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79화 (79/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75. 마탑(3)

마탑의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장관이었다. 문지기를 통과해 안내자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서 제르닌은 작게 감탄을 흘렸다.

입구 쪽에서부터 창문이 하나도 없어 어두컴컴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1층의 홀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어디에서 빛이 들어오나, 하고 의아하게 여기며 주위를 둘러보던 제르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 부근에 둥둥 떠있는 수많은 구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보름달처럼 새하얀 빛을 내뿜고 있는 그것들은 비누방울과도 같이 공기의 흐름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모양이 일그러지기도 했다.

"신기하군."

제르닌이 천장을 응시하며 짧게 말하자, 앞서가던 여성 안내자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죠? 저것도 마법이랍니다. 공기와 수증기를 마법으로 적절히 섞어 저런 방울 모양으로 유지를 해 두고, 그 안에 라이트 마법을 시전해 놓은 거랍니다."

"저 천장의 마수정으로 유지를 하는 거죠?"

아시엘은 손을 뻗어 위쪽을 가리켰다. 확실히 그곳에는은은하게 빛나는 커다란 마수정이 박혀 있었다.

"네에, 그렇답니다."

여성은 이번에도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엘은 한 번 씨익 마주웃어 주고는 주위를 천천히 살폈다.

둥그런 홀의 바닥에는 사각형 모양의 타일이 규칙적으로 깔려 있었다. 어느 결벽증 있는 마법사가 클린 마법이라도 걸어둔 건지 타일 하나하나가 반짝거려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한쪽에는 커다란 수조에 커다란 오징어처럼 생긴 수중 생물체가 꾸무적거리며 헤엄치고 있었고, 그 앞에서 마법사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무어라 중얼대고 있었다.

다른 쪽에는 기다랗게 세워진 금색 막대 하나를 둘러싸고 여러 명이 의견을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막대에는 간간히 푸른 스파크가 파지직, 하고 일어나며 불꽃을 튀겼다.

그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혼자, 아니면 여럿이서 마법을 시전해 보거나 수식이 적혀 있는 커다란 칠판 앞에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제르닌은 아시엘을 살짝 내려다보고, 다시 마법사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마법사들 중에는 괴짜가 많은 것 같군."

"왜 절 보고 얘기해요?"

아시엘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그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후배의 시선을 피했다.

"그 말,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는 게 어떨지."

"제가 뭘요!"

아시엘이 따지듯 캐물었지만 제르닌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계속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아시엘은 토라진 듯 볼을 부풀리고는 앞을 보고 계속 걸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던 듯 여성 안내자는 쿡,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동그랗고 커다란 원판 앞에 도착했다. 바닥에는 상승 마법진과 하강 마법진이 겹쳐져 그려져 있었고, 그 위의 천장은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 큰 레버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시엘은 화난 것도 금세 잊어버리고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 마법진은..."

"네, 이건 승강기라고 한답니다. 이 마법진 위에 서서 이 레버를 당기면 곧바로 원하는 층까지 올라갈 수 있지요."

안내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두 사람을 승강기 위로 이끌었다. 제르닌은 거대한 마법진 위에 올라서서 판에 새겨진 복잡한 도형들과 룬어들을 유심히 살폈다.

"이때까지 공격용 마법진밖에 보지 못했는데."

"그런 것과는 많이 다른 편이죠. 자, 올라갑니다."

덜컥. 그녀는 레버 위에 손을 올리고 힘주어 밀었다. 그러자 작게 소음이 울리고 곧 우웅- 하며 마법진이 푸르스름하게 빛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잠시 후, 어느 순간 바닥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이 드는 듯 하더니 원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오!"

아시엘은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평소 표정변화가 많지 않은 제르닌 역시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움을 숨기지 않았다.

"마법이 많이 쇠퇴했다더니,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옛날, 마법이 가장 발달했을 시대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정말 새발의 피도 안 되는 거죠. 이 승강기도 옛 마탑에 남아있던 기록을 토대로 몇 년 전에야 겨우 재현해 낸 걸요?"

제르닌의 말에 안내자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점점 멀어지는 지면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시엘 역시 고개를 들며 끼어들었다.

