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51. 사건 종결(1)
수색은 별 소득 없이 종결되고 말았다. 경비대는 물론이고 기사들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결국 찾아 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니엔이 스리슬쩍 끼어들어 돌아왔다는 것 역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아침.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뭐? 시체로 발견?"
"예.. 그렇습니다."
에슈튼이 기가 막혀 외치자 보고하러 왔던 대원은 잔뜩 쫄아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에슈튼은 그런 그를 신경쓰지 않고 초조하게 방 안을 왔다갔다 했다.
"하, 참.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여죄수가 죽었다고?"
비웃음 기가 서린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혼란스러움이 잔뜩 배어 나오고 있었다. 잠시 그의 눈치를 보던 대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첫 발견자는 조지 한벤 대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셀레니스 기사단이 현장 지휘를.."
"뭐라고?"
순간, 에슈튼은 발걸음을 멈추고 대원을 바라보았다. 잘못 들었나, 하는 마음에 되물은 것이라 생각한 대원은 다시 더듬더듬 말했다.
"셀레니스 기사단이 현장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 자식들이 왜!"
곧바로 터져나온 고함 소리에 그는 더더욱 몸을 움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슈튼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제기랄! 하고 욕설을 내뱉았다.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야, 안내해!"
"네?"
"안내하라고!"
결국 에슈튼이 한 번 더 버럭 고함을 지르자 대원은 허둥지둥 네! 하고 대답하고 그를 경비대 뒤쪽의 골목으로 이끌어야만 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마자 에슈튼이 마주한 것은 대원과 근처의 민간인들이 뒤섞인 엄청난 인파였다. 짜증스럽게 이를 북, 간 에슈튼은 인정사정 없이 그들을 밀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비켜, 이 멍청이들아!"
여러 명을 제치고 넘어뜨려 마침내 기사의 하얀 제복이 눈에 들어오자 에슈튼은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아, 왔나."
케빈은 태연하게 그를 맞이했다. 에슈튼은 재빨리 주변을 살펴 들것으로 여자의 시신을 옮기고 있는 니엔과 헨슨을 찾아냈다. 창백한 여자의 얼굴과 가슴에 꽂혀 있는 칼, 그리고 옷에 번진 혈흔. 자신의 눈으로 직접 그것을 확인하자 그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헨슨, 니엔! 어서 그거 내려놓지 못 해?"
하지만 두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에나를 옮겼다. 머리에 잔뜩 열이 오른 에슈튼이 한번 더 명령을 하려고 할 때, 카이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뭡니까!"
으르렁거리듯 거칠게 내뱉는 에슈튼에게 카이스는 차분하게 말했다.
"어떤 경우에서도 셀레니스 기사의 명령이 우선시 됩니다. 설마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
에슈튼은 충혈된 눈으로 눈앞의 조숙한 소년 기사를 노려보았다. 그에 카이스는 한술 더 떠 뻔뻔스럽게 '무슨 문제라도?' 라고 하는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눈을 마주봤다. 그러는 사이, 들것을 든 헨슨과 니엔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에슈튼은 마침 다가오는 제르닌에게 눈을 부라렸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시신을 어디로 가져가는 거냔 말입니다."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도록."
하! 에슈튼은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그 무엇도 아닌, 그냥 횡포 아닌가. 물론 자신이 부대장이 된 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가 알 리 없었다.
"오늘 돌아간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럴 예정이었지. 그런데 바로 우리 코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맘 편히 복귀할 수 있겠어?"
에슈튼의 물음에 케빈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그는 손을 뻗어 어리벙벙해 있는 에슈튼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러니까 평소대로 사무실 안에나 콕 처박혀 있으라고. 말 들어보니까 그리 열심히 일하는 타입도 아닌 것 같던데."
잠시 굳어있던 에슈튼은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케빈의 손을 탁, 쳤다.
"아무리 황제폐하의 기사라도 이렇게 무례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 곳은 제 관할 아래 있는 구역입니다."
"네 관할? 아하, 이 곳은 세튼 제국이 아니라 뭐, 에슈튼 왕국이라도 되나?"
그 노골적인 조롱에 에슈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하지만 케빈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 않고 곁에 있는 아시엘에게 말했다.
"에슈튼이 쓸쓸할 테니까 너도 같이 경비대로 가 줘."
"네. 헨슨 씨, 니엔 씨도 같이 가요?"
"그래."
케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시엘은 마침 에나를 데려다 주고 돌아온 헨슨과 니엔을 향해 손짓했다. 두 사람은 지체 없이 달려와 아시엘의 옆에 시립했다.
"어서 가죠. 혹시라도 에슈튼 씨가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두 분이 좀 부축해 주세요."
저 말이 에슈튼의 귀에는 순순히 안 따라오면 끌고라도 오세요, 하고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제하더라도 아시엘의 곁에 딱 붙어 서 있는 두 사람이 눈에 거슬려 에슈튼은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들.. 그새 기사님 편에 붙은 거냐? 너희는 왜 그러고 있냐, 이 말이다! 네놈들은 내 부하다. 정신차려!"
"제가 왜 당신의 부합니까?"
하지만 돌아온 것은 헨슨의 차가운 대답이었다. 너무나도 싸늘한 그 눈빛에 에슈튼은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당신이 전 부대장이랑 짜고 쳐서 전 대장을 몰아내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 모르는 사람 여기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바칠 충성도 눈곱만큼도 없으니 닥치고 따라오십시오."
서슬이 퍼렇게 줄줄 내뱉는 헨슨의 말에 에슈튼은 점점 창백해졌다. 그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순식간에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일거리에 굶주려 있던 사람들은 마치 흥미진진한 연극을 보는 양 숨죽이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고 원래 그의 말에 절대 복종하던 대원들 역시 관심 없는 표정으로, 혹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에 당신 편은 없어."
헨슨이 마지막 일침을 놓자 에슈튼은 순간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톡톡. 그런 그를 현실로 돌려놓은 것은 팔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손길이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에슈튼은 자동으로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아시엘이 그의 옷깃을 잡고 방긋 웃고 있었던 것이다.
"가요, 에슈튼 씨. 경비대 건물 비었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따라가겠습니다만 절대로, 절대 물러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정말 입만 살았군, 하고 비웃는 케빈을 쏘아보고 아시엘의 손을 탁 쳐낸 에슈튼은 몸을 휙 돌려 다시 경비대 건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시엘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남아있을 일행들에게 손을 한 번 들어주고 에슈튼을 여유롭게 따라갔다. 그런 소년 기사의 뒤를 어쩐지 통쾌한 얼굴의 헨슨과 조금 불안해 보이는 니엔이 조용히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