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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16화 (16/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16.신입(3)

"우린 황제 직속 친위 기사단이야. 그러니까 우리에게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황제폐하나 직접 임명받은 그 대리인 뿐이지그건 알고 있지?"

루이카엔이 자신들을 바라보자 아시엘과 카이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의 임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져. 황성 내 순찰, 황제폐하의 호위 그리고 치안 유지. 순찰은 아침저녁 2인1조로 나가. 일주일에 한 번씩이고 그건 그냥 보초병들 감시하러 나가는 거니까 쉬운 일이지.호위 임무는 황제폐하께서 참석하는 행사라거나 축제. 아니면 파티에서 이루어지고. 이때는 5명에서 10명쯤이 차출되지."

여기까지는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과 거의 비슷했다. 말을 한 번 끊고 단장은 잠시 말을 고르는지 턱을 쓰다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중요한 거는 치안 유지인데ㅡ 뭐, 말이 좋아 그렇지 사실은 스케일 큰 잡일꾼 같은거지. 그래서 기사의 품위가 뭐 어쩌고 하는 놈들도 있긴 하다만.."

묘한 단어가 그에게서 나오자 아시엘은 의아하게 눈을 깜빡였다.

"잡일이요?"

"너희한테 말하긴 좀 뭣하지만 솔직히 지저분한 일을 하기도 해. 쉽게 말해서 황제 폐하가 내리는 명령이랑 경비대가 해결 못 하는 건 우리가 다 하는거야."

두 소년이 눈만 꿈뻑이며 그를 멍청히 바라보자 결국 답답해진 케빈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야! 설명할 거면 똑바로 해. 애들이 못 알아 들었잖아."

"시끄러워, 멍청아."

그의 말에 울컥했는지 케빈에게 가는 루이카엔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케빈도 지지 않고 얄밉게 그를 마주 노려봐주었다. 잠시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던 그들은 사이에 끼여 뻘쭘해진 아시엘의 "저기요.." 하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미안. 저 바보가 나서는 바람에. 예를 들어 어떤 거냐면... 아, 그래. 조금 격하지만 어느 지방에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자. 그럼 그 범인은 누가 잡지? 카이스, 대답해 봐."

"각 지역에 배치된 경비대. 혹은 영주의 사병입니다."

갑자기 질문이 자신에게 향해 당황했는지 잠깐 움찔했지만 그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루이카엔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경비대원과 영주의 기사, 병사들만으로 해결이안 된다면?"

"황실에서 지원이 나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대충 짐작한 카이스는 말끝을 조금 흐리며 단장을 바라보았다. 루이카엔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감이 좀 잡히지? 기본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이 3개월 안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그건 자동적으로 셀레니스에게 넘어와. 하지만 연쇄살인이나 납치사건 같은 특수범죄는 관할의 판단에 따라 바로 우리에게 오는 경우가 많지. 덕분에 이렇게모이는 날은 잘 없을 정도로 출장이 많아. 그 밖에도 비리나 황제 반대세력 경계 및 내란모의 혐의자 조사. 다른 나라의 간첩들 잡아내기. 그리고 그런 활동에 대한 보고서도 제출하고."

아시엘과 카이스는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력난이라더니 정말이었구나. 그들은 어째 앞으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루이카엔의 말이 이어졌다.

"황도 내에서 일어난 강력범죄는 물론이고. 우리 인력난이 심각하거든? 물론 신입한테는 쉬운 일부터 시키지만 내일부터 당장 실전이야, 제군들. 어차피 엘리트들이니 훈련기간은 필요 없겠지?"

으윽. 아시엘과 카이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다. 대충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오자 루이카엔은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다같이 시달리는 불쌍한 입장이니까 그냥 편하게 대하면 돼. 하지만 간간히 심부름 정도는 부탁해도 되겠지? 가령, 서류를 대신 폐하께 배달하는 거나 내가 일 나가 있을 때 내 독수리를 돌봐 준다던지."

"독수리요?"

바로 옆에 뱀을 목에 감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아시엘이 황당하게 묻자 루이카엔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내 방에 있어. 이름은 에니르. 귀엽고 멋진 아가씨지."

"에에?!하지만 전 새는 키워본 적 없는데요?"

"그 망할 놈의 새,오늘도 우리 앤을 잡아먹을 뻔 했다고."

케빈이 옆에서 불만을 터뜨렸다. 루이카엔은 뭐야, 하고 눈에 쌍심지를 켰다.

"망할 놈의 독수리?헹.그러게 왜 지렁이를 풀어 놓고 그러냐."

"뭐? 지렁이? 바보 새대가리 주제에!"

"지렁이보다 훨씬 똑똑하거든! 솔직히 네놈보다 쓸모가 많다고, 에니르는!"

둘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쏘아보았다. 아시엘이 당황해 주변의 다른 기사들을 살폈지만 그들은 그냥 냅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는 사이에 케빈의 공격이 이어졌다.

