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96화 (96/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92.향기(1)

다시 말을 달리기 시작한지 한 시간여, 네 사람은 메르티스 령의 외곽에 다다랐다. 아까 전의 도시와는 차원이 다르게 거대한 문 앞에서 그들은 말을 멈춰-모두가 긴장했지만 다행히 아시엘도 무사히 성공했다- 세웠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에요?"

다시 제복 코트를 걸친 아시엘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루이카엔은 음, 하며 가방을 뒤져 자신의 코트를 꺼내 팔을 끼웠다.

"바로 백작님께 가야겠지. 앞으로 30분 정도면 해가 뜰 테니까.. 설마 수도에서 여기까지 밤새가며 왔는데 새벽부터 쳐들어왔다고 화내지는 않겠지. 그렇지, 카이스?"

"..예? 아, 네."

굳어진 얼굴로 멍하니 성문을 바라보던 카이스는 난데없는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케빈은 어이가 없어져 그에게 퉁바리를 주었다.

"야, 야. 그래도 오랜만에 오는 고향일 거 아니야? 인상 좀 펴. 뭐, 가문이고 유산이고 다 버리고 셀레니스 기사단에 기어들어온 걸 보니 대충 심정은 알겠다만."

"......."

카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케빈도 더이상 재촉하지 않고 한숨을 푹 내쉬고 착잡한 얼굴로 뒷머리를 벅벅 긁을 뿐이었다.

어쩐지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루이카엔은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 때 빠악! 하고 경쾌한 타작소리가 새벽공기를 갈랐다.

"큭!?"

"왜 그렇게 우거지상이야. 잘생긴 얼굴 못생겨진다?"

아시엘은 친구의 뒤통수를 호되게 후린 작은 손을 내리며 씨익 장난스럽게 웃었다. 카이스는 아픈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아시엘은 그 틈도 주지 않았다.

"이 성 안엔 백작님과 백작부인만 계신게 아니잖아?"

그의 말에, 카이스는 조금 놀란 얼굴을 하다 곧 픽 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렇지."

루이카엔은 킥킥 하는 소리를 작게 내뱉고는 말을 몰아 두 소년의 곁을 지나 앞으로 나섰다. 물론, 그들의 머리를 한번씩 꾹꾹 쓰다듬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됐으면 가자. 너네들이 그렇게 질색하는 백작님 꼴을 좀 봐야겠으니까."

"네에-"

아시엘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머리칼을 정리하며 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실 입가의 힘을 푼 케빈도, 표정이 한결 편해진 카이스도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카이스의 얼굴을 알아본 경비병들 덕분에 그들은 쉽게  영지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세상에, 도련님! 하고 기겁하던 병사들을 떠올린 케빈은 이해가 안된다며 입을 열었다.

"꽤 귀하게 자란 것 같은데 말이야.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됐냐? 별난 황제 밑에서 시달리기나 하고."

"..지금도 나쁘지 않아요."

카이스는 작게 웅얼거리듯 대꾸했다. 그 대답에 케빈은조금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가 곧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참 다행이네. 그것보다 내 질문에 대답은?"

"별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꽃향기에 이끌리는 벌처럼,따라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입니다."

뭔 소리야. 케빈은 이해를 못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카이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머님과 큰형님에게서는 역한 냄새가 나니까요."

"...뭐?"

"아카데미에서 저녀석을 만나기 전에는, 나에게도 났었겠지요."

여전히 알쏭달쏭한 말이었지만 케빈은 그 속에 들어있는 딱딱한 뼈를 대충 눈치를 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걸 물었나, 하는 후회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지만 카이스의 얼굴은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여명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하자, 텅 비었던 거리에도 하나 둘 부지런한 사람들에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지 텃밭과 집안을 바쁘게 오가는 아낙과 이른 시간부터 어디로 가는지 마구간에서 말을 꺼내는 중년 남성, 그리고 벌써부터 열심히 달리고 있는 파발꾼. 그들을 지켜보던 아시엘은 의아하게 입을 열었다.

"변종 몬스터가 나타난 것 치고는 너무 평화롭지 않나요?"

"백작이 미리 손을 써 뒀다고 하더라고. 이야기가 퍼지면 영지민들이 혼란에 빠질테고, 메르티스 가의 주가 역시 떨어질 거니까."

