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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34화 (34/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34.첫 실전은 혹독하다(2)

끼이익. 텅 비어있던 2층의 방 하나. 캄캄하게 어둠만이 감돌고있던 그 곳의 창문이 살짝 열리더니 한 사람이 낑낑거리며 기어올라왔다.

"자. 잡아."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창 아래로 손을 쭉 뻗었다. 곧 그것을 붙잡고 작은 인영 하나가 또 창틀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는 것과 동시에 덩치가 큰 또 한 명의 사람이 팔 힘으로 가뿐히 올라왔다.

그 그림자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바로 아랫층의 영상석실에서 무사히 탈출한 케빈과 아시엘 그리고 헨슨이었다.

아시엘의 기지와 케빈의 검기로 무사히,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경비대를 따돌리고 탈출한 직후 그들은 외벽의 배수관과 다른 쪽의 창틀을 딛고 곧바로 제르닌의 방인  이곳으로 올라왔다.

"괜찮으십니까?"

걱정 어린 헨슨의 목소리에 케빈은 손을 훠이훠이 저어 보였다.

"난 생채기 정도야. 아시엘은?"

"저도 뭐. 괜찮아요."

그렇게 가볍게 대꾸한 그들이었건만- 불이 켜지고,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자마자 헨슨은 기겁해 외쳤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아시엘과 케빈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이어지는 잔소리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이게 어디가멀쩡한 거랍니까? 상처투성이잖아요! 하긴 그 방이 다 부서지도록 싸웠는데 멀쩡할 턱이 있나!"

여기저기 얕게 베인 상처에 아시엘의 퉁퉁 부은 발. 그리고 아직까지도 피가 줄줄 흐르는 케빈의 팔이 눈에 들어오자 헨슨은 저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일단 그 더러운 후드 좀 벗어요."

조금 누그러진 듯 했지만 여전히 헨슨의 사나운 기세에 아시엘과 케빈은 순순히 보얗게 먼지가 앉고 너덜너덜해진 겉옷을 벗었다.

그제야 두 사람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부서지는 나무 파편이 튀어 생긴 생채기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지만 그것보다 아시엘의 하얀 뺨의 긴 검상에 케빈과 헨슨은 잔뜩 울상을 지었다.

"으아... 이게 뭐야! 이 예쁜 얼굴에.. 어느 놈이야!"

"아이고, 이거 흉지면 어쩐답니까!"

두 사람이 바락바락 고함을 지르자 아시엘은 살짝 볼의 상처를 만져보다 케빈을 향해 투덜거리듯 말했다.

"아까 선배가 때려눕혔잖아요. 그것보다 예쁘다는 말은 남자한텐 칭찬이 아니거든요?"

그러고는 보란 듯이 피가 얼룩진 상의의 단추를 풀고 훌렁 벗어던졌다.

"누가 뭐랬냐? 솔직히 여자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해."

장난스럽게 빙글거리며 케빈은 아시엘이 벗은 셔츠를 돌돌 뭉쳐 헨슨에게 던졌다. 저도 모르게 눈을 가리고 있던 숫총각 경비대원은 날아오는 천조각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받고 말았다.

"어풋!"

얼굴에 감겨드는 셔츠를 떼넨 헨슨은 잠시 케빈을 노려보다 겨우 아시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나름 탄탄하네요. 군살도 없고."

"뭐... 칭찬으로 들을게요."

아시엘은 영 마뜩찮은 얼굴로 귀를 후볐다. 그의 시선은 어느새 셔츠를 벗은 케빈의 어깨와 튼튼한 근육에 닿아 있었다.

"왜, 부럽냐?"

"조금요. 뭐 언젠가는 크겠죠. 그것보다 그 팔, 지혈부터 좀 하시죠?"

케빈은 픽 웃으며 꽁한 표정을 짓는 아시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헨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 어디 가요?"

"구급상자 가지러 갑니다. 금방 올테니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요."

아시엘의 물음에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한 헨슨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왜 화를 내는 걸까요?"

