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제166화 나라를 위하는 국민 (2)
수도, 마그네트는 현 임시정부의 주축 세력인 네 개의 파벌이 모두 지부를 두고 있는 유일한 도시였다.
총독부의 본부가 있는 프렌치아의 심장이니 그 이유는 설명할 것도 없었다.
모든 정보가 시작되는 곳이자 모여드는 곳.
그곳이 마그네트였다.
“자, 이제부터 우리는 이것들을 은밀히 배포할 거다.”
하라브는 모여 앉은 지부원들 앞으로 수북이 쌓아 올린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누런 종이 위로는 판형으로 찍어 낸 문자들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다들 한 장씩 집어 들고 눈동자를 굴렸다.
밀실에 사락거리는 종이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테나스타 광장에서 집결하여 총독부에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는 포부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용기를 내 줄까요?”
이리엘이 염려 섞인 표정으로 하라브를 보았다. 아무래도 레이크의 작전인 듯한데, 문제는 사람들의 참여도였다.
“저는 나갈 거예요!”
유리아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당연히 나가야죠!”
의욕이 흘러넘치는 그녀였다. 이리엘은 그런 유리아를 보며 씩 웃었다.
“모두가 유리아처럼 용기를 내 줬으면 좋겠네.”
이리엘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해 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묵묵히 있는 레이크를 바라보았다.
“이게 가능한 거야?”
하라브 또한 옆에서 말을 보탰다.
“솔직히 나도 이게 가능하리라고 보지는 않네. 지금 열기가 뜨거운 게 맞기는 하네만, 이렇게 대놓고 많은 이들이 모여 줄까 걱정되는군.”
현재 마그네트에도 독립의 열망이 불고는 있었다. 독립군이 진격한다는 소식도 있었고, 무한의 속검을 이긴 흰 사자도 있었다. 덕분에 프렌치아 국민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하나, 모두가 전면에 나선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시위를 벌이다가 잡혀가기도 했지만, 그것은 마그네트 전체로 보면 아직 작은 불길일 뿐이었다. 열망을 가슴에 품고 멀리서 응원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레이크는 그런 이들마저 밖으로 불러내려 하고 있었다.
모두 그 부분이 가능한지를 염려하고 있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 않나.”
레이크는 모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이대로라면 흐지부지 끝나게 될 겁니다.”
“응?”
그럼 이거 왜 하는 건데?
당연히 반대 의견을 말해 줄 거란 예상과 달리 레이크는 순순히 인정했다.
다들 얼빠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레이크가 말했다.
“국민의 대부분이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으나, 직접 나서는 건 힘든 일일 겁니다. 테나스타 광장에서 집회를 하는 건 잡아가 달라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어느 누가 그 위험을 쉽사리 감수하겠습니까.”
입술을 꾹 문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알렌도 입을 열었다.
“그것도 그렇고, 이렇게 대놓고 시위하자는 선전물을 뿌리면 총독부 귀에 이야기가 안 들어갈 리도 없지 않습니까. 괜히 경계만 삼엄해질 텐데요.”
알렌의 말대로 이 정도로 뿌려 대면 총독부의 귀에 집회에 관한 이야기가 안 들어갈 리 없었다.
그렇게 되면 테나스타 광장에 헌병들의 경계가 더욱 심해질 터.
안 그래도 모이기 어려운 상황에 경계까지 심해지면 나오고 싶은 사람도 나오지 못할 거였다.
레이크는 그 의견에도 순순히 동조했다.
“그렇겠죠.”
“그럼 이건 왜 필요한 겁니까?”
알렌이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아무도 나오지 않을 일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만든 레이크의 저의가 이해가 되지 않는 탓이다.
레이크는 그제야 그것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마그네트의 민심은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습니다. 충분한 땔감과 적당한 바람 덕분이지요. 하나, 아직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전.”
모두의 시선이 레이크를 향했다.
“그 불길에 기름을 부을 작정입니다.”
3일 후 테나스타 광장.
검을 찬 헌병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최근 광장에서 집회를 열자는 선전물이 돌고 있었다.
그것에 적힌 날짜가 바로 오늘이었다.
헌병들뿐만이 아니라 시민들 또한 그것을 알았다. 다들 광장을 지나가면서도 흘깃흘깃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별다른 일은 없었다.
“헌병들이 이렇게 쫙 깔렸는데 누가 나설 수 있겠어.”
“그러니 말일세.”
다들 어쩔 도리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집결하기로 한 시각이 훌쩍 넘어가자, 헌병대에서도 서서히 인원을 줄이며 철수하는 분위기였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프렌치 놈들이 그러면 그렇지.”
“입만 산 새끼들이 뭘 하겠나.”
한 소녀가 지붕 위에 올라온 것은 헌병들이 입을 모아 낄낄거리고 있을 때였다.
“제국의 멍청이들은 들어라-!”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붉은 도시.
그 속에서 주황빛 머리칼을 가진 소녀, 유리아가 광장을 향해, 아직 남아 있는 헌병들을 향해, 그리고 시민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나는 어리지만, 프렌치아의 국민이다. 나라를 무단침탈한 제국의 뜻에 따를 생각이 없고, 너희들이 주장하는 합병에 동의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녀는 확성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를 손에 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그녀의 한 손에는 프렌치아의 국기가 들려 있었다.
유리아의 목소리가 광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모습에 헌병들이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런 고얀 년이!”
유리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헌병들이 빠르게 다가오는데도 유리아는 확성기를 놓지 않았다.
“나는 자랑스러운 프렌치아의 국민이다! 내게서 나라와 평안을 앗아 간 제국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야!”
그런 그녀에게 달려드는 헌병 앞으로 엉겨 붙는 무리가 있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짐마차가 무너져 내리며 헌병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헌병의 길을 우연치 않게 방해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소녀는 조금의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다.
