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84. 변종(2)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선배들, 몬스터 퇴치 나갔었던 거 아니에요?"
아시엘은 황망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케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변종 몬스터가 나타났어. 이전엔 전혀 본 적이 없는 녀석들이. 저 망할 것들은 몬스터의 몸 안에서 나온 거고."
"변종?"
제르닌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변종. 진짜로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었다고.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크기는 우리 2, 3배 만하고 피부는 검푸른 액체처럼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어. 냄새는어찌나 독하던지! 아마 산성이었을 거야. 덕분에 제복도 엉망이고."
케빈이 말을 쏟아내면 쏟아낼수록 아시엘의 눈동자도 점점 커져갔다. 인간 형태의 몬스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흘러내리는 피부와 그런 거구를 가진 것들은 여태까지 보고된 바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시엘은 다급하게 물었다.
"구슬! 그 구슬은요? 몬스터 하나에 한 개씩 있었던 거에요?"
"아니. 놈들은 단체로 움직이고 있었어. 이건 그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에게서만 나온 거고. 우리 팀 쪽 뿐만이 아니라, 다른 데도 그랬대. 하나는 슌네 팀에서 깨트려 버렸고."
케빈의 말이 끝나자 그보다 상태가 조금 나은 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제일 큰 놈의 심장을 쑤셨더니 퍽하고 깨지더라고."
"도대체 그게 뭔데 그래요? 듣자하니 그 루아 이클립스와 관련이 있다는 것 같은데."
잠자코 있던 휴온이 앞으로 나서며 끼어들자 루이카엔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나도 정확히는 몰라. 그쪽과의 관계도 아직 확신할 수 없고. 얼마 전에 아시엘네가 임무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니까."
그게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는 속으로 그렇게 덧붙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숲도, 산도 없는 지역에 난데없이 몬스터가 나타난 이유- 그것은 저 구슬들과, 한걸음 더 나아가 루아 이클립스 그리고 대공 슈베이만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확답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대책이 시급해. 이게 정말로 그들의 짓이라면, 이것으로 끝날 리 없어."
"나도 알아."
아델레트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지만 겉은 어찌 되었든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단, 생활관 내에 부상이 없는 인원은?"
"슌이랑 케빈, 다른 임무 중이었던 카이스, 에비스, 베르칸과 벨킨 그리고 나. 또 대전회의에 참석했던 아시엘과 제르닌 뿐이야. 부상자 중 대다수는 1~2일 지나면 복귀 가능한 상태고."
그녀는 차분하게 손가락을 하나하나 세어 가며 보고했다. 루이카엔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구슬들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이건 아시엘이 이미 같은 것을 2개 가지고 있으니, 만일을 대비해 같은 마법사인 벨킨이 맡아. 지금은 활동이 멈춘 것 같긴 하지만 조심하고."
벨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들어 품에 가지고 있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루이카엔은 계속해서 다음 지시를 내렸다.
"일단 너희들은 올라가서 쉬어. 치료사 영감을 불러줄 테니, 치료도 제대로 받고. 그리고 슌이랑 케빈은 미안하지만 그 몬스터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 줘.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너덜너덜해진 이들은 케빈과 슌을 남겨둔 채 위층으로 우르르 올라갔다. 분명 샤워 생각이 간절했을 터였다. 아시엘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남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 손을 갖다대고 작게 주문을 외웠다.
"클린. "
"....!"
순간 슌과 케빈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더러운 것들이 하얗게 빛나더니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엉망이었던 머리칼도 다시 깔끔해지고 제복 역시 본래의 순백색으로 돌아왔다.
"오오! 좋은데? 고마워."
"그래도 2시간만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니까 그 전에 씻는게 좋아요."
케빈의 인사에 아시엘은 손을 탁탁 털며 생긋 미소지었다. 슌 역시 고맙다는 뜻으로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루이카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보고는 여기서, 대장?"
"집무실에서 앉아서 얘기하자. 아시엘, 카이스, 아델, 제르닌. 따라 들어와. 물을 게 많을 테니까. 나머지는 각자 할 일 하고. 나중에 따로 브리핑을 할 테니까."
단장은 깔끔하게 지시하고는 앞장서서 집무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빠릿한 모습에 케빈과 제르닌은 픽 웃음을 터뜨리고 그의 뒤를 따랐다.
카이스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어느새 생각에 잠겨 있는 친구의 팔을 툭, 쳤다.
"어, 어?"
"가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의 물음에 아시엘은 골치아프다는 얼굴로 머리를 부르르 세차게 털었다.
"아니, 별 거 아냐. 들어가자."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웃으며 카이스의 팔을 붙잡고 이끌었다. 카이스는 떨떠름하게 그를 내려다 보면서도 순순히 따라 집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찰칵. 아시엘이 카이스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루이카엔은 고개를 갸웃했다.
"둘이서 뭐 했어?"
"아뇨. 별로.."
아시엘은 얼버무리며 카이스와 함께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두 사람이 대충 자리를 잡고 앉자 단장은 손에 깍지를 끼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황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해."
"어어. 알았어."
케빈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손가락으로 볼을 툭툭 두드리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몬스터가 나타났던 곳은 수도 근처의 영지 4 곳. 우리가 출동했을 때는 이미 피해가 꽤 크더군. 각각 무리지어 5마리씩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들을 이끄는 대장이 하나씩 있었어. 생김새는 아까 얘기했던 그대로였고. 특징은.."
