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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마리나를 바라봤다.
그의 걱정은 진심이었다.
지금 가져온 김치찌개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음식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매울 수밖에 없었다.
김치찌개의 매콤함을 수치로 나타내면 어떨까?
사실 이 매콤함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매운맛에 대한 실험은 스코빌이라는 척도를 쓴다.
이는 미국의 약사인 스코빌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보통 순한 맛 라면의 맵기는 500 안팎.
맵다고 하는 한국의 라면들은 10,000까지도 올라간다.
그렇다면 김치찌개의 경우는 어느 정도일까?
대충 800에서 1,000스코빌 사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전혀 맵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준이고 살짝 눈을 돌려, 바다 건너에 있는 일본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맵다는 라면을 보면 스코빌 지수가 500에 못 미치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지금 마리나가 먹는 김치찌개는 외국인이 감당할 수준이 아닌 것이다.
송석현 쉐프는 잠시 묵념했다.
마리나의 혀를 추모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사실 살짝 미안한 감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 맛이 바로 바바로티와 같이 나눠 먹던 김치찌개 맛이었다.
이것은 도훈이 부탁한 사항이기도 했다.
절대적으로 그때와 같은 맛.
그리고 같은 시간.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해 달라는 것이 바로 도훈의 부탁이었다.
그냥 부탁도 아니고 도훈은 수고비까지 봉투에 넣어서 전달했다.
그 수고비를 보고 송석현 쉐프는 깜짝 놀랐었다.
그런 큰돈을 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돈 때문은 아니었다.
도훈의 진실한 태도 때문이었다. 예전에 일했던 두바이의 칠성급 호텔에서도 자신을 이렇게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었다.
도훈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정작 맛을 본 마리나가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었다.
송석현 쉐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마리나의 입술이 움직였다.
“매운 게 아니라 어릴 적 생각이…….”
마리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오직 도훈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을 글썽이는 마리나 덕분에 도훈의 변화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바바로티가 당신에게 왜 김치찌개를 같이 먹자고 했는지를 알겠네요.”
“네, 저도 알 것 같아요.”
둘만이 알 것 같은 대화가 오가자 장혁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마리나…… 저희도 알면 안 될까요?”
“뭐 대단한 얘기는 아니에요.”
“그래도요, 제가 마리나의 팬이거든요.”
“정말로요?”
마리나가 의심스러운 듯 장혁을 바라봤다.
이전에는 그럼 낌새조차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팬이라고 하니 놀란 것.
장혁은 조심스럽게 마리나를 바라봤다.
팬이라고 하면 비즈니스 관점에서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적당히 거리를 둔 것뿐이었다.
어릴 적 마리나와 카이클의 노래를 듣고 자라난 세대였다.
아니, 장혁의 나이 또래에서 둘의 노래를 듣고 자라지 않은 세대가 있을까?
장기 자랑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그들의 노래와 춤이었다.
그들의 춤과 노래는 그저 먼 나라의 문화가 아니었다.
장혁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친구들의 문화이기도 했다.
“네, 그래서 마리나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장혁이 눈을 빛내며 마리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마리나가 피식 웃었다.
그 미소는 자신의 크루에게 보내는 인자한 미소였다.
그녀는 이제 장혁을 자신의 동료로 인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몇 시간 전 그 무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하나가 된 듯 그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아니었다.
마리나 자신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몇 달을 연습한 동료들보다 그들에게 믿음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 호흡을 몇 번 호흡을 맞췄던 공연팀은 그녀를 배신했다.
단 하루에 한정된 동료지만, 오늘 무대에 선 이들은 영원한 자신의 동료로 기억될 것이었다.
마리나가 포근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지진 때문에 집을 잃었거든요.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음식이 진짜 맛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김치찌개를 한입 넣으니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요…….”
살짝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마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밥과 김치찌개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이 누가 보기에도 경건했다.
몇몇 이들은 두 손을 모았다.
마치 기도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마리나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반찬의 경우는 젓가락이 익숙하지 않은지 포크처럼 찍었다.
누가 봐도 한국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쉬지 않고 음식을 먹는 모습은 마치 푸드파이터 같았다.
다만 다른 점은 푸드파이터가 억지로 먹는 모습이라면 마리나는 진심으로 맛있게 먹고 있었다.
몇 번 김치찌개를 뜨고는 매운지 손을 흔들어 입속을 달랬다.
그 모습에 블랙홀과 가필드의 멤버들도 침을 삼켰다.
도훈이 송석현 쉐프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도훈의 말에 송석현 쉐프가 손뼉을 쳤다.
짝.
순간 뒤쪽에서 카트가 들어왔다.
미라클 호텔의 직원 한 팀이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가필드와 블랙홀의 테이블에도 한식을 세팅했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했다.
“쉐프님도 자리에 앉으시죠.”
