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56)
왕건우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행운을 상징한다는 부엉이 모양의 장식품을 하나 가져왔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방에 진열해 놨지만, 자세히 보니 도훈의 말대로 어딘가 수상했다.
도훈은 그가 미리 도청기를 설치할 것이라고 언질을 줬다.
강시혁이 호기심에 눈을 빛내고 있을 때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건 비밀이야, 강 피디.”
“그리고 내 돈 안 찾아 줘도 좋으니 무리는 하지 마.”
“그것도 내 마음.”
“허, 못 말리겠네, 그럼 딱 하나만 물어볼게, 이 실장.”
“말해 봐.”
“아무리 생각해도 왕 대표에게 원한 같은 건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가 뭐야?”
“바늘 도둑은 초기에 잡아야 뒷골이 안 당기는 법이거든.”
“바늘 도둑이라…….”
강시혁은 황당하다는 듯 도훈을 바라봤다.
하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뭐, 도훈도 굳이 왕건우라는 인간에 대해서 말해 줄 필요성은 못 느꼈다.
도훈이 기억하는 거와 강시혁의 눈앞에 있는 왕건우는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
지금은 바늘 도둑이지만, 앞으로는 소도둑, 아니 나라를 팔아먹을 도둑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2팀장 한유라가 초췌한 얼굴로 회사에 들어섰다.
그때 누군가가 졸졸 쫓아온다.
한유라는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지도 모르고 좀비처럼 앞만 보고 휘적휘적 걸어갔다.
이번 한 주는 유레카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과로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만큼 그동안은 놀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뒤쪽에서 직원이 계속 손짓을 했지만, 한유라는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도 구분이 안 될 상황이었다.
크랭크인 되는 〈초원의 집〉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여진은 자신의 스케줄은 모두 뒤로 내팽개친 채 이지유에게 온 힘을 쏟고 있다.
정여진의 이야기에 의하면 가르칠 맛이 나는 학생이라고 했다.
그건 일주일 전의 이야기고.
어제는 이지유가 십 년 주기로 나온다는 연기 천재라고 했다.
초원의 집의 사전 작업에서부터 시작해서 정여진이 관여하는 모든 곳에 동행하다 보니 몸이 두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형편이었다.
천천히 자신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 한유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천재일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뭐, 천재에게는 천재에 걸맞은 수업 방법이 있다며 이지유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정여진도 생각해 보면 괴짜였다.
새벽 시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야시장 그리고 학교 운동회까지.
한유라는 정여진과 이지유를 데리고 안 가 본 곳이 없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상태였다.
한유라가 막 사무실 문을 열려는 순간.
뒤쪽에서 따라오던 직원이 그녀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힘에 한유라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헉.”
한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곳에는 홍보팀의 곽수정 대리가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만 달싹이는 곽수정 대리의 모습에 한유라가 재빨리 물었다.
“곽 대리, 표정이 왜 그래?”
“한 팀장님, 그게 사실이에요?”
“뭐가?”
한유라가 눈매를 좁히며 곽수정을 바라봤다.
곽수정은 슬쩍 주변을 살핀다.
마치 누가 들으면 안 되는 기밀이라도 된다는 듯 주변을 샅샅이 살핀 곽수정이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그 모습에 살짝 겁이 난 한유라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곽 대리? 그러니까 무섭잖아.”
“잠시만요, 팀장님.”
곽수정은 조심스럽게 한유라의 귀에 얼굴을 갖다 댔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이 이 회사 정리한다는 거요?”
“그게 무슨 말이야?”
화들짝 놀란 한유라가 되묻자 곽수정이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댔다.
“쉿, 팀장님, 목소리 좀 줄이세요.”
“그래, 조용히 할 테니 말해 봐. 그게 무슨 말인지.”
“이건 팀장님만 알고 계셔야 해요.”
“야, 이러다 점심시간 되겠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 곽 대리.”
“지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요. 대표님이 이 회사는 정리할 거래요.”
“헉, 그게 무슨 말이야?”
“유레카 정리하고 다른 곳에 차린 기획사에 자금을 몰빵 할 거라고 하던데요.”
“대체 누가 그래?”
“지금 여의도에도 소문이 쫙 났다고 하던데요.”
“곽 대리.”
“왜요? 팀장님.”
“여의도까지 도는 소문인데 왜 그렇게 비밀처럼 얘기해.”
“아니, 아무래도 회사 내부다 보니…….”
“에이 어디서 헛소문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아니야.”
“아니라고요?”
“여의도에서 도는 찌라시는 대부분이 뻥이잖아, 그걸 알면서 왜 그래?”
“생각해 보세요, 대표라는 사람이 어떻게 회사에 얼굴 한번 비치지 않을 수가 있어요.”
“음.”
한유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해 보니 곽수정의 말이 반쯤은 일리가 있었다.
자신의 사람만 곳곳에 심어 둔 뒤 정작 회사에 안 나오는 대표 이사가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회사의 대표라면 사실 얼굴이라도 한번 보여야 했다.
가장 이상한 것은 대표이사를 찾는 손님도 없다는 것이다.
그때였다.
그들의 뒤쪽에서 제법 기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기척을 느낀 한유라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림자의 주인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팀장님, 소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문이에요?”
“앗.”
옆에 있던 곽수정 대리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한유라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너무 힘이 없어 덜 놀란 듯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한유라가 졸린 눈으로 물었다.
“이 실장이 왜 거기 있어?”
“우리 회사니까, 여기 있죠.”
“아, 그렇구나.”
“그런데 무슨 소문이에요?”