"비둘기랑 나랑 비교하지 마! 그리고 앤한테 서류 처리 시키면 너보다 훨씬 잘 할거다."

"저번 파견지에서 네가 박살낸 건물 때문에 보상금 청구서가 얼마나 왔는지 알기나 해?"

"쪼잔하게 그런 거까지 들추냐! 그러는 너는 맨날 아델한테 서류 떠맡기고 여자 꼬시러 튀면서, 이 난봉꾼!"

"난봉꾼이라니! 뱀 때문에 여자친구 하나 제대로 못 사귀는 네놈이 그런 말 할 처지인가? 솔직하게 말하시지! 부럽다고."

"뭐야? 네놈이 이 서늘한 비늘의 매력을 알아?"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고!그 뱀 때문에 너 혼자 2인실을 차지하고 있잖아."

두 사람은 질리지도 않고 끈질기게 티격태격했다. 하필 앉아있는 자리가 딱 그들의 가운데라 피하지도 못한 아시엘은 도와달라는 눈빛을 아델레트와 제르닌 그리고 다른 기사들에게 보냈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저 어디서 개가 짖나,하고 귀를 후비적거릴 뿐이었다. 그때, 문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박박박박.

"오! 베르칸이랑 벨킨 왔다보다."

발톱으로 문을 긁는 듯 한 소음에 루이카엔이 고개를 돌렸다. 케빈 역시 말을 멈추고 문쪽을 바라보았다.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슌이 문을 열어주자 기다렸다는 듯 두 마리의 늑대가 입에 큰 바구니 하나씩을 물고 두꺼운 꼬리를 설렁설렁 흔들며 문 사이로 들어왔다.

그들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자신들을 바라보는 아시엘에게로  다가가 그 작은 손에 커다란 머리를 부볐다. 기분이 좋아진 아시엘은 헤실 웃으며 그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다 곧 이들이 원래 누구인지를 깨닫고는 얼른 손을 거두었다.

"아, 죄송해요."

"괜찮아, 괜찮아.우리가 만날 괴롭혀서 그런 손길은 쟤네도 반가울 걸."

루이카엔의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끝내자마자 그들의 몸에서 털과 꼬리가 사라지고 덩치가 조금 작아지더니 곧 다시 두 늑대는 인간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시엘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조금 구겨진 제복 자락을 정리한 베르칸은 이제 손에 들고 있는 바구니를 신입들 앞에 척, 내려놓았다.

"다녀왔어요. 그리고 괜찮아요. 나름 개과라서 나쁘지 않거든요. 물론 저 자식들이라면 당장에 손을 물어뜯었겠지만."

"야, 야! 차별이다! "

시끄럽게 굴어대는 동료들을 차갑게 한 번 노려본 벨킨은 조금 거칠게 들고 있던 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얹었다.

"많이 늦었군."

제르닌이 궁금증이 실린 목소리로 묻자 답례라며 아시엘의 머리를 쓰다듬던 베르칸이 대답했다.

"주방장한테 잡혔어요. 그래도 잔소리만 한 바가지 하시더니 먹을 거 바리바리 챙겨주시던데요?"

"그래?"

"혼났어."

벨킨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이자 루이카엔은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이들은 어느새 두 개의 바구니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탄성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고기파이다!"

"케이크에 쿠키... 와,인심 좀 쓰셨는데?"

"야,이거 봐!술도 있어!"

술이란 말에 순간 눈을 반짝이며 제르닌도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결국 아직 저녁 때도 되지 않았지만 점심도 굶었잖아! 라며 항의하는 기사들과 의외로 제르닌까지 강력하게 주장해, 조금 이른 술판이 벌어졌다. 아델레트는 쯧 혀를 찼다.

"슌이랑 에드린은 적당히 마셔. 오늘 순찰이잖아?"

"네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자신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술병을 여는 그들을 보며 그녀는 이마를 짚었다. 이 꼴을 보고 신입들이 뭘 배우겠어. 저번의 아이들처럼 자신들과 맞지 않다며 짐을 싸들고 나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뭐, 그럴 것 같지는 않네."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 새 기사들 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웃고 떠들고 있는 아시엘과 그 옆을 언제까지나 지킬 듯 한 카이스를 향하고 있었다.

이런 걸 유유상종이라고 하는 건가?끼리끼리 논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아델레트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골치아프고 퍽하면 귀찮은 일을 만드는 저들이 성가시고 짜증나기도 하지만-이래서 셀레니스 기사단인 것. 게다가 아델레트 자신도 이 속에 섞여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뭐, 어때.'

자꾸만 한 남자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다잡으며 그녀는 손바닥으로 뺨을 탁, 탁 쳤다. 하지만 곧 자신의 바보같은 행동에 피식 웃으며, 한 발짝 물러서있던 걸음을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동료들에게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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