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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87화 (187/228)

제187화

제187화 불멸의 도시 (2)

탁.

나는 책을 덮었다.

「불멸의 도시」에는 예상과는 다르게 커다란 서사가 적혀 있었다.

인류가 모두 힘을 모아 검은 숲으로 몬스터를 몰아냈던, 그 시대의 기록.

불멸의 도시에서 시작된 그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일들로 가득했으나, 단순히 허구로 치부하기에는 지금의 상황과 유사한 부분들이 많았다.

“크으으응…….”

송장이 흘리는 듯한 신음에 고개를 돌리니, 기사들이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그만하라는 이야기가 없어 계속해서 루틴을 반복하고 있었나 보다.

아무래도 오기를 부렸나 본데.

“그만.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다.”

나는 그들의 존재를 잊지 않았던 척 자연스레 말했다.

그러곤 루시안에게 걸음을 옮겼다.

“응? 소해에 가겠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지금 당장?”

“그래.”

어차피 당장에 제국의 위협은 없었다.

또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본래는 그동안 기사들을 굴릴 생각이었다만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혼자 움직인다면 두 달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터.

“갑자기 무슨 일인데.”

“다녀와서 말해 주지. 확인이 필요한 일이라. 움파움파족을 찾아갈 생각이다.”

“아. 그 건망증이 심하다는.”

나는 일단 말을 아꼈다.

솔직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환생 후 귀환한 내가 보기에도 황당한 이야기로 보일 정도니까.

하지만 내 존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조금의 신빙성을 더하게 했다. 베베토가 나를 역천의 대가라 칭했던 부분도 그렇고.

“그래, 다녀와. 돌아올 때까지 준비도 끝내 놓을게.”

그렇게 루시안과 대화를 마무리한 나는 곧장 거처로 향했다.

짐을 꾸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돈만 있으면 되니까.

여비는 넉넉했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어둠은 내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굳이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모텔 섬이요?”

내 말을 들은 알렌이 눈을 크게 떴다.

“그래. 그들이 너에게 나침반을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 그랬죠. 제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알렌은 가방을 뒤적거렸다. 족장이 다음에 놀러 오라며 준 나침반이 있었다.

“아, 여기 있네요. 그런데 이건 왜요?”

“이모텔 섬에 다녀오려고.”

나침반을 챙김으로써 떠날 채비는 끝이 났다. 바로 출발하면 될 터였다.

“에? 지금요?”

“그래.”

“저는요!”

“너는 여기 있어.”

“요새 바람이라도 나신 겁니까. 절 두고…….”

빡!

“끄악!”

“금방 돌아올 거다.”

“끄응. 갑자기 거기는 왜 가시는데요…….”

알렌이 정수리를 손으로 비비며 말했다.

“다녀와서 말해 주마.”

“이리엘한테 인사는 안 하고 가세요? 서운해할 텐데.”

“서운은 무슨.”

“……네.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알렌의 배웅을 뒤로하고 왕성을 벗어난 나는, 소해로 곧장 방향을 잡았다. 전력으로 달릴 생각이었기에 말도 타지 않았다.

젠장.

저번부터 맨발로 대륙을 질주하고 있었다.

피곤하기는 하나,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해 온 일이 자칫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될지 모르기에.

* * *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입니까.”

움파움파 마을의 저키는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촌장의 등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잠긴 마당을 바라보던 촌장의 어깨가 깊은숨을 따라 축 가라앉았다.

“심각하다기보다 매우 놀라운 일이지.”

“대체 무슨 이야기가 적혀 있길래 그러세요. 저번에 해석을 완료하시고도 한동안 그러셨잖습니까.”

제네스의 부탁으로 불멸의 도시 해석본을 완성했을 때.

그 당시에도 촌장은 저리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는 일이 많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번에 불멸의 도시 해석본을 건네주며 다시 그 기억이 돌아온 듯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떠올라 버리고 말았어.”

역시나였다.

“말씀해 보세요. 제가 들어 드리겠습니다.”