“흠, 제가 손님과 자리에 앉기에는…….”
“마리나가 원하는 것은 아마도 음식만이 아닐 겁니다. 바바로티가 며칠 동안 계속 같은 시간이 다녀갔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랬죠.”
“그 이야기도 한번 해 주시죠. 같이 식사하면서요.”
도훈이 눈을 찡긋했다.
그와 동시에 호텔 직원들도 자리에 앉았다.
음식의 양은 모두가 함께하기에 충분했다.
이것 또한 도훈의 부탁이었다.
마리나는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두 번째 공기를 비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수저를 들었다.
가필드와 블랙홀의 멤버들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살짝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장소담이 눈을 크게 떴다.
“와, 오빠들 저런 모습을 처음 보네. 내가 이런 모습을 봤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 믿을 거야.”
“소담아.”
“왜 불러?”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뭘 그렇게 놀라, 우리도 빨리 먹자.”
윤장미가 주변을 가리켰다.
블랙홀과 가필드 그리고 호텔 직원들이 모두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호텔 직원들은 활짝 웃으며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
막상 스타를 본다고 해도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탑 아이돌이라 불리는 가필드와 팝의 여제 마리나와 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밥을 먹고 있다.
그들의 모습에 장소담도 할 수 없다는 듯 숟가락을 들었다.
몇 숟가락을 뜨던 장소담이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휴.”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윤장미가 눈을 가늘게 뜨자 장소담이 말을 이었다.
“아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지.”
“뭐가 다행인데.”
“나 한 달 후에 이사가.”
“어디로?”
“아르헨티나로 가. 조금 멀기는 한데…….”
“그게 무슨 말이야?”
“형편이 그렇게 됐어.”
“학교는?”
“학교는 일단 휴학계 냈어.”
“그게 왜 다행이라는 거야?”
“네가 마리나하고 가필드를 앞에 두고도 놀라지 않으니까.”
“그거랑 네가 이민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이민 간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아서…….”
“허, 그게 어떻게 똑같아?”
윤장미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모두는 평온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윤장미의 머릿속에는 천둥이 치고 있었다.
장소담은 그녀와 단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교 때까지.
둘은 이제까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둘을 짓눌렀다.
윤장미가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아빠가 보증을 잘못 섰어. 그래서…….”
“처음 듣는 얘기잖아. 갑자기 그러면 어떻게 해!”
울상을 짓는 윤장미의 모습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윤장미의 울음보가 터졌다.
갑자기 엉엉 우는 윤장미의 모습에 블랙홀과 가필드의 멤버들까지 달려왔다.
가필드의 장혁은 그런 윤장미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장혁이 본 윤장미는 영락없는 독설가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에게도 망설임 없이 독설을 뱉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사실 기자들도 장혁의 앞에서는 몸을 사리는 편이었다.
까닥 잘못 말했다가는 백만 팬덤의 집중포화를 맞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윤장미는 가필드에 대해 첫 만남부터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그것도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울고 있다고?
장혁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혁은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119에 연락해야 할 것 같아?”
“아, 아니에요.”
장소담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때 우시원이 달려왔다.
우시원의 손에는 생수병이 들려 있었다.
그는 생수를 내밀며 말했다.
“매워서 우는 것 같은데…… 이거 먹고 힘내.”
반사적으로 생수를 받아 든 윤장미가 울음을 멈추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시원을 바라봤다.
갑자기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분위기.
그때 도훈이 물었다.
“얼마면 돼?”
갑작스러운 도훈의 질문에 윤장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매로 눈물을 닦아 낸 윤장미는 재빨리 장소담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그 눈빛에 장소담이 고개를 내저었다.
윤장미와 장소담 사이에서는 치열하게 눈빛이 오갔다.
도훈은 잠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눈빛을 통한 대화와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자 도훈이 물었다.
“아까 다 들었어.”
“네?”
“둘이 하는 얘기 다 들었다고.”
“어떻게…….”
“내가 귀가 조금 밝은 편이거든. 마리나와 바바로티가 소음에 민감하듯 내 귀는 사람 목소리에 바로 반응해.”
사실은 반만 진심이었다.
모든 사람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무대에서 썼던 원포올의 흔적이 남아 있으므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원포올의 스킬은 이럴 때도 효과가 있었다.
하나로 묶은 사람들의 감정과 목소리마저 일정 기간 공유했다.
물론 공유한 데이터는 도훈만이 볼 수 있었다.
아직은 그 스킬의 흔적이 남아 있기에 어렴풋이 그들의 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장소담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게 한두 푼이 아니라서요…….”
“내가 묻는 건 계약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게 궁금한 거야. 어떤 문제인지는 자세히는 모르고 그걸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없잖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딱 계약 하나지.”
“계약이요?”
“오늘 보니까 가능성이 보이더라, 너희 둘 다.”
“네?”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취미로 매일 노래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