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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14화 (14/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14.신입(1)

셀레니스 생활관의 내부, 1층 로비. 이 기사단의 유일한 여기사이자 부단장인 아델레트 드 라비안은 마음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고도의 빡침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이 난장판은 뭐야?"

"......!"

그녀의 짜증스러운 고함에 로비에서 뒹굴던 남자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비틀거렸다. 아델레트의 뒤를 따라 2층 사무실에서 내려오던 제르닌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루이카엔은 자신이 점점 높이 쌓아가던 트럼프카드 탑이 와르르 무너지자 울상을 지으며 그녀를 억울하게 바라보며 외쳤다.

"아델! 깜짝 놀랐잖아."

"내가 다같이 모여 놀라고 집합시킨 건 아닐 텐데?"

하지만 곧 돌아오는 싸늘한 음성에 그는 자동적으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 무리 중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휴온이 제르닌의 곁에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어째 오늘 더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네요?"

"어제 파견 나갔던 녀석들이 가정집을 박살냈어. 그래서 그럴 걸."

제르닌 역시 소리를 죽여 대답했지만 그마저도 그녀의 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었다. 곧바로 아델레트의 일갈이 날아들었다.

"잡담 금지! 곧 신입들이 올 텐데 이 꼴이 뭐야?"

확실히 골이 가득 난 듯,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며 외치자 그나마 일을 좀 돕다가 내려온 제르닌과 휴온 역시 움찔하며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제르닌이 노닥거리는 기사들을 재촉했다.

"뭐해. 빨리 안 치우고."

"그치만- 어차피 신입들 와도 달라질 게 없잖아.아델레트 빼고는 전부다 시커먼 남자밖에 없는데."

투덜투덜거리며 목에 휘감긴 애완 뱀의 머리를 살살 긁어주던 남자, 케시비언-줄여서 케빈은 그녀가 사나운 시선을 보내자 흠칫하고 두손을 들어보였다.

"알았어, 알았어!"

그는 입을 댓발 내밀고 주섬주섬 흩어진 카드를 주워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에 우우 모여 수상한 책을 읽으며 시시덕거리는 동료들에게 불만스럽게 외쳤다.

"어이, 왠만하면 야설은 좀 치우지? 진짜 그건 후배들 보기 부끄럽다. 상대도 없으면서."

"실례야, 케빈 선배! 난 약혼녀도 있거든?"

그 중 한 남자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케빈은 빈정거리듯 대꾸했다.

"퍽이나 좋아하겠다, 야설 보는 약혼자."

"아앗! 비밀이라고!"

다급하게 그 남자가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다른 이들의 입가에는 이미 '약점 잡았다'는 고약한 심보에 가득 찬 미소가 걸려 있었다.

"비밀이라굽쇼?"

"지금 비밀이라고 하셨죠."

"이놈들! 지금 협박하는 거냐? 치사하게!"

곧 내부는 낄낄거리며 놀리는 이들과 그들의 입을 막으려는 한 사람으로 또다시 왁자지껄해졌고 결국 정리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아델레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턱, 짚었다.

"하아... 이 답 없는 놈들."

신입 환영회를 한다고 연무장에도 가지 못하게 한 것이 결국 이 사단이 나 버렸다. 가만히 있으려고 하니 온몸이 근질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하기는 이러지 않는게 더 이상했다. 파견지에 가면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를 쳐 대는 인간들이니. 활동비보다 그 수습 때문에 나가는 돈이 더 많다면 말 다한 셈이었다.

아델레트와 제르닌이 떠들고 있는 기사들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것을, 막 2층의 방에서 내려오던 벨킨은 한심하다는듯 바라보았다. 로비는 아까보다도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여기저기 뿌려진 카드 위로 케빈의 애완 뱀이 스윽스윽 기어다니고 있었고 각종 수상한 책-야설-들은 활짝 펴져 널브러진 가운데 기사들은 결국 아델레트에게 혼나는 중이었다.

'부단장도 혼내기 전에 치우라고 하면 좋을 텐데.'

그녀도 분위기에 횝쓸린 게 확실하다는 생각에 답답해진 휴온은 한숨을 푹 내쉬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마침내 그가 이 진상 선배들에게 한 마디 해주기 외해 입을 열었을 때, 달칵. 예고도 없이 문고리는 돌아갔다.

"아.."

