주변의 병사들은 자연스레 그 기세를 피해 움직였다. 맹수를 피하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네더만. 용 사냥꾼이라 불리지. 너는 용보다 도마뱀 같기는 하다만, 어떤 주정뱅이 말로는 오크도 가끔 샐러드를 먹는다는군. 별미도 가끔 즐겨야 인생이라나 뭐라나.”
“건방진 놈!”
쿵!
히도르센의 신형이 흩어지며 쇄도해 왔다.
그를 따른 검광이 새하얀 궤적을 그려 내고 있었다.
하얀 매가 어둠을 가로지르는 듯한 검격.
크로단 가문의 검에 대해서는 네더만 또한 익히 알고 있었다.
콰아아앙!
쾌검과 쾌검이 맞닿으며 불꽃이 튀었다.
녹빛의 섬광과 백색의 섬광이 곡선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도는 바람처럼 휘몰아쳤다.
네더만은 오러가 맞닿아 일어난 돌풍을 잘라 내며 재차 검을 뿌렸다. 쾌속한 검격이 측면의 공간을 가르며 쇄도하자, 히도르센은 이를 악물고 검을 마주해 갔다.
콰가가가각!
오러가 엇갈리며 갈려 나간 마나의 입자들이 푸른 불꽃으로 튀었다.
휘리릭.
직선으로 쏘아지던 하얀 매가 치솟아 올랐다가 빙그르르 선회하며 사선으로 떨어져 내린다.
검면을 깎아 내듯이 쏘아지는 검격은,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발톱과 같은 매서움이 있었다.
집요하게 떨어지는 칼날에 네더만은 걸음을 물리며 그것을 쳐 냈다.
콰-앙!
히도르센은 그 기세를 몰아, 칼끝에 생동감을 실었다. 검첨이 파르르 떨리며 무수한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새하얀 매가 편대 비행을 하며 쏘아지는 듯했다.
그것에 맞서 네더만의 몸이 회전했다.
그를 뒤따른 녹빛의 오러가 부채꼴처럼 펼쳐지며 사방에서 쏘아지던 새하얀 궤적들을 삼킨다.
콰과과과광!
강철검이 맞닿아 발생한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중첩되어 터져 나갔다.
찰나에 얽히는 궤적들.
그들의 검은 조금의 물러섬 없이 서로를 꿰뚫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전장의 중심에서 맞댄 검이었다.
서로를 탐색하는 것조차 사치.
전력을 다한 살검이 서로를 향했다.
콰드득!
네더만의 검이 히도르센의 검을 짓누르자, 그 충격파에 일대의 지반이 널따랗게 깨진다.
그 찰나에 잠시간 일그러진 균형이 있었다.
네더만의 안광이 푸르게 타올랐다.
동시에 칼끝에 이는 바람.
휘몰아치는 바람 13 검류.
제6식 가느다란 폭풍.
일순 나선으로 회오리치는 오러의 바람이 칼날을 타고 쭉 뻗었다.
공간을 가로지르며 쏘아지는 폭풍의 검.
휘감긴 녹빛의 오러가 실이 뽑히듯 기다랗게 늘어나 히도르센의 목을 치고 지나갔다.
촤-악!
“끄륵…….”
피거품을 물며 본인의 목을 부여잡는 히도르센.
그의 부릅뜬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네더만을 응시한다. 그의 패배를 본 카드론이 마력을 담아 크게 소리쳤다.
“히도르센의 목이 떨어졌다! 용 사냥꾼이 크로단가 가주의 목을 베었다!”
연합군의 중축이었던 히도르센의 목이 떨어졌다. 적군의 사기는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
그리고 적을 베어 가는 아군의 칼날에는 더욱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후.”
네더만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움켜잡았다. 궤적에 전보다 강한 힘이 실리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진다.
‘강해졌군.’
그는 본인이 어느새 성장해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네스 자식 때문인가.
그의 검을 몇 번이나 가까이서 보았다.
그 압도적인 검세를 보고 나니 적의 검이, 본인의 검이 더 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언제 술이나 한번 사야겠군.”
네더만은 씩 웃으며 다시금 적진을 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전방의 전장에서도 승패가 갈리고 있었다.
콰아아앙!
몸뚱이만큼이나 넓적한 리포드의 대검이 떨어져 내린다.
그것을 막아 낸 자는 사령관이자 하리아디 가문의 가주, 알롱드 하리아디.
“크흑.”
그의 입가에서 절로 신음이 흩어졌다.
할버드로 받아 냈음에도 검에 담긴 무게가 묵직했다. 검은 멧돼지라 불릴 정도로 저돌적인 움직임을 가진 하리아디 가문의 창술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알롱드의 어금니가 리포드의 단단한 성벽을 뚫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고.”
“네 이놈!”
눈에 불을 켜며 돌진하는 검은 멧돼지.
멧돼지의 어금니처럼 생긴 할버드의 창날에서 묵빛의 오러가 타올랐다.
그에 맞서 리포드가 검을 들었다.
알롱드는 리포드에게서 벽을 앞에 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크아압!”
그럼에도 그는 전력을 다해 돌진했다.
저돌적인 창격이, 바로 하리아디가의 근원이었다.
콰아아아앙!
멧돼지와 굳건한 바위가 맞부딪치며 커다란 굉음이 인다.
그때, 그 사이를 가르는 유성이 있었다.
콰직-!
방심한 적의 옆구리를 꿰는 검은 섬광.
알롱드는 본인의 몸을 뚫고 나온 묵창을 보고는 시선을 들었다.
“이 비겁한…….”
푸확-!
창날이 빠지며 핏물이 흩날렸다.
그 앞에는 야수와 같은 기세의 드라칸이 서 있었다. 피에 절은 그는 정말이지 짐승이 되어 버린 듯했다.
“병X 같은 게. 전쟁에서 비겁하고 말고가 어딨어.”
드라칸은 싸늘히 비웃고는 다시금 전장으로 내달렸다. 리포드는 알롱드의 시체를 보며 씩 웃었다.
“그러게 그 정도로 안 된다니까.”
그는 이내 들숨을 가두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적의 사령관! 알롱드가 뒈졌다-! 내일 아침 승리를 만끽하고 싶은 자는 버텨라-! 무조건 막아 내!”
리포드의 고성이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후방에 적을 두고 있다는 것부터 적의 사기는 꺾이고 있었다.
거기에 사령관마저 죽었다니.
연합군의 칼날이 빠르게 무뎌지고 있었다.
“리포드 님-!”
그때 토성 위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테이난가의 깃발이 보입니다아!”
승리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