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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23화 (223/228)

제223화

제223화 종착 (1)

황궁의 내부는 넓고 복잡했으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았다.

마치 찾아오라는 듯, 지표가 되어 주는 거대한 존재감이 있었다.

황제의 기운은 그만큼 선명했다.

그것을 따라가다 막다른 길을 만나면 벽을 부수고 나아갔다.

앞을 막아 오는 자들은 없었다. 황궁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황제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어느새 드래곤이 양각된 거대한 문 앞에 이르렀다.

역대 제국의 황제들을 모두 품었을 문.

그 안에 담긴 세월과 역사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존재감은 그보다 더욱 무거웠다.

이 너머에 황제가 있다.

두 손바닥을 문에 가져다 대었다. 돌의 까슬까슬한 촉감과 함께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진다.

구구구구궁!

벽과 다름없는 문을 밀자, 높이만 6m에 이르는 커다란 문이 세로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실금이 간 후 점차 벌어지는 문틈 사이로, 저 멀리 옥좌에 앉아 있는 황제의 모습이 보인다.

옥좌는 일곱 칸의 계단 위에 놓여 있었다.

그와의 거리가 상당했음에도 내게는 그가 내 눈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생생히 담겼다.

몸을 편히 늘어뜨린 채 턱을 괴고 앉아 있는 금발과 금안을 가진 사내.

황제, 아스라낙 윈 크레본.

검은 제복을 입은 그는 권태로움을 담은 자세에서조차 고귀함을 풍기고 있었다.

무료한 듯 생동감 있는 눈길이 나를 향한다.

나는 그 너른 홀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에 내 발자국 소리만이 나직이 울린다.

그와의 간격이 내딛는 걸음만큼 좁혀져 갔다.

그것을 따라 황궁이 몸을 떨기 시작한다.

구구구구구구구!

거대한 존재감이 맞물리며 공간 자체가 사납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멈춘 나는, 고개를 들어 옥좌 위에 올라 있는 그와 눈을 맞췄다.

녀석은 그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초의 세계선에서 봤던 그와 생김새는 똑같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

그의 공허한 눈가에 옅은 호기심이 일렁인다.

“새파랗게 어리군.”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곧 결착에 이를 텐데 잠시 터놓고 대화 좀 나누지.”

그는 내 존재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듯했다.

그리고 본인이 더 이상 회귀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는 듯했다. 결착이라는 단어에 묻어 있는 감정이 그러했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떤 형태로든 본인에게 결말을 가져다줄 것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회귀의 권능은 어떻게 막은 건가.”

“네가 처음 회귀의 권능을 얻게 되던 순간에 다녀왔다.”

나는 순순히 말해 줬다.

흘러넘치는 기도만 보아도 만만치 않은 자.

내게는 시간을 끌어서 나쁠 것이 없었다.

그만큼 회복할 시간을 버는 거니까.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그는 홀로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긴. 회귀의 권능 자체도 말이 안 되거늘. 회귀의 권능이 사라지던 날 기묘한 꿈을 꾸었었지. 흐릿한 기억뿐이었지만 네 얼굴을 보니 알겠군. 당시에 나를 만났었나.”

“보았지.”

“죽였나?”

“권능을 얻는 것을 막았을 뿐이다.”

그는 흥미로운 듯 나를 바라보았다.

“회귀의 권능을 얻기 전의 나는 어땠나? 한심한 모습을 보였을 거 같은데.”

“지금보다는 낫던데.”

“그런가. 사실 기억도 잘 안 나.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 말이야.”

무수한 회귀를 통해 반복되는 시간 속을 살아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같은 사람인 적이 없었을 터였다.

여러 번의 삶 동안 성장하고 깎이고 단단해지는 과정의 끝에서,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까먹은 듯했다.

“그때의 나는 어땠지?”

나는 짧게 대꾸했다.

“이상에 젖은 멍청이.”

“이상에 젖은 멍청이라…….”

황제의 표정이 일순 싸늘히 굳었다.

그는 내 말을 조용히 곱씹으며 기억을 반추하는가 싶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맞아. 그랬던 거 같군. 그때 나는 프렌치아로 가는 길이었지. 그랬었어. 그곳에서 내 목표의 기반이 되어 주는 만남이 있었지. 감회가 새롭군. 아주 오래전 일이야.”

“목표가 무엇이지?”

