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24.첫 파견(2)
"우와..."
셀레니스 전용 마구간에 들어가자마자 카이스는 탄성을 터뜨렸다. 깔끔한 마구간 안에 늘씬한 다리와 탄탄한 근육을 가진 명마들 앞에서 그는 무언가에 홀린듯 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전부 다 퀠렌 산의 품종..!"
이 곳에 있는 말들의 귀에 있는 독특한 점박이 무늬를 확인한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취미 승마와 요리, 특기 승마. 아카데미 때 그는 유명한 말 매니아였다. 케빈이 뿌듯하게 자랑하듯 말했다.
"귀를 보면 알겠지만 전부 다 퀠렌산 야생마들의 후손이라고. 엄청나지? 야,야!"
하지만 이미 카이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항상 무표정이던 얼굴에 드물게도 홍조까지 띄우고 잔뜩 흥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한 마리 한 마리 자세히 살피는 그를 보며 아시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원래 말만 보면 반쯤 미치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왜 그래?별로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데?"
케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아시엘은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대꾸했다.
"승마로만 저 녀석을 못 이겼거든요. 하긴 교수님들도 저 녀석 말 타는 데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아..."
황당했지만 어째 기분이 안 좋은 게 이해가 되기도 하고. 떨떠름한 얼굴로 두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고 말았다.
"그나저나 저 녀석, 슬슬 말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것 같군."
카이스는 출발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말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제르닌은 케빈의 말에 동의했다. 딱히 정해진 시간은 없었지만 더 이상 지체하면 곤란했다. 제르닌이 음, 하며 고민에 빠지자 케빈이 그의 어깨를 턱 짚었다.
"어이, 친구여."
"응?"
"가끔은 단호해질 필요도 있다네. 후배에게도, 네놈의 그 짝사랑도."
"너..!"
제르닌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의 격한 반응에 만족했는지 케빈은 낄낄 웃으며 오랜 친구의 어깨를 톡툭 두어 번 두드리고는 자신의 말을 데리러 마구간 안으로 들어갔다. 아시엘이 카이스의 정강이를 걷어 차 제정신으로 돌려 놓는 것이 멍한 정신 속에 보였다.
잠시 후. 저마다의 말을 골라 타고 그들은 황성의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아시엘이 승마에 서툴어 불안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성을 빠져나가자마자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말의 속도에 적응이 된 아시엘은 자신의 옆에서 갈색 말을 달리고 있는 케빈에게 말을 건넸다.
"선배!저 아까 심부름 간다고 브리핑 못 들었어요."
"아아, 그랬지. 수도 헤크란 제 5구역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이 꼬리도 잡히지 않는대. 사람이 2명이나 죽었다더군."
"제 5구역이라면 상당히 외곽지역 아닌가요?"
아시엘은 머릿속에소 수도의 지도를 그려보며 대꾸했다. 세튼 제국의 수도, 헤크란은 워낙 넓기때문에 5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각각 구역에 비치된 경비대가 치안을 관리하고 있었다. 웬만한 일들은 거의 다 경비대의 선에서 해결하지만 그쪽에서 3개월 동안 끝을 보지 못한 사건들은 셀레나스 기사단에 넘어오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번 건 역시 따로 파견 요청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진척 없이 3개월이 지나간 터라 그들이 파견되게 된 것이다. 아시엘이 바람의 저항을 무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살인사건이라니.. 저희같은 신입이 끼어도 되는거에요?"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걱정 마. 인력이 달려서 어쩔 수 없었겠지."
그렇게 대꾸하는 케빈도 그 점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보통 파견 팀 구성은 루이카엔과 아델레트의 담당이었다. 허술해 보이지만 단원을 꼼꼼히 챙기는 루이카엔과 신중하기라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델레트가 실수를 할 리는 없었다. 루이스 경의 양아들이라고 해서 폐하가 주시하고 계신 건가- 답은 그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대충 결론을 내린 케빈은 아시엘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이 형님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말이야. 그냥 너흰 도와주면서 현장 경험이나 쌓으라고."
"시끄러워, 케빈. 혀깨문다."
하지만 곧 제르닌의 퉁명스러운 말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제 5구역과 6구역의 경계에 다다를 수 있었다. 멀리서 경비대의 녹색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보이기 시작하자 선두에서 달리던 제르닌은 손짓으로 뒤에서 달리던 세 명에게 신호를 보내고 말의 속도를 서서히 줄였다. 하지만-
"어... 어... 야, 잠깐만, 멈춰! 으아아아아아아아!"
".....?"
"..이런. 아시엘!"
아시엘은 말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혼자 저 멀리 튀어나갔다. 카이스는 이런 사태를 대충이나마 예상한 듯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 말의 속도를 높였다. 순식간에 그들은 점점 멀어져가고 어느 새 둘만 남게 된 제르닌과 케빈은 어이없이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째 불안불안하다."
"....."
케빈의 말에 제르닌은 대답 대신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들의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는 경비대원은 이미 그들의 안중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