저키의 말에도 촌장은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연거푸 숨을 내쉰 그가 저키를 돌아본다.

“……그런데 그게 대체 무슨 이야기였더라?”

* * *

해변가를 쓸고 지나가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담긴다. 그간 열심히 달려온 나는 포르센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문 앞에 걸린 익숙한 현판.

‘낭만의 바다이야기’.

딸랑.

“어서 오세요~.”

문을 열자마자 재빨리 다가오는 종업원.

이미 한 번 와 본 곳이기에 나는 능숙하게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벌컥.

문을 열자 여럿의 시선이 모인다.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어! 너는!”

네더만을 대신해 앉았던 내게 된통 당했던 녀석.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나는 이자를 찾아온 것이니까.

“그때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잠시만, 아주 잠시만 기다리게. 이번 판만 금방 마무리하고 나가겠네!”

녀석은 금세 눈을 뒤집었다.

네더만의 말로는 근방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들이라고 했다. 자부심도 상당했을 터. 지금껏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내가 바빠서 오래 있을 생각은 없는데.”

“저녁 식사는 한 겐가? 안 했다면 밥이라도 먹고 있게.”

그는 내게 다급히 돈을 쥐여 주었다. 돈을 좀 땄는지 금액이 상당했다.

뭘 먹든지 남을 만큼의 액수.

“고작 이걸로 밥을 어떻게 먹어.”

“빌어먹을. 대체 뭘 처먹으려고.”

그는 콧잔등을 들썩이며 내게 1골드를 추가로 건넸다. 그제야 녀석을 조금은 기다려 줄 마음이 생겼다.

“밥 먹을 때까지만 기다려 주지.”

물러서는 뒤로 녀석의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녀석은 나를 절대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자리를 잡고 가장 비싼 음식과 위스키를 주문했다.

물론 고작 이것을 즐기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네더만처럼 도박을 즐기기 위해 온 것도 아니었고.

그저 배가 한 척 필요할 뿐이었다.

굽이치는 해협을 통해 얻을 수도 있지만, 이런 쪽으로는 차라리 이놈들이 빠르다.

겸사겸사 재미도 좀 보고.

녀석은 내가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부리나케 튀어나왔다.

“바로 가자고! 선수들은 준비되어 있네!”

“이건 마저 먹고.”

나는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녀석이 마련한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군. 여기에는 인물이 그리 없나?”

다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모두 내게 한번 털렸던 자들.

네더만 녀석. 실력도 없는 놈이 근방에서 제일가는 녀석들과 어울렸었나 보다.

“이번에는 전처럼은 안 될 걸세.”

“푸흐흐. 이곳에 온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다들 비장함을 품고 있었다. 설렘과 긴장으로 얼룩진 표정. 도박 또한 기사의 생사결과 다름이 없다.

긴박한 심리전과, 소리 없는 칼날이 오가는 곳이 바로 도박장이다.

나는 상기된 이들에게 말했다.

“뭐 해. 패 안 돌리고.”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 들어갔던 나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가 되어서 낭만의 바다이야기를 나섰다.

“나쁘지는 않네.”

그런 내 앞에는 작은 범선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살폈다. 그런 내 뒤로는 똥 씹은 표정의 녀석들이 얌전히 서 있었다. 모두 멍 하나씩을 눈덩이에 그린 채였다. 불복하길래 손 좀 봐줬다.

배를 꼼꼼히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운항하기에 충분한 범선이었다.

“그럼 가 봐.”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들은 허리를 꾸벅 숙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뺐다.

솨아아아.

해가 저문 밤이었지만, 돛은 바람을 품고 파도를 갈랐다.

움파움파족에게 받은 나침반은 어느 방향에서나 이모텔 섬만을 가리키는 특수한 나침반이었다.

완전히 칠흑에 잠긴 바다가 앞에 있었지만, 가는 길에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워낙 넓고 평평한 바다였다.

마주 오는 배만 조심한다면 전복될 위험은 없었다. 그저 지침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바람을 받은 돛이 팽팽하게 펴지며 배가 앞으로 나아간다.