“나는 말 못 해. 여기 있는 곽수정 대리한테 물어봐.”
한유라는 턱짓으로 곽수정을 가리켰다.
정신이 든 곽수정은 마구 손을 흔들었다.
“아니에요, 저는 몰라요.”
“아니, 왜 몰라?”
한유라가 황당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곽수정은 어망에서 벗어나려는 물고기처럼 마구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몰라요.”
“곽 대리가 나한테 얘기해 준 거잖아. 나는 피곤해서 책상에 엎드려서 눈 좀 붙일 테니까. 곽 대리가 재방송 좀 해 줘.”
말을 마친 한유라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복도에 둘이 남자 곽수정 대리는 죄를 지은 것처럼 눈만 끔뻑거렸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잠시만요.”
도훈이 핸드폰을 꺼내자, 곽수정은 한숨 돌렸다는 듯 슬금슬금 뒤쪽으로 물러났다.
언제라도 자리를 피할 수 있게 후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곽수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디링, 디링.
핸드폰이 울리자 곽수정은 힐끔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라는 듯 뒤쪽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도훈이 말을 이었다.
“메시지 확인해 보세요. 그거 제가 보낸 거예요, 대리님.”
“네?”
“일단 확인부터 하세요.”
“아, 알았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 곽수정이 슬쩍 핸드폰을 터치했다.
힐끔 핸드폰을 바라보던 곽수정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뭐예요?”
“곽 대리님이 좋아하는 도넛 기프티콘이잖아요.”
“이, 이걸 왜 제게…….”
곽수정은 얼굴이 살짝 벌게져서 도훈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도훈이 손을 내저었다.
“다른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이거 뇌물이에요.”
“뇌물요?”
곽수정이 눈을 반짝이며 팔짱을 꼈다.
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회사에 온 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그래서 내부 소식도 모르고 해서 대리님의 도움 좀 받을까 하고요.”
“아, 그런 거라면…….”
곽수정이 말끝을 흐리자 도훈이 재촉하듯 물었다.
“가능할까요?”
“그거 제 전문이에요, 잠시 이리로.”
곽수정은 활짝 웃으며 도훈을 이끌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유레카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테라스였다.
중간에 있기에 매니지 부서와 경영지원팀의 간단한 회의 장소로도 쓰는 휴게실이었다.
오전이라서 그런지 휴게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곽수정 대리는 커피 두 잔을 뽑아서 그중 한 잔을 내밀었다.
“이거 드세요.”
“네, 잘 먹겠습니다.”
“그 인사는 제가 드려야 하는데…… 헤헤.”
실없이 웃는 곽수정을 본 도훈이 마주 웃었다.
대충 분위기를 살펴보니 곽수정이 이 회사의 소식통이라는 건 누구나 눈치챌 수 있었다.
웃음으로 대화를 시작한 곽수정은 쉴 틈 없이 회사 내부의 정보를 토해 냈다.
한유라에게 얘기하지 않은 소문들도 모두 뱉어 낸 곽수정은 힐끔 도훈을 바라봤다.
뭔가 석연치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진짜 대표님 라인이에요? 친해요?”
“별로 친하지는 않아요. 먼 친척이긴 해도 서로 잘 모르는 그런 사이 있잖아요.”
“아, 그러시구나.”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었는데…… 그걸 왜 또 물으시는 거예요?”
“대표이사님에 대한 소문도 말씀드리려고요.”
“아, 얘기해 주세요.”
“소문에 의하면 피도 눈물도 없대요.”
“아, 왜 그런 소문이 났지요?”
“직원 하나가 인사 안 했다고 감봉 처분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어요.”
“네?”
“대표이사님을 본 사람이 없다면서요.”
“총무팀의 박 과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아…….”
도훈은 곽수정 대리가 말한 박 과장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생각해 보니 박 과장도 사촌 형인 이도준의 사람인 것 같았다.
도훈이 수긍하자 곽 수정이 신이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소문이 그것뿐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곽수정이 털어놓은 대표이사에 관한 소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 소문의 근원지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미라클 본사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때 휴게실 문이 열렸다.
약간 거무튀튀한 얼굴의 사내가 들어오자 곽수정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사람은 조심해야 해요, 출장 갔다가 어제 돌아왔는데 저분이 아까 말한 신입 킬러예요.”
곽수정의 말에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신입 킬러라는 단어가 이해가 안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대리님.”
“별건 아니고 저분 성격이 유별나서요…….”
말을 하던 곽수정이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아마도 조심하라는 말투 같았다.
순간 곽수정이 말한 직원이 도훈 쪽으로 걸어왔다.
따각따닥.
유난히 거슬리는 구두 굽 소리.
마치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같다.
도훈의 앞까지 온 그는 시선을 돌려 슬쩍 곽수정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턱짓을 했다.
“이 친구는 처음 보는군, 곽 대리.”
“안녕하세요, 과장님, 새로 들어온 직원분이에요. 이쪽은 이도훈 실장이라고 해요.”
곽수정이 도훈을 가리켰다.
곽수정이 다급하게 눈짓을 한다. 빨리 소개를 하라는 신호였다.
도훈은 재빨리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7팀 실장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흠, 경력직인가 보네.”
“네, 여기저기 좀 떠돌아다녔습니다.”
“나는 인사팀 최대한 과장이라고 하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과장님.”
“말씀? 무슨 말씀?”
눈매를 좁히며 도훈을 바라보는 최대한 과장.
도훈은 방금 곽수정에게 들은 조심하라는 말과 신입 킬러라는 말이 떠올랐다.
딱 보니 군대에서의 군기반장 같은 존재로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