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4. 풋내기들에게 가호를(3)
세튼 제국의 수도, 헤크란의 번화가에 위치한 나뭇잎 여관. 맛있는 음식과 깔끔한 방, 그리고 훌륭한 서비스로 항상 1층의 식당이나 윗층의 숙박용 방 모두 복작이는 곳이었다.
구석자리의 4인용 원형 테이블의 쌓인 술병과 빈 접시를 치우던 청년, 렌은 잠시 허리를 펴고 아그그~하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힐끗 시간을 확인한 그는 곧 그 선해보이는 얼굴에 살짝 미소를 올렸다. 곧, 아마 5분도 지나지 않아 평소와는 조금 다른 손님들이 올 것이었다. 예약손님은 아니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기분좋은 생각에 한창 빠져있을 때, 저쪽 테이블에서 단골 손님 한 명이 렌을 소리쳐 불렀다.
"렌-! 여기 맥주 한 병 더!"
"아, 네에!"
렌은 상념을 털어버리고, 곧 친절한 미소를 띠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후 출입문 쪽에서 딸랑 하고 종이 울렸다.
짐가방을 들고-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엘의 가방을 레이가 대신 받아들고있었다- 잠시 헤메던 그들은 아시엘과 카이스가 하룻밤 묵을 방도 잡을 겸 제일 먼저 눈에 띈 나뭇잎 여관이라는 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흔들리며 작게 소리를 냈다. 그 직후 각종 왁자지껄한 대화소리, 간간히 고함을 치는 소리 역시 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서오세요! 네 분이세요? 식사만, 아니면 숙박도?"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아시엘을 힐끗 본 루이스는 어느 새 다가온 앞치마를 한 여성에게 말했다
"2인실 하나.식사는 4명..인데 좀 조용한 자리 없습니까?"
"네~레엔!"
여성이 목청껏 안쪽으로 소리치자 곧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렌이라 불린 청년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카렌누나,불렀어요?"
"응. 근데 왜 거기서 나와?"
"아, 손님이 오실 것 같아서 청소 중이었어요!"
그러고는 한 번 히죽 웃어보인 그는 곧 오셨어요? 하며 계단을 바삐 내려와 카렌이라 불린 여성의 옆에 섰다.
"2인실 맞으시죠?"
렌이 상냥하게 웃으며 말하자 카렌은 못 말린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안내해 드려."
"네."
레이와 카이스에게서 짐을 받아든 그는 묘하게 들뜬 모습으로 따라오세요, 하고는 아시엘을 내려다보았다. 그에 아시엘의 표정이 묘해졌다.
한 발 앞서 3층 복도를 걷던 렌은 계속 자신을 쳐다보는 아시엘의 시선을 느끼고는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까 저희가 한 대화, 들으셨나 싶어서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라는 듯한 얼굴로 렌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자 아시엘이 말을 이었다.
"카렌이라는 여직원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아무도 2인실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안거죠?"
정말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의 소년을 잠시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던 렌은 곧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냥. 감이랄까요?"
감? 그 정도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까 레이가 자신의 짐가방을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엘과 카이스가 숙박할 손님이란 것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않았던가.
꼭 누군가가 알려준 것 처럼. 하지만 더이상의 말은 하지 않을 듯 해 아시엘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때, 렌이 살짝 중얼거렸다.
"아마,당신은 곧 알게 될 거에요. 저흰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은 아닐 테니까."
보통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남들보다 귀가 배로 예민한 아시엘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 뒤의 대화는 일절 없었지만 아시엘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갔다.
"오오~"
고민과 함께 짐도 내려놓고 부리나케 1층의 식당으로 내려간 두 소년은 테이블에 차려진 각종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을 보고 눈을 빛냈다.
"아, 왔어? 시끄러워서 구석자리로 했는데 괜찮지?"
루이스가 아시엘을 바라보며 묻자 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괜찮고말고요, 하고는 재빨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같은 비싼 요리는 아니었지만 유혹하는 듯 맛있는 냄새를 솔솔 풍기는 서민풍의 요리는 슬슬 배가 고파오던 그들에게는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어!"
요리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꿀에 절인 빵을 발견한 아시엘은 반가운 소리를 냈다.
"그건 네 거야."
루이스는 남기면 안 돼, 하고 덧붙였다. 이 일행들 중에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시엘 뿐이니 그를 위해 주문한 것었다. 카이스도 자리에 앉자 루이스는 씩 웃으며 옆에 있는 잔을 들었다.
"건배나 할까? 이제 아카데미도 졸업했으니 한 잔쯤은 상관없을거야."
그의 말에 세 소년도 미소를 지으며 제각기 옆에 놓여있는 가벼운 포도주가 든 잔을 들었다.
"자, 그럼... 건배 제의는 우리의 은사님께서."
아시엘이 장난스레 웃으며 어른 흉내를 내자 루이스는 피식피식 웃으며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음..그러면.."
세 소년의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차례로 바라보며 교수는 결심한 듯 잔을 높이 쳐들었다.
제자들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따라하자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카데미 졸업 축하하고! 각자..뭐,조금 다르지만 제국 최고의 기사단 입단도 축하하고! 축하할 건 많지만 일단 은 다 치우고!"
그는 입에 즐거운 듯 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쨌든 이 풋내기들에게 신의 가호를!"
"가호를!"
그 말을 끝으로 네 사람은 포도주를 들이켰다. 그들의 즐거운 대화소리는 여관의 소란스러움에 섞여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