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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92화 (192/228)

제192화

제192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4)

흐릿한 기억 속에 잠겨 있던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서 선명해진다.

마치 지금껏 또렷이 기억하고 있던 것처럼.

마치 어제도 본 것처럼 하나도 낯설지 않은 얼굴.

그 위로 10년의 세월이 포개어져 있음에도 그랬다.

“우와아아-!”

인파의 웅성거림이 하나의 함성으로 들렸다.

곳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해 환호를 내지르고 있었다.

부모님은 천천히 융단 위를 걸었다.

국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밝게 미소 짓는 광경을 보니, 흑백 속에 잠겨 있던 전생의 기억이 생기를 머금는다.

하나의 삶을 건너뛰었음에도, 진한 향수가 눈가에 머물고 있었다.

연회에 앞서 간단한 연설이 시작됐다.

아버지부터 어머니, 그리고 전생의 나까지.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흐르자, 기억에 입체감이 살아난다.

모든 순간이 또렷해지고 있었다.

행복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부서진 순간까지.

이것이 내 본래의 생이라고?

두 세계의 제네스 쿤 프렌치아의 삶은 아득했다.

패망하지 않은 나라에서 처형당하지 않은 전생의 내 얼굴은 평온했다.

내가 겪지 못했던 10년.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나는 지키지 못했던 약속들이 그 안에선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모르겠다.

하나, 그에게선 잔잔한 힘이 느껴졌다.

한 자루의 검과 같은 지금의 나와 달리, 그는 포근한 이불 같았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연설이 끝나고 연회가 시작됐다.

음악이 흐르고 각종 공연이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내게는 무엇 하나 와닿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 순간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과는, 내가 겪었던 전생과는 너무도 멀어서.

현실적이지 않았다.

꼭 사술에 걸린 것만 같았다.

왜 내가 겪었던 삶과는 이리 다른가.

전생의 내 삶은 왜 그리되었나.

전생의 나는 왜 열다섯이란 나이에 부모를, 나라를, 목숨을 잃어야 했나.

그리고 지금의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나.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황제의 회귀로 인해서.’

그의 회귀로 인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가 본인의 입맛대로 바꾼 미래로 인해 나는 눈앞의 이 순간들을 잃었다.

내가 살았어야 할 삶을 빼앗겼다.

아니.

여기 있는 모두가 그랬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또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

자의에 의해 타의에 의해 전쟁에 끌려 나온 모든 자들.

……이 세계를 살아갔을 사람들.

그들의 삶이 모조리 바뀌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것인가.

천하일통?

그것이 무엇이라고.

대체 그것이 무엇이라고.

간만에 뒷목이 빳빳하게 당겨 온다.

깊게 호흡을 뱉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황제를 향한 강렬한 적의가 호흡을 따라 수면 깊숙이 가라앉는다. 세차게 일렁이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이내 잔잔해졌다.

귀가 열리고 시야가 트인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내가 누렸을지도 모를 삶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든 연회가 끝나고 왕궁의 성문이 닫힐 때까지.

* * *

촤아악.

파도가 해변가에 잔잔히 몰아쳤다.

하얀 포말이 모래사장에 부딪쳐 흩어진다.

마그네트를 뒤로한 나는 어느새 포르센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너른 해협이 여러 생각을 작게 만들었다.

나는 걸음을 돌렸다.

배가 필요했다.

딸랑.

문이 열리자 종이 울었다.

“어서 오세요!”

낭만의 바다이야기는 여전했다.

나는 이곳에서 전과 비슷한 방법으로 배를 구할 작정이었다.

이번에는 따로 연결된 인연은 없었지만, 도박하는 놈들을 엮어 내는 것쯤이야 낚싯대로 물고기 잡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니.

실력 좀 보여 주면 파리떼는 알아서 꼬일 터였다.

일단 적당한 판부터 찾아야겠지.

청각을 확장하여 여러 방을 훑었다.

판돈이 높게 걸리는 쪽이 일단 가장 우선순위다.

그 와중, 귓가로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여간.

나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쪽으로 가시면-.”

길을 막는 녀석을 가볍게 치우며 나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뭐야?”

내게로 쏠리는 시야.

나는 한 녀석을 싸늘히 내려다보았다.

“네가 왜 여기 있냐.”

“응?”