유리아는 프렌치아의 국기를 펄럭이며 소리쳤다.
“프렌치아 독립 만세-!”
그녀의 외침에 곳곳에 창문이 열리며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저년 잡아-!”
그런 그녀에게 헌병들이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하나, 그보다 먼저 도착한 화살이 있었다.
퍽-!
가녀린 소녀의 어깨가 흔들리며 그 위로 화살이 솟아난다. 비틀거리는 소녀의 어깻죽지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프렌치아 독립…….”
퍽!
말을 자르며 복부에 박히는 화살.
그럼에도 그녀는 두 손을 뻗으며 다시금 소리쳤다.
“만세-!”
퍽!
다시 한번 가슴팍에 틀어박힌 화살에 유리아의 몸이 뒤로 넘어간다. 그녀가 떨어질 건물 밑에서는 네더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혼선을 줄 가짜 시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화살까지 같은 위치에 박혀 있었다. 유리아는 화살을 뽑았다. 그것은 미리 준비된 방호복에 박혀 있었다. 네더만과 함께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모두 준비된 작전이었기에 변장은 빨랐다.
“저 어땠어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유리아는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그녀를 내려 준 네더만은 씩 웃으며 말했다.
“용감한 독립투사가 따로 없더군. 프렌치아가 독립한다면 역사책에 실릴지도 모를 일이지.”
“히힛. 근데 하나가 빠졌잖아요.”
“응?”
“저 예쁘고 용감한 독립투사거든요!”
유리아는 씩 웃으며 말했다.
“꼭 제네스 님께 말해 주셔야 해요!”
“그건 알렌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걸. 말 안 해도 떠벌리기는 할 테지만.”
헌병들은 유리아에게 활을 쏜 이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누구야? 누가 쏜 거야?”
하나, 화살의 주인공인 이리엘은 후드를 깊이 쓴 채 골목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한편의 연극이 끝이 났다.
창졸간에 벌어진 짧은 단막극.
채 5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도시에는 하나의 문장이 남았다.
-어린 소녀가 나라를 위해 죽었다.
그것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어린 소녀의 시위. 그리고 죽음.
프렌치아 국민들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좋은 소재였다.
레이크는 독립군 지부의 사람들을 이용해 그 이야기를 더욱 자극적이게 만들었다.
소문에 과장을 더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의 명징한 문장은 살을 붙이며 빠르게 몸집을 키워 나갔다.
알고 보니 소녀의 나이가 열네 살밖에 되지 않았다더라.
알고 보니 소녀는 부모를 모두 제국군에게 모두 잃었다더라.
알고 보니…….
라는 식의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어느새 사실이 되어 흐르는 이야기들.
사람들은 그 사건의 정확한 진위보다 그 사건으로 피어나는 감정에 집중했다.
나라를 위해 어린 소녀가 죽었다.
제국 놈들이 어린 소녀를 죽였다.
이 같은 자극적인 문장들만이 남아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모두가 제 아이를 잃은 것처럼 분통을 터트렸고, 그 감정은 제국을 향한 반감으로 치달았다.
잘 짜인 선동이었다.
모두가 그것에 휩쓸린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그것에 휩쓸려 거리로 나왔다.
기름을 머금은 불꽃이 사납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이후로 3주의 시간이 더 흘렀다.
“……마그네트.”
피노센을 떠났던 루시안은 마그네트의 장엄한 성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로 길게 늘어선 병력들이 굽이치고 있었다.
피노센에서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예상보다 지난한 길은 아니었다.
병력의 규모가 불어나 있었고, 무한의 검속마저 패퇴한 상황.
적들의 사기는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민심은 들끓고 흰 사자의 위용은 하늘을 뚫었다.
적들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그네트.’
루시안은 여전히 굳건한 성벽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들었다.
마그네트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국경을 넘어 주르아든 왕국으로 망명했던 그가, 여기까지 닿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제네스가 없었다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였다.
그 웅장한 성벽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처형당한 왕세자가 떠오른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녀석의 얼굴이 또렷이 기억났다. 그 목소리마저 귓가로 흐르는 듯하다.
-우리, 꼭 만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
-네가 나의 검이 되어야 해. 옆에서 정무도 함께 봐 주고.
-하하. 바라는 게 너무 많았나. 하지만 어쩌지. 너와 이루고 싶은 건 더 많은데.
그와 함께 이끌고자 했던 나라였다.
살아 있었다면 어진 성군이 되었을 터.
하지만 이제 그는 프렌치아에 없다.
루시안은 지금 그를 대신해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주위로는 나라를 위하는 새로운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루시안 또한, 그들과 이루고 싶은 게 많았다.
“웅장하군요.”
옆에 나란히 선 드라칸의 말이었다.
“처음인가 봅니다.”
“예.”
그간 수도에 들른 적이 없던 드라칸이었다. 기다랗게 놓인 성벽은 지금까지 봐 온 어떠한 성벽보다 높고 단단해 보였다.
“참으로 드높지요?”
“반드시 넘어 보겠습니다.”
드라칸은 각오를 전했다. 그는 언제나 눈앞의 벽만을 두드려 왔다. 이번엔 그 앞에 놓인 벽이 마그네트일 뿐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루시안은 씩 웃었다.
“그래야죠.”
저 성벽 너머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지금껏 걸어온 길의 종착이자, 새로운 길의 시작이 그 너머에 있었다.
수도를 수복한다고 해서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하나, 적어도 독립을 선포하며 독립된 국가임을 대륙 전체에 알릴 자격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국과 전면전을 벌이게 될 테지.
루시안은 그 첫발 앞에 서 있었다.
루시안은 시선을 들어 성벽 위에서 펄럭이고 있는 제국의 국기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