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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27화 (27/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27.때로는 과감하게(1)

경비대원들과의 서먹한 저녁식사 후. 방에서 혼자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카이스는 문득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누구?"

귀찮음에 살짝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갔지만 그것도 잠시 나야, 하는 친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언제 망설였냐는듯 몸을 벌떡 일으키고 문으로 다가가 잠금장치를 풀었다. 나무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복도의 허공. 거기서 시선을 조금 내리자 금발의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살짝 찌푸려진 미간과 불만이 비치는 눈빛에 아시엘이 언짢다는 것을 카이스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시엘?"

의아해져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안쪽으로 들어가 방 한구석에 놓인 침대 가에 풀썩 걸터앉아 바락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 진짜! 여기사람들 이상해!"

"왜 그래?"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건만 혹시라도 누가 들을세라 문을 도로 닫으며 카이스가 물었다. 아시엘은 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씩씩거리다 곧 푸하,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 먹고나서 나 혼자라도 사건 현장 찾아보려고 옷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거든? 그런데 문 앞에서 보초병들이 밖이 어두워서 위험하다고 가로막더라."

"그래서?"

"도대체 뭐가 위험하냐고 물었더니 제대로 대답 안하고 무조건 안 된대."

황실의 기사라고, 보기보단 강하다고 설득을 해봤지만 대원들은 고집스럽게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결국 길어진 실랑이에 아시엘은 지쳐 포기하고 곧바로 올라와 카이스에게로 온 것이다.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자 또 열이 오르는 듯 아시엘은 한숨을 쉬며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리고는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뭐라고 툴툴거리는 바라보며 카이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행동력 하나는 여전히 대단하네. 난 앉아서 멍 때리고 있었는데."

"이게 웃을 일이야....어?"

누운 채로 투덜거리던 아시엘은 갑자기 몸을 발딱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앙!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곧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케빈과 여전히 무표정인 제르닌이 난입해 들어왔다.

"아니, 왜 못 나가게 하는건데?  위험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귀를 찌르는 자극적인 소리에 재빨리 귀를 틀어막는 아시엘의 기색을 알아차린 제르닌은 신경질적으로 케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끄악!"

"시끄럽다고 했지, 케빈. 누가 듣겠다."

"끄으.."

정강이를 얼싸안고 아파하면서도 순순히 입을 다무는 케빈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제르닌은 아직도 활짝 열려 있는 문을 닫았다.

"아시엘 방에 아무도 없길래 이쪽으로 왔더니 역시 둘 다 여기에 있었군."

"네. 저도 방금 왔는데... 방금 케빈 선배 말, 뭐에요?"

아시엘은 주저앉아서 낑낑거리는 케빈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제르닌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대꾸했다.

"사건 현장을 찾아보려고 밖에 나가려다가 대원 한 명한테 저지당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케빈이 한대 칠 것 같아서 끌고왔지."

"...."

아, 어쩐지 데자뷰가 느껴지더라니. 카이스와 아시엘은 서로를 마주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고개를 갸웃 하던 케빈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방금 저도 똑같은 꼴을 당했거든요. 그래서 한참 카이한테 신경질내던 참이었어요."

"나 참. 도대체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케빈이 어이가 없어져 중얼거리자 제르닌 역시 동감이라는 듯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영문을 모르겠군. 아시엘, 루이카엔이 뭐라고 했지?"

"아무래도 철수 명령은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한 시간이 3일이라던데... 3일이 지날 때까지 잡혀 있는 사람의 결백을 입증하지 못하면 감옥으로 압송된대요."

"그리고 바로 사형이겠지... 그렇게 된다면 수사는 더 이상 불가능할테고."

"잠깐만."

제르닌은 케빈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의아한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그는 어깨 너머로 문을 가리켰다.

"..아까 밖에서 너희 둘 얘기하는거 다 들리던데."

"아, 그거라면."

아시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의 중앙으로 가 바닥에 손바닥을 얹었다. 뭘 하려고? 선배들이 눈을 꿈뻑거리는 가운데 그는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웅웅, 기묘하게 공기가 울리는 듯 하더니 곧 그의 손을 중심으로 바닥에 흰 색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확 떠올랐다.

"사일런스!"

그의 입에서 시동어가 나오자 미풍이 일어 방을 감쌌다가 금세 사라졌다. 마법진 역시 한번에 사그라들었다.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들에게 아시엘이 간단히 설명했다.

"음파 차단 마법이에요.  제가 큰 소리만 안 내면 바깥으로 나가는 소리는 완벽하게 차단되요."

"아아. 그러고 보니 너 마검사라고 했던가. 기사단에 두 번째로 들어온 마법사로군. 잘했어."

"두 번째?"

제르닌이 픽 웃으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아시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를 대신해 케빈이 짤막하게 설명했다.

"쌍둥이의 동생, 벨킨이 마법사거든. 하프 웨어 울프 녀석 말이야.  그 녀석도 대단해. 5서클 초입이랬던가? 어쨌든 다시 시간제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어떻게든 3 일 안에 감옥 안에 있는 녀석이 진범인지 아닌지 밝혀내는 게 우선이야. 범인은 그 후에 찾아도 되니까."

"하지만 오늘도 거의 다 갔으니까 앞으로 이틀입니다. 그리고 아까도 봤지만 대원들이 협조적으로 나올 것 같진 않은데요."

카이스의 말에 그들은 모두 냉기가 흘렀던 저녁식사 자리를 떠올렸다. 제르닌이 자료 요구를 하자 딱 잘라 거절하고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힐끔거리던 대원들. 도저히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제르닌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경계하는 건 처음이군."

"우리가 사고를 좀 자주 쳤냐 .그래도 미움받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라 괜찮은데 진짜 어떡할 거야? 지금 우리 손에는 아무런 자료도, 증거도 하다못해 우리 편이 되줄 놈도 없다고."

새삼 피부에 와닿는 암담한 현실에 네 사람은 일제히 한숨을 푹 쉬었다. 저마다 해결 방법을 생각하는지 방에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입을 연 것은 아시엘이었다.

"과감하게, 라..."

"응?"

그의 중얼거림에 케빈은 고개를 들었다. 아시엘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루이카엔씨가 저보고 한 말이에요. 조금 과감하게 나가도 된다고.."

"아...그 말이었어? 과감하게라도 해도 해결책이 없잖아."

"해결 방법이라..있죠."

뜻밖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모두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아시엘은 톡, 톡 짐대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잠시 고민하다 시선을 들어 그들을 마주보았다.

정말 과감하게라면 무슨 수가 있을지도 몰라요.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해 볼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지금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

"좋은 수라도 있어?"

케빈은 호기심을 드러내면서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눈빛으로 후배를 바라보았다. 아시엘은 방금 떠올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차분히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의 설명이 점점 이어질수록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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