루이카엔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괴생명체가 나타났다는 위기 상황에도 냉철하게 그런 것을 계산하는 백작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립을 유지하는 입장에서 일부러 셀레니스 기사단을 호출한 이유도 그런 종류에 있을 것이었다. 비용 절감, 피해 복구와 비밀 유지. 원래 셀레니스의 일이 이런 것이긴 했지만 조금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도리질을 치고 잡념을 떨쳐버렸다. 그리고는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카이스. 메르티스 가의 차남은 어때? 궁금해지네. 정계에는 물론이고 사교계에도 얼굴을 잘 안 비춰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던데."

"음.."

카이스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대충 말하자면 별난 인간이죠. 같은 형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엥? 별난 인간?"

케빈과 루이카엔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하며 동시에 물었다. 그러자 아시엘이 킥킥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말로 특이한 분이라구요, 키프스 님은. 얼굴 말곤 카이랑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니까요?"

"어? 너도 아는 사이인 거냐?"

"네. 종종 아카데미로 쳐들어 오셨으니까요. 그때마다 소동이 일어나서-"

루이카엔의 질문에 아시엘은 약간 인상을 쓰고 대답했다. 그런 그의 옆에서 카이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마다 수습한다고 식겁한 건 알겠다만,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던 네가 할 소리는 아닌것 같은데."

"그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던 나랑 사이좋게 손잡고 같이 다녔던 네가 할 소리도 아닌것 같은데?"

아, 어째 데자뷰가 느껴진다. 묘한 기시감에 두 선배는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분명 우리가 대략 십여년 전에 저랬던가. 그런 둘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카이스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다시 대화주제를 돌렸다.

"작은 형님은 성인이 되자마자 백작가를 떠나 방랑자로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개인 용병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가끔 보내오는 편지 말고는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뭘 하고 지내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정말로 별난 사람이네."

케빈은 묘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스를 닮은 사람이 방랑하며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시엘은 대충 그의 생각을 짐작하고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굉장히 유쾌하신 분이에요. 아니. 호쾌하다고 해야 하나? 시원시원하고, 남자답고."

"호오. 그 형님과 어머니와는 평판이 상당히 다르네."

루이카엔은 재미있다는듯 빙그레 웃었다. 카이스 역시 작게 미소지으며 해가 떠오르고 있는 수평선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어느새 몇 대째 내려오고 있는 유서 깊은 백작가의 성이 저만치 보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아시엘이 고개를 반짝 들더니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 정면의 언덕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그래?"

"누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말을 타고."

케빈의 물음에 대답한 그는 귀를 더더욱 쫑긋 세웠다.

나머지 이들 역시 소년을 따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감각에도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기척이 감지되었다.

"뭐지? 마중꾼이라도 보낸 건가. 이 길은 성으로 바로 이어져 있잖아?"

루이카엔은 흐릿하게 실루엣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그를 유심히 살폈다. 말을 탄 남자라는 것은 대충 알았지만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얼굴은 그림자로 덮혀 있었다.

그는 정말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해왔다.네 사람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일단은 몸을 긴장시켰다. 남자가 말을 달리며 일으키는 먼지구름이 점점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는 네 사람이 자신을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한쪽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있는 힘껏, 우렁찬 목소리로

"카이이이이이이이!"

카이스의 애칭을 길게 외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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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1주년이기도 해고 100회가 다가오기도 해서 이벤트를 해볼까 합니다☞☜

캐릭터 인터뷰를 진행해볼까 하는데요, 혹시 아시엘이나 카이스, 루이카엔.. 등등의 캐릭터들에게 궁금한 개인적인 질문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꾸벅)

예시) 아시엘에게 질문! 좋아하는 색깔은 뭐에요? Or 이상형은?

작가에 대한 것도 좋아요!ㅎㅎ필요없으시겠지만..ㅎ..ㅎㅎ

음..음..음 설마 아무도 안 해 주시면..음.....ㅠ

질문 기한은 99화 업데이트 까지입니다. 90~99편에 댓글로 남겨주세요!

외전격 특별편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기대해 주세요!ㅎ

이 공지는 질문 종료까지 매편 아래에 복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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