나를 알아보지 못한 네더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 나를 아는가. 나는 남자와의 인연을 가지지는 않는 편인데 말이지. 혹 내가 자네 누이나 여동생을 건드렸다면 사과하지. 하지만 장담하네. 분명히 쌍방의 마음이 통했을 걸세.”

“그랬다면 이렇게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거다.”

“응?”

“넌 내 손에 죽었을 테니까.”

“파하핫!”

네더만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상당한 실력자로 보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보다 그리 나약한 사람은 아닐세.”

대강 보아도 검의 경지는 지금보다 부족한 감이 있었다.

지금의 녀석은 나와 함께하며 실력이 점진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둘째 치고, 꼬라지를 보아하니 이곳에서도 그는 잘 먹고 잘사는 듯했다. 건국 기념일이 얼마 전이었는데 이곳에 있는 걸 보면 레오니랜서는 때려치운 거 같고.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가 뭔가? 검이야? 도박이야?”

“당연히 도박이지.”

잘됐다 싶었다.

네더만을 털어먹으면 수완이 있는 녀석이니 어떻게 해서든 배를 구해 올 수 있을 터였다.

“하하. 젊은 친구가 배짱이 두둑하구만. 내 소문을 못 들어 본 모양이군그래.”

녀석은 언제나처럼 자신 있게 웃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옆에 있던 놈들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내게 사나운 눈빛을 보냈다.

“어설픈 실력으로 참여했다가는 가죽까지 벗겨질 거다. 각오는 된 거냐?”

“그때 돼서 울고 빌어도 소용없어.”

“손목 병X 돼서 나간 놈들이 한 수레라고, 젊은이.”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으름장을 놓는 자들.

아무래도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로 보이나 보다.

내게는 기꺼운 일이었다.

방심하고 있는 적만큼 털어먹기 쉬운 것도 없으니.

나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뭐 해, 패 안 돌리고.”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뭐, 뭐지?”

네더만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 또한 마찬가지.

나는 그들의 전 재산을 탈탈 털어 버렸다.

내가 말했다.

“그 실력은 어디 안 가는군.”

네더만의 도박 실력만큼은 두 세계가 다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혹 비결이라도 있는가?”

“비법이 따로 있나. 다 천부적인 감이고 재능인 것을. 그만큼 했는데도 돈을 못 따면 도박판은 떠나는 게 맞다. 손목이라도 잘라 주랴?”

“……더럽게 재수 없는 놈일세.”

“배나 가져와.”

“뭐, 알겠네. 하지만 급할 거 없지 않은가. 해도 다 저물었는데. 오늘 밤은 술이나 한잔하면서 내일 얘기하도록 하자고. 급할 게 뭐 있다고 그러는가. 응?”

나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걸음을 재촉한 탓에 시간적 여유는 많았다.

하룻밤 정도는 즐겨도 좋을 듯했다.

“네가 산다면.”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는 겐가? 응당 돈을 딴 자가 사야지!”

하긴.

녀석은 땡전 한 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외상으로 달아.”

“……그것도 방법이기는 하군.”

녀석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뭐, 좋네. 이것도 인연인데 내가 오늘은 한 턱 쏘지! 이게 바로 바다 사나이 아니겠는가! 음하하!”

술자리는 빠르게 만들어졌다.

나는 간만에 여유를 즐기며 창밖으로 보이는 밤바다의 운치를 즐겼다.

바다는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으나, 창가에 든 별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크으. 내가 사서 그런가? 술맛이 좋군. 그런데 자네는 어디서 온 겐가? 차고 있는 검도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데. 도박 실력도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고 말일세.”

“알 거 없다.”

“……참으로 과묵한 친구구만. 내가 그런 사람들을 은근히 좋아한다네. 하하.”

“기사는 아닌 거 같고. 용병인가?”

내 물음이었다.

“그래 보이나? 뭐 하지만 이래 봬도 주군도 있는 기사일세. 이 돈도 다 그 녀석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라고.”

아무래도 그는 지금도 테이난가에 얹혀사나 보다.

많은 것이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니.

카드론 녀석.

여기서도 머리 좀 썩이고 있겠군.

“나는 먼저 올라가지.”

배는 내일 아침에 받기로 했다.

여기서는 뭐 하고 살고 있나 궁금해서 잠시 어울려 주었을 뿐. 공짜 술이면 족했다.

