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36화 (23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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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친 서찬휘가 진지한 표정으로 우시원을 바라봤다.

우시원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가 있잖아.”

“이런 곰 같은 놈 봤나!”

서찬휘가 쏘아붙이자 우시원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걸핏하면 곰이래? 그럼 너는 여우냐?”

“곰보다는 여우가 낫지 않겠냐? 안 그래? 다람쥐!”

말을 마친 서찬휘가 바라본 것은 주현빈이었다.

주현빈이 뒤로 한발 물러났다.

“제가 왜 다람쥐예요? 그리고 저는 이 싸움에 안 낄래요.”

이제 주현빈까지 끼게 된 상황.

티격태격하는 그들의 모습에 장선우가 재빨리 나섰다.

“그러니까, 찬휘 형 얘기는 실장 형 옆에 연인이 없는 게 이상하다는 거죠?”

“맞아. 네가 시원이보다 낫다. 생각해 봐 실장 형 나이가 몇인데…….”

서찬휘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우시원도 알았다는 듯 턱을 어루만졌다.

“흠, 그것도 그러네. 그런데 여태껏 우린 실장 형이 혼자 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 했지?”

“당연하지, 우리가 옆에 있었잖아. 강영웅 선배도 그렇고 이지유 선배도 그렇고…… 정여진 선생님도 빼면 서운하다고 하시겠다.”

서찬휘가 이름을 쭉 나열했다.

그때였다.

뒤쪽에 드리운 그림자에 서찬휘가 동작을 멈췄다.

서찬휘는 조심스럽게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황수영이 팔짱을 끼고 블랙홀 멤버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해. 대충 들어 보니 시상식 소감 준비하는 것 같은데?”

“시상식이요?”

“그래, 찬휘 네가 지금 우리 소속 아티스트 이름을 쭉 나열했잖아. 그렇게 이름을 랩처럼 쏟아부을 때가 시상식 말고 또 어디 있겠어?”

“그게 아니라, 우리는 형한테 무슨 선물을 할지 고민했어요.”

“도훈 씨에게 선물을?”

“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서찬휘는 랩을 하듯 이제까지 그들의 대화를 요약해서 털어놓았다.

설명을 듣던 황수영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옆에 있던 우시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나도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거죠?”

“아, 아니…… 그러니까, 나도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황수영이 당황한 듯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가 당황한 걸 보니 진짜 심각한 상황 같네요. 우린 그것도 모르고…… 휴.”

우시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황수영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마치 표정을 숨기려는 듯 보였다.

그때 서찬휘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저한테 좋은 생각이 났어요, 누나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누나 친구 중에 우리 실장 형 소개해 줄 만한 분 없어요?”

“흠, 아무래도 도훈 씨는 바빠서…….”

“에이, 생각해 보세요, 누나! 형이 연예인도 아니고 그 나이에 사귀는 사람이 없다는 게 말이 되지 않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황수영이 말끝을 흐리자 서찬휘가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이건 우리끼리 비밀로 해요.”

“일단 말해 봐!”

“그러니까…….”

서찬휘는 자신의 계획을 털어놨다.

그의 계획을 듣던 블랙홀 멤버들이 미어캣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    *    *

같은 시간, 도훈은 장경자의 급한 호출을 받고 달려갔다.

차에 내려서 현관까지 가는 시간은 불과 3초.

그 정도로 도훈은 다급하게 달려갔다.

도훈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장경자의 건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장경자의 호출이 아니었다.

엄지연이 다급한 목소리로 장경자가 급히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최근 들어 미라클은 그룹 전반에 걸쳐 전문 경영인을 대표에 앉히고 정상화 작업에 들어갔다.

덕분에 미라클에 생길 이슈는 줄어든 상태.

그렇다면 다급한 호출은 기업이 아닌 장경자에게 생긴 일이라고 봐야 했다.

문을 연 도훈이 다급하게 외쳤다.

“엄 비서 누나! 무슨 일이에요?”

“어? 이 대표 왔네요?”

“네?”

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생각하던 것보다 분위기가 너무 차분했다.

장경자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면 앞마당에 헬기가 날아와 있거나 아니면 집 안에 의사라도 있어야 했다.

거기에 엄지연의 표정도 너무 평온했다.

엄지연이 도리어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표정이 왜 그래요?”

“아니, 엄 비서 누나가 할머니한테 급한 일이 생겼다고 빨리 오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도훈이 말을 마치기 전에 엄지연이 손짓했다.

“급한 일은 맞아요, 일단 이리 오세요.”

“아무리 봐도 급한 일 같지 않은데요?”

“급한 일 맞아요, 저도 회장님이 시킨 대로 전해 드린 겁니다.”

“흠.”

도훈은 헛기침하며 엄지연의 눈치를 살폈다.

엄지연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나중에 회장님께 듣고 보니 급한 일이 맞더라고요.”

“급한 일이요?”

“네, 그건 회장님에게 직접 들으시죠.”

엄지연이 묘한 웃음을 짓자, 도훈은 할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엄지연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말을 편하게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상당히 사무적이었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

*    *    *

엄지연이 안내한 곳이 저택의 2층이 아니었다.

엄지연은 집에서 나와 뒤뜰로 안내했다.

말이 뒤뜰이지 장경자의 집은 뒤뜰이 아니라 수목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넓었다.

어떨 때는 수목원이 아니라 과수원으로 불릴 때도 있다.

그만큼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서 사과나무, 감나무, 배나무 같은 나무들 말이다.

엄지연이 안내한 곳에는 장경자가 하얀색 면장갑을 낀 손에 전지가위를 들고 있었다.

장경자는 엄지연이 왔다는 것을 모른 채 사과나무를 다듬고 있었다.

