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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07화 (207/228)

제207화

제207화 작은 전장 (1)

“뭐예요? 벌써 끝났어요?”

네스에서 내린 이리엘이 말했다.

찰나에 많은 검격이 오갔으나 시간으로 보자면 빠른 결착이었다.

“네더만의 상태 좀 봐 줘라.”

내 말에 네더만을 본 이리엘이 눈을 크게 떴다.

겉으로 봤을 때 그는 반시체였다.

“봐 봐요!”

이리엘은 다급히 네더만의 상의를 찢고 가슴팍을 가르는 상처를 보았다. 그녀의 지휘에 따라 알렌과 기사들이 다급히 움직였다.

그들이 분주해하는 사이, 경비병이 다가왔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경비 대장인가?”

“아, 예. 그렇습니다.”

상황이 정리되자 자연스레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모두 영웅 바라보듯 우리를 보았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무너졌으리란 걸 쉬이 알았을 터. 하지만 이 사건 자체가 우리 때문에 벌어졌다고는 생각지 못하겠지.

내가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평안한 휴식뿐이다.”

“아, 예.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손을 휘젓자 그는 다급히 물러갔다. 휴리첸시의 시장이 와서 인사를 건네려 했으나, 모두 받지 않았다. 우리가 감사받을 일도 아니었고, 다들 피곤에 전 상태. 의미 없는 만남으로 간만에 얻은 시간을 날려 보낼 수는 없었다.

우리는 도시의 뒷정리는 시민들에게 맡기고, 오랜만에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끄응. 언제 출발할 참인가?”

침대에 누운 네더만이 말했다. 가슴팍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였다.

“내일 바로.”

이미 해가 떠오른 아침이었다. 내일 출발한다면 오늘은 종일 휴식을 취할 수 있을 터.

“젠장.”

물론, 네더만이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넌 앞으로 이리엘이랑 마차를 탄다.”

이대로 적의 습격이 끝난 건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괜찮을 거다. 에로인 이상의 지휘관이 함께 했을 거 같지는 않았다.

“가만히 감각이나 가다듬어라.”

“하, 고맙군. 자네에게 이런 인정이 있을 줄이야. 정말이지 죽는 순간에 새로운 세계를 보았어. 그간 자네의 검을 옆에서 지켜본 덕분이지.”

네더만은 당시의 심경을 낱낱이 말했다. 옆에 있던 알렌은 그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최상급의 벽을 넘어 소드 마스터에 오른 자의 생생한 경험이었다.

억만금을 줘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

그 순간의 감각을 듣는다고 해서 실력이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알렌에게는 그 경험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거였다.

“정말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회복 속도가 엄청 빨라요. 사람이 아닌 수준이라고요. 아마 금세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벽을 넘으면서 체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화경과 소드 마스터가 일맥상통하기는 하지만, 내공심법이 아닌 마나 연공법을 익혀서 그런지 환골탈태는 없는 듯했다.

아니면 위기의 순간에 찾아온 기적을 통해 벽을 넘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회복 속도가 빨라 다행이었다.

“다들 푹 쉬라고 해.”

“안 그래도 이미 다 빈사 상태예요.”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밤새 검을 휘둘렀다.

죽을 맛이겠지.

다들 하루 온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조심히 가십시오!”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휴리첸을 벗어나고 있었다.

말발굽이 평야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나아가는 속도를 따라 쏜살같이 흘렀다.

휴리첸 이후로 적의 암습은 없었다.

평온하다 못해 지루한 여정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협곡과 도시와 마을을 지나, 계속해서 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주르아든 왕국을 넘어 아르에리아의 국경을 지나고 있다.

아르에리아는 신성 국가이면서 하나의 도시 국가.

영토의 면적이 크지 않았다.

길게 깔린 설원을 지난 우리는, 곧 하늘에 닿을 듯 치솟은 탑들이 늘어선 도시를 마주할 수 있었다.

