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3화 (3/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3.풋내기들에게 가호를(2)

루아 이클립스 기사단에 들어간다. 그 짧은 문장의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강해, 아시엘과 카이스는 놀란 얼굴로 레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황제 직속인 셀레니스 기사단과 대공 직속인 루아 이클립스 기사단. 지금 세튼 제국은 현 황제파와 대공파로 나뉘어져 소리없이 격렬한 대치 중. 그것으로 인해 두 경쟁자가 완벽한 자신의 말을 만들기 위해 창단한 것이 그 두 기사단들이었다. 서로 양극에 서 있는 다른 주인을 섬긴다. 그것이 기사로서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황제의 친구로서, 최측근으로서 그 대립을 가장 가까이서 봐왔던 루이스였기에 그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속이 착잡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제 상담하러 찾아왔던 레이에게 아시엘과 카이스에게 사실대로 말 하라고 충고했다. 방금도, 쩔쩔매는 레이의 등을 떠밀었지만-

"그게 말이야.. 우리 상단이 대공 전하께 물품을 납품하고 있어서.. 아버지가 대공 전하를 존경하시거든..그래서 얼마 전에 외출했을 때 입단 시험을 쳤는데..통과 될 줄도 몰랐고..아, 근데 그때 만난 선배님들 전부 좋은 사람 같았어."

저렇게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는 꼴을 보니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흥분하지만 않으면 비교적 차분하고 온화한 아시엘이 길길이 뛰며 화를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레이는 불안했다.

잠시 후. 아직도 다소 멍해있는 카이스와 달리 아시엘의 눈동자는 다시 빛을 되찾았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레이는 당혹스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랬구나."

그 뒤어 이어진 것은 환한 미소였다.

"뭐..?"

이번에는 반대로 레이의 동공이 커져갔다. 아시엘은 그런 친구의 표정이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아, 아니..화 안 내?"

레이가 예상 외의 반응에 얼떨떨해하며 되물었다. 화? 팔짱을 끼고 잠깐 고민하던 아시엘은 아! 하고 입에서 소리를 냈다.

"설마 내가 화낼거라고 생각한거야? 겨우 그것때문에?"

화 내는게 정상이잖아! 레이는 그렇게 외치고 싶은 것을 겨우 눌러 담고 말을 이었다.

"아니.. 난 네가 루이스 교수님이 계셨던 곳에 갈 거라고 예상도 했고."

화 안나냐? 약간 어이가 없어진 듯 레이도 팔짱을 끼고 아시엘을 바라보았다. 루이스 교수도 셀레니스 기사단 출신이라, 그를 잘 따르는 아시엘이 그곳으로 갈 거란 것은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었다.  몰라서 그런 선택을 했다, 란 핑계도 댈 수 없었고 실제로 레이도 대공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화를 내지 않아? 레이는 한없이 허탈해하다가 퍼억, 하고 등을 강타하는 아시엘의 손에 으헉!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야, 내가 왜 화를 내냐? 네가 그 기사단에 들어간다고 우리가 친구가 아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수를 지는 것도 아닌 데다 네가 좋다고 하는데 내가 말릴 권리도 없고 그렇다고 나랑 길이 다르다고 질책할 수도 없잖아?"

시원시원한 아시엘의 잔소리에 레이는 굉장히 허탈해졌다.

도대체 내가 왜 걱정한거지?란 생각을 시작으로 곧 역시 이런 녀석이었지- 하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레이는 카이스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 새 무표정으로 돌아온 그는 레이와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끄덕여보였다.

동의의 표시인 것이다. 카이스의 눈빛은 탐탁치 않아 보였지만 아시엘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그였다. 레이는 그런 카이스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아시엘이 킬킬 웃으면서 앉아있는 카이스의 붉은 머리를 살짝 두드리는 것을 바라보던 레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여튼 생긴 거랑은 다르게 엄청 남자답다니까..."

"뭐라고?"

부웅! 으악, 하고 짧게 비명을 지르며 그는 순식간에 날아오는 작고 하얀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헐.황당해져서 손을 톡,톡 터는 아시엘을 황망히 바라보던 레이는 그가 씩 웃으며 하는 말에 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생긴 게 뭐 어떻다고? 잘 안 들리네."

"젠장.쓸데없이 귀만 밝아가지고."

투덜투덜거리며 레이는 뒤로 살짝 물러섰다.솔직히 학년 수석의 주먹은 작아도 많이, 엄청 겁났으니. 그 때, 방방마다 설치된 확성마법이 걸린 통신용 수정구에서 지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아-아직 기숙사 내에 남아계신 졸업생 분들은 1시간 내에 방을 비워주시기 바랍니다.다시 한 번 알립니다...]

천장에 박힌 수정구에서 약간의 잡음과 함께 여성 사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묵묵히 있던 카이스가 입을 열었다.

"..나가라네."

"그러네."

"그러게."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두 소년의 목소리에 루이스는 푸훗-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왜 그러냐는 듯 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교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웃음을 삼켰다.

"하하하!아니다,이 풋내나는 꼬맹이들아."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바로 옆에 있던 레이와 아시엘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일단 짐 다 들고 나가자, 꼬마들. 졸업 기념으로 맛있는 거 사 주마! 황제 바로 옆에서 한 인생을 살아온 이 선배님이 앞으로의 팁도 주고."

맛있는 것-이라는 말에 아시엘과 레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카이스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군말 않고 짐을 챙겨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기숙사를 나서며 오랫동안 머물렀던 아카데미에 정말로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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