여기 있다가는 옆에서 귀찮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 올 게 뻔하니.

“참으로 까칠한 친굴세.”

“배나 확실히 준비하도록.”

“하. 그 부분은 걱정 말고 푹 쉬시게. 내일 아침이면 근사한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을 테니.”

나는 녀석의 허풍에 고개를 내저었다.

달빛이 구름에 걸린 늦은 밤.

술자리가 모두 끝나고 적막이 내린 밤거리를 도둑고양이처럼 은밀히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발끝을 세우고 조금의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검은 인형.

나는 그 도둑놈을 멈춰 세웠다.

“어디를 그리 가나.”

몸을 움찔한 녀석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돌았다.

“화장실이 급해서 말일세. 자네는 야밤에 무슨 일인가.”

“도둑놈을 잡으러 왔지.”

돈 잃은 놈이 술을 산다고 할 때부터 예상한 바였다. 네더만이 그다지 신뢰할 만한 놈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는 바였고.

“그런가? 늦은 밤에 고생이 많군. 하지만 걱정 말게. 내 아까부터 여기 있었는데 도둑놈은 보지 못했으니. 들어가서 편히 주무시게. 내 도둑놈을 보면 크게 소리 질러 깨워 주겠네.”

“말은 고맙군.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응?”

“이미 잡았거든.”

그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뜨며 제 얼굴을 검지로 가리켰다.

“설마 나? 하하. 이거 뭔가 제대로 오해했나 보구만.”

“그럴 리가.”

“나는 돈이나 떼먹는 그런 사람 아닐세.”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들어가시지.”

“허, 이거 참. 사람을 못 믿는 친구로군. 뭐 안 그래도 자네의 실력이 궁금하기는 했단 말이지.”

네더만이 검에 손을 가져가며 씩 웃었다.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할 듯하다.

“걱정 말게. 내가 이긴다고 해도 목숨을 위협하거나 돈을 떼먹는 일은 없을 걸세. 내가 신의는 지키는 법이거든. 암, 도박에도 상도덕은 있는 법이라고.”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대신, 값은 내 천천히 치름세.”

역시나 입만 산 한량이었다.

나는 검을 쥘 것도 없이 주변의 나무 막대기를 들었다.

“그간의 정이 있으니, 한 대만 때리도록 하지. 재주껏 피해 봐.”

“하하, 이거 참. 정말이지 고마운 일이군. 그런데 나를 너무 만만히 보는 거 같은데. 도박과는 많이 다를 거라고. 후회하지 말고-.”

“오기나 해.”

검지를 까닥이자 호탕하게 웃는 녀석의 눈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내 팽팽히 당겨지는 공기.

첨예하게 선 예기에 일대의 공간이 날카로이 일어선다.

쿵!

묵직한 도약과 동시에 폭발적인 검격이 날아들었다.

나태한 정신과 달리 깔끔하고 정갈한 일격.

나는 녀석의 선공을 가볍게 피해 냈다.

“호오.”

녀석이 짧은 감탄을 던진다. 내 움직임을 쫓아 휘어 들어온 녀석의 검이 분화하듯 만개하며 이지러진다.

상당히 빠른 속검.

하나, 아직도 나를 만만히 보고 있었다.

허공만을 가르며 흩어지는 검격에 네더만이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이제 좀 속도를 높이려나 본데.

그럼에도 나를 잡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속도였다.

내가 본인보다 하수라고 생각하는 탓이었다.

고작 최상급에 이른 녀석이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내 사정을 봐주면서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위협적일 턱이 있나.

“자네 실력이 상당하구만!”

네더만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띠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녀석을 굳이 일깨워 줄 생각이 없었던 나는, 곧장 그 검격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솨아아아아!

네더만의 쾌검이 무의미하게 흩어진다.

녀석의 방심을 가른 나는 어느새 막대기를 내리긋고 있었다.

네더만의 동공이 확장되는 순간, 녀석의 정수리를 향해 벼락이 떨어졌다.

빠각-!

* * *

솨아아아.

바람을 품은 돛이 몸을 부풀렸다.

작은 범선이 새벽을 가르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게. 바다에 빠져 죽으면 여한이 없을 걸세!”

저편 항구에서는 이마에 붕대를 감은 네더만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배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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