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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96화 (196/228)

제196화

제196화 세계의 그림자 (4)

주변의 풍경이 책장 넘어가듯 홱홱 지나갔다.

아스라낙과 족장이 나아갈 방향은 하나뿐이었다.

예상대로 화로의 비밀 문이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 먼 복도 끝에서 뻗어 나오는 희미한 빛줄기.

콰아.

나는 긴 복도를 한 호흡에 주파했다.

걸음을 멈추는 동시에 내가 끌고 온 바람이 사납게 휘날린다.

아스라낙과 족장이 마법진 앞에 있었다.

아스라낙이 천천히 등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올 줄 알았느니라.”

그의 얼굴 위로는 지독한 권태로움이 묻어 있었다. 지금껏 봐 왔던 녀석의 표정과는 확연히 다른.

나는 마법진 앞에 서서 주문을 외우고 있는 족장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내 손아귀로 빨려 들어오듯 날아왔다.

허공섭물의 수였다.

“호오.”

아스라낙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보았다.

그는 족장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손안에 들어온 족장을 보니 눈동자가 풀려 있다. 본인의 의지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닌 듯했다.

나는 깔끔하게 족장을 기절시킨 뒤 저편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그를 보았다.

내가 말했다.

“너 뭐냐.”

“나?”

아스라낙이 기다랗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제국의 황제, 아스라낙 윈 크레본.”

확실히 낯설다.

“그것이 짐의 이름이다.”

표정부터 행동 모든 것이 달랐다.

그리고 품고 있는 기세.

쿠구구구구구.

검을 늘어뜨린 녀석의 기파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제단을 통째로 흔들었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고 곳곳에 균열이 인다.

일대를 짓누르는 묵직한 압박감.

넓은 공동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간 듯했다.

적어도 무한의 속검…….

아니, 그 이상.

파밧!

녀석의 신형이 훅 꺼지듯 사라지며 눈앞에서 솟아난다.

검이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앙-!

칼날이 맞부딪치며 발생한 충격파에 세찬 돌풍이 장내를 휩쓴다.

나는 그 바람을 이용해 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족장을 더욱 멀찍이 날려 보냈다.

저 멀리 날아간 그는 돌멩이처럼 데구루루 굴러 공동 밖으로 벗어났다.

하나 그곳에 정신을 판 탓에.

피슛!

왼쪽 어깨에서 핏물이 튀었다.

흐릿한 궤적이 살가죽을 옅게 훑고 지나갔다.

살갗이 베인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무한의 속검도 옷자락을 베는 것이 전부였거늘.

아무리 내가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했다고는 해도 적의 검은 그만큼이나 날카로웠다.

쉬아아아악-!

어깨를 치고 지나가 선회한 검이 다시금 들이닥친다.

횡베기였다.

흐릿한 검격이 검을 튕겨 내며 녀석의 가슴을 열었다.

나는 검을 꽉 움켜쥐며 쇄도했다.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칼날에 내력을 밀어 넣었다.

유형화된 검강이 검신을 타고 세차게 타오른다.

적의 칼날 위에도 마찬가지로 검은색 검강이 타오르고 있었다.

색은 마기와 같은 검은색을 띠고 있었으나, 마기와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었다.

나는 이것을 과거에 느껴 본 경험이 있었다.

콰아아아앙-!

시공을 잘라 내며 전진하는 두 개의 칼날이 맞부딪친다.

그 충격파로 인해 일대의 지반이 갈라지며 파편이 들고 일어난다.

하나, 그것은 허공에 멈춘 듯했다.

녀석과 내가 머무는 시공간에서는 그랬다.

파편이 허공에 멈춘 듯이 움직이는 느릿한 시간 속에서, 녀석과 나만이 흐릿한 신형을 남기며 움직이고 있었다.

검격이 충돌할 때마다 제단을 쥐고 흔드는 듯한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터져 나온다.

콰과과과과과과!

파도가 맞부딪치고 바람이 엇갈리듯 두 개의 선이 쉬지 않고 서로를 향해 뻗어 갔다.

격렬한 파동이 공간에 축적되며 그 크기를 키운다.

수많은 충돌이 마치 하나의 폭발처럼 터져 나갔다.

공동 전체가 쪼개지고 무너질 만한 충격파.

하나, 공동은 놀랍게도 그 충격을 견뎌 내고 있었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제단이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솨아아악!