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하나의 제국을 꿈꾸고 있었다. 그것은 로드르 헤이어서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나는 그가 왜 그것을 꿈꾸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최초의 세계선에서는 그 또한 루시안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는 다양한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분명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고, 변심은 그로 인한 결과일 거였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프렌치아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귀중한 자산이 될 수도 있겠지.

“하나의 제국.”

“내가 본 넌 하나의 제국을 추구하지 않았다. 왜 목표를 바꾼 거지?”

“바꾼 적 없다. 내 목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국민을 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바뀌지 않았다고?

솔직히 의외였다. 나는 그저 잠자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가 말했다.

“너도 내 이상에 관해 알고 있는 것 같군.”

“하나의 제국과 국민을 위한 나라. 이것이 무슨 관계지?”

“하나의 제국이란 하나의 황제를 의미한다.”

그는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짧겠지.

드넓은 대륙이다. 전체를 통일하더라도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권력이 얼마나 갈까.

나는 그 물음을 듣는 순간, 그가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려 했는지를 이해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마 내가 죽는 순간 그 또한 함께 무너지겠지.”

그래. 그리될 테지.

아스라낙이 황제로 있는 동안은 황제의 권력은 굳건할 거다.

그에게는 압도적인 힘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가 죽고 난 다음에는?

하나의 제국은 사분오열되어 잘게 갈라지게 될 터.

그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하나의 제국이 찢어질 때는 분명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양일 거다. 새로운 나라들이 새로운 정치 아래 세워지겠지.”

“포부가 크군.”

녀석의 이상은 제국에 국한되지 않고, 대륙의 전체로 뻗어가 있었다.

이능을 부여하고 제한 없이 회귀할 수 있는 권능.

그것이 있기에 세울 수 있는 꿈이었을 터였다.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세상은 바뀌지 않더군. 그래서 하나의 제국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지. 높게 쌓은 다음, 완전히 무너뜨리는 거야. 불가능한 일 같나?”

“가능할 거 같기도 하군.”

“맞아, 충분히 가능해. 나는 분명 가능성을 보았으니까.”

가능성을 보았다는 말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어. 분명 새로운 움직임을 느꼈지. 프렌치아의 독립군들 또한 그 증거 중의 하나고. 혁명은 말이야, 완전히 밑바닥에서 출발해야만 가능한 일이거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도저히 이 삶을 버틸 수 없을 때, 그만큼 궁지에 몰려야만 국민은 움직여. 그렇지 않으면 현재에 안주하고 마는 게 인간이니까.”

시린 눈빛이 나를 향한다.

“부정하고 싶나.”

“딱히.”

굳이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루시안도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텐데. 아닌가?”

“맞아.”

무수한 회귀 속에서 그는 루시안과도 마주했었을 거다. 프렌치아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겠지.

“너희와 내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보이는군.”

분명 루시안과 황제가 바라보는 이상은 같은 맥락이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 이유가 있나? 함께 나아가면 된다. 너의 검만 있다면 이번에는 분명 그 끝에 닿을 수 있다.”

결국 나온 이야기는 우습게도 손을 잡자는 이야기였다.

죽음이 두려워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연명을 위해서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순수하게 협력을 원하고 있었다.

닿고자 하는 이상을 위해서.

만약 함께한다면 그의 말대로 원하는 결과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제국을 건립할 수 있을 테고, 또 그 안에서 꿈꾸던 일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테지.

루시안이 몇 세대에 걸쳐 이룩하고자 하는 꿈을, 어쩌면 우리 시대의 끝자락에서 맞이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역사에 더 깊고 선명한 족적을 남길 수도 있을 테고.

바라만 보던 이상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도 직접 확인하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절한다.”

황제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지? 어차피 하나의 제국이 될 것이다. 프렌치아든 제국이든 그 껍데기가 무엇이 중요한가? 결국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면. 그리고 그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이상에 닿을 수 있다면.

국민을 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의 나라가 제국이든 프렌치아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나가 되어도 어차피 부수어지고 쪼개어질 나라였다.

이상을 위해 거름으로 쓰이게 될 나라였다.

그의 말대로 우리의 나라가 제국이든 프렌치아든 중요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달라.”

“너희들만의 힘으로 하고 싶다는 것이냐?”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럼 무엇이 다르다는 거지?”

황제가 루시안과 그의 이상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언젠가 이전 세계선에서 루시안에게 이와 같은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가 다시 회귀를 한 건, 루시안 또한 이 제안을 거절했던 것이겠지.

그 이유는 뭐였을까?

그 이유가 나와 같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너의 국민은 먼 미래에만 살고 있나 보군.”

