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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89화 (189/228)

제189화

제189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1)

나는 포털을 넘으며 족장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이 포털 안에는 최초의 세계선이 있을 걸세. 그곳에는 나도 존재할 것이고 자네 또한 존재할 것일세.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전생의 나는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호기심으로 물었다.

-만약 최초의 세계선에서 제 자신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

족장은 답하지 못했다. 그도 모르는 듯했다.

-어쨌거나 회귀의 시점은 나도 정확히 알 수 없네. 지금보다 과거일 수도 있고 미래일 수도 있지. 자네가 가는 최초의 세계선은 황제가 회귀의 이능을 얻은 그 순간이니까.

그는 내게 나침반을 건넸다.

어디서나 이모텔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었고, 움파움파족의 중요한 손님이란 의미였다.

-조심히 다녀오게.

솨아아아.

청량한 바람이 훅 불어닥치는가 싶더니 나는 완전히 낯선 공간에 서 있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세계를 멈추다시피 감각을 할 수 있음에도 그랬다.

뭐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새하얀 공간.

하늘도 땅도.

눈을 어디에 두어도 새하얀 공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들어온 포탈도 없었다.

그저 무(無)의 세계.

나는 그곳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역시 믿은 게 잘못인가?”

움파움파족에 관한 믿음이 단단하지 않았기에 예상과 다른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큰 배신감은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떡한담.

시야를 멀리 두고 감각을 넓게 확장해 봐도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나침반은 어느 방향도 가리키지 못하고 뱅글뱅글 회전하고 있었다.

방향 감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심적으로 끌리는 곳이 있었다.

무언가 나를 은은히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

나는 일단 내 직감을 따라 걸었다.

인식하는 모든 주변이 조금의 굴곡 없이 평평했다.

웬만한 이들은 금세 정신을 놓아 버릴 만큼 사람을 압도하는 기묘한 세계였다.

‘확실히 뭐가 있다.’

나는 직감을 따라 나아갈수록 점차 강하게 당겨 오는 어떤 힘을 느꼈다.

무언가가 아주 서서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새하얀 배경에 덩그러니 놓인 하나의 옥좌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앞에 멈춰 그것을 보았다.

익숙한 왕좌였다.

프렌치아의 왕이 앉는 의자. 등받이 위로 사자의 머리가 빚어진 것까지 같았다.

이게 대체 왜 여기에……?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것에 답을 해 줄 자가 모습을 드러낸 탓이다.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먼저 들리고, 왕좌 위로 하나의 존재가 불쑥 솟아났다.

마치 의자 아래서 몸이 솟아난 것처럼 보였다. 다리를 꼰 채 손에 턱을 괸, 오만한 자세의 인간이었다.

그가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걸.”

* * *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대전에 드리워 있었다. 황제는 검지를 까닥이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대체 왜?’

회귀의 권능을 갖게 된 후로 그에게 불안이란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전능에 가까운 능력은 그에게서 대부분의 감정을 앗아 갔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그저 권태로움뿐.

그런데 지금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불안이 흐르고 있었다.

‘음.’

황제는 생소한 그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언제든 회귀할 수 있으나 그것이 기꺼운 것은 아니다. 같은 시간을 반복한다는 건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나, 이 불안감은 그것으로 설명될 것이 아니었다.

‘만약 다시는 회귀할 수 없다면?’

지금 이 삶이 마지막이라면.

그래.

황제는 그제야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진단했다.

“어째서?”

지금까지 무수한 회귀를 거쳐 왔다.

하나, 한 번도 이 삶이 끝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니, 끝은 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끝을 낼 수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애초에 나는 왜 회귀하게 된 거지?’

일순 황제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어찌 된 일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회귀의 권능을 얻었던 상황이 누군가 도려낸 것처럼 깨끗하게 날아가 있었다.

‘왜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무엇 하나 쉬이 잊지 않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그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그는 끊임없이 회귀하며 과거로 돌아갔지만, 언제나 미래만을 보고 살아갔다.

그에게 회귀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새로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그가 돌아보았던 과거는 바로 잡아야 할 실수뿐이었다.

정확히 지금까지는.

그런데 불현듯 가슴속에 피어난 불안한 감정이, 지금까지는 잊었는지도 몰랐던 기억을 더듬게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가?’

황제는 조용히 그 감정을 곱씹었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저편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 * *

나는 내 전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아 있었나.”

“뭐, 살아 있다기보다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자가 되었지.”

그는 자세를 바로 해 앉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목숨을 바친 용기 덕분에 자유를 얻었달까. 음하하하.”

어디가 모자란 건 여전한 듯하고.

“여기는 어디지?”

“난 네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가 더 궁금한데? 너 죽은 거냐?”

“그럴 리가.”

나는 짤막하게 말했다.

“아쉽군. 나도 죽은 건 아니야. 그저 전능에 가까운 존재로 새로 태어났을 뿐이지.”

그는 내가 묻지 않아도 스스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포털을 넘고 만난 어둠 속에서 나는 하나의 메시지를 보았지.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이곳이더군.”

그가 몸을 일으키자, 왕좌는 뒤쪽으로 당겨지듯 멀어지더니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녀석은 앞으로 걸으며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차원의 관리자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솨아아아악-!

그가 손끝을 움직이자 그것에 따라 백색의 공간이 삽시간에 형태를 바꾼다.

나는 숲에 서 있었다가 들에 서 있었다가 하늘 위에 서 있었다가 바다 아래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새하얀 무의 공간.

“이런 것들도 가능하더라고.”

그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놀란 눈치군. 음하하하하!”