바람을 자르며 나아간 검이 녀석의 목 앞에서 막힌다. 그 궤적을 따라 벽을 깊게 긁어 나가던 흔적도 멈춘다.

그드드득!

칼날이 서로를 밀어내며 으르렁거렸다.

서로를 밀어내려는 힘이 한 점에서 격돌하고 있었다.

그때 적의 칼날에서 휘황한 빛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

세상을 삼키며 빠르게 번져 나가는 검격.

나는 그것에 맞서기보다 충격을 흘리며 뒤로 뛰었다.

녀석에게서 무언가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낀 탓이다.

몸을 여러 차례 뒤집어 칼날에 남은 검력을 흩트렸다.

바닥에 내리기 무섭게 녀석의 검이 쏘아진다.

온 세계가 그 검격에 잠기는 듯했다.

정말이지 무식할 정도로 거대한 참격.

나는 그것을 마주하며 헛숨을 토했다.

확실히 무한의 속검보다 위.

그리고 천마급의 무력이었다.

내가 만난 최강의 강자와 비등한 검력.

나도 쉬이 대할 수 없었다.

천령신공 검법편.

한빙의 장(章) 빙해(氷海).

한기가 서린 강기가 더욱 날카롭게 저며진다.

북해의 숨처럼 차가운 내력에 일대가 창졸간에 얼어붙는다.

그 한기를 휘감은 검격이 쏘아졌다.

콰아아아아!

수평으로 그어지는 얼어붙은 참격이, 적의 검격을 반으로 잘라 내며 밀고 들어갔다.

마치 공동 전체가 잘려 나가듯 청백색의 선이 기다랗게 그어졌다.

두 개의 검격이 상쇄되며 흩어진다.

그로 인해 인 먼지구름을 흩어 놓으며 녀석이 쇄도해 왔다.

쿠르르르르르릉!

막대한 내력을 품은 두 개의 검이 부딪치며 일대를 부수어 나갔다.

곳곳에서 천둥이 일며 검은색 불기둥이 치솟았고 얼음꽃이 휘날렸다.

검격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하나, 몸 상태가 같은 건 아니었다.

나의 검은 서서히 적의 검을 압도해 가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천지가 뒤흔드는 폭발음이 있은 뒤.

“쿨럭-!”

폐를 토해 낼 것처럼 깊은 기침이 있었다.

칼을 거꾸로 꽂아 몸을 지탱한 녀석이 붉은 핏물을 토해 냈다.

몸이 잘게 경련하고 있었다.

검력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녀석의 육체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는 탓이다.

아스라낙의 신형 뒤로 거뭇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그림자 같았지만, 그림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풀썩.

아스라낙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 자리에 그림자만이 홀로 타오르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짐승과 같은 울음이 흐른다.

나는 널브러진 아스라낙의 몸을 허공섭물로 당겨 왔다.

신기하게도 그의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약간의 내상과 근육이 손상되었을 뿐.

며칠 요양하면 괜찮아질 듯했다.

나는 그를 족장 쪽으로 던졌다.

홀로 타오르는 그림자는 거인과 같은 형태를 잡아 가고 있었다.

[과.거.는. 바.뀌.지. 않.아.]

그림자의 중심이 입처럼 벌어지며, 한 자씩 발음하는 녀석.

발음이 어린아이의 말을 따라하듯 어눌했다.

이내 구름처럼 불어난 녀석의 몸체가 검붉은 잔광을 뿜어냈다.

쿠르르르르릉!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인간의 형상이었으나 그 형태가 먹구름 같았다.

녀석의 강기에서도 느꼈었으나 나는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은 불멸의 부대와 같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붉은 섬광을 품은 검은 구름이 내게 쏘아졌다.

묵직한 주먹이 일대를 쓸어버리며 밀고 들어왔다.

콰가가가가각!

바닥이 갈려 나가며 돌 조각이 튀었다.

형태는 구름 같았지만 그 실체는 명확했다.

천령신공 검법편.

광풍의 장(章) 승천(昇天).

검의 궤적을 따라 칼바람이 일었다.

예기를 품은 바람 줄기가 놈의 몸뚱이를 갈가리 찢으며 지나쳤다.

바람의 길을 따라 흩어지는 검은 운무.

불멸의 부대와 마찬가지로 실체화를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는 듯했다.

콰아아아앙!

광범위한 공격이 이어졌다.

녀석의 움직임은 구름처럼 넓은 반경으로 퍼져 일대를 짓뭉개 왔다.

