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41. 파헤치다(2)
조금 늦은 아침. 루이카엔은 지금 자신의 방에서 머리를 싸쥐고 손에 들린 서류를 노려보고 있다.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긁적거리다 황망히 천장을 바라보고 다시 서류를 노려보고.
그의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애완 독수리, 에니르가 주인을 위로하듯 꾸륵 하고 울었다. 결국 그는 신경질적으로 종이더미를 책상 위에 내던지고 말았다.
"아오으어어어!"
자신의 갈색 머리를 마구 헝크러뜨리며 루이카엔은 괴성을 내질렀다. 쾅쾅 소리를 내며 책상을 걷어 차 보기도 하고 끄르르 하는 신음도 흘려보던 그는 결국 책상에 엎드린 채 다시 서류에 시선을 주었다.
항상 긴장의 연속인 황실이지만 요즘의 분위기는 더욱 더 심상치 않았다. 그 결과 현 황제파의 최측근이자 황제를 제외하고 두 번째로 강력한 군사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루이카엔의 책상에는 점점 일거리들이 쌓여만 갔다. 그 때 소박하게 장식된 문이 찰칵 하고 열리고, 미모의 여성 부단장 아델레트가 들어왔다.
"여, 아델레트."
루이카엔은 책상 위에 엎드린 채로 힘없이 손을 들었다가 툭 떨어뜨렸다. 그런 단장을 바라보며 아델레트는 문 옆의 벽에 기대어 섰다.
"꽤 골치아픈가 봐? 역시 집무실로 밀어 넣길 잘했어."
"이 마녀야.."
루이카엔은 원망스레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를 이 서류뭉치 안으로 내던진 것은 바로 아델레트였다. 슬쩍 뒷문으로 도망치려는 것을 붙잡아 곧바로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이다.
루이카엔은 곧 포기하고 다시 서류더미에 코를 처박았다. 그러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절주절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황도를 지키는 데만 열중하던 루아 이클립스의 외부 파견 횟수가 부쩍 늘어났어. 우리야 원래 싸돌아다니는 게 일이지만.. 대공도 지금 황성에 없는데 도대체 이 녀석들은 뭘 하고 다니는거야?"
그가 쥐고 있는 것은 황성 출입을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게 이곳이라 성의 내벽을 드나들 땐 항상 시간과 인원을 기록해야 했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이 셀레니스 기사단의 이름. 그리고 그 다음은 황제의 측근들과- 드물게도 로아 이클립스였다. 아델레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확실히 이상해. 기록을 굳이 숨기지 않는 것도 수상하고."
현재 대공은 3개월 전부터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루아 이클립스의 신입 기사를 뽑을 때 다녀갔다는 첩보가 있었지만 그 하루 뿐,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루아 이클립스의 파견을 명한 것은 그일 터였다. 어디선가 숨어서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루이카엔의 말이 이어졌다.
"내 말이. 안그래도 요즘 몇몇 영지에서 도는 전염병 때문에 폐하가 심란해 하시던데."
"전염병?"
처음 듣는 이야기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아델레트. 하지만 여전히 서류에 시선을 박고 있는 루이카엔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다.
"어. 증상도 가볍고 사망자가 없어서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것도 빈도가 너무 잦아. 황제폐하랑 루이스 경은 신경쓰시고 있는 것 같더라. 뭐, 나한텐 아직 한 마디도 안 해 주시지만 말이야."
그 역시 왜 그러는지 궁금해 그는 몇 번이고 물어보려 했지만 이 제국의 정점에 있는 사람과 그 최측근의 기세가 워낙 흉흉해서 차마 말도 못 꺼냈었다.
물론 오늘 아침에도 그 높으신 두 분이 서로 멱살을 잡고 유치한 드잡이를 하는 것을 보고 온 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건?"
"음.. 제르닌 쪽의 일이 꽤 복잡하게 꼬였나 봐. 뭐, 네가 진짜 알고 싶었던 건 이쪽 이야기겠지?"
루이카엔은 아델레트에게 히죽 웃어보였다.
"꽤 고생 중일걸, 그녀석들. 뭐 걱정하지 마. 제르닌은 실력도 출중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녀석이잖아? 아시엘도 상상 이상으로 잘 해주고 있다고 하니."
"누가 걱정을 한다고!"
아델레트는 소리를 빽 질렀다. 하지만 루이카엔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빙글거리며 옆의 다른 서류를 집어들고 도장을 쾅 찍었다.
"너도 좀 솔직해져. 제르닌 녀석도 마찬가지고."
그녀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그 녀석 얘기가 왜 나와?"
"글쎄~"
아오, 저 뺀질이. 아델레트는 저 단장의 얼굴을 한 대 호되게 후려치고 싶어지는 것을 꾹꾹 눌러 담고 이마를 짚었다.
"각설하고.. 이거만 얘기하고 돌아갈게. 나도 바쁜 몸이니까."
"음?"
다시 서류에 집중하려던 루이카엔이 다시 고개를 들자 아델레트는 자신이 진짜 이곳에 온 이유의 핵심을 말했다.
"그가 돌아온대."
"그?"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한 루이카엔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하지만 잠시 후- 한 박자 늦게, 정해진 수순대로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라고?"
아까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물음. 아델레트는 그의 짐작이 맞다는 것을 긍정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대공전하께서 돌아오신대.. 루아 이클립스 생활관의 시종에게 들었으니 정확하겠지."
"어, 언제?"
루이카엔은 간절하게 아델레트를 바라보았다. 그래, 언젠가는 돌아올 사람이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라고 외치는 듯 한 절박한 표정. 그녀는 단 한 마디로 그의 마지막 희망을 깨부쉈다.
"모레."
"으아아아아아아!"
그녀의 목소리가 루이카엔에게는 서류 곱빼기로 추가요, 하는 소리와 똑같이 들렸다. 그의 괴성을 뒤로하고 아델레트는 매정하게 등을 돌려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아시엘은 눈앞의 투박한 나무문을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런 장식 없이 무식하게 무거워 보이는 문.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꺼림직해졌다.
"왜 그러십니까?"
아까 식당 앞에서 은근슬쩍 따라붙은 헨슨이 옆으로 다가와 속삭이자 아시엘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 때 보초를 서던 대원과 이야기를 끝낸 에슈튼이 그들 쪽으로 돌아섰다. 두 사람은 재빨리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통로가 파손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짧게 내뱉은 그는 잠시 헨슨을 애물단지 보듯 노려보다 고개를 홱 돌려 투박한 나무문을 밀었다.
끼이익, 하는 불쾌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곧 드러나는 어두운 계단. 그와 함께 아까보다 훨씬 강한 거부감이 아시엘을 덮쳤다.
'..뭐야..이게.'
무어라 설명 할 순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낯선 기운-마력. 그것은 분명 저 아래의 지하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헨슨과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지하로 앞서 내려갔다. 잠시 주저하던 아시엘은 코를 틀어막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눌러담고 지하로 내려가는 첫 계단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