기고만장한 녀석이 허리를 꺾으며 웃어 댔다. 여전히 모자란 놈이다.

“됐고. 나는 황제의 회귀를 막으러 왔다.”

“황제의 회귀?”

“프렌치아를 위한 일이야.”

녀석은 손가락을 튕기며 탄성을 터트렸다.

“아! 뭔지 알지!”

다행히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 듯했다.

“시간선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분기점을 말하는 거구나. 이해했어. 나도 관리자라는 직함을 얻으면서 자연스레 얻은 지식들이라, 아직은 꺼내기가 조금 어색하거든.”

그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세계선에 대해서 설명해 줘야 하나. 간단히 황제가 회귀할 때마다 하나의 세계선이 생겨난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그 세계는 황제가 회귀하더라도 죽 이어지지.”

“알아.”

“응?”

이렇게 풀어서 적혀 있지는 않았으나 「불멸의 도시」를 읽으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스피릴 대왕이 몬스터들을 검은 숲으로 몰아내기 위해 겪었던 무수한 실패들.

그에 따라 수없이 많은 세계가 멸망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던 세계는, 몬스터를 검은 숲으로 몰아내는 것에 성공한 단 하나의 세계이자 첫 번째 세계였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는 최초의 세계선으로 돌아와 회귀의 굴레를 끊었다.

그리고 그 세계선은 쭉 이어져 황제의 회귀 전까지 온 것이었다.

“흠. 대충 아나 보네. 어떻게 알지?”

“가는 방법이나 말해.”

“건방지군. 나는 이곳에서 전능에 가까운 존재라고. 나한테 까불다가는-.”

“날 그곳으로 보내 줄 수 있는 거냐.”

“그 성격은 여전하구나.”

내가 가만히 바라보자, 녀석은 괜히 헛기침을 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당연히 보내 줄 수 있지. 내 역할이 바로 그거니까. 나는 차원을 관리하는 관리자라고. 분기점에서 갈라진 모든 세계를 볼 수 있지. 후훗.”

그가 손을 휘휘 젓자, 허공에 무수한 창들이 생겨났다. 세계의 단면이 그 위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창밖으로 여러 세상을 구경하는 듯했다.

“나는 이 창을 통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볼 수 있었어. 황제의 처음과 지금도 알 수 있게 되었지.”

그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입꼬리를 올렸다.

“황제의 회귀를 막으려는 거지. 프렌치아를 구하기 위해서.”

“그래.”

“황제가 왜 가장 먼저 프렌치아를 침공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깊게 생각해 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는 했다. 굳이 바다 건너에 있는 프렌치아를 가장 먼저 침공한다는 건 사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때문에 당시 프렌치아에서도 제국이 왕국으로 쳐들어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뜬금없는 시작이었으니까.

“그 이유는 그가 지금껏 항상 프렌치아에 패배해 왔기 때문이야.”

그는 마치 자신이 승리를 쟁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창을 가리켰다.

모두 황제가 죽는 장면이었다.

“정확히는 프렌치아 왕국의 국적을 가진 인물들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황제는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겪으며 회귀했다. 그 안에는 작은 실수도 있었고 커다란 실패도 있었다. 그 모든 실패가 프렌치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나, 그가 미래를 바꿀수록 높아지는 장벽은 모두 프렌치아와 연관되어 있었다.

좀 더 정확히는 전생의 나, 루시안, 레이크.

황제가 아무리 세력을 키운다고 하더라도 이 셋 중 누군가는 반드시 살아남아 황제의 실패를 이끌어 냈다.

불멸의 군대와 같은 숨겨진 이능이 튀어나오기도 했고, 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연합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황제가 변화시킨 미래의 크기보다 반드시 더 강력하게 밀려왔다. 그는 그렇게 패배할 때마다 이능을 건넬 수 있는 힘 또한 하나씩 얻어 갔다. 하나, 그럼에도 언제나 결과는 같았다.

“때문에 황제는 이 셋을 매번 죽이려 했지만, 단 한 번도 셋 모두를 죽일 수는 없었어. 결과는 매번 같았지. 그래서 이번에는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인 프렌치아 자체를 초장에 무너뜨린 거야.”

대충 황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뒤에 프렌치아를 합병하고 총독부를 세워 너희들의 시선을 프렌치아에 잡아 둔 거지. 압정을 통해 제국의 몸집을 키울 시간을 벌려고 했고. 확실히 이 계획은 성공하는 듯했어.”

녀석이 손짓하자 루시안과 레이크의 모습이 나왔다.

“할렌트를 휘하로 두었고, 총독부를 통해 프렌치아를 사분오열 갈라지게 만들었지. 제네스 쿤 프렌치아도 죽었고. 하지만 역시나 루시안과 레이크는 조우했고 세력을 일궈 나갔어. 그럼에도 확실히 지금까지보다 지난한 길이었지. 역전의 동력이었던 프렌치아 자체가 힘을 잃었으니까. 그 기회를 통해 황제는 빠르게 세력을 넓혀 나갔어.”

프렌치아를 초장에 박살 내고, 훗날 반란군이 될 세력 기반을 날려 보내는 것까지는 황제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렇게 변한 미래는 바로 나라는 존재를 이 세계로 불러들였다.

“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대충 예상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자세한 상황은 몰라도 내가 역천의 대가라는 건 어림짐작하고 있었으니까.

하긴, 마교 녀석들의 주술로 나를 이 세계로 보내는 것이 가능했을 리 없었다.

녀석들의 주술을 나의 무극천승심결이 막아 내지 못했을 리도 없었고.

“그런데 넌.”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대체 어디서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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