형태 또한 괴이했다.

팔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뱀처럼 구불거리기도 하고,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했다.

형체를 제멋대로 확장하고 압축하며 들이치고 있었다.

하나, 그것에는 이성이 없었다.

어눌하게라도 말하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짐승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아스라낙의 몸에 있을 때 수준 높은 검격을 펼치던 녀석은, 이제 형태에 의지한 단순한 공격들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까다로웠으나, 상대하기는 오히려 편했다.

지능 없는 물리적 강함은 그 한계가 명백했다.

힘만 센 어린아이.

상대하기 어렵지 않다.

휘이이이잉!

칼끝에서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검이 그어질 때마다 대기가 휘돌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며 기다란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검격.

바람이 흐르고 흩어지고 뭉치며, 공동 전체를 장악하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검의 궤적에 통제되는 바람.

바람의 자유로움이 손아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적의 움직임은 그 바람에 점차 가둬지기 시작했다.

녀석의 형체가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세찬 바람의 장막이 일대를 겹겹이 두르고 있었다.

칼날에 잘리고 흩어진 운무가 그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에서 흩날렸다.

녀석의 몸체가 잘게 찢어지고 있었다.

구오오오오오오!

이리저리 찢긴 몸체가 칼날을 따른 바람을 따라 하나로 응축되기 시작한다.

녀석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바람은 내 뜻을 따르고 있었다.

검은 구름이 덩어리져 압축되어 갔다.

뭉게구름처럼 거대했던 그것이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

압박을 떨쳐 내려는 세찬 몸부림이 칼끝에 전해졌으나, 바람은 끊임없이 흘렀다.

바람은 감옥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공간을 막아 갔다.

녀석은 계속해서 작아졌고, 그것이 마침내 알사탕처럼 작게 압축되었을 때.

하나의 빛살이 쏘아졌다.

천령신공 검법편.

제2장 흑관섬(黑貫閃).

바늘처럼 날카로운 빛줄기가 응축된 구체를 관통하고 지나간다.

하나의 선이 검은 구체의 정중앙을 뚫었다.

쩌저저저저적!

압축되어 강제로 실제화되었던 구체에서 무언가 깨져 나가는 굉음이 일었다.

그리고 하나의 점에서 일어난 폭발.

구체를 가두고 있던 바람의 감옥마저 단숨에 찢어발기며 풀어져 나온다.

콰아아아아아!

한 점에 응축되었던 힘이 터져 나가며 그 후폭풍이 주변에 휘몰아쳤다.

아름드리 고목마저 단숨에 찢을 만큼 강력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흩어지고 찾아온 적막이 있었다.

공동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정말 안 갈 거냐.”

“그래.”

아스라낙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내 검술이 아깝다는 것이다.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합칠 생각 없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꺼져라.”

“칫.”

정신을 차린 아스라낙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녀석의 몸은 금세 나았고, 나는 해안가에서 아침 일찍부터 출항하는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든 꿈을 펼치고 싶을 때는 날 찾아.”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다.”

그는 그렇게 미련만 남겨 두고 떠나갔다.

나는 점차 멀어지는 범선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또 놀러 오게-!”

움파움파족이 그런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손에 쥐어진 나침반을 보았다.

움파움파족이 아스라낙에게 건넸던 나침반이었다.

나는 그것을 몰래 슬쩍했다.

다시 돌아온다고 회귀의 권능을 얻게 되지는 않을 테지만, 괜한 변수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녀석의 몸에 씌워졌던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했으니.

“이제 저도 가야겠습니다.”

나는 족장에게 말했다.

최초의 세계선에서 황제가 회귀의 권능을 얻는 것을 막았다.

그렇다고 본래의 세계에까지 영향이 미치지는 않는다.

그저 각자의 시대를 살아가겠지.

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는 일은 없을 거다.

황제는 더 이상 회귀하지 못할 테니까.

콰자자자자작!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포털이 개방되었다.

나는 그 앞에 있었다.

부족원들은 경외 어린 시선을 가지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족장은 내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고했네.”

“가 보겠습니다.”

“응? 어디를?”

나는 금세 깨끗한 눈동자로 물어보는 족장을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솨아아아아.

몸을 입자 단위로 훑는 청량한 감각과 동시에, 나는 온 세상이 새하얀 세계에 도착해 있었다.

“수고했다.”

그런 내 앞으로 재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가짜 왕세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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