이모텔 섬까지는 꽤 긴 시간을 항해해야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솨아아아.

뱃머리에 나와 있던 나는 짙은 운무를 지나고 있었다.

배의 속도로 항해하려고 하니 상당히 지루한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유영하는 시간은 여유로웠으나, 목적이 있는 길이었다. 시간만 아까울 뿐이었다.

해안가에 접안한 나는 이모텔 섬에 발을 디뎠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푸릇한 섬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움파움파족은 전과 달리 불멸의 도시에 거주하고 있을 테니 그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높게 쌓아 올려져 있던 제단의 상단부는 할렌트와의 전투로 무너져 내렸지만, 높이 솟은 광산의 위치와 대조하면 도시의 위치를 가늠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섬의 중심 쪽이기도 했고.

나는 불멸의 도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간만에 단단한 지반을 박차니 폐가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뭐, 뭐야?”

“누구세요?”

“어디서 온 거지?”

“분명 우리 부족 사람은 아닌데!”

나는 어렵지 않게 불멸의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거에 목책으로 둘려 있던 도시는 완전히 개방된 상태였다.

덕분에 나는 손쉽게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족장에게 안내해라.”

“누구요! 어디서 온 게요!”

잊지 않겠다더니.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는 그들에게 나침반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손님이란 증표이기도 했다.

“아니, 저것은!”

다행히도 증표는 까먹지 않은 듯하다.

“우리가 만든 게 분명한데!”

“어떻게 갖고 있는 것인가?”

“섬 바깥의 사람이 온 게 얼마 만이지?”

“그러게. 얼마 만이지?”

“아, 전에도 왔었잖아!”

“맞아! 그랬었어!”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 가던 이들은 마침내 나까지 기억해 냈다.

“아! 당신은! 용사님 맞죠!”

“맞아, 맞아!”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쪽이 아니야! 족장님은 저쪽에 계신다고!”

작은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족장의 거처.

나는 족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이분은 누구신가?”

“아. 과거에-.”

부족원은 설명을 이어 갔다.

모든 설명을 들은 후에야 족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눈을 반짝였다.

“우리 부족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가……. 정말 고맙네.”

아예 까맣게 잊어버리다니.

과연, 족장다웠다.

“그래, 여기는 무슨 일인가.”

어렵게 본론이었다.

나는 불멸의 도시 책 원본을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족장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니 이것은-!”

다행히 이 책은 잊지 않은 눈치였다.

“자네가 어떻게 이것을 갖고 있는 겐가! 이건 분명 내가 옷장에 깊숙이 숨겨 갖고 있거늘!”

족장은 나를 보며 볼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까지 본 표정 중 가장 격양되어 있었다.

아마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듯하다.

나는 「불멸의 도시」를 얻게 된 과정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어떻게 이 책을 주르하가 쥐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할렌트가 불멸의 도시를 점거했을 때 얻은 게 불명할 터였다.

“아-!”

내 이야기를 들은 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자네였군! 자네였어! 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네! 우리 부족을 구원해 준 자네를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잊었던 기억을 떠올린 그는 곧장 눈빛을 바꿨다. 낯선 자를 바라보던 경계의 눈빛이 단숨에 따뜻하게 일렁인다.

“정말 오랜만이구만.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인가?”

“…….”

그러면 그렇지.

한숨을 깊게 내쉰 나는 옆에 서 있던 부족민을 바라보았다.

젠장.

그자 또한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마음을 다잡고 왔지만, 이 답답함은 여전했다.

“그랬구만. 잘 왔네, 잘 왔어. 자네가 이 책까지 찾아 줄 줄이야. 정말 고맙네.”

“이 책은 뭡니까.”

“신의 선물을 사용했던 과거를 기록한 책이지. 신께서 유일하게 허락한 기록이기도 하고. 우리 부족은 바로 이 역사를 기억하는 존재이면서 잊어야 하는 존재일세.”

그 말인즉.

“이 책에 적힌 내용이 모두 사실이란 말씀입니까.”

“물론일세. 모두 사실이지.”

족장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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