"글쎄."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대꾸한 케빈은 방 한 가운데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나저나 제르닌이 늦네."

"그러게요."

마찬가지로 편하게 기대앉은 아시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방금 헨슨이 나간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살짝 눈을 감았다. 침묵 속에 잠긴 방. 그 상태로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채 이십 분가량 지났을 때-끼릭, 하고 문고리가 돌아갔다.

두 사람은 거의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 낡은 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고, 곧 이들과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해 진 두 남자가 들어왔다.

"선배! 카이!"

아시엘은 환하게 웃으며 발딱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몸무게를 지탱하는 발목이 욱신거려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꼴이 그게 뭐냐."

그제야 케빈과 아시엘이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은 제르닌은 살짝 얼굴을 구겼다.

"이쪽이나 그쪽이나 신입들 신고식 한번 화려하네. 네놈들은 꼴이 그게 뭐야."

케빈 역시 핀잔을 던졌다.확실히 그들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멍자국에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있어 마치 잔뜩 얻어맞은 듯 했다. 잔뜩 더러워진 겉옷을 벗어 침대에 걸친 제르닌은 한숨을 푹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금, 문제가 있었다. 아시엘."

갑작스러운 부름에 아시엘이 고개를 들자 제르닌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환영 마법의 범위가 어디까지지?"

"네?"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아시엘이 고개를 갸웃하자 제르닌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미안하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데 헨슨은?"

"약 가지러 나간다고 나갔어. 곧 올거야."

케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끼릭, 하고 문고리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산더미같은 붕대와 약을 잔뜩 안고 들어온 것은 헨슨이었다. 양반은 못 되겠구만, 하고 케빈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적당한 곳에 들고온 것들을 내려놓은 헨슨은 사람이 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오셨습니까? 이쪽도 마찬가지로 엉망이네요."

카이스와 제르닌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이상 말하는 것도 자신의 입만 아플 거라고 생각한 헨슨은 한숨을 푹 쉬며 케빈의 곁에 앉았다.

"제르닌 경이나 카이스 경도 괜찮다고 할 게 뻔할 것 같아서 걱정하는 소리는 안 하겠습니다만, 도대체 두 분은 뭘 하신 겁니까? 어떻게 지하감옥 다녀오는데 그렇게.."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으며 붕대를 집어든 헨슨은 케빈의 팔을 지혈하기 시작했다. 제르닌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골치 아프다는 듯 신음을 내뱉았다.

"물론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예?"

헨슨이 의아하게 되물었지만 제르닌은 다시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아시엘은 자신의 곁에 자리잡고 앉은 카이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었어?"

하지만 카이스 역시 곧바로 대답해 주지 않고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눈은 아시엘의 볼에 난 상처에 고정되어 있었다.

"..왜?"

"너야말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카이스가 따지듯 물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답한 건 아시엘이 아니라 케빈이었다.

"영상석실 안에 지키는 녀석한테 발목 잡혀서. 너네 호루라기 소리 못 들었냐? 그놈이 지원 부르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다고. 그리고 그 상처낸 놈은 내가 때려눕혔어."

"아, 호루라기 소리가 그거였군."

제르닌은 그제야 납득한 얼굴을 했다. 카이스는 아직도 친구의 상처가 못마땅한 듯 얼굴을 굳힌 채 겉옷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것보다 제르닌 선배랑 카이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까부터 이상한 말만 하고."

피로감과 호기심이 뒤섞여 묻어나는 아시엘의 눈빛이 제르닌에게 닿았다. 케빈의 팔 지혈을 마친 헨슨에게 다리를 맏긴 채 나른하게 말하는 그를 잠시 응시하던 제르닌 역시 다소 피곤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안그래도 말하려고 했다. 물어볼 것도 있고. 좀 쉬었다 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군."

미안함이 배여있는 어조에 케빈은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 어차피 난 이런것도 익숙하고- 꼬맹이들도 이제 적응해야지."

그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시엘. 한 번 픽 웃어보인 제르닌은 자세를 바로 하고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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