* * *

“프렌치아 녀석들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호위대장, 파케의 말에 베솔로인 후작은 턱수염을 손으로 쓸었다.

“그놈들이 결국은 왔군.”

감히 제국에 반기를 든 종자들.

후작을 비롯한 제국의 귀족들은 프렌치아에 하나같이 이를 갈고 있었다.

레토로이나 6검과 무한의 검속, 그리고 1차 원정대.

그 모두가 패했다.

거기에 총독부가 완전히 철거되는 굴욕까지.

제국의 자존심이 짓밟힌 사건들이었다. 한데 그 원흉이 본인들 또한 하나의 자주국이라 주장하며 세계 정상회담에까지 참여한 것이다.

“제국의 은혜를 모르는 버러지 같은 작자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후작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마치 노예와 겸상을 하는 것 같은 모멸감이 전신에 번진다. 파케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아르에리아 쪽에서도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드레어스 웨이브에 병력을 파견했던 일도 있어 그런 듯합니다.”

들은 바 있다.

3천에 이르는 병력을 뒤늦게나마 파병했다지.

“고작 그 정도 병력을 파병해 놓고 자주국임을 주장한다고? 하. 정말이지 뻔뻔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로다.”

제국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왕국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조촐한 수였다.

안 그래도 입 안에 가시 같은 것들이었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없었다.

“감히 제국에게 반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톡톡히 알게 해 주어야겠지.”

제국의 힘을 보여도 된다는 황제의 명령이 있었다.

“이 몸은 결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그들의 호위대 구성은 어떠하더냐.”

“호위대를 네더만이란 자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용 사냥꾼이란 이명을 가진 자로, 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른 자입니다.”

“용 사냥꾼?”

“제국군을 많이 죽였다는 것으로 얻은 이명입니다.”

후작의 미간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졌다.

제국군을 죽여 얻은 이명이라니.

끓어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자네와 비교하면 어떻지?”

“최상급에도 격이 있는 법이지요.”

파케의 말에 후작은 금세 미소를 띠었다.

제국을 대표하는 행렬의 호위대장을 맡은 자였다.

그 또한 제국의 정점에 위치한 기사.

소국인 프렌치아에서 이름을 떨치는 놈쯤은 가벼이 압도할 터.

“그럼 흰 사자는 오지 않은 건가?”

“예.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프렌치아의 인물들을 조사한바, 흰 사자로 추정되는 인물은 없었다.

“그래? 밖으로 빼돌리기 여간 무서웠나 보군.”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흰 사자만큼은 자존심이 높은 후작 또한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소국의 태생이라고는 하나 레트로이나 6검과 무한의 속검, 글리머 기사단까지.

제국의 우뚝 선 검들을 혼자서 작살낸 대륙 제일검이 아닌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새로운 경지에 다다랐다고 했다.

물론 그것까지 믿지는 않았다.

흰 사자를 신격화하려는 프렌치아의 속셈이겠지.

하나, 그가 대륙 제일이란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니.

“한심한 놈들. 이번에야말로 본인들의 위치가 얼마나 하찮은지를 일깨워 줄 것이야. 온 왕국의 인사들에게 철저히 비웃음을 당하도록 만들어 줘야겠지.”

후작의 입꼬리에 비소가 걸렸다.

* * *

나와 네더만 그리고 알렌까지.

우리는 모두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는 프렌치아를 대표했다.

격식에 맞는 옷을 입을 필요가 있었다.

“하. 꽤나 불편하군.”

네더만이 몸이 끼이는지 불편한 소리를 내었다.

“자네는 생각보다 편안한가 봐?”

그는 나를 보며 놀란 눈치였다.

전생에는 더한 의복도 입었던 나였다.

이 정도쯤이야.

“그래도 신성 왕국이라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연회도 열어 주고 좋지 않아요? 전 너무 설렌다구요.”

알렌은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저녁에 있을 연회에 초대를 받았다.

첫 공식 일정이기도 했다.

드레어스 웨이브를 막아 낸 축배를 드는 것이 세계 정상회담의 시작이었다.