툭. 툭.

장경자가 잘라 낸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장경자는 정성스럽게 가지를 쳐 나가고 있었다.

그 소리가 발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도훈은 묘한 불안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도훈이 다가가자 그때야 장경자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 손자 왔구나.”

“네, 할머니.”

도훈은 재빨리 장경자의 안색부터 살폈다.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이 확실했다.

뭐,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 여기까지 달려오며 했던 수많은 상상은 기우였다.

도훈의 표정을 본 장경자가 전지가위를 내려놨다.

장갑까지 벗은 장경자가 긴 챙이 달린 모자를 벗어 부채질했다.

이렇게 보니 진짜 농부 같았다.

도훈이 빤히 바라보자 장경자가 미소를 지었다.

“궁금하지?”

“아니에요, 할머니.”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거짓말은 뭐 하려 해?”

“네, 궁금해요. 무슨 일인데 급한 일이라고 하신 거예요?”

“이걸 봐라!”

장경자는 손으로 사과나무를 가리켰다.

그것을 본 도훈의 고개가 자동으로 슬쩍 흔들렸다.

장경자가 가리키는 사과나무는 평범해 보였다.

듬성듬성 꽃망울이 맺혀 있기도 하고 덕분에 벌도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 사과나무는 왜요? 혹시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예끼, 지구가 멸망하면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지, 살아남을 궁리를 하기에도 바쁜데 사과나무를 왜 심나! 쯧쯧.”

“그럼, 사과나무를 왜 가리키신 건데요?”

“나무를 보란 게 아니라 벌을 보라고 한 거다.”

“벌이요?”

“이놈들이 왜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보느냐?”

“그야, 꽃씨를 모아서 벌꿀을…….”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과학 시간에 나올 법한 당연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모습에 장경자가 피식 웃었다.

“그래, 잘 아는구나. 그래서 중요한 게 벌꿀일까? 열매일까?”

“네?”

“네, 생각에는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

“그야…….”

“나는 열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벌꿀이야 벌들한테는 중요한 게지.”

“네, 열매가 중요하다고 치고요. 왜 저에게 열매 이야기를 하시는…….”

도훈은 말끝을 흐리며 장경자의 눈치를 봤다.

점점 강해지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도훈의 표정을 본 장경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할미는 어서 열매를 보고 싶다.”

“열매요?”

“손주 말이다, 정확히는 증손주.”

“……어?”

“그 표정은 뭐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손자는 이미 봤고 이제는 증손주 볼 나이는 됐지.”

“그거야 다른 형들도…….”

도훈은 말끝을 흐렸다.

장경자의 손자 중에 멀쩡한 것은 도훈밖에 없었다.

모두 잘살고 있지만, 장경자에게 얼굴을 비칠 상황은 아니었다.

장경자가 피식 웃었다.

“걱정할 것은 없다. 그리고 네 잘못도 아니다.”

“네.”

도훈은 짧게 답했다.

도훈에게는 빌런이었던 사촌 형이었다.

하지만 장경자에게는 똑같은 손자.

도훈은 이 점 때문에 미안해하고 있던 것이다.

그때 장경자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렇게 미안하면 일단 선 한번 보자.”

“선이요? 선이라는 게 소개팅 말하는 거 맞죠, 할머니?”

“그럼, 그거 말고 뭐가 있지? 문송에서 전화 왔다.”

“문송요?”

“문송 황 회장 말이다. 참한 처자가 있다더구나, 네가 한번 봐라.”

장경자는 미리 준비한 사진을 건넸다.

반명함판 사진 하나가 덩그러니 도훈의 손에 놓였다.

도훈이 사진을 보고 어물쩍거리자 장경자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참, 그놈하고는…… 인물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그럴 줄 알고 준비했다.”

이번에 장경자가 건넨 것은 명함 수첩이었다.

명함 수첩을 받아 든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친구분들 명함 보관하던 수첩이잖아요.”

“쓸데없는 명함은 다 빼놨다.”

“그게 왜 필요 없어요?”

“그놈 참, 여기에 다 저장되어 있는데 무슨 명함이…….”

장경자가 자신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순간, 도훈은 멍해졌다.

졸지에 할머니 장경자보다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이 된 것.

그 모습에 장경자가 턱짓했다.

명함 수첩을 펴 보라는 신호였다.

도훈은 마지못해 명함 수첩을 펼쳤다.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다 뭐예요? 할머니.”

“네 신부 후보지 뭐겠어?”

“아니, 한두 명도 아니고…….”

“우리 손자가 보통 유명해야 말이지.”

장경자는 기분이 좋은지 하늘을 보고 웃었다.

물론 그 소문은 장경자가 낸 것이었다.

다른 회장들과 함께 수락산에 올랐을 때 장경자는 문송의 황 회장의 콧대를 꺾어 주었었다.

그때 다른 회장들은 그 경유를 물어봤고 장경자는 과장까지 보내서 도훈과 황강천의 일화를 털어놓았다.

덕분에 이렇게 도훈에게 맞선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사실 장경자가 그들에게 도훈을 자랑한 것은 이런 제안이 받기 위해서였다.

명함 수첩에 줄줄이 꽂힌 반명함판 사진을 본 도훈은 주춤주춤 물러나 엄지연을 바라봤다.

“엄 비서 누나, 이것 좀요!”

도훈은 명함 수첩을 휙 하고 던졌다.

엄지연은 반사적으로 수첩을 받아 들었다.

“이걸 왜 저한테……!”

“일단 맡아 두세요. 저는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도훈은 장경자와 엄지연에게 인사를 건넨 후 뒷걸음질 쳤다.

인사를 남기고 간 도훈을 바라보는 장경자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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