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65. 밤의 무도회(2)
황성의 제 2궁, 다른 말로 별궁이라 불리는 현 대공의 거처는 이른 저녁부터 북적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조명과 멋들어지게 꾸며진 요리들과 음료, 대형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 그리고 저마다 화려하게 치장한 귀족들이 커다란 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하하, 이거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예, 덕분에요.. 아, 이쪽은 제 아들.."
각종 잡다한 대화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쓰며 아시엘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한 향수 냄새와 음식 냄새, 그리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이야깃소리 때문에 골이 아플 지경이었다.
"아시엘. 안색이 안 좋은데?"
"아냐.. 그냥 좀 어지러워서. 신경쓰지 마."
카이스가 소곤소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아시엘은 손을 훠이 훠이 저어보였다.
"그나저나 너네 형님이랑 어머님은 안 오셔? 나름 영향력 있는 귀족이잖아."
"황도에서 직책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닌데, 뭘."
"다행이다. 안 그래도 미운털 박혔는데 이 꼴까지 보이면.."
카이스는 아시엘이 진심으로 안도하는 표정을 짓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시엘 역시 씨익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파티장을 둘러보았다.
본성의 메인 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아직 주요 인물인 황제와 대공이 도착하지 않아 귀족들은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꽤 자유롭게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섞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셀레니스의 단원들과 루아 이클립스 역시 눈에 띄었다.
저마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시엘은 그들의 신경이 묘하게 곤두서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아.. 저 속에 섞여야 한다는 건가, 임무를 해내려면"
"아무래도 그렇겠지."
카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드레스 차림의 아시엘을 내려다 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아시엘은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왜?"
"아시엘. 정말로 아무 일 없었던 거 맞아?"
"뭐가?"
아시엘이 정말로 모른다는 얼굴로 되묻자 카이스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친구는 항상 이런 식이라 가끔은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있었다.
"어제 말이야, 어제. 안색이 안 좋았잖아."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이런 선물을 받고도 내 안색이 좋을 리가 없잖아?"
아시엘은 드레스 자락을 들어보이며 웃음을 터뜨렸다.그 행동에 카이스는 그래.. 하고 웅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입구에 서 있던 근위병들이 우렁차게 외치기 시작했다.
"대공 전하 드십니다!"
"..!"
여기저기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일제히 자세를 낮추고 길을 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시엘은 흥미롭다는 듯 흐흠- 하는 소리를 냈다.
"저것 봐, 카이. 사람들 표정이 반반인데?"
"응?"
카이스는 아시엘이 가리키는 데로 시선을 주었다. 확실히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고개를 숙이면서도 아니꼽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는 사람, 일부러 과장해서 황송한 표정을 짓는 사람 그리고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이와 이 순간에도 눈을 굴리며 어느 쪽에 붙을까, 계산에 들어간 사람까지.
"이게 바로 권력 대립의 실체라는 녀석이지."
어느 새 다가왔는지 루이카엔이 팔짱을 끼며 두 소년에게 말했다.
"그런 것 같네요."
아시엘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루이카엔은 픽 웃으며 짝다리를 짚었다.
"뭐. 우리의 공적을 잘 봐 두라고. 여기에 있으면 저쪽에선 잘 안 보일 테니까."
"네."
아시엘은 세 개의 입구 중 가장 큰 문을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족들만 드나들 수 있는 화려하게 꾸며진 홀의 가운데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정장의, 한 나라의 대공이라고 일컫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었다. 금빛 휘장을 어깨에 두르고 여유롭게 수하들과 함께 걸어 들어오는 그 모습에 아시엘은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어 버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황제와 같은 빛깔의 머리칼과 눈동자였다. 새하얗고 위엄이 묻어나는 준수한 얼굴 역시 황제, 라이펜과 닮아 있었다.
주변의 귀족들이 살갑게 아부 떠는 것을 가면 같은 미소로 하나 하나 받아주던 대공- 슈베이만. 디아란. 세튼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시엘은 문득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
잠시 그를-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서도- 바라보던 슈베이만은 곧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고개를 돌려 수하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시 고개를 든 아시엘은 조금 가라앉은 눈빛으로 대공을 주시했다. 순간적으로 닿은 시선이었지만, 어쩐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의 이상한 기색에 카이스와 루이카엔이 말을 걸려던 찰나, 다시 근위병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황제 폐하와 제 1황자 전하 납십니다!"
"제 1황자?"
아시엘은 의아한 얼굴로 루이카엔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말했다.
"까칠하기로 유명한 유트리안 황자 전하야. 자기 옷에 와인을 흘렸다고 6살배기 꼬마애 뺨을 후려친 걸로 유명하지."
"흐음.."
고개를 살짝 끄덕인 아시엘은 다시 문을 바라보았다. 곧 또 거대한 중간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의 황제와 키가 큰 소년이 홀으로 들어왔다.
대공, 황제와 마찬가지로 황자의 머리칼과 눈동자도 에메랄드 빛에 금안이었다. 준수한 얼굴은 황제와 꼭 닮아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꾹 다문 입술에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분위기 정도.
"확.. 실히 성격이 좋아 보이진 않네요."
"그렇지? 저 분의 호위 기사로 들어갔던 녀석들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왔다니까."
아시엘의 말에 루이카엔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선배들이 못 견딜 정도로 심해요?"
아시엘은 뺀질거리는 걸로는 5번쯤 세계 정복 하고도 남을 것 같은 선배들이- 라는 뒷말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 미묘한 표정에서 대충 생각을 읽어냈는지 루이카엔은 그에게 꿀밤을 먹이는 시늉을 했다.
"그건 무슨 뜻이냐? 어쨌든, 몸 사리는 게 좋아. 저 독불장군 황자님께 걸렸다간 인생 피곤해 질 테니까."
"흐음.."
이것 또한 꽤 쓸만 한 충고 같아, 아시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카엔은 픽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불쌍한 사람이야. 제 1황자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게 자라왔고.. 그리고 몇 년 전에는 자신에게 보내진 암살자한테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으니 말이야."
"그래..요?"
아시엘은 조금 달라진 눈빛으로 다시 유트리안 황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황자는 계속 무표정 일관으로 귀족들의 인사를 받아 넘기고 있었다.
어째 그 모습이 안타까워, 아시엘은 쯧 하고 살짝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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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아카데미 관련 에피소드와 카이스&아시엘의 첫만남은 본편에 나올 예정이라 부득이하게 이벤트에서 제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a
*이벤트 당첨자*
우깸짱 님의 셀레니스 기사단 전원이 ts가 되었을 때 생기는 일!!
신의 비서 님의 루이카엔의 일상 생활
다시 한 번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닷! 외전은 다다음 주 중에 올라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