하나, 그리 편히 즐길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각국을 대표하는 고위 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파티였다.

작은 숨조차 낱낱이 평가하며 은근한 힘겨루기가 이루어질 터.

숨이 턱턱 막히는 자리일 터였다.

“귀족 놈들 사이에서 어디 술이나 한잔 제대로 하겠는가. 차라리 우리끼리 즐기는 게 백번은 낫지.”

“하긴, 그렇겠군요……. 어떡하죠? 제가 가도 되는 겁니까?”

알렌은 금세 낯빛을 바꾸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이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나 보다.

“물론이지. 뭐 귀족 놈들이라고 별거 있나. 그저 콧대나 세우는 작자들이지.”

“네더만 씨는 긴장 안 되십니까?”

“될 리가.”

태연한 태도의 네더만에 알렌이 내게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비장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저희가 프렌치아를 대표하는 거잖습니까.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구요. 저 되게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습니다!”

“되겠냐.”

내가 말했다.

귀족들에게 흠 잡히지 않을 정도의 교양을 익히기 위해서는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는 하지요.”

“그렇게 불안하면 방에서 쉬는 건 어떤가?”

“아뇨! 그럴 수는 없죠. 어떻게 왔는데요!”

손톱을 물어뜯던 알렌은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대륙의 모든 왕국의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

그저 그 안에서 함께 숨 쉬었다는 것만으로도 알렌에게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터였다.

이 녀석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지.

“그나저나 이리엘이 늦는군.”

네더만이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모두 그녀의 방 앞에서 이리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세 준비한 우리와 달리 방 안은 아까부터 꽤 분주했다.

그리고 잠시 후, 흥분한 유리아의 예쁘다고 호들갑 떠는 찬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끼익.

드디어 문이 열리며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이리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렌치아의 왕가를 상징하는 색은 흰색이었다.

금빛 수실로 꾸며진 하얀 드레스는 고풍스러우면서 아름다웠다.

그에 맞는 화려한 액세서리까지.

정말이지 우아하고 화려한 기품을 꾹꾹 눌러 담은 것 같다.

아주 작정을 했고만.

이리엘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담스러운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렌은 그녀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와아, 진짜 너무 예쁜데?! 프렌치아의 위상이 절로 서겠어!”

유리아도 그 옆에서 난리가 아니었다.

“우리 공주님 진짜 엄청나죠?! 진짜 너무너무 예쁘죠! 제가 봐도 반할 지경이라니까요!”

“이야, 옷이 날개라는 말이 딱이구만. 공주마마가 되신 후로 그러기도 했지만, 오늘은 아주 작정을 했군.”

네더만도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칠 정도였다.

이리엘은 주변의 칭찬에 금세 콧대를 높이며 말했다.

“제가 프렌치아 대표 아닙니까! 미모부터 꿀릴 수 없죠!”

그러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

“어때요? 저 안 꿀리죠?”

한껏 꾸민 이리엘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것은 나의 검이 천하제일인 것처럼 객관적이고 명확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 눈에도 그랬다.

“이제 가지.”

“하하, 제네스 님도 참. 이런 칭찬도 쑥스러워하시면 장가는-.”

빡!

“끄악!”

잠깐의 소동 후, 우리는 연회장의 문 앞에 서 있었다. 초대장과 신원을 간단히 확인한 후에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파티장의 조경은 대부분 신앙적인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많은 예술품과 반짝거리는 것들로 꾸며져 있어도, 화려하기보다는 경건한 분위기였다.

자리에 초대된 귀빈들은 자유로이 인사를 하며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프렌치아 왕국의 귀빈들 입장하십니다.”

입구를 지키던 관리자의 간단한 소개에 우리에게 시선이 몰려든다.

음악 사이로 흐르던 웅성거림이 순간 멎을 정도였다.

대륙에서 프렌치아와 제국의 전쟁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현재 무소불위한 제국과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만큼, 프렌치아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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