내 말에 황제는 입매를 비틀었다.

“희생 없는 길은 없다. 더 나은 나라를 위해서는 분명 누군가 죽어야 하지. 혁명은 핏물 위에 탑을 쌓는 일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위해 필요한 희생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높고 견고한 탑을 쌓느냐인 것이다. 그것만이 수많은 희생을 값지게 하는 것이야. 너는 이미 죽은 이들을 위해 나아갈 길을 포기할 생각인가. 그게 그들을 위한 것이라 여기는가.”

나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가에 깊은 실망이 스친다.

내가 말했다.

“전장이 시작된 이후 수없이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고, 나라를 잃었다.”

“그것이 중요한가? 그들이 흘린 피로 인해 후대에 태어날 이들은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누릴 수도 있을진대.”

“그럴지도 모르지.”

황제의 말대로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지 모른다.

어차피 죽은 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이대로 나아간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겠지만, 대신 그 끝에서 우리는 이상에 닿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는, 먼 훗날 이 시대를 돌아보는 자들에게, 지금 시대에 흐른 피와 고통보다 훨씬 더 찬란하고 의미 있는 업적으로 찬양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국민들이 느꼈던 아픔과 슬픔과 죽음은, 그들에게는 의미 없는 숫자와 문자로 남아 흩어지겠지.

“우습구나. 그럼 프렌치아의 왕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상에 닿겠다더냐. 그것이 가능하다더냐. 네가 그의 편에 서서 나의 병사들을 벨 때는, 그들의 목숨이 하찮더냐. 네가 죽인 이들의 시체만 해도 산처럼 높이 쌓이고 들을 가득 채울진대, 이제 와 희생의 무게를 논한다? 너는 그저 프렌치아 국민의 목숨값만을 셈할 작정인 것이냐.”

“그래.”

내게는 프렌치아 국민의 목숨값만이 중하다.

내가 그들의 왕세자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만으로 프렌치아 편에 서서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루시안이 선택한 방법이 옳다고 믿는다.

루시안과 황제는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명백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이 둘을 다르게 하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 확신을 갖게 한다.

“루시안은 국민들이 스스로 그 이상에 닿길 바라고 있다.”

그것이 다른 점이다.

황제는 회귀의 권능을 통해 자신의 삶 내에서 모든 걸 이루고자 했다.

그것에 닿기 위해 흐르는 무수한 피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인류의 역사는 모두 핏물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죽음이 합당한 일이었나?

황제가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죽어 간 이들 중, 그의 이상을 함께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몇이나 될까.

티끌도 되지 않을 터였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저 이유도 모른 채 전장에 내몰렸고, 그렇게 죽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전장을 찬성하지 않았다.

전생의 나 또한, 이 전쟁을.

그 많은 죽음을.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었다.

내가 말했다.

“너는 그들의 삶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다.”

핏물 위로 아무리 높은 금자탑을 쌓는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병사들과 국민은 그것을 원한다 한 적이 없는데.

그것이 제국이 프렌치아에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장에 내몰려 검을 든 제국군과 달리, 지금의 프렌치아는 모두 스스로를 위해 검을 들고 있었다.

잃어버렸던 삶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직접 검을 들었다.

제국군들과는 검에 담은 의지 자체가 달랐다.

그 차이가 프렌치아로부터 병력의 차이를 극복하게 했고, 전장에서의 승리를 거머쥐게 했다.

나의 검으로 인해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나, 나 혼자서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었다.

함께 만들어 낸 결과였다.

칼날 위에 담긴 의지는, 강철의 예리함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서도.

“내게는 언젠가 닿게 될 이상보다 지금을 살아가는 국민의 목숨이 더 중하다.”

그것이 내 진심이었다.

이상이고 뭐고 내게는 중요치 않았다.

황제는 내게서 전생의 삶을 빼앗아 갔다.

나뿐만이 아니라, 프렌치아 사람들이 누렸을 모든 삶을 그는 빼앗았다.

그리고 우리의 나라를 빼앗았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그가 핏물 위에 지을 찬란한 금자탑보다 더 소중했다.

그렇기에 나는 녀석에게 일말의 흔들림 없이 검을 겨누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자신을 겨눈 칼끝을 바라본 황제의 낯빛이 싸늘히 식는다.

그 또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검을 쥐었다.

그의 입가에서 싸늘한 음성이 흘렀다.

“맹수인 줄 알았더니 그저 하룻강아지에 불과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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