"옛날, 흑마법을 금지하면서 위험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된 마법들을 죄다 폐기해 버려서 이렇게 된 거죠. 문제는 그 안정성을 검사하는 사람들이 전부 마법사가 아닌 일반 관료들이었다는 거에요. 흑마법과 백마법도 제대로 구분 못 하는 사람들이 뭘 알겠어요. 그냥 좀 위험해 보이는 거, 강해 보이는 거 다 없애버리고 말았죠."

"왜 그렇게 됐지?"

제르닌이 묻자 아시엘은 음- 하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때 마법사들은 모두 의심을 받고 있었대요. 일반인들이 겉으로 봐서는 흑마법사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백마법사와 흑마법사 서로는 구분을 할 수 있었다지만 말이에요."

"잘 알고 계시네요. 자세한 기록은 남지 않았지만 그 때 당시에 강력한 흑마법사 한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고 해요. 그래서 흑마법이 금기시 된 것이고. 그래도 그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영혼을 제물로 마족을 소환해 계약하는 방식은 굉장히 위험하니까요."

안내자는 보충 설명을 하며 레버를 당겼다. 그러자 끼기긱- 하는 소리를 내며 원판이 천천히 멈추어 섰다.

"내리시면 됩니다. 여기는 5층, 4서클 이상의 마법사 분들이 연구하시는 곳이지요. 캐롤 교수님은 이 층에 계십니다."

두 사람은 그녀를 따라 승강기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마법진의 빛이 점점 사그라들더니 완전히 꺼져 버렸다.

연구를 하는 마법사들을 배려하는 것인지, 5층은 1층의 홀과는 다르게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벽에는 마치 벌집처럼 수많은 방이 늘어져 있었다. 홀에는 따로 장식물도 없었고, 그저 군데군데에 놓여진 촛불만이 희미하게 앞을 밝힐 뿐이었다.

안내자는 그들을 한켠에 마련된 응접실로 안내했다. 그녀는 두 사람을 한 가운데에 있는 소파에 앉게 하고는 차를 내어 왔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교수님이 오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녀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아시엘과 제르닌을 남겨둔 채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

둘만 남은 방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조용히 주변을 살피던 제르닌은 손에 깍지를 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루이카엔이 했던 말,  무슨 뜻이었어?"

"..네?"

뜬금없는 말에 아시엘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러다 곧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차린 듯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마탑으로 출발하기 전, 대전회의는 오후 늦게나 시작할 테니 지금 다녀오라고 말한 루이카엔은 두 사람을 배웅하며 이렇게 덧붙였었다.

'아 참,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말해. 위로의 답례는 해 줄 테니까.'

도대체 무엇이 답례를 받을 만 한 행동이었을까. 아시엘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거절할 수가 없어 일단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아마도는 뭐야."

제르닌은 김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캐물을 생각은 없는지, 그는 곧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슌이 돌아왔었었나? 밤에 너 찾으러 갔다가 없어졌다고 케빈이 시끄럽던데."

"어젯밤에는 없었는데 아침에 보니까 침대에서 주무시고 있더라고요. 딱히 무슨 일이 있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아시엘은 뒷통수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 듯 해 조금 민망했다. 제르닌은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은 듯, 피식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큰 일 안났으니 괜찮아. 네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그거야말로 난리가 났을 테니."

"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아시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제르닌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차를 홀짝이기만 했다.

그 때, 쿵쾅쿵쾅하는 발소리가 아시엘의 예리한 귀에 잡혔다. 그는 움찔하며 몸을 돌려 응접실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제르닌 역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낀 듯 눈동자로 그 곳을 가만히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발소리가 응접실 앞에 멈추어 서는 듯 하더니, 곧 느닷없이 콰앙!!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문을 거칠게 열어제끼고 한 남자가 뛰어들어왔다.

"바빠 죽겠는데, 찾아온 놈이 누구야!! 내가 개인 의뢰는 안 받겠다고 했잖... 엥?"

다짜고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그는 뒤늦게  소파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시선은 귀를 틀어막고 인상을 쓰고 있는 아시엘에게 정확히 꽂혀 있었다.

"..아시엘?"

그는 의아한 목소리로 옛 제자의 이름을 불렀다. 아시엘은 그제야 귀에서 손을 떼고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스승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에요, 캐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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