그는 여기에서 말을 끊고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으아아! 아 나 진짜.. 솔직히 전부다 이상한 일들밖에 없어서 이렇게 침착하게 있는 것부터가 기적이라고."
"워, 워. 진정해. 날뛰지 말고."
옆에 있던 슌은 괜히 봉변 당할세라 멀찍히 물러서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케빈의 발작은 더더욱 심해졌다.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고! 아까도 참느라 죽을 뻔 했구만."
"그래, 그래. 수고했어. 모두가 있는 앞에서 폭발했다면그야말로 난장판이 되버렸을 테니까."
루이카엔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손을 절레절레 내저었다. 확실히 케빈의 성격에 그것을 꾹꾹 눌러 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
"웃지 말라고!"
"선배, 진정하시고 궁금해 죽겠으니까 뒷얘기 더 해주시면 안돼요?"
결국 그가 신경질을 바락 내자 아시엘이 재빨리 끼어들어 주의를 상기시켰다. 쳇, 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찬 케빈은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놈들, 이족보행을 했었고 어느 정도의 지능 역시 갖추고 있는 것 같았어. 세기는 또 얼마나 무식하게 세다고. 거기다 팔다리 베어내도 꿈쩍도 안 하더라."
"어떻게 죽였어요?"
아시엘의 물음에 그는 손가락을 세워 칼날처럼 만들고는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해보였다.
"목을 베니까 죽더라. 그런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피부가 점성이라 잘 베이지도 않아."
"음.."
아시엘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쓰다듬다 또다시 케빈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선배는 무슨 방법으로 해치웠어요?"
"그냥... 어쩌다 보니까?"
선배의 대답에 그는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며 에? 하는 소리를 냈다. 어쩐지 자신을 질책하는 듯한 느낌에 케빈은 당황해 머리를 격하게 흔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어느 순간 그 녀석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그 틈을 타서 녀석을 베니까 바로 뻗더라고."
"둔해져? 다른 괴물들도 한꺼번에?"
이번에는 루이카엔이 재우쳐 묻는 말에 그는 건성으로 손을 까닥거리며 대꾸했다.
"아마 그랬을걸. 내가 대장을 처리했을 때, 거의 동시에 다른 녀석들이 조무래기를 없앴으니까."
"그럼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겠네요?"
아시엘은 슌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슌은 그 특유의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네?"
"우리랑 다른 팀들은 비슷한 시간에 끝냈는데, 슌네 팀은 꽤 빨리 처리했더라고."
그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아시엘이 눈을 조금 크게 뜨자 케빈이 옆에서 거들고 나섰다. 슌 역시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우연히 내 검이 그 녀석의 심장 부분에 맞아서 말이지.그 구슬이 깨져버리니까 다 흐물흐물 사라져 버리더라고."
"....그래요?"
아시엘은 영 석연찮은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런 그를 응시하던 슌은 픽 웃으며 등받이에 등을 푹 기댔다.
"그것보다, 대장. 우리 좀 쉬러 가면 안 될까?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은데."
"아아. 가서 쉬어. 나중에 더 물어볼 거 있으면 부를 테니까."
루이카엔의 허락이 떨어지고 그는 곧바로 몸을 슥 일으켜 집무실 바깥으로 나섰다. 그러자 케빈 역시 하품을 쩍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튼, 알 수 없는 놈이라니까. 나도 간다. 할 말은 얼추 다 한것 같으니까."
그러고는 몸을 돌려 곧바로 나가버리려는 것을 아시엘 은 재빨리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그럼 슌 선배 외에는 다 비슷한 시간에 생활관으로 돌아오신 거에요?"
"비슷하다 뿐이겠냐. 성문에서 딱 마주쳐서 같이 들어왔지."
건성으로 대답한 케빈은 그대로 문을 열고 집무실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그리고 아시엘은 잠시 그가 나간 곳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복잡한 눈빛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아델레트는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뭐가 문제라도 있어?"
"아뇨.. 그냥 좀 이상해서요. 정말로 괴물들이 나타난 게 그 구슬 때문이라면 그걸 만든 사람이 있다는 건데 그런게 가능한 인간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동시에 돌아왔다는 것도 조금 마음에 걸려서요."
그가 찝찝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루이카엔 역시 동감이라는 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렸다.
"맞아.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알아낼 길이 없으니까."
그것을 마지막으로 집무실 안에는 묵직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모두 저마다의 생각에 빠져 누구 하나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시엘이 고개를 들어 루이카엔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루이카엔씨.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단장의 물음에 그는 조금 주저하는 듯 하면서도 계속 말을 이어갔다.
"혹시 그런 이상현상의 신고가 또 들어온다면 저를 보내주실수 있어요? 직접 확인하고싶은 게 있어서."
"뭐?"
순간 단장은 소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씨익 입가에 개구진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감사합니다."
아시엘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호기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 변종이라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것도 아마 그 아울이라는 자와 관련이 있겠지.'
아마가 아니라 거의 확실할 터였다. 그 수상한 구슬들이 증거였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다면, 이상한 일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더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아시엘은 다른 이들의 어리둥절한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는 그 변종과 직접 맞닥드릴 기회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