벌을 서던 기사들과 혼내던 아델레트, 그리고 그것을 방관하던 벨킨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의 시선은 커다란 문에 꽂혔고, 곧 활짝 열린 문으로 햇볕과 함께 루이카엔과 베르칸 그리고 두 명의 소년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시엘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카이스 루 메르티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시엘과 카이스가 자신에게 꽂혀드는 제르닌의 황당하다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첫인사를 했다. 하지만 기사들이 아무 반응도 없이 굳은듯 서 있기만 하자 의아해진 두 사람은 허리를 펴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기사들도 마찬가지.갑작스러운 상황에 눈만 꿈뻑이던 기사들은 단장을 한 번 보고, 베르칸을 바라보고 다시 카이스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마지막에는 같이 온 이들보다 한참이나 머리가 아래쪽에 있는 아시엘을 바라보고는 일제히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갑자기 부산을 떨며 널브러진 책을 주워 재빨리 품 속에 숨기고 넘어진 의자며 테이블을 세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아시엘은 어리둥절하게 눈을 꿈뻑였다. 왜 저러는 거지, 그가 마침 발치에 채이는 책을 집어들고 내용을 살피려고 했지만 갑자기 케빈이 재빨리 그의 손에서 그것을 낚아채 저 뒤쪽으로 던져버렸다.

"하하하... 주워줘서 고마워."

"아, 네."

어이가 없어 혀를 차는 아델레트와 제르닌을 모른척 하고 그들은 순식간에 로비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저마다 태연하게 웃으며 다시 신입들을 향해 돌아섰다. 루이카엔이 눈썹을 휘었다.

"너희들 뭐하냐?"

"단장! 너무한 거 아니야? 여자애가 있으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그리고 곧바로 들려온 누군가의 억울한 목소리베 루이카엔과 카이스 덤으로 제르닌까지 일제히 돌이 되고 말았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건지 아니면 인정하기 싫은 건지 아시엘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때, 다시 일제히 선 기사들에게서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근데 저 애 남자애 아니냐?"

"눈이 삐었어? 저게 어딜 봐서 남자... 음."

"그치? 헷갈리지? 날씬하긴 하지만 몸매도 좀 빈약하고."

"어려서 그런 거 아냐?"

딴에는 작게 속삭인 것이겠지만 점점 소리가 커져 표정이 굳어져가는 아시엘의 귀에 다이렉트로 꽂혔다.

얼굴에 그늘이 져 가는 그를 본 아델레트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고 제르닌 창피하다는듯 슬쩍 시선을 피해버렸다.

"하아.. 큽..... 큭.. 푸흡.."

갑자기 루이카엔이 허리를 숙이고 입을 틀어막았다.하지만 조금씩 새오나오는 웃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한계에 다다랐는지 푸하하하! 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지 마세요!"

"미안, 크큽.. 큽.."

아시엘이 울상을 지으며 따지자 루이카엔은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아시엘의 바로 옆에서 다른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

"풋...아. 미안."

믿었던 카이스의 배신으로 아시엘의 얼굴은 점점 더 울상이 되어갔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계속 논쟁하던 기사들 중 케빈이 용감하게 다가와서 아시엘의  앞에 섰다.

"저기, 여자애... 맞지?"

계속 저 신입이 여자라고 주장하던  그는 아시엘이 불만에 가득 찬 붉은 눈동자로 올려다보자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아시엘은 대꾸하지 않고 위에 걸쳤던 망토를 휙 벗어 카이스에게 넘겼다.

얘가 지금 뭘 하는 거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아시엘에게 쏠린 가운데- 아시엘이 윗도리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뭣......?"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끄어아아 하는 괴성을 지르며 허둥지둥 그를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야야야야야! 참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이거 놔요! 벗을거야! 크아악!"

"아시엘! 안돼, 기분은 이해하지만 안돼!"

케빈과 루이카엔, 카이스가 식겁하며 진짜로 옷을 벗을 기세로 버둥거리는 아시엘의 팔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말렸다. 하지만 기사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아시엘의 이마에는 힘줄이 빠직, 하고 서버렸다.

"저 얼굴에 남자라고? 헐."

"신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건가...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건 또 뭐에요!"

결국 아시엘이 진정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에 의해 초토화 되어버린 기사들도 제정신을 찾는데도 시간이 조금 걸리는 바람에 이 굉장한 첫인상의 신입